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변화를 향해 제 발로걸어 들어간다.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능동성이다. 이제는 주인공들이 폭풍의 눈으로 향하도록 이끌고자 한다.
 한자 속 호랑이와 돼지와 칼을 보며,
세헤라자드와 내 가슴속 사고뭉치 친구들을 떠올리며 드라마를 쓴다. 그러고 나니 소설로 써서 이미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을 더 속속들이 이해하게 된다. 각본으로 옮겨진 인물들의 눈동자는 책에서보다 더 심하게 요동친다.

갈등하는 눈동자란 어떤 식으로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다시 만든 이야기를 들고 내가 향하려는 곳은 저짓거리다. 시장에서, 할머니의 수영장 탈의실에서,
할아버지의 등산로에서 친구들의 카톡창에서 내가 만든 심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기를 꿈꾼다. 

쉽고 낮고 속된 말로 마구 해석되면 좋겠다. 그렇게 유통되는 몹시 상스러운 드라마 안에, 몹시 성스러운 진실을 숨겨두고 싶다. - P-1

조금은 남의 눈으로 내 인생을 보는 것이죠. 그럼으로써 내 인생에서 잠시라도 해방되거나 초월하게 되는 소중한 순간이 글쓰기에는 있습니다. 

한데 어떻게 나로 살면서 내 경험을 멀리서 보듯 서술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초월이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작가마다 접근법이 다를 텐데요.

우선 쓰고 싶은 경험으로부터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두는 방법이 있겠죠. 
전자는 경험을 충분히 소화될 만큼 세월이 흐른 뒤에 쓰는 글이고요. 
후자는 물리적으로 먼곳에 떨어져서 쓰는 글이에요. 하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얼마든지 일상을 떠날 상황이 아닐 수가 있잖아요. 그럴 때에도 방법은 남아 있어요. 
내 사건으로부터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멀리 떨어지지 않아도, 앉은 자리에서 즉시 내 경험과 멀어지려는 시도를 해보는 거죠. 

그게 바로 비비언 고닉이 《상황과 이야기》에서 설명하는 내 안의 타인을 발명하는 방법입니다.

‘내 안의 타인‘이란 아무리 희노애락에 취해 있을지라도 항시 내 이야기를 관전하는 누군가를 잊지 않는 것일테지요. 
고닉은 그 존재를 자기 안의 ‘특별한 서술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엔간해선 진부함 속으로 순순히 - P-1

빨려 들어가지 않는 서술자죠. 

아주 슬프고 엄중한 상황에서 풉하고 웃음 터지신 적 있으세요? 
실은 다들 가슴 속에 장난꾸러기 한 명쯤 품고 사시는 거 알고 있어요.

반대로 마냥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도 젊고 어리석은 자신을 미래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노인이 된 나의 시선을 상상할수 있다면 그것 또한 페르소나겠죠. 스스로를 멀찌감치떨어져서 바라보는 눈이요.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투박하게나마 세 단계로 분류해 보았어요.

1단계, 상황 설명
2단계, 일기
3단계, 이야기

제가 도달하고 싶은 상태는 물론 ‘이야기‘입니다. 여기서의 이야기란 대략...... 출판사에 보내기에 부끄럽지 않은 상태의 글이라고 해 둘게요.

생전 처음 군부대로 강연을 간 젊은 여자를 상상해 봅시다. - P-1

이 여자의 경험을 세 가지 버전으로 함께 살펴 볼게요.
따끈따끈한 예문들을 함께 보시죠. 
일단 1번 ‘상황 설명‘
카페에서 친구를 만난 사람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이에요 오늘 겪은 놀라운 일을 마구 늘어놓는 거죠.

야야야, 들어봐 들어봐! 내가 오늘 군부대로 강연을 갔어. 다른 데도 아니고 군부대로!!! 그걸 수락한 내가 미친년이지. 뭔 생각이었나 몰라. 군인들 삼백 명이 쫙 깔려 있는데 분위기 존나 싸하고 와 뒤지는 줄 알았다.
레전드였음. 그렇게 힘든 강연은 처음이었어. 군부대 다신 안가……………

다소 투박한 ‘상황 설명이지만 대략 무슨 일인지 이해가 가시지요? 인상적인 경험을 겪은 직후의 반응입니다.

