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이나 가족구성권에 관한 운동을 해왔어요. 2019년부터 회원으로 있다가 운영위원이된 건 2~3년이 되었네요.

운영위원은 어떤 역할을 하나?
언니네트워크는 연말에 운영회의에서 운영위원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이나 사업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해요.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회원총회 자리에서 사업을 공유하고 기획단을 꾸리죠. <탈가부장:례식>도 그렇게준비한 사업이고요. 운영위원은 물론 기획단원들도 다 자기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럼에도 각자가 하고 싶은이야기도 있고 재미도 있고 해서 자주 모여 사업을 하는 거같아요.

<탈가부장:례식>이 사업으로 채택된 이유는?
2022년에 유난히 장례식에 갈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장례에 관한 대화를 나눌 일도 많았는데, 우리가은 장례식들이 참 공허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은 정작 부족하지 않나? 장례식만으로 충분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할 수 있나? 하는 고민도 하고요. 
그동안 언니네트워크는 다양성이나 가족 구성권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 활동해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성소수자의 네트워크가 단절되고, 관계를 상실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꼭 퀴어 커플이 아니더라도, 친구와 같이 사는 사람, 혼 - P-1

자 살더라도 퀴어 커뮤니티와 연결되어 있음으로써 일상을 지탱해왔던 사람들이 ‘원가족‘ 혹은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단절된 거죠. 
그러면서 법적 가족에 갇힌 관계와 단절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고, 
장례와 애도라는 주제로 그런 이야기들을 더 폭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장례를 어떻게 꾸리면 덜 차별적이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사업을 준비하며 조금 더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꼭 결혼이 아니어도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여러 양태가 있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냐 아니냐를 떠나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을까. 

나의 관계나 정체성이 어떻게 취약함이 되지 않게끔 할 수 있을까. 혹은 취약하더라도 행복할 수있게끔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고민이 전시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나?
전시에는 실제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추모 공간이 있었어요. 그 공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프라이빗하게 쓸 수있도록 신청을 받고 운영했어요. 현실의 장례식장은 애도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잖아요. 
나와 고인의 관계를 밝히는 데도 긴장이 돌고, 상주나 가족의 역할이 있고. 전시에서 대안적 애도 공간을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언니네트워크 소모임에 합창단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합창단원으로 - P-1

오래 활동했던 회원이 돌아가셨었어요. 합창단분들이 전시공간에서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 그분이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가지고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가셨어요.

전시 기획에 앞서 네 차례의 워크숍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시회를 하기에 앞서, 기획단이랑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기억에 남는 건 3강이었는데, ‘나의 죽음 시나리오 쓰기‘라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장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일단 사람들이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와서, 그 점도 놀라웠고,
다들 이야기 나누는 걸 너무 즐거워하셔서 진행자가 이야기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 시간이 연장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내가 고른 사진으로 영정을 하고 싶은데, 너무 마음에 드는 사진이 많아서 디스플레이를 설치해서 영정 사진을 전시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즐겁게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구나. 그런데 이야기할 만한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즐겁다니.
<탈가부장:례식> 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놀라웠던 게, 그 전시회를 갤러리에서 열었는데, 1층은 전시 공간이지만 2층은 갤러리 사무실이란 말이에요. 이례적으로 사무실 분들도 내려와서 전시를 구경하셨어요. 보통 퀴어-페미 - P-1

니스트 행사를 하면 우리끼리 만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보고 간 게 의미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금의 장례와 애도문화에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금 더 다른 것들을 해볼 수 있는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장례를 상상하는 건 즐겁지만, 현실의 장례는 내 뜻대로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맞아요. 유언장에 아무리 내가 원하는 장례를 쓴다고 해도,
그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이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의 의지에 달린 거니까. 나는 죽어서 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으니. 

결국엔 내가 맺어온 관계들이 장례를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그 관계가 현재 한국에서는 법이나 행정적 부분들을 통해 제약되니까.

 법적 가족이 아닌 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죠.

