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는 브뤼헐을 비롯하여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나 미켈란젤로 MichelangeloBuonarroti(1475~1564),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1313~1375) 같은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부터, 18세기 작가 대니얼디포 Daniel Defoe (1660~1731)20세기의 카뮈 AlberAlbert Camus (1913~1960)로 이어지는 역병의 참상을 작품화한 사람들이다. 평소라면 그다지 쓰지 않는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굳이 이들에게 바치고싶다.

그 위대함은, 먼저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
기록하고자 했던 정신에서 기인한다. 
만약 인류 전체가 죽음으로 절멸한다면 그 기록은 누가 보게 될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쓴다는 행위(그린다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용감하게 맞섰다. 이는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참혹한 역병 속에서 이를 묘사해낸 이들의 정신이 위대하다

 그 두 번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죽음‘자기 자신의 ‘죽음‘마저도 똑바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존재라면 무엇을 위해 쓰고 그리는가? 
인간을 둘러싼 물음이 ‘죽음‘과 깊이 결부된 이상, 이 시점에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인문학‘의 기본이라고해야 할 정신이다. 휴머니즘(인문주의)의 발전과 심화가 페스트의 참화와 함께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삼 이렇듯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내 나름의 ‘인문기행‘을 계속 써 내려갈 작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번 장을 읽으면서 아마 세 단위의 시간대를 왕복할 것이다. 
첫째는 말할것도없이 얼마 전 미국을 찾았던 2016년이다. 또 하나는 그런 내가 때때로 회상에 빠지는 1980년대, 그리고 여기에 현재(2020년)라는시간이 추가된다.

그러면 다시 2016년으로 되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죽음의 산

C교수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 위해 코스타리카에서 약일주일간 체재를 마치고 2016년 3월 19일 뉴욕으로 돌아왔다. 강연은 ‘새로운 보편주의를 향한 희구‘라는 제목이었다.(이후 ‘유럽적 보편주의와 일본적 보편주의‘라고 고쳐 졸저 일본 리버럴의 퇴락』(고분켄, 2017년, 한국어판은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한승동 옮김, 나무연필,
2017년)에 수록했다.)
C교수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 여성으로 날카로운 관점을 지닌 철학 연구자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된 인간해방을 위한 힘겨운 실천에 자신의 연구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독일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화가송현숙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송 작가와 친했던 그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 인연으로 베를린 재독한국인 청중을 대상으로 내 강연회를 조직하고 통역을 맡아주기도 했다. 
C 교수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로도 교류는 이어졌고, ‘디아스포라‘를 테마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도 나를 발표자로 초대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코스타리카로 떠나서도 그는 나를 떠올리고 먼 곳까지 불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지구 반대편

까지 스스로 찾아 나설 리는 없었을 것이다.
코스타리카 대학 강연에서 나는 이 매뉴얼 윌러스틴‘mmanuelWallerstein(1930-2019)의 논의를 끌어와 의견을 펼쳤다. (월러스틴은그 당시만 해도 건재했으나 2019년 8월 31일 코네티컷 자택에서 향년 88세로 삶을 마쳤다.) 잠깐 그날의 강연 요지를 소개한다.

194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 그라나다가 함락당하면서 기독교 세력에 의한 레콩키스타 Reconquista (국토재정복 운동)가 완성됐다. 
그렇게 유럽의 다원적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고 불관용이 넘치는 일원적 지배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해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교도의 고난은 500년 후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유럽은 아시아 대륙, 아메리카 대륙 등으로 식민주의적 해외 진출을 펼쳤고 ‘근대 세계 체제‘(월러스틴)가 성립했다. 이는 지구상 대다수 사람에게는 전쟁, 기아, 노예노동,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저개발과 빈곤같은 재앙을 의미했다.
이러한 시스템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 귀중한 보고중 하나가 1552년에 라스 카사스 Bartolomé de Las Casas (1484~1566)가펴낸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다.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 왕실이 주도한 바야돌리드 논쟁

