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공산주의 사회의 도덕주의는 미학의 자율성을 말살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생산을 아예불가능하게 만듭니다. 1973년에 6주간 중국에 다녀온 뒤로 확신하게 된 것은, 물론 그전에도 알았지만, 지성에 필수적인 자양분으로서 미학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급진주의가 거침없이 ‘스타일‘로 전환되던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학적 세계관을 지나치게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그 무엇도 옹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예술작품도 오로지 예술작품만은 아니기에, 현실은 대개 더 복잡합니다. 

「스타일에 관하여」에서 나는 와일드와 오르테가가 드러낸 진실을 재구성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발적인 서문을 통해 속물주의를 비판했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예술의 비인간화』에서 이와 같은 비판을 더욱 엄숙하게 과장했지요. 그러나 나는 와일드와 오르테가처럼 미학적 반응과 도덕적반응을 암암리에 분리하거나 실제로 대립시키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스타일에 관하여」를 쓰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같은 입장에서 글을 씁니다. 그러나 지금 내 뼈에는 역사적 살이 더 붙었어요. 나는 여전히 지독한 탐미주의자이자 강박적인 도덕주의자이지만, 역사적 맥락을 더욱 밀도 있게 이해하지 않고 탐미주의자185 - P-1

내가 쓴 글을 인용하셨으니, 나도 내 글을인용할게요. 1965년에 쓴 그 에세이에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술 애호가들이 예술작품에서 스타일을 따로 분리할 수 있는 문제적 요소로, 본질상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을 가리는 위장으로인식한 것은 특정 역사적 시기뿐이다." 내가 최근 씨온 글들은 다른 사람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내 작품에도 적용되는 방식으로 이주장을 더 밀어붙이고 구체화하려는 시도입니다.

인터뷰어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가 페미니즘적 가치를 도외시한다며 리펜슈탈에 관한 에세이를 비난했을 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페미니즘의 열정을 특정한 역사적 주제에 적용하면 아무리진실일지라도 극도로 개략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안타깝게도대부분의 역사가 ‘가부장제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구분이 필요할수밖에 없습니다.

인생 이야기가 늘 죽음의 필연성과 인간 소망의 덧없음을 성찰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듯이, 인간 역사에서 발생한 비통한 사건은 사실상 전부 페미니스트의 개탄을 반복할 소재가 됩니다. 그 주장이 때때로 의미를 지닐 순 있겠지만, 늘그 주장을 반복할 순 없습니다.""그렇다면 그러한 주장을 해야... - P-1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페미니즘 비평에 더 적합한 사건이나 ‘운동, 예술작품이 있을까요?

나는 많은 여성과 남성이 우리 사회의 언어와 행동, 이미저리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말하는 페미니즘 비평이 이런 뜻이라면, 그런 비평은 언제든, 아무리 어설플지라도 늘 어느 정도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나는 페미니스트 지식인들이 동료 여성들에게 변절자라고 비난받을 위험 없이 여성혐오와의 전쟁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자기 작품에 페미니즘적 함의를 남기거나 내포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정치적 노선을 좋아하지 않아요. 지적 단조로움과 나쁜 글을 낳거든요. 단순하게, 그러나 너무 푸념처럼 들리지는 않게 말해보겠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지적 과제와 서로 다른 수준의 담론이 존재합니다. 실제로 적절성의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어떤 사건이나 예술작품이 더 ‘적합한‘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어떤 주제를 공개적으로 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복잡한 주장을 얼마나 많이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또 행사해야 하기 때문이죠. 리치는 내가 나치 독일이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의 정점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물론 리치는 리펜슈탈 영화의 가치가 곧 나치의 가치라고 상정하고 있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겁니다. 리펜슈탈의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나치의 가치를 구현하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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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간

목에 힘주다 보면
문틀에 머리 부딪혀 혹이 생긴다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낮추어도 낮추어도
우리는 죄가 많다
뽐내어본들 도로무익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 P-1

축복받은 사람들

찬란한 가을 길목
소소한 바람 불고
사랑은 시인이 한다

해 떨어지는 부둣가
낙엽 뒹구는 간이역
사랑은 나그네가 한다

영혼의 맑은 샘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충일한 곳
사랑은 가난한 사람이 한다

그 밖에는 그저 그런 생식
탐욕과 이기의 공범자
사랑은 언어도 활자도 아닌 시 그 자체
축복받은 사람들의 것이다 - P-1

대추와 꿀벌

대추를 줍다가
머리대추에 처박고 죽은
꿀벌 한 마리 보았다

단맛에 끌려
파고들다
질식을 했을까

삶과 죽음의
한 한 자리
손바닥에 올려 놓은
대추 한 알

꿀벌 半 대추 半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하늘 - P-1

생각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하고
수억년 쌓인 지층 모양
생각은 쌓이고 쌓여
내 머리통은 터질 것만 같다

생각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날으고
생각 사이로
사슴 한 마리 지나가고
생각 사이로
겨울 들판 비둘기 한 마리 있고

그래서
내 머리통은 깨지지 않았나부다 - P-1

感性

다 그렇게 살다 갔을거야
응어리 삼키는 강가
구름 한 점 내마음 한 점

한점
점만큼 줄어든 영혼
펴보면 갈청같이 엷을거야
찢어지겠지 - P-1

시공

새벽 네시쯤
닭장에서 수탉이 울었다
장보고오!
하며 울었다
귀기울여 다시 들었건만
장보고오!
내 마음의 소리인가
닭의 울음인가

언제였던지
연못의 맹꽁이들이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
하며 울었다고
추대를 세우다가
나도 맘속으로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
해보았다 - P-1

황해를 주름잡던
배포 큰 사나이
물 속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대륙
생각만이
시공을 관류하는구나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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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진 사람들과
이름 없는 땅에서 자라난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

빛이 보여서 왔어.
어두운 새벽에 깜빡이는 빛이 보여서 왔다. 생명은 빛을 따라갈 수밖에없어. 그 빛이 시초니까. 이 우주의. 그리고 죽지. 생명은 누구나 하지만죽음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어 죽는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저 너머에는 뭐가 있어?
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그곳에 무엇이 있더라. 매몰됐던 기억은 또다시 차츰차츰 조각을 맞춰갔다. 짙은 보랏빛의 하늘, 그리고 그 하늘에서 보았던 나무의 뿌리, 바스락거리는 잎사귀들의 대화.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가 있어, 저기 너머에는 본문에서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밖은 저토록 조용한데 이 안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지나치게 피곤하고, 지나치게 빠르게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평생 좋아하는 노래만 듣다 죽어도 괜찮을것 같았다.
행복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읽고 나면 지치는 책이 될까 봐 두렵다. 사랑하고 싶어 소설을 읽고, 삶을 알고 싶어 소설을 읽듯 가끔은 더 지치고 싶어 소설을 읽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으리라 믿으며 두 번째 소설집을 이렇게 엮어 당신께 보낸다.
‘작가의 말‘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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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존 맥가헌은좋은 글은 전부 암시이고 나쁜 글은 전부 진술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의 암시를 의식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독자가 처음에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도입 부분에서 어떤 것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나면 첫 문단이 적절하게 느껴지고 이어질 이야기를 암시한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저는 두 번 읽어서 결말 부분이 앞으로 밀려와 다시 서사가 한 바퀴 돌아가기 전에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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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선생님의 이 말은 당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삶의 장면 장면마다 불러내는 말이 되었다.
비 오는 오후의 술 생각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혹은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냉수처럼 간절한 말. - P-1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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