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선생님의 이 말은 당시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삶의 장면 장면마다 불러내는 말이 되었다.
비 오는 오후의 술 생각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혹은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의 냉수처럼 간절한 말. - P-1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보냈어.
겨울 지나면 너 한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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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 독일의 포르노 문학과 영화, 도구에서 SS는 성적 모험주의를 의미하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섹스의 이미저리 대부분에 나치즘의 흔적이 있다. 
부츠와 가죽, 체인, 번쩍이는상체 위의 철십자 훈장, 스와스티카, 고깃덩어리를 매달아 두는갈고리, 육중한 오토바이는 가장 은밀하고 잘 팔리는 에로티시즘의 도구다. 섹스숍과 목욕탕, 가죽 의상을 입은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술집, 성매매 업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장비를 꺼내 든다.

하지만 왜일까?성적으로 억압된 사회였던 나치 독일이 왜 성애화된 것일까? 동성애자를 박해했던 정권이 어떻게 게이들을 흥분시키는 것일까?
단서는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성적인 은유를 매우 선호했다는 데 있다. 
니체와 바그너처럼 히틀리 역시 리더십을 ‘여성‘대중을 성적으로 지배하는 것, 즉 강간으로 여겼다. 
<의지의 승리>에서 군중은 황홀경에 빠진 모습으로 그려진다. 히틀러가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이다.)좌파 운동의 이미저리는 중성적이고 무성적인 경향이 있다. 
우파 운동은 아무리 금욕적이고 억압적인 현실을 불러오더라도 성적인 겉모습을 보인다. 확실히 나치즘은 공산주의보다 더
‘섹시‘하다(이긴 나치의 공이라기보다는 성적 상상력의 본질과 한계 때문이다).
물론 SS 제복에 흥분하는 사람이 전부 나치의 만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나치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어느 정도 안다면 말이다. 그러나 요즘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 P160

성적 감정의 조류가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으며, 바로 이 사실이나치즘을 활용한 유희를 성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치즘의 성애화는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긴 하지만, 사도마조히즘적 환상과 실천은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몇 년간 가장 큰 성적인 비밀은 파트너 교환이 아닌 사도마조히즘이었다.

사도마조히즘과 파시즘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네는
"파시즘은 연극이다"라고 말했다. 사도마조히즘적 섹슈얼리티도 마찬가지다. 사도마조히즘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성적인 연극에, 섹슈얼리티의 상연에 참여하는 것이다. 연기자뿐만 아니라 전문 의상 제작자와 연출가도 사도마조히즘적 섹스의 고정 회원이 - P-1

공적 책임을 지는 권위에 반대하지 않고, 모든 능력주의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권위를 전부 없애고 싶은 소망은인간 조건에 대한 유치하고 감상적인 환상입니다. 많은 페미니즘레토릭은 역사를 심리학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의식과 더불어 심리학까지 얄팍하게 만듭니다. (줄리엣 미첼의비판을 참고할 것.)리치는 나의 정신이 "감정의 토대 위에서 더욱 복잡하게 작동하는 것을 간절히 보고 싶을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앉아서 글을 쓰는) 곳에서 볼 때, 리치가 원하는 대로 내가 페미니즘에 전념할 수 없는 이유는 그저 복잡성이 갈수록 깊고두터워지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주장의 ‘노선‘이나 ‘올바른‘ 입장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이게 바로 리치가 하는행동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이 창조한 이미지 세계라는 거대한 주제《뉴욕 리뷰 오브 북스》 에세이)나, 죽음에 대한 고찰과 현재이스라엘 국가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기록(나의 최근 영화인 <약속의 땅>)을 페미니즘의 관심사에 맞게 변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책망을 들을 이유가 있을까요? 두 성별의 탈극화 외에 다른 목표가 존재하고, 성적인 상처 외에 다른 상처가 존재하며, 성적 정체성 외에 다른 정체성이 존재하고, 성 정치 외에 다른 정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여성혐오적‘ 가치 외에 다른 ‘반인간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반역이 아닙니다.
리치가 편지 서두에서 칭찬한 내 페미니즘 텍스트까지도, - P-1