전시를 마치고 ‘친구사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로부터 탈가부장:례‘ 관련 강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질의응답 때 한 분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자기가 커밍아웃을 한지 얼마 안 됐고, 부모님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내가 이 가족들이랑 내 남은 삶을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자기가 죽으면 가족들이 내 장례를 치러줄 텐데. 그러면 가족들은 내가 성소수자인 걸 숨기고 싶을 거고, 내 장례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 많이 와 닿더라고요. 단지 성 정체 - P-1

성 문제만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마지막 자리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에 의해 ‘진짜 나‘는 사라질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유언장을 쓰는 거 같아요. 
매년 쓰고 있어요.

처음 유언장을 썼을 때는 좀 편지처럼 쓰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 생각을 하고 쓰게 되니까 되게 디테일하게 제가 요구하고 있더라고요. 그 후로 매년 쓰는데, 바뀌지 않는 게 있어요. 7년 된 동성 파트너가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저의 많은 부분을 양도하고 싶고 위임하고 싶다는 의사를 늘 밝히는 거예요. 내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친구에겐 장례에 관한 권리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저랑 법적으로 혼인한 관계도 아니거니와 그래서 유언장에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탈가부장례식> 전시 후속으로 더 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나?
전시 때 장례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명함을 많이 놓고 가셨어요. 그렇게 연결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고, 장레지도사가 성소수자, 퀴어한 관계에 대한 이해와 배경지식을 갖춘다면 퀴어 친화적인 장례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실무자를 위한 평등한 장례‘ 매뉴얼이나 워크북 같은 것을 만들어 장례학과나 상조회사에 배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 P-1

좋은 아이디어 같다. 매뉴얼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

큼직한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장례와 애도에 조금 더 평등한 모습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하지만 많은 것을 바꿔놓을 팁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요. 
예를 들면, 언니네트워크에서 내는 잡지 (《어페미니스트)가 있어요. 가족구성권을 다룬 호가 있는데,
그 안에 <병원에서 장례까지 살아남아라, 김 인생 씨>라는글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그 사람이 여자처럼 보인다고그 사람의 상복을 무조건 한복 치마로 준비하지 마라, 치마를 입을 건지 정장 바지를 입을 건지 물어봐라."
 "운구할 사람을 구할 때, ‘운구할 남자‘가 아니라 운구할 사람‘이라 불러라." 
이런 내용이 있어요. 
실무자인 장례지도사에게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만큼 존중하고 존중받는 장례를 치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본인의 장례는 어떠하길 바라나?

저는 세부적인 걸 떠올린 적은 없지만, 확실히 바라는 건,
우선 제가 뀨뀨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지 꽤 되었잖아요. 본명이 아닌 활동명 뀨뀨 아는 친구들도 많고, 그래서 장례가 진행된다면 위패에 제 활동명을 같이 적어줬으면 하는마음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제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고요. - P-1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의 세계가 두렵다. 
그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문화학자 임기호는 이런 말을 했다. 
"외면과 허무 사이의 선택을 거부하고 죽음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이며, 
이 선택에서 삶을 위해 투쟁하는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반드시 오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어차피 오는 죽음을 허무로 비껴가지 않은 인간은 죽음 양식을 선택해 왔다.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 

선택하고 투쟁하여 살아가는 존재 앞에서 ‘닮지 않음‘은 아무런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삶의 위계도, 죽음의 서열도 소용없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이다. 

내가 만난 장례지도사들이 ‘고생했다‘며 연신 주검을 매만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해온 투쟁의 고단함을 안다. 

김민정 시인은 지인의 생일 카드에 이런 말을 적어주었다고 한다.
"죽기 위해 태어나느라 애썼어."
우리는 모두 애써 살아온 존재이기에 애도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읽는 동안, 당신과 내가 떠올리지 못한 참사와 죽음, 그리고 전쟁과 학살. 그 모든 죽음에 우리가 가닿기를, 그리하여 안부를 물을 수 있기를.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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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 애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 역시 그와 대화를나누는 사이, 내가 왜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조문을 가고자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순간에도 사회가 나를 잊지 않고 장례를 치러줄 거라는 믿음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연대감이죠. 위패 하나 드는 게 큰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계속 내는 거죠. 당신의 장례를 함께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 혼자가 아니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끊임없이 내는 거예요. 그 인기척이 저에겐 위패를 드는 거고요.

