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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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강렬한 한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어제였나 보다.

 

꽤 오래 전이다. 10여 전 쯤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인이란 제목으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분량이 두껍지 않은 얇은 책이었는데, 읽는 시간이 더디었다.

내용도 어렵고, 읽으면서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냥 시작했으니까 끝내야 한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읽었던 것 같다.

읽고 나서도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작품은 읽고 나서 읽은 후에 한 번씩 생각이 났다. 분명 재미있는 책이 아니었고, 가독성 또한 엄청 떨어진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 속에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작품이 이방인이었다.

서양 문학 작품은 사고와 정서의 차이 때문인지, 동양 문학 작품과 다르게 술술 잘 읽히지 않는다. 물론 이건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작품의 내용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유독 심했던 것 같다.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작가이다. 하지만 <이방인>은 생각만큼 가독성이 좋은 작품이 아니었다. 읽을 때마다 유명한 고전 작품 치고는 내용이 다소 난해하고 어려우며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느껴졌었는데, 가만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원작은 원서로 읽어야 그 멋과 재미,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데, 서양 문학 작품들을 원서로 줄줄 읽을 정도로 수준이 되지 못하니, 우리는 번역가의 도움을 받아, 번역된 작품을 읽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번역자의 스타일과 문체, 문장력에 따라 동일 원서라도 번역본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카뮈의 <이방인>10년 전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어렵고 내용이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서양과 다른 우리 동양의 사고와 정서, 환경의 문제에 있었던 듯도 하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그가 쓴 최초의 소설로, 출간 자체만으로도 문학적 사건으로 언급된 호평작이라고 한다. 카뮈를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고,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태양이 때문이었다. 태양이 시켰다.

불로 지지는 듯한 태양의 열기가 내 뺨에 닿았고 땀방울이 눈썹 위에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를 묻던 날에 본 태양과 똑같았다. 그때처럼 이마가 아팠고, 피부 밑으로 온 혈관들이 펄떡거렸다. 불로 지지는 듯한 뜨거움 때문에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한 발짝 움직인다고 태양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딱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칼을 뽑더니 태양빛 속에서 나를 향해 쳐들었다. 빛이 강철 위에 반사되었다. 그것은 마치 내 이마에 닿는 기다랗고 번쩍이는 칼날 같았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며 실존주의 철학자인 작가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는 <이방인>.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생각나는 묘한 작품이다. 코너스톤에서 출간된 초판본을 모티브하여 만든 책으로 만나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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