예컨대 방금 가벼운 접촉 사고를 당한 친구의 전화도 이것과 비슷하게 시작할 것 같아요.
 "야야야, 지금 뭔일이 있었는지 알아?" 흥분한 채 교통사고의 경위를 얘기할 거예요. 직전의 사건 한복판에 놓여 있는,
그러느라 편집 순서나 전달 방식이 그렇게까지 특별할 겨를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겠어요. 화자가 이야기를 - P-1

장악했다기보다는 상황이 화자를 압도한 상태입니다.

2번 예시는 ‘일기‘입니다. 일기를 쓰는 사람에겐 비교적 시간적 거리가 생기죠. 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펼치기까지,
혹은 비공개 블로그에 접속하기까지 몇 시간은 걸릴테니까요. 하지만 일기는 나 아닌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나의 평화를 위해 남기는 개인적인 기록이고, 다른 독자를 상정하지 않으니까 그렇게까지 명문을 욕심내며 써야 할 이유가 부족합니다.
일반적인 일기 문체가 평이한 것도 그래서일 거예요.

오늘은 군부대에 다녀왔다. 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수락한 건 아무래도 경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다른 강연에선 늘 환영받았는데 군부대 분위기는 진짜 살얼음판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진땀이 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병사들의 키위 같은 뒤통수가 잊히지 않는다. 강연장 분위기가 꼭 급식실 같았다.

이렇게 무난한 문장도 막상 술술 써지지는 않는다는 걸, - P-1

써보신 분들이라면 알 거예요. 자주 쓸수록 내 인생과의 거리 조절에 능해진다는 점에서 일기 쓰기는 중요한 훈련이에요.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게 낫죠. 게다가 한 이십 년 뒤쯤 문득 이 페이지를 들춰봤을 때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나 혼자 보는 일기장이라면 아무 문제도 아닌 글이죠.
하지만 이 글로 책을 만들어서 초판 이천 부를 찍고 출판사의 자본과 마케팅을 끌어올 만하느냐고묻는다면…… 아무래도 자신만만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1번과 2번 모두 ‘이야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요. 어떻게 해야 이야기에 가까워질까요?

이제 3번 예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야기엔 무릇 제목이란 게 있죠. 심청전, 춘향전, 로미오와 줄리엣,
김약국의 딸들, 진격의 거인...... 장편이든 단편이든 간에 이야기들은 적절히 흥미로운 제목을 가졌습니다. 
제목은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장악력을 드러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통제하고 있다는 저력을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죠. 책의 한 페이지를 화면에 띄워 놓았는데요. 제 글인 - P-1

만큼 마음 편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겠습니다. 저의 열세 번째 책 <끝내주는 인생》에 수록된 산문 중 한 편의 제목입니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 제목은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한창 유명했던 문구를 변용한 것입니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는 웅장한 카피가 있었죠. 많은 티셔츠에 적혀 있던 웅장한 카피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게 궁금했어요.
‘난 착한 여자도 아니고 나쁜 여자도 아니고 단지 어리석은 여자인데…………… 어리석은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거지? 가만 보자.. 어리석은 여자가 가는 곳 중 하나는 군부대로구나!‘
그런 사고의 흐름으로 이러한 긴 제목을 쓰게 되었습니다.

도입부도 살펴볼게요.
사랑 때문에 어리석어지는 게 하루이틀 일도 - P-1

아니지만 새삼스레 이야기해 본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애서가들로부터 사랑받았다. 이 사랑은 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를테면 군부대에서의 북콘서트를 수락하는 일이랄지......

이 첫 문단이 드러내는 것은 이슬아라는 사람의 오만과 후회겠죠? 군부대 강연을 수락한 건 그의 자아도취 때문입니다. 책이 좀 잘돼서 알량한 인기를 얻었다고, 이제 어딜 가든 자신이 사랑받을 줄 알았던 사람이 이 글의 화자인 것입니다.
인류는 캐릭터들이 곤란해지는 이야기를 꽤나 즐겨왔습니다. 좋은 상황에서 좋지 않은 상황으로 하강하는 이를 구경하는 것 말이에요. 그 낙차를 간접 경험하는 게 드라마의 핵심 체험 중 하나죠. 
《끝내주는인생>도 딱히 멋진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한동안 잘 풀리는 일상을 사느라 안일해져 버린 ‘나‘가 다소 경솔한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을 짧게 서술하며 들어갑니다. 작가는 스스로에 대해 쫏, 하고 혀를 차고 있는 듯해요. - P-1