(1550~1551)에서 스페인 사람이 신대륙에서 자행하고 있는 엥코미엔디 Encomienda (식민지적 영주재산제도)는 사실상 노예제나 다름없다고 규탄하며 정복활동 중지를 호소했다. 
반면 논적이었던 세풀베다 Juan Ginés de Sepúlveda (1490~1573)는 "자연법에 따르면, 이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그들보다도 인간적으로 사리분별력을 갖춘 우수한 자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인간 중에는 자연 본성 면에서주인된자와 노예인자가 있다. 저들 야만인은 죽음으로 내몰릴지라도 정복당함으로써 비로소 대단하고 커다란 진보를 달성할 수있다."라고 주장하며 정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
윌러스틴은 이 논쟁을 이라크 전쟁(2003) 이후의 세계정세문맥 속에서 상세히 분석했다. (『유럽적 보편주의』, 김재오 옮김, 창비,
2008년) 그는 선진국이 간섭을 정당화하는 것이 예전에는 ‘종교‘
를 내걸며 이루어져 왔지만 현대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서구를 중심으로 한 범유럽 세계 (내 생각에는 일본 역시 여기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의 지도자와 주류 미디어, 체제 친화적 지식인의 레토릭에는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주의에 호소하려는 언사가 넘쳐난다. 그들이 ‘타자(상대적으로 빈곤하며 발전도상에 있는 국가의국민)‘와 관련한 정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러하다.

이는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적어도 16세기 이래 ‘근대세계 체제‘의 역사를 통해 구성돼온 권력의 기본적인 레토릭이다.

‘라스 카사스/세풀베다 논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윌러스틴은 이렇게 권력에 의해 왜곡된 보편주의를 ‘유럽적 보편주의‘라고 부르고 여기에 진정한 보편주의, 즉 ‘보편적 보편주의‘를 대치하자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근대 이후, ‘문명화(유럽적보편주의)‘를 구실로 삼아 자기중심적 국가주의(초개별주의)에 입각한 침략을 거듭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적 보편주의, 즉 천황제를 최고 가치로 하는 세계 질서를 그들은 ‘팔일우(온천하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라고 칭했다. 중국과 조선 등아시아 민족은 이러한 보편주의에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피지배민족의 독립 요구를 ‘민족주의적 편견‘으로 취급하며 탄압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근본적으로 부정당해야 마땅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천황제가 존속되었듯, ‘일본적 보편주의‘ 또한 살아남았던 것이다. 코스타리카 대학 강연에서 나는 이 점을 지적했다.
코스타리카를 떠나기 전날, 우리 부부는 C 교수의 안내로 수도산호세 근교의 이라수(razú 화산을 보러 나섰다. 화산국가 일본

에서 온 우리에게는 특별히 새로운 구경거리는 아니겠지만 코스타리카를 찾은 관광객에게는 반드시 안내하는 코스라고 했다.
눈이 부실 만큼 활짝 갠 열대다운 날씨였다. 표고 12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서 그리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운전사가 가이드를 겸해 도중에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일찌감치 지쳐 있던 우리는 설명을 흘려듣곤 했지만 어떤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귀를 기울였다. ‘죽음의 산‘이라는 말이 들려왔던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운 운전사가 계곡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죽음의 산이에요."라고 말했다. 파나마로 통하는 도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가 많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희생자는주로 자메이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였다. 카리브해 제도의 기후에 익숙해 있던 그들은 한랭한 고산기후와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깊숙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서양건너로 끌려온 뒤 카리브해 지역에서 다시 이 깊은 산속으로 연행되다시피 하여 목숨을 빼앗긴 셈이다.
햇빛이 드는 아름다운 마을을 품은 분지 저편으로 첩첩이 이어지는 산맥이 보였다. 나는 그 산줄기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저멀리 일본 규슈나홋카이도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와 광산에서 힘겨운 강제 노동에 쓰러진 조선인의 유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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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 한국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반국가단체 인민혁명당 관계자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제1차 인혁당사건). 그렇지만 실제로 검찰이 기소할 수 있었던 사람은 13명뿐이었고, 최종적으로는 3명에게 징역 6년, 다른 10명에게는 징역1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빈 껍데기일 뿐인 날조 사건이었다.
 1970년대 전반 한국 사회는, 1972년 박정희유신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인해 반정부 민주화운동이 고양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계자를 적발하고(민청학련 사건), 1974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총 23명을 체포했다. 
그들의 죄상은 "인혁당을 재건하여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한 점"이었다. 
다음 해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판결로부터 불과 18시간 후인 9일 아침에 형을 집행했다. 
오글 목사 부부는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살육 행위에 당당히 항의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 까닭으로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인민혁명당 피고의 사형 집행은 박정희 시대의 한국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2005년에 한국 국가정보원은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2007년 사법부(서울중앙지법)는 사형이 이미 집행된 8명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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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6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 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 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7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8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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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는 
아이가 하루하루 앞으로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멈춰 있거나 뒤로 갈 때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동생을 본 아이가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으려 할 때우리는 아이가 퇴행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게 분명한데도 못 하는 것처럼 굴기 때문이지요. 큰 스트레스가 있을 때 아주잠깐은 그럴 수는 있지만 더 허용하면 아이의 성장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힘들어도 앞으로 가도록 아이를격려해야 해요. 