내가 글쓰기와 영화 제작에서 페미니즘을 계속 주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평가(하향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 글의 제목은
"당혹스러운" 것이 되었는데, 뜻밖에도 내가 페미니즘 논쟁의 최신유행인 「제4세계 선언」을 모른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당혹스러울 것 없습니다. 이 글은 처음에 <미즈Ms.>에 보냈다가 너무길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 이후로 이 글을 수락한 《파르티잔리뷰>의 편집자들이 "설문지에 대한 답변"이라는 원래의 내 지루한 제목을 상의 없이 우스꽝스러운 지금의 제목으로 바꾼 것입니다.) 나의 뒤이은 글들이 페미니즘의 주장을 세세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르티잔 리뷰》에 실린 그 글은 "결국 직접 느낀 현실을 예리한정신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 지적인 활동처럼 보이게" 됩니다.
만약 리치가 (일부 여성들만큼 사납지는 않지만) 지성이라는그 무거운 곰을 사냥하려 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적인 활동"을선호하는 모든 사람을 언제나 열렬히 옹호할 것임을 알려야 할 것같습니다. 진실에는 온갖 종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글을 읽고 그 안에서 개인적이고 심지어 자전적인 특성을 놓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나는 그 글이 나의 진실한 감정을 비롯한 그 어떤것의 표현도 아닌 주장으로 여겨지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내가 늘 존경하는 시인이자 분노의 현상학자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이성적인 삶을 (권위 개념과 함께 "가부장제의 역사"라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데 급급한 자칭 급진 페미니스트들보다 신 - P-1

중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의를 담아서 쓴 편지는 페미니즘 레토릭의 계속되는 몰지각함, 즉 반지성주의를 드러냅니다. 

리치는 "손택이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말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신("지적인 활동")과 감정("직접느낀 현실" 사이에서 불쾌하고 위험한 대립을 조장하는 페미니즘진영과는 거리를 둡니다. 

왜냐하면 (도덕적 주장이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열정과 더불어 신중함과 객관성에도 정당한 자격을 부여하는) 지성의 규범적 미덕을 이런 식으로 따분하게 폄하하는 것 역시 파시즘의 뿌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리펜슈탈에 관한 주장에서 내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바로 이겁니다. - P-1

세이에서 탐구했고 몇 년 뒤 발터 베냐민이 파시즘을 정치 생활의미화로 묘사하며 요약했었지요.

미학이 곧 정치라고, 아니면 미학은 결국 정치가 된다고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어떤 미학이요? 어떤 정치요? 
내가 생각하기에 ‘파시즘 미학‘을 이해하는 열쇠는 ‘공산주의미학‘이 모순적인 표현임을 이해하는 거예요. 공산주의 국가가 선전하는 예술의 평범성과 진부함을 이해하는 것이죠. 

만약 소련과 중국의 공식 예술이 고루하지 않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 그 예술은 파시즘적일 겁니다. 

철저히 교훈적인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와 달리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단체가 학교가 됩니다) 파시즘적 이상은일종의 국가적 총체예술에 전 국민을 동원합니다. 사회 전체를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죠. 바로 이것이 미학이 정치가 되는 가장 심오한 방식입니다. 이때 미학은 거짓의 정치가 됩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물을 아름답게 경험한다는 것은 그것을 잘못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19세기에 니체와 와일드처럼 도발적으로 가치를 재평가한 이론가들은 ‘미학적 세계관‘을 상세히 해설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미학적 세계관의 우월함 중 하나는, 이것이 정치를 넘어선 가장 관대하고 대범한 관점이자 품위의한 형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파시즘이 전개되면서 그들이 틀렸음이 드러났습니다. 

밝혀진 것처럼, ‘미학적 세계관‘은 파시즘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여러 미개한 개념과 분열적갈망에 극도로 우호적이었고, 이런 개념과 갈망은 우리 소비문화 - P184

에서도 널리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사례에서 명백히 드러났듯이, 진지한 공산주의 사회의 도덕주의는 미학의 자율성을 말살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 의미에서) 예술작품의 생산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1973년에 6주간 중국에 다녀온 뒤로 확신하게 된 것은, 물론 그전에도 알았지만, 지성에 필수적인 자양분으로서 미학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급진주의가 거침없이 ‘스타일‘로 전환되던 1960년대를 거치면서, 미학적 세계관을 지나치게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그 무엇도 옹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예술작품도 오로지 예술작품만은 아니기에, 현실은 대개 더 복잡합니다. 「스타일에 관하여」에서 나는 와일드와 오르테가가 드러낸 진실을 재구성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발적인 서문을 통해 속물주의를 비판했고,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예술의 비인간화에서 이와 같은 비판을 더욱 엄숙하게 과장했지요. 그러나 나는 와일드와 오르테가처럼 미학적 반응과 도덕적반응을 암암리에 분리하거나 실제로 대립시키지는 않으려 했습니다. 