이 첫 문단에서 우리가 함께 관찰하면 좋을 것은 바로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된 자의 포즈‘입니다. 이슬아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호일 수도 불호일 수도 있겠죠.
불호일지라도 그가 쓴 것이 불특정 다수 앞에 설 채비를 마친 문장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슬아 안에는 기꺼이 사랑받고자 하고, 놀림받고자 하는 서술자가 살고 있어요.
타인의 눈으로 저를 보아하니 그렇습니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면 군부대 무대에 대한 디테일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엉성한 무대죠. 지금 제가 밟고 서 있는 강연홀은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견고한 무대인데요. 군부대 무대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불길한 소리가 나죠. 이런 세부 정보를 묘사하면 할수록 어쩌지 이야기 속 ‘나‘와 쓰는 ‘나‘가 분리되는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되어요.

군부대 나무판자 위에서 마이크 테스트를 마치고 삐걱대는 바닥을 밟으며 내려왔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는데 찬이가 남 일처럼 중얼거렸다.
"누나 좆됐는데?" - P-1

참고로 찬이는 이슬아의 남동생입니다. 이 글에서는 조력자인지 웬수인지 헷갈리는 역할을 하고 있죠. 그는 빈말 없이 ‘누나, 오늘 좆된 것 같다‘고 직언합니다.
그 전까지 이슬아는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정신승리를 하면서요. 하지만 진실의 심판자인 찬이가 정확히 알려주죠. ‘누난 이견의 여지없이 망했어.
다가올 상황은 쉽지 않을 거야‘
그러므로 이슬아는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의 불길한 운명을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착잡한 기분으로 무대 옆에 트렌치 코트를 벗어두고 가방을 내려놓지요.
삼백 명의 병사들은 놀릴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용기가 꺾여서 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온통 연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 그곳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용감한 병사는 단지 오분 더 용감했을 뿐이다." 저게 무슨 뜻이지? 용감한 병사와 그렇지 않은 병사는 깻잎 한 장 차이라는 건가? 오분 동안 병사는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인가? 용감하면 그냥 오분 먼저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 P-1

왜 우리는 서로 엇갈리기만 했을까? (...) 
난 언제나 아버지가 나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내가 아버지를 알고 싶지 않았던 거구나. 그러고는 또 깨달았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구나.

언제 읽어도 사무치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 써 본 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예요. 애컬리의 작품<아버지와 나>에 대해 고닉은 다음과 같이 씁니다.

애컬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목소리를 명료히 하는 데는 삼십 년이 걸렸다. 거리 두기를 성취하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고, 신뢰할 만한 서술자가 되는 데 삼십 년이 걸린 것이다. 이런 세월이 글에 아로새겨져 있다.
사건마다, 단락마다, 문장마다 우리는 노력으로 얻어진 한 페르소나의 찬란함을 느낀다.* - P-1

가까운 애증의 관계일수록, 특히 같이 살수록 더더욱 공간적 거리 두기가 어렵죠. 그래서 시간적 거리, 즉 세월이 흘러야만 비로소 제대로 관계를 해석할 수 있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꼭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고 싶죠.
중년기와 노년기를 모두 겪으며 쓰고 싶죠. 칠십 대, 팔십대에도 무르익은 실력을 발휘했던 작가들을 닮고 싶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를 때까지 글을 안 쓸 수가 없잖아요.
시간적 거리가 생길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만들어야 하는 게 공간적 거리입니다. 
이게 꼭 이사를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내가 쓰고 싶은 대상과 멀어질 여유가 언제나 주어지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진짜로 한 이 미터 정도면 돼요. 내 마음 속 카메라 앵글의 위치가요. 