나는 혼자가 아니고 싶었다. 그래서 타인의 장례에 간다.

공영장례, 다른 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유럽 복지국가에선 장례 제도가 국가의 복지 개념 안에 존재한다.
스웨덴의 경우, 누구라도 사망하면 "유산으로 충당하지못한 시신 운구비, 장례식장 사용료, 시신 안치비, 화장 비용, 25년간의 묘지 이용"‘을 국가가 지원한다. 이 비용은장례세 (Begravningsavgift)라는 명목으로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 장례법에 따라, 스웨덴 지자체들은 공공 매장지를 관 - P287

리하고 장례 관련 업무를 규정한다. (다만 루터교가 국교인 나라답게 장례의 실질적인 수행은 교회의 몫이다. 2500여 개소의 공공교회가 공공묘지를 관리한다.)

유럽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공동묘지를 관리하고,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공동묘지를 분양하는 국가가 다수이다.
가족묘지를 제외하곤 모두가 3평 남짓 되는 땅에 묻힌다.

자리를 정할 수도 없다. 
순서대로 묻힌다. 
재산 여부나 직위와 무관한 일이다. 
묘지를 복지 시설로 규정해 그 관리 비용은 국가가 제공한다.


일본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과 후기고령자의료제도(75세이상을 피보험자로 하는 의료 제도)에서 장제비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지원 대상은 피보험자 모두이며, 재산등을 기준으로 지급 대상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에 가까운 형태를 띤다는 것이 특징이다. - P288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례는 결혼이나 돌잔치처럼 피할 수 있는 의례도 아니다.
타인의 장례건 나의 장례건, 장례는 분명 인생에 들이닥친다.

평생 치마를 입지 않았으며 성별화된 옷을 거부해온 이의 마지막 옷이 치마가 된다. 
그를 평생 갈등하게 하고 숨게 하고 존재하게 하고 드러내게 만든 육신이 맨몸으로 안치대에 놓인다. 
그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의 시선 아래, 
반평생 다른 생명의 살을 먹지 않은 비건 생활자의 제사상에 초식동물과 물살이 (물고기)가 올라간다. 

친족 성폭력 사건으로 가족과 의절한 이의 장례식 상주 자리에 그 가족이 앉는다.

그간 이런 일은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장례인들이 이야기하는 ‘별의별‘ 일 중 하나였다. 

유난이거나 별종이거나 불행한 일. 
콩가루 집안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릴만한 일. 

내가 장례를두려워했던 이유에는 이 수군거림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일상에서 나는 잘만 감추면 무난한 딸처럼 보일 수 있는데, 장례식장은 그 숨김이 통하지 않는 장소다. 가족 관계는 장례식장 부고 알림판에 뜨고, 직장은 화환과 일회용품 용기와 수저에 박힌 회사 로고에서 드러나고, 
모아둔 자산은 대관하는 장례식장과 빈소의 크기로 드러난다. 

가족의 불화마저 빈소에서 울고불고하는 소란 속에서 드러난다. 
마치 시험 등수를 복도에 붙여두는 잔인한 교사처럼 장례는 타인의 기준대로 매긴 채점표를 훤히 공개한다.

나를 숨길 곳이 없다.