「스타일에 관하여」를 쓰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같은 입장에서 글을 씁니다. 그러나 지금 내 뼈에는 역사적 살이 더 붙었어요. 나는 여전히 지독한 탐미주의자이자 강박적인 도덕주의자이지만, 역사적 맥락을 더욱 밀도 있게 이해하지 않고 탐미주의자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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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노동

아버지는 한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한국전쟁중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첫 노동은 쥐약을 먹고 죽은 개의 사체를 찾아 동네 어른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은 개를 손질해 내장은 버리고 살코기를 몇 번이고 물에 씻어 삶아 먹었다. 들짐승도 없고 그렇다고 가축을 잘 키우지 않는 사대문 안 동네에서 가난한 이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큰 개의 사체를 찾은 날이면 아버지는 평소보다 몇 푼의 돈을 더 받아 쥐었다.

또 아버지는 동대문이나 청량리, 멀리는 창동까지 동네 아이들과 함께 고물을 주우러 다녔다. 나대지 같은 곳에서 일렬로 나아가며 쇠붙이며 유리 같은 것을 줍는 것인데 힘이 센 순서로 대열을 정했던 터라, 앞에 선 아이가 큰 고물을 줍 - P-1

는 반면 뒤편의 아이들은 잔챙이를 줍거나 그마저도 건지지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5년 아버지는 메리야스 공장에 취직을 해 10년 넘게 일한다. 평시에는 2교대로 근무하고 일감이 떨어지는 단오부터 가을까지는 무급휴가를 주는 곳이었다. 전태일 열사가인근 평화시장에 찾아든 것이 그 이듬해이니 꼭 아버지로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나는 당시 그곳의 노동 환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서른 무렵부터 구청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버지의 삶은 조금 깊이 말하고 싶다. 아버지는 환경미화원들이 동네 골목을 돌며 리어카로 수거해온 생활쓰레기를 트럭에 싣고 난지도 매립지를 오갔다. 그때는 나도 종종 따라나선 적이 있다.
어린 눈으로 보았던 난지도는 사막같았다. 커다란 쓰레기더미들이 사구처럼 하루에도 몇 개씩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광활하고 삭막한 난지도의 풍경보다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넝마주이들이었다.
넝마주이들은 난지도 입구에서 호객을 하듯 아버지의 트 - P-1

럭을 불러 세웠다. 이미 큰 산이 되어버린 그곳을 걷지 않고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다시 아버지의 트럭을 얻어 타고 경사진 길을 내려왔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나선 날이면 넝마주이들은 낮 동안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낸 로봇 장난감 같은 것을 내 손에 쥐여주곤 했다. 하나같이 팔이나 다리 한쪽이 떨어져나간 것들이었다. 언제 한번은 한쪽 눈이 없는 봉제 인형을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작은 단추로 없었던 인형의 한쪽 눈을 만들어주셨다.

2002년이 되자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난지도는 생태공원이 되었으며 넝마주이들이 살던 상암동에는 월드컵경기장이 지어졌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어린 시절 보았던 난지도의 풍경을 찾아보려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1978년 생겨난 난지도 매립장은 1992년 영구 폐쇄되었다.
90만 평의 부지 중 실제로 쓰레기를 매립 · 매축할 수 있는 면적은 55만평 정도였다. 다시 이것은 서울 시내 각 구청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20만 평의 땅과 청소대행업 차량들이 쓰레 - P-1

기를 버리는 35만평으로 분할되었다. 재건대원이라 불리기도 하던 넝마주이들은 약 3천여 명까지 불어났다. 여러 이들이 개입하면서 고물을 줍는 것에도 권리금이 생겨났는데 강남구, 종로구같이 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동네가 두배정도 값이 더 나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는 평소 잘 들어오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시험을 치르지 말라고 했다. 
내일 시험을 보면 대학에 갈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을 공산이 큰데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너무 불행하고 고된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가족이 생기면 그 불행이 개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번져나가므로 여기에서 그 불행의 끈을 자르자고 했다. 절을 알아봐줄 테니 출가를 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도 덧붙였다. 당시 나는 그길로 신경질을 내며 아버지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지친 날이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에서 설핏 가난을 느낄때면 나는 그때 아버지의 말을 생각한다. - P-1