식사할 때 계속 움직이는 아이를 그대로 두면 학교급식 시간에 문제를 겪을 겁니다.
개인으로서는 살 만큼 살았고,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로서는 늘 초보 같은 느낌일 거예요. 

부모가 되기 전에 나는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엄마로서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 믿을 수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부모들은 여유 있게 하는 걸 혼자 쩔쩔맨다고 생각하면 자괴감과 자책감에 잠을 설칠 수도 있어요. 

이때 나침반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이의 성장입니다.
아이가 혼자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는데 내가 도와주면 아이의 의존심을 키우는 걸까, 
아니면 완성을 못 시켜서 자존감이 떨어질까, 
시험을 못 보면 다른 애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을까, 학원에 보내서라도 점수를 잘 받아야 자신감 있게 행동하지 않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대답은 천양지차이고, 우리 애에게 맞는 솔루션은 없

이 감정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표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합니다. 

불안은 위험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감정인데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학교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지금부터 아이들이 겪는 일은 대부분 일상적으로 익숙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 모두에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되면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일과 중요한 일을 구별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보고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엄마 개인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아이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때, 엄마는 초등학생부모라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아기를 돌보던 단계는 벗어나고 좀 더 큰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다가오는 청소년기와 그 이후 시기에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어요. 

초등학생엄마가 해주어야 할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반복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이기에 핵심을 꼭 잡고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엄마는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나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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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와 주혁이한테도 네가 나를 변명해주길 바래. 그 애들은공부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없으면 훨씬 홀가분하게 이 땅을 잊을 수 있겠지. 그 애들을 원망하지는 않아. 그 애들처럼 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지…………진진아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줘.

내 생애에 이런 편지를 받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모가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내리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모 집으로 달려가면서 쉴 새 없이 부르짖었던 마음속 내 기도는 단 한 줄이었다. 하나님, 이 편지가 이모의 장난이게 해주세요!
제발 장난편지로 만들어주세요!
장난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니, 절대 그렇게 믿어야 했기에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이모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수선을 피우거나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진짜가 되어버릴까 겁이 났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일이 진짜가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의 열쇠로 대문을 열고,
나머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기이한•정적이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미국인이야. 엄마한테는 충격이었겠지. 엄마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었어. 엄마가 그것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그렇게 못난 분이 아니셨어."
나도 시인했다. 
이모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삶 대신죽음을 선택한 것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이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모 같은 사람이 뿌리 내리며 살기론 이 세상이 너무 얇았던 것이다.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 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모든 일을 끝내고 이모 집을 떠나던 날, 나는 거실의 오디오박스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몇 장의 시디를 발견했다. 이모가 자주 듣던 유행가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유행가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 사랑하는 이모의 심금을 울린 노래들, 그노래들 속에 ‘헤어진 다음날‘도 있었다.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보잘것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이모부는 건재하다. 이모의 엄청난 배신으로 상처는 입었으나,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애쓰는 기차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주리는 미국에서 푸른 눈과 밤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주리는 신부답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 살펴보니 주리의 입은 활짝 열려있지만 주리의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나는 곧 결혼한다. 어머니와 이모에 이어 나도 4월의 신부가 된다. 물론 4월 1일 만우절은 아니다. 

일 년 전쯤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다짐에 충실했던 일 년이었다. 
살필 수 있는 만큼은 다 살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4월의 결혼식에 내 손을 잡아줄 남자는 그래서 나영규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헤어진 다음날‘은 나와 김장우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진 다음날들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이모와는 달랐다. 나는 잘 견디었다. 김장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시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 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 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8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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