시트콤 <오피스>를 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어요.
<오피스>는 제게 영원한 웃음의 원천인데요. 그저 그런 - P-1

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종이를 만드는 작은 회사죠. 
여기서 근무하는 열 명 정도의 인물들을 다루는 군상극이며 시즌 9까지 방영하고 막을 내린 명작입니다.
이 인물들 옆엔 항상 카메라가 있어요. 시트콤 속 또 다른 카메라예요. 극중에서 이 회사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로 찍기로 한 촬영팀이 상주해 있거든요.
근데 그 카메라맨들이 되게 짓궂어요. 클로즈업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줌인을 하고, 보통은 숨겨야 하는 치부들을 꼭 발각해서 찍어요. 인물들이 정말 진지하게 싸울 때조차도 그 모습을 정말 우스꽝스럽게 카메라에 담아요. 그 카메라에 담긴 인물들은 정말이지...... 쪼잔하고옹졸하고 초라하죠. 그렇게 취약한 모습들로 매회가 채워집니다.
24시간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24시간 한심한 사람도 없어요. 
그것이 <오피스>의 카메라가 제게 늘 일깨워주는것이죠. 누군가의 치명적인 결점이 그가 삶을 견디고 돌파하는 방식이 되기도 하고요. <오피스>를 보며 - P-1

에세이스트로서 저는 이런 메모를 적었습니다.

에세이스트 옆에는 늘 카메라 한 대가 돌아가고 있다.
자기 눈 말고도 눈동자가 하나 더 있다. 이 눈이 관찰하고 발견한다. 나 자신의 우스움, 의외의 멋짐, 예상치 못했던 코믹 포인트, 허를 찌르는 슬픔의 순간・・・・・・

결정적인 일을 겪을 때마다 늘 상상해요. 지금 만약<오피스>라면 내 상황을 어떤 이야기로 가공할까? 어떻게 편집하고 어떻게 극화하고 놀릴까? 

그럼으로써 어떻게 못잊게 할까?

좋은 에세이를 쓰는 작가들은 알고 있어요. 모든 사건은 세 사람이 겪는다는 것을. 나, 당신,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그러니까 ‘겪는 나‘ 말고도 ‘응시하는 나‘가 또있는 것이죠. 경험하는 내 눈 말고도, 경험하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눈동자. 그것이 바로 내 안의 타인, 서술자의 눈일 거예요.
이어서 ‘작가의 광대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 P-1

작가랑 광대가 무슨 상관인가 싶으시겠지만 저는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들은 죄다 조금씩 광대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자초하고 즐기는 사람의 기세 말이에요. 
이 광대성에 대해 동료 작가 안담은 ‘나는 놀려질 만큼 강하다‘는 태도이기도 하다고 제게 말해 주었지요.
적극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할때, 양다솔이라는 작가 겸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빼먹을 수없겠죠. 양다솔은 종이책 작가이지만 그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 중 하나는 제 결혼식 영상에서의 활약 때문이에요. 참고로 저의 결혼식 영상은 그냥 지인들에게 전해주는 용도로 조용히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린 것인데요. 정신 차려보니 조회수가 벌써 삼십만 회 가까이 향해 가고 있답니다. 제 책이 그렇게 팔렸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무튼 결혼식 영상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저의 친구 양다솔 작가의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이에요. 코미디 공연에서 양다솔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아는 이슬아는 최고의 효율맨입니다. 취할 건 취하고 - P-1

가차 없이 버려요. 그가 버리지 않는 건 딱 세 가지입니다.
책, 독자, 이훤.....

여기서 이미 모두가 빵빵 터지며 웃었죠. 양다솔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술 더 떠요.

그 외에는 쓸모없다 싶은 건 계절마다 정리해서 싹 다 버립니다. 저도 여러 번 쓰레기장에서 돌아왔어요.

이젠 사람들이 웃다가 쓰러지죠. "저도 여러 번 쓰레기장에서 돌아왔어요"라니. 너무 뛰어난 펀치라인이잖아요? 사실 이 얘기는 얼마든지 재미없는 버전으로 얘기될 수 있었어요. 양다솔이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만 했다면 말이에요.
‘슬아야, 넌 왜 나를 버리니? 내가 그렇게 별로니?
난 너무 슬퍼...... 난 너를 좋아하는데 왜 너는 그만큼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 거야......?‘
조금만 들어도 질척이는 이야기죠. 그러나 양다솔은 이걸 코미디로 승화하기로 선택하죠. 그게 양다솔의 작가성이고,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양다솔만의 페르소나예요. - P-1

