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활한 성격으로 교우 사이에 늘 주목받는 고등학생 주인은 매사에 열심이다. 학교생활도, 태권도도, 봉사 활동도, 집안일도 그러던 주인이 고등학교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진로를 묻는 선생님에게는 사큰둥하더니 장난스럽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주인은 친한 친구가 "연애 좀 살살 하지"라 말할정도로 연애도 열심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어렵다.는 주인에게 더 어려운 일이 찾아온다.
같은 반 수호는 아동 성폭행 범죄자가 형기를 마지고 복역 전에 거주하던 자신의 동네로 돌아온다는사실을 알게 된다. 어린 여동생이 있는 수호는 이를 반대하는 서명을 받다가 주인과 충돌한다.
주인은 취지는 알겠으나 피해자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살아간다는 말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이를 계기로 수호와 주인은 예기치 못한 비밀과 고백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된다. - P-1
명랑한 소녀의 심연에는
<우리들>과 <우리 집>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세•번째 장편영화 <세계의 주인>은 겉으로 드러난 면면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알기 어려운 심연에 관한 영화다.
마냥 명랑한 소녀의 마음속에 일찍이 들이•친 파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에서 언뜻언뜻 비치던 기미는 러닝타임 한시간째 이르러 담담한 고백으로 발화한 뒤 강렬한 감정으로 폭발한다. 마치 영화의 전후반을 가르듯 점프하는 이 대목에서 <세계의 주인>을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방금까지 본 얼굴이 삽시간에 낯설어지는 경험을 한다.
<세계의 주인>은 여전히 주인공의 관점을 따르는 영화지만 세상 사람이 주인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판단하는지 보여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의문을 제기하길 원했고, 그렇기에 3인칭 서사가 필수라 생각했다."
윤가은 감독의 말처럼 고등학생 소녀를 내세운 <세계의주인>은 초등학생 소녀가 주인공인 전작과 시점이 달라졌다.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주인을 둘러싼 세계를 이룬 다양한 이의 얼굴과 생각, 언행을 통해한 사람의 안팎을 깊게 채우고 너르게 에워싸는 ‘세계‘를 보여 준다.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주인의 세계는 변화한다. 주인은 스스로 달라질 게 없다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보내지만, 사정을 뒤늦게 안 친구들은더 이상 그전처럼 주인을 대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 P-1
는 주인을 향해 쪽지가 네 번 날아든다.
주인의 비밀이 드러나기 전에 한 번, 드러난 이후로 두 번, 마지막에 한 번, 세 차례에 걸쳐 활자로만 읽히던 발신인 모를 쪽지가
영화의 결말에 다다라 모두의 목소리로 들릴 때 <세계의 주인>이라는 제목은 비로소 명확해진다.
쪽지의 발신인은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수신인이 갖게 된 마음이다.
정체는 물라도 심정은 충분히 알 법한 진심, 자기 삶을 아끼는 마음을 품도록 하는 용기, 주인의 세계는 비로소 세계의 주인들과 함께 나란히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쥐여 준다.
수많은 형태의 마음 사이에서도 믿음과 위로가 <세계의 주인>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겨내야 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지만, 살아 있기에 일단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삶이다.
상처가 났을 때 위로받아야 일상이 회복된다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이들과 환경을 가진 행운아도 있지만 어떤 이는 영원히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야한다. 사람마다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독의 말처럼 세계의 정면과 이면 사이에 무수한 형태의 마음이 있다.
각기 자라나고 때론 일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긋나기도 맞물리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마음 사이에서 누군가는 타인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외면하지 않고ㅈ보듬는다.
그런 세계에 관한 신실한 믿음을 품고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 <세계의 주인>에 있다.
사과를 싫어한다는 주인에게 친구가 묻는다. "사과는 싫어하기에는 너무 무난한 과일 아닌가?" <세계의 주인>은 주인이 사과를 싫어하는 이유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과를 싫어하는 데 꼭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가?
<세계의 주인>은 그렇게 세계의 장벽을 넘어사유하길 권하는, 품성의 경지를 지닌 걸작이다.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고, 간절하게 관람을 권한다. 나와 당신, 우리를 위하여.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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