그 성적표는 나를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본연의 내가 환대받지 못할 장소에서 나를 드러내는 일은 두렵다. 
동시에 어기대고 싶어진다. 
지금의 장례 문화에서 ‘환대‘받을 수 있 - P292

"위로의 하나님, 우리의 벗 ○○님을 추모하고자 우리가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벗 ○○님이 이제는 차별과 혐오가 없는 평화의 나라에서, 경계도 구분 짓기도 없는 바로 그 나라에서 주와 함께 안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제목부터 그 성격이 명확한 전시도 하나 소개한다. 
<탈가부장: 레식>, 2023년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다. "죽음과 장례에 관련된 차별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를 알아보고 "평등한 장례식의 구체적인 모습을 함께 상상해 보고자 기획했다는 전시는 장례식장에서 들은 차별적인 말
("영정 사진 드실 남자분 안계세요?"
부터 "꽃장식은 3호 이상은 하셔야 보기 좋아요"까지)이 적힌 흰 무명길을 헤치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실의 장사법에서 차별적 요소를 살펴보고, 분투의 장이었던 장례 경험을 육성으로 듣는시간을 지나, 추모의 공간이 펼쳐진다.

"추모 공간을 희거나 까맣게만 채우지 않게 하려고 애썼어요.
노란 꽃도 놓고 무지개 깃발도 걸고 환대한다는 취지의 안내 문구도 걸어두고요."

<탈가부장:례식> 기획단을 꾸린 뀨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탈가부장:례식> 작업을 돌아보며 
기획단장 뀨뀨 인터뷰
자기소개를 해달라.
언니네트워크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뀨뀨라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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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나요?
ㅇ 당신에게 영향을 준 죽음이 있나요?
○단한 순간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나요?
ㅇ당신에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나요?

관람객들은 저마다의 답을 포스트잇에 적어 질문 옆에 붙였다.

"어차피 겪을 일을 겪고 있는 거예요. 제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건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제가 인생에서 겪은 큰일 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죽음인 것 같아요. 많이 아파하셨고 지금의 저처럼 병원 신세를 졌어요.

집착을 버리면 자유로워진다는 것. 또 그 누구의 기대도 충족시킬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기대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인생에서 딱 하나 바로잡고 싶은,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들으면 제가 왜 말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거예요."

"제 믿음은 가족에게 배운 게 아니라, 인생에서 겪은 일들과 상황을 통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어려운 시기일수록 믿음에 매달리죠."

이건 한주원의 생전장례식에 온 이들에게서 나온 답이 아니다.
<생소한 소생> 전시를 보기 두 해 전, 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이들의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다. 
- P187

나도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귀신을 믿으세요?"
조상신이 자손을 보살피는 이치를 설명하던 나이 지긋한 장례지도사에게 제사 기일에 관해 듣던 참이었다. 
요즘은 다 자기들 편한 대로 제사를 지내느라 기일을 제대로 안 챙겨서 조상들이 제삿밥을 못 얻어먹는다고 했다. "헛제사 지내는 거죠." 대화가 안동의 헛제삿밥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나는 궁금하던 걸 물었다. 조상신 이야기를 하는 장례인들을 볼 때마다 묻고 싶었다.
 ‘귀신을믿으세요?‘ 아니다. 
좀 에둘러 물었다.
"진짜 영혼이 와서 식사한다고 믿으세요?"
그런 거 왜 묻나 싶었겠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안 믿어요."
안 믿는다니. 살짝 배신감이 든다.
"안 믿지만, 믿고 싶은 거예요. 내 조상이 차려놓은 음식을 와서드시고 갔구나. 마음의 위안이죠. 오기를 바라는 거고. 와서 내가 사는 모습을 둘러보고 ‘돌봐줘야겠네, 보태줘야겠네‘ 이런 마음 가져주었으면 좋겠는 거고. 그래서 제를 지내는 거잖아요."

현재까지 이어온 유교식 장례는 ‘조상신‘ 개념을 기본으로 한다.
고인을 가문의 조상으로 올리고, 장자를 가주로 세우기 위한 3년의 프로젝트였던 것이 삼일장으로 축약됐다. 장례지도사들을 보면, 기독교 교회 집사도 있고 신실한 가톨릭 신자도 있다. 일부 종교에선 조상신 개념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거부감 없이 제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조상신이라는 개념이 가문과 가족을 묶어내는 관습적이자 문화적인 수단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로 남아 있는 거죠.  - P211

장례도 사회보장제도로 보장받아서 누구나 공영장례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장례를 말하고 있다. 자신이 운명할 때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공영장래를 치르길 바란다. 