그는 알고 있어요. 우정이란 딱 떨어지지 않고, 삶은 서럽고 불공평한 것임을요. "이슬아는 쓸모없다 싶은 건 계절마다 정리해서 싹 다 버립니다"라고 그가 말했을 때 관중들이 예상했을 다음 문장은 "저도 버려질 뻔했어요"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양다솔은 거기서 한 걸음 더 갑니다. "저도 여러 번 쓰레기장에서 돌아왔어요"라는 대사로요.
해명하자면 저는 양다솔을 사랑하지만 때때로 그를 외면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분명 양다솔을 버린 몇 번의 계절이 있었어요. 양다솔은 자신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버려졌음을 직면할 뿐 아니라, 이슬아가 절대로 쓰레기장에 자신을 데리러 와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직면합니다.
그래서 제 발로 쓰레기장을 벗어나 다시 이슬아를 찾아갔다고 서술합니다. 동료 작가들은 이것을 ‘돌아온 쓰레기로서의 자부심‘이라고 칭송하기 시작했어요.
제 발로 돌아온 쓰레기의 긍지. 어떤 작가가 이 페르소나를 흉내 낼 수 있을까요? 양다솔은 천재입니다. 그가 아니지 이 코미디를 시전했을 때 저는 진심으로・・・・・・ 그에게 - P-1

섹시함을 느끼고 말았어요. 어떤 창작자가 섹시하다는 것은 크게 꺾인 자신을 어디까지 승화시키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물론 양다솔도 처음부터 이런 얘기를 웃으면서 여유롭게 할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시간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를 적절히 활용하며 가장 매력적인 페르소나를 세공한 것이죠. 이제 누가 양다솔을 딱하다고 생각할까요? 오히려 감탄밖에 들지 않나요? 저 여자가 제발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면 좋겠다. 저 여자는 꾼이다. 이야기꾼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죠.
제 주변엔 이렇게 미치도록 웃긴 작가들이 몇 있어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웃기려는 걸까요? 
작가들이 농담력을 갈고 닦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다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안담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건 바로
‘끝까지 듣게 하기 위해서‘라고요.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생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개하지 않으면, 독자이든 관객이든 간에 끝까지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제가 썼듯, 슬픔도 지루해질 수 있으니까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이런 대사가 - P-1

나오죠.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Every rejection every disappointment has led youhere.)" 

저도 데뷔 전에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받곤 했어요.
내 작업이 거절당할 때의 마음, 위축되는 그 심정을 익히 알고 있어요. 되게 속상하고 주눅들었는데요.  그런 일들조차 나를 근사한 순간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면 또 용기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소중한 거절들, 그리고 그보다 더 소중한 작은 성공들 속에 계시면 좋겠습니다.

딱 한 시간이 지났네요. 
저는 강연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편입니다. 누드모델로 일했기 때문에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잘 감각해요. 뱃속에서 째깍째깍 시침과 분침이 돌아가고 있는 걸 느끼거든요. 
모쪼록 여러분께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쓰시길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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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까다로운 아버지에 맞춰 밥상을 차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되풀이해서 말했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운 엄마를 보기만 해도 죄책감이 들었는데, 엄마는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이 좋다고 했다. 엄마는 음식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경제력이 없는 엄마는 자신이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밥이라고 생각했다. 한 끼도 대충 차리지 않았다. 없는 돈으로ㅈ세끼를 준비하면서 늘 필수영양소가 제대로 들어갔는지를 따졌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우리는 그 흔한 석유풍로조차 없어 엄마는 연탄아궁이에서 세끼를 준비해야했다. 풍로를 들여놓던 날, 엄마의 기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풍로를 들인 기념으로 선택한 요리는 튀김이었다. 엄마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고열량 음식을 자주 먹어야 한다고 했다. 감자와 당근, 양파 말고도 쑥갓, 가지, 깻잎, 고추, 고구마 등 채소란 채소는 다 튀겼다. 

우리가 좋아하는 오징어 튀김은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려 튀겼다. 아버지가 그나마 드시는 바다 것은 마른 오징어와 김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 P-1

돼지고기가 흔해진 뒤에는 채소뿐 아니라 돈가스와 탕수육도 직접 튀겼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며 돈가스 정도는 집에서 직접 튀겼지만, 다른 튀김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에어컨도 없는 한여름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튀김을 하던 엄마의 수고는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마른 오징어와 김, 미역을 제외하고는 물에서 나는 모든 음식을 거부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한테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았다. 나와 막내도 등푸른 생선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 말로는 알레르기라기보다 어려서 이유식을 할 때부터 생선을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위로 두 아들을 병으로 잃은 뒤였기에 아버지가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란 오기 전까지 아버지는 대니면 만성리의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누구도 아버지의 유아독존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그때 굳어졌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미웠다. - P-1

그래서 나는 독립하기 전까지 밥이 질다 되다, 반찬이 싱겁다 짜다 맵다 따위의 말을 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아버지 못지않게 편식이 심한 편이었지만, 아버지처럼 밥상에서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직접 한 음식만 먹었고, 결혼해서는 오로지 엄마가 만든 음식만 먹었다. 엄마가 더는 요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막내가 해주는 것만 먹었다. 아버지의 편식은 식이장애에 가까웠다. 

딸들이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성격장애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태도나 성격을 분석해 보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섣불리 아버지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아버지는 과시하는 경향이 강하지는 않았고, 권력이나 부를 병적으로 탐낸 적은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 이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였고, 자신이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사랑했다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아내가 우울증을 겪 - P-1

고, 신경성 위염으로 고통받을 때도 아버지는 엄마의 고통에 아파하기보다는 그런 엄마를 지켜봐야 하는 자신의 아픔에 더 집중했다. 

엄마가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있을 때도 고립된 엄마가 겪을 두려움이나 외로움보다는 사랑하는 아내의 결여로 인한 자신의 슬픔이 더 컸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일화를 들어보면 내 그런의심이 영 틀린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들에 관심이 없었고, 성장기 자녀들이 자신 때문에 고른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것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첫 월급을 타ㅈ월급봉투를 내밀자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걸 보네?"

아버지는 늘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패를 마주하지 않고 회피했다. 

아버지가 시선을 두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딸이 받은 월급봉투를 보지 않는 것도 당신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큰딸이 월급날 사 오는 버터 빵을 먹을 때면 세상에서 - P-1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진짜 버터가 들어 있는 빵이 다 있구나. 이걸 얼마만에 먹는지 모르갔다."
나는 아버지가 기뻐하는 그 모습이 뿌듯해 월급날마다 빵을 사서 갔다. 

빵을 사 가기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엄마가 말했다.
"중미야, 이제 빵 사 오지 마. 네 아버지는 네가 그 빵 살 돈을 어떻게 버는지 몰라. 괜히 버릇들이지 마."

그때는 그 말을 하는 엄마의 깊은 속을 다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빵을 사 갔는데 얼마 뒤 빵집이 문을 닫았다. 
더는 그 빵을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실망하던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아버지 덕에 우리는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지 않는 한 생선을 먹을 수 없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엄마는 한창 자라나는 우리에게 단백질을 마음껏 먹일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밥상에 두부가 빠지지 않았다. 두부볶음, 두부부침, 두부조림, 두부찌개까지. 그래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아주 가끔 꽁치통조 - P-1


스무 살,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고 집에 오면 오전10시 반쯤 되었다. 엄마는 항상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렸다. 엄마는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궁금해했고,
나는 밥을 먹으며 밤새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송림동 산동네에 살던 그때 엄마는 나를 통해 세상을 만났다. 나보다 어린 산재 환자, 돈 때문에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를 데리고 나가야만 하는 가난한 엄마, 병원비를 떼먹고 야반도주한 환자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 가난이 다 세상탓만도 아니고......."
가난이 세상 탓이 아니라 누구의 탓이냐고 물으면 엄마 역시 선뜻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 P-1

엄마는 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늘 불안해했다. 심지어 이런 시국에 내가 대학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까지 했다.

서너 시간 자고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면 엄마는 다시 밥상을 차려주었다. 자기 전에 먹은 아침이 소화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저녁으로 차려진 그 밥상 앞에서또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내가 밥 먹는 동안 엄마는 남일에 나서지 말라고 때로는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살아서 지금 우리가 잘 살고 있냐는 말로 어깃장을 놓았다. 
그런 갈등이 있던 날이면 엄마는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버스에 오르면 차창 밖으로 집에 돌아가는 엄마의 쓸쓸한 등이 보였다. 그러나 그때는 엄마의 외로움과 두려움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병원 수납처에서 대한민국이란 사회의 현실을 목도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에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 만석동 판잣집에 와 손녀를 봐주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사실 그때부터 불안했어. 네가 사고 칠 것 같 - P-1