‘장례복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말을 가져온다.
"무상 의료라는 말은 저희한테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무상 장레라는 말은 아직은 낯선 개념인 거죠. 4대 보험이라는 게 질병,
실업, 산재, 노령화 때문에 생긴 문제를 사회가 대응하겠다는 개념인 건데, 요즘에는 치매 같은 것도 국가가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죽음과 장례에서도 국가가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 공영장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래야지만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애도가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장례 또한 사회보장제도로 국가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낯선 주장이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장례를 관장하는 단위가 ‘보건복지부‘라고 했을 때 (장례지도사 자격은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다), 나 또한 복지라는 단어를 먼* 공영장례란 "장례 의식 없이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공(公)이 무연고 사망자 및 저소득 시민에게 검소한 장례 의식을 직접 제공하거나, 또는 이리한 장례 의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고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유가족과 지인 등이 고인을 애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례"를 뜻한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2월 배포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표준안‘에 따르면, 공영장례 대상은 무연고 사망자 외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장제 급여수급자로서 연고자가 미성년, 중증 장애인, 75세 이상 고령으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이들을 포함한다. - P-1

장례는 살아가는 일의 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장례가 보건복지부 소속이 된 까닭은 ‘시신 처리‘의 위생 관리에 있었다. 보건의 영역이라고 했다.
숨이 멈췄으니 시신이 맞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죽은 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권에서 자라온 사람이다. 숨이 멈춘 상태에서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가 나에게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주검에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을 테니, ‘요람에서 영안실‘까지가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한 영화도 장례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스틸 라이프>(2013).
주인공 존 메이는 홀로 죽음을 맞이했거나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는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한다. 부고를 알리고 장례식에 고인을 아는 이를 초대한다. 

나눔과나눔 활동가 박진옥, 그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존은 런던 케닝턴 구청 소속 공무원이나, 박진옥은 서울시와 업무 협약을 맺은 비영리단체 활동가이다. 나눔과 나눔은 상근자들의 월급을 비롯한 활동비를 서울시가 아닌 단체 회원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서울시가 책임지는 것은 장례의 물품과 장례업체와 용역을 맺은 염습 및 시신 처리 비용 등이다. 그러니까 지자체가 지원하는 장례 비용(93만 원 상당, 2024년 기준)에 국한한다.
장례의 제반 사항을 챙기고, 부고를 알리고, 자원봉사자 모집과 사별자를 맞는 일에 대한 비용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내 어느지자체나 마찬가지다. 공영장례 조레조차 갖추지 못한 시와 구단위가 적지 않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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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사는 데 급급해서 정작 사는 걸 모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사람들이 정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살지 않고 꿈꾸듯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리학에서 페르소나라고 하잖아요. 그가면이 나인 줄 알고 휘둘려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요. 
장례 문화만 봐도 사별자가 이거를 진짜로 하고 있는 게 아닌 거예요.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울고, 사람들한테 보이는 거를 신경 쓰다 보니까 진짜 슬퍼할 수 없는 거예요."

《인생 수업>이란 책엔 이런 말이 나온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내 안의 본연한 나를 상실하는 일. 

그는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도 눈물이 나지 않아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연기학원이었다. 7개월간 이런저런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거기에는 슬픔도 있었다. 자신을 들여다 보았다. 
눈물을 쏟는다는 건 울음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었다.

"지나온 삶에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찌꺼기 같은 마음까지 함께 흘려보냈던 거 같아요."