가난한 이들이 홀로 고립되지 않게
몸소 삶으로 연결망이 되어온 
김중미 작가의 토대가 된 지난 시절의 고백들 - P-1

"엄마처럼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빈민 지역으로 들어갔다." - P-1

내장까지 비치는 투명한 글을 만나면 독자는 꿰뚫리고 만다. 
글에 꿰여 널린 것처럼 읽는 내내 마음이 펄럭였다. 가난하고 여린 존재들의 곁을 지키려는 작가의 분투가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인지 자주 궁금했다.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단색의 단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이유를
그가 되살린 ‘엄마들의 시간을 따라가며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여성의 역사 자체인 가족사와, 
약한 사람들을 골라 힘자랑하던 불의한 시대와, 
딸들에게로 몰려와 고이는 돌봄의 책임, 바스 - P-1

러진 노동을 태우며 질주하는 성장의 단면들이 이야기의 모퉁이마다 ‘사회적 기억들‘을 불러낸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고 엄마로 살았다는 감각만 남은 여자들의 쪼그라든 기억을 따라가며 작가는 그들의 삶을 찾아낸다.

소멸하는 기억 앞을 두 팔 벌려 막아선 이 에세이는 기억되지 않는 존재들을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한 문장 한문장 통과하며 가 닿은 끝에는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마다 다른 우리의 엄마가. 
이문영 기자·작가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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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술에 취한 아빠는 자살한 누나가 있음을 고백한다.
이후 사람들을 만나 내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가 있었다고 말하면,
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궁금했다.

왜 가족의 비밀 이야기 속 주인공은 늘 고모나 이모일까?

<양양>은 양지영과 양주연, 두 이름을 겹쳐 부르는 말이자 ‘익명 속에 머물러 있는 여자들을 부르는 말이다. 
작가는 고모의 삶에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지워졌던 양씨 집안의 가계도를 다시 그리고,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를 
고모를 기억하라" 
"이름 없는 여자들을 기억하라 
여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하여 여자들의 생을 기억하라"는
초대로 바꾸어 낸다.

양주연의 용감한 초대에 응해 보시기를 권한다. 망각의 형벌이 생동했던 존재를 축하하는 제의로 바뀌는 순간, 무언가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산 자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 P-1

아빠에게

2022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네요. 고모에 대해 아빠가 처음 말해 줬을 때가 2015년이었는데, 벌써 7년이 지났어요. 

돌이켜 보면 7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빠는 30년 이상 다닌 직장에서 멋지게 퇴직하셨고, 저는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네요. 그리고 고모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있고요.

지금까지 고모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요, 거기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서 아빠에게 먼저 말해 주고 싶었어요. 

그건 바로 1975년 고모가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의 집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남자친구가 최초 신고인이었다는 사실이에요. 고모의 친구들 말로는 고모의 남자친구가 고모를 자주 통제하려고 했고, 언젠가부터 고모는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했대요. 고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고모의 죽음을 단순한 자살로만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 뒤 저는 고모의 죽음이 자살이 맞는지, 혹시 타살은 아 - P-1

니었을지 알고 싶었지만, 당시 경찰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까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고모가 그 남자친구와 여러 번 헤어지고 싶어 했고,
그날도 이별을 말하던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에요. 

이와 함께, 오늘날에도 이별 과정에서 먼저 이별을 말했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여성들 모두 삶을 포기했기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치열하게 고민했기에 죽음이라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아빠와 나누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드렸던가요? 제목은 <양양>이에요.
 양양은 양지영과 양주연이 만났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양씨 집안의 여자들을 모두 지칭하는 말이기도 해요. 
아빠가 2015년, 그날 전화로 저에게 양씨 집안 딸들은 모두 불행했다고 말했던 게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아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고모의 이야기이지만,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양양>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저는 
1970년대로 돌아가서 고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 - P-1

년 3월경, 집에서 아빠를 인터뷰했을 때 아빠가 고모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리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이 나요. 

아빠를 슬프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가족의 비밀이 되어 버린 고모의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고모의 입장에서, 
고모의목소리로. 
언젠가 고모를 만난다고 했을 때 
그때 고모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을지, 
고모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을지, 
저는 요즘 저 자신에게 묻고 또 묻고 있어요.

이 영화가 거기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아빠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고모를 자신의 생각과 꿈을 갖고서 
한 시대를 살아갔던 한 명의 여성이자 
우리의 가족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고모의 삶을 기억하고, 
남은 우리들은 그 기억을 응시하면서 
각자의 시간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시간을 응원하며,

주연 올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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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니면 무엇으로 괴롭고
또 무슨 낙이 있을까."