그제야 이해루는 애도를 시작할 수 있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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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부패 속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수준으로 그들을 끌어내리려 합니다. 
부패는 썩은 냄새가 나는데, 입 냄새와 비슷합니다. 입 냄새가 나는 사람은 자신의 냄새를 거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냄새를 맡은 다른 사람이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부패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만으로는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이 가져다주는 선함을 마취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 P169

감독하는 것은 교리와 사람들이 하는 표현과 실천 안에 담긴 태도를 관리, 감독하는 의미에 가깝다면, 
돌본다는 것은 마음속에 소금과 빛이 있는지를 돌보는 것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임박한 위험에 대한 경계를 의미하며, 돌본다는 것은 주님께서 저희를 위해 구원을 준비하시는 바로 그 방식으로인내심을 갖고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키기 위해서는 깨어 있으면서 기민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돌보려면 온유함과 인내, 자비가 필요합니다. […] 감독하고 지킨다는 것은 통제를 의미합니다. 
반면 돌본다는 것은 희망을 의미합니다. 자비로운 아버지가 가진 희망은 자녀의 마음이 커져나가도록 돌보아 줍니다. - P193

자상함은 약자의 덕목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의 강직함, 주의력, 동정심,
타인을 향한 진정한 개방 그리고 사랑하는 역량을 보여줍니다. - P198

베르골료 추기경은 스페인어로 손수 적어온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발언 시간은 3분으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시간이 다 되면 마이크가 자동으로 꺼진다는 점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복음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복음화는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달콤하고 위로가 되는복음화의 기쁨." (바오로 6세) 
우리 안에서 우리를 움직이는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 복음화는 사도적 열정을 의미합니다. 복음화를 위해서는교회가 스스로 밖으로 나가는 담대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을 벗어나 주변, 즉 지리적 주변뿐만 아니라 실존적 주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죄의 신비와 고통,
불의, 무지와 신앙의 부재가 가득한 주변부를 향해, 그리고 주변부의 생각과 주변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불행을 향해 나가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2. 교회가 복음화를 위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가지 않을때 교회는 자기중심적이 되고, 그렇게 병들고 말 것입니다(복음에 나오는 몸이 굽은 여인을 생각해보십시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를 점점 괴롭히고 있는 병은, 일종의 신학적 나르시시즘인 자기중심성에서 나옵니다. 「요한묵시록」에서 예수님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고 말씀 - P-1

하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들어가시려고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종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문 안에서 두드리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중심적인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가두고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3. 교회가 자기중심적일 때 그 문제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채 스스로 빛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곧, 달의 신비mysterium lunac(해를 비추는 달처럼 교회는 그 자체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비추기 위한 존재라는 뜻-옮긴이)이기를 멈추고 영적 세속성(드뤼박에 따르면 교회가 일으킬 수 있는 최악의 악)이라는 심각한 악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영광을 주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두가지 이미지가 있습니다. 스스로 밖으로 나가는 복음화하는 교회, 곧 하느님의 말씀([교회가] 종교적으로 듣고 충실히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 Dei Verbum religiose audiens et fidenterproclamans)의 교회. 아니면 자기 안에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세속적인 교회. 이 두 이미지는 교회가 영혼 구원을 위해 어떤 변화와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4. 차기 교황에 대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통해 교 - P-1

회가 자신을 벗어나 실존적 주변부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있는 사람, 교회가 "달콤하고 위로가 되는 복음화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열매 풍부한 어머니가 되도록 도와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연설이 제 운명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제 인생이 바뀌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연설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그 순간부터 제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저는 어떤 분위기도 인지하지 못했어요. 제 마음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제 책상 위에 있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강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죠. 

마지막 이틀, 3월12일부터 13일 아침 사이에 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고 들었어요. 저는 앞서 있었던 투표에서 몇몇 표를 받기도 했지만, ‘맛보기 투표voti deposito‘ 정도로 생각했어•요. 후보를 아직 정하지 않은 추기경들이 임시로 선호도를 표현한 표라고 생각했던 거죠.

교황 선출 당일이 된 3월 13일, 저는 시스티나 성당에 - P-1


저는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지든 나빠지든 결국 그 시련에서 벗어나리라는 확신이었습니다.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은 모든 것을•검토하고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분석하며 현실적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현실감 없이는 위기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기간 동안 모든 것이 멈추어 섰을 때, 지구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을 생각해보세요. 모순 같나요? 하지만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있습니다. 