상처를 딛고 일상을 회복하는 세상 모든 부부는 위대하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간에 서 있는 게 부부다.
얼마나 부대끼고 싸우고 시달리며, 얼마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얼마나 망가지고 얼마나 절망의 벼랑 끝을 오가며 사는가.
부부는 실낱같은 외줄을 타며 생의 끝까지 가서 바닥을 치고 살아돌아온, 인생의 승리자들이다. 이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인생이 없듯이 위대하지 않은 부부는 없다. (...)

아! 부부는 정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죽이고 다시 일어나
생살을 채우며 일상을 회복하는가. 
아내와의 하루하루가 단내가 다 빠진 버릇이 아니길, 지루한 습관이 아니길..………….

아! 어떻게 해야 곁에 모로 누운 당신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아내에게 정치적인 얼굴을 보이긴 싫은데, 
찔레꽃 같던 그 앳된얼굴을, 
그 어느 날 서로에게 
또 보여준단 말인가.
「책을 내면서」에서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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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호수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그러면 또 호수를 뺑 돌아 집을 짓고 야자수, 노란 꽃이 피는 나무, 보라색 꽃이 피는 나무,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을 심어놓고, 그 나무 아래는 잔디가 파랗게 깔려 있지요. 

물이 있으니 어디를 가나 오리나 거위나 칠면조가 있고 새들이 많습니다. 가끔씩 원숭이도 있지요. 나무에는 철마다 꽃이 만발하고 키가 작은 꽃들은 땅에 납작하게 엎드려 피어 있지요. 
물은 길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도시 한복판을 흐르기도 하고, 아파트와 빌딩 사이를, 집과 집 사이를 흐르다가 바다로 빠져나갑니다. 바다에서 시작된 물이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가끔 사람들이 넓은 바다로 나와 낚시도 하고, 서핑도 하고,
책도 보고, 그냥 바다만 바라보다 돌아가기도 하지만, 대개 마이애미 사람들은 집 앞에서 놉니다. 
집 앞으로 물이 흐르고 있으니, 그냥 거기서 노는 거지요. 조그만 보트를 타고 빙빙 돌기도 하고, 수영을 하기도 하고, 발을 담그고 놀기도 하고, 낚시도 하고, 그러다 집으로 들어가 식사하고, 진짜 부럽습니다. 

우리처럼 삼겹살 싸 들고 어디 안 가도 되지요. 꿈같은 일입니다. 여기는 현실인데 우리는 꿈에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물은 사람을 평화롭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늘 흘러서 그런지 언제 봐도 새롭습니다. 사람들이 한가롭게 집 앞에서 물에 발 담그고 놀고 있는 걸 보면 부러움에 애간장이 다 녹습니다. - P-1

언제였을까? 이백 년 전쯤이었을까? 

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처음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릴 때, 이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를 시작했을 때, 그때 이 물길을 만들지 않았다면, 

길을 따라 물길을 만들 때, 그때 있었던 관료가 자기의 이해관계 때문에 허락하지 않았다면, 
물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시간이 없다고 서둘렀더라면, 
바다가 가까이 있는데 웬 물을 도시로 끌어들이냐고,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안 된다고 누군가 고집을 부렸더라면, 
이 도시한가운데서 사람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일은 없었겠지요.

물길을 따라 시작된 이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은 없었겠지요.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된, 그 위에 연필로 선 하나를 그어서 시작된 도시가 지금의 파리가 됐고 센트럴파크가 있는 뉴욕이 됐고 물길이 있는 마이애미가 됐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가난해서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면 너무나 옹색한 변명입니다. 

가난할 때는 그래도 자연을 두려워하긴 했으니까요.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사람 사는 수준이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그래도 조금 더 배우고 앞서 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찍 세상에 눈을 떴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조금만 생각해 줬더라면, 
우리를 위해 아름다움이 뭔지 한 번만이라도 생각을 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어쩌면 
우리도 아파트 사이로 집과 집사이로 물이 흐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몇천 년도 더 흐르던 물길을 차마 떨려서 어찌 감히 건드려볼 엄두도 못 내볼 거라는 희망.
나는 희망이고 간절한데, 이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하나마나 한 소리입니다. 아름다움에 익숙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생활입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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