"신은 항상 용서하고, 
우리는 때때로 용서하며,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다가오는 재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재앙이 갑자기 폭발해버렸죠.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건강은 생태계의 건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빙하가 녹고 엄청난 녹지를 파괴하는 대형 화재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 - P-1

주님 덕분에 저는 건강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직결실을 맺어야 할 프로젝트가 많이 남아 있거든요.

드디어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 도달했습니다.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군요. 

나의 ‘인생‘, 이탈리아어로는 ‘비타 vita‘라는 제목을 지닌 제 이야기를 통해 저의 긴 인생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네 인생, 곧 저의 인생과 여러분만이 알고 있는 여러분의 인생, 더 나아가 인류의 인생, 이 모든 인생은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발걸음을 내디디며 스스로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선택하고, 목표를 달성하며, 때로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러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그게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추억을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 자연히 소중한 것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사는 법을 배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극복하며, 무관심과 증오를 물리칠 수 있습
- P290

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예수님처럼 굳어 있는 마음을 녹이고 변화시켜 이웃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수 있게 됩니다. 

이타적인 사랑만이 세상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 대신 사랑과 기도가 사람을 움직였다면 제가 살아온 80년의 역사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요?

기도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은 점점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더 많이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잊지말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이 요청만큼은 반대하지 말고 꼭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P-1

프란치스코 교황Papa Francesco

최초의 남반구 출신이자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최초로 빈자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선택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
꾸밈없이 솔직한 언사, 버림받은 이들과 소수자의 손을 잡는 용기와 연민으로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는 시대의 어른 
삶의 본보기로 꼽힌다.

최초의 공식 자서전으로 집필한 「나의 인생」에서 교황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로서 겪었던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군사 쿠데타,
경제 위기를 비롯해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80여 년의 세월 동안 겪어온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며,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 자신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와 함께 마음에 깊이 남을통찰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과거에서 배우려면 좋지 않은 것들, 우리가 저지른 죄로 인해 경험한 독성 가득한 것들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느님께서선사하신 모든 것을 되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네 기억을 되살려야 합니다."

표지사진 Vatican Media
디자인 Marcello Dolcini - P-1

지은이

프란치스코 교황 Papa Francesco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Jorge Mario Bergoglio로,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공학을 공부했으나 사제직을 선택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3년 예수회 아르헨티나관구장으로 뽑혀 6년 동안 봉사하였고, 
1986년 독일로 건너가 박사 학위공부를 이어갔다. 귀국 후 수도회 장상들은 그를 코르도바의 고해 사제와영성 지도자로 임명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2년 그를 보좌주교로 임명했고, 
1998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되었다.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013년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프란치스코라 명명했다. 소박함과 겸손함,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존경받고 있다. 
2014년 《포천>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했다. 
2014년 8월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집전한 바 있다.


파비오 마르케세라고나Fabio Marchese Ragona
이탈리아 주요 민영 방송사인 메디아셋의 바티칸 전문 기자다. 
매주 일요일 종합 뉴스 채널인 TgCom24에서 종교 코너인 <스탄제 바티카네StanzeVaricane (바티칸 방)>을 진행하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과 베네딕토 16세의 선출을 비롯해 가톨릭교회의 큰 행사들을 취재했으며, 이후 바티칸 스캔들,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한 콘클라베등을 보도했다.
 2021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독점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 인터뷰는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어 550만 명이 시청했다. - P-1

옮긴이
염철호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를 받고,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 『바오로 서간』 『배워봅시다 성경 언어」 「가톨릭 신학을 소개합니다」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 성경 2』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이 있고, 역서로 『최고의 성지 안내자 신약성경』, 「우리 선조들이 전해준 이야기: 구약성경의 설화 분석 입문』 「성경 읽는 재미: 설화 분석 입문』『신약성경 연구 방법론』 『자비 가득한 집』 『편지를 쓴 바오로」 「진리 생명해설 성경」 「마르코가 전하는 기쁜 소식」 「마르코 복음서: 21세기 제롬 성경주해 19』가 있다. 
2024년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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