근대 이후 민간이 해야하는 노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관념적으로는 꽤 신성한 가치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누가 해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를 내는 노동의 작품들은 한없이 친대받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노동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놈인사를 쓰니 나는 여러 빈 아버지의 노동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시에서 아버지는 진혜증으로 죽은 태백의 광무로 등장하기도하고 마을버스와 덤프트럭을 묻기도 하며연탄을 나르거나 실직 후 마주에서 혼자 살고 있는 알고옴독지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어떤 것은 사실이고 어던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번은 태백에 살고 있는 한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아버지도 광부로 살다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반가움과 슬픔이 함께 묻어나는 그 편지에 대한 답서를 적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아래와 같은 글을 적었다. - P-1

죄송한 일이지만 저희 아버지는 사실 광부로 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건강히 계십니다. 
태백과 광부가 등장하는 시는 몇 해 전 광산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취재를 하며 구상한 것입니다. 
취재를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갱도 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광부들이 모두 웃고 있던 것입니다. 소리 내어 웃는것은 아니지만 미소를 지으며 드러내 보이는 흰 이가 참 환했습니다. 

제가 왜 웃고 계시냐고 물었을 때 그 분들은 당연하다는듯이 일이 끝났으니 웃는다고 답했습니다.

광부의 삶과 저희 아버지의 삶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하루 일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렇고 생의 대부분을 노동과 다음 노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면욕, 식욕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만을 채우기 급급하다가 나이가 들어 병을 얻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한번 시작된 일의 끝은 너무도 잘 알고 - P-1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적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실들을 모아 희미하게나마 진실의 외연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죄송한 마음을 드립니다. - P-1


어느 모임의 저녁 자리에서 연세가 지긋한 한 분을 만났을때의 일이다. 
시작은 역시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분의 말은 달랐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한창 힘들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 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이 먹는일 생각보다 괜찮아요. 준이씨도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나이드세요."
충격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로 채워둔 사람과 무엇을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간에 어느 한 시절 후회 없이 살아냈던 사람의 말은 이렇게 달랐다.
될 수 있다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 
사실 내가 가장 자주 하는일 중에 하나가 바로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는 후회와 자책으로 삶의 많은 시간 - P-1

글의 앞머리에서 아버지의 세발자전거를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때가 1953년이나 1954년 즈음입니다. 당시 며칠씩 생으로 굶던 처지의 어린 아버지가 갖기에는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 자전거는 사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한 물건이었습니다. 
며칠씩 울기만 하는 아들이 불쌍했는지 할아버지가 선물해 준 것이지요. 
분명 자전거도 좋았겠지만 ‘엄마‘라는 것이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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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베르토프의 관객 대다수는 (에이젠시테인과 푸킨의 관객과 마찬가지로) 소련 초기의 영화 선전가들이 고귀한 이상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그 이상이 아무리 배반당했대도 말이다. 
그러나 리펜슈탈을 향한 찬사에는 그러한 구제 수단이 없는데, 리펜슈탈의 복권을 불러온 사람을 비롯해 그 누구도 그를 호감가는 인물로 만들지 못했으며 그는 사상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개 국가사회주의가 잔인함과 공포만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가사회주의는, 더 나아가 파시즘은, 삶이 곧 예술이라는 이상,
아름다움 추종, 용기에 대한 맹목적 숭배, 공동체에서 느끼는 황홀경을 통한 소외의 해소, 지성에 대한 거부, 지도자를 부모로 둔)인간 가족처럼, 다른 기치 아래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는 다양한이상을 옹호한다. 
이 이상들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준다.
사람들이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에 감명받는 이유가 그저 천재영화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말은 동어반복일 뿐만 아니라 부정직하다. 리펜슈탈의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무엇보다 작품 속의 갈망이 아직도 존재하고,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작품에 담긴 낭만적 이상에 애착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한 낭만적이상은 청년/록 문화와 원시 치료(유아기의 고통을 재경험하면서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는 심리치료 기법-옮긴이), 반정신의학(anti-psy-chiatry, 정신의학에 반대하며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정신병의 원인을 - P-1

설명하려는 움직임-옮긴이), 제3세계 진영 추종, 오컬트에 대한 믿음처럼 다양한 방식의 문화적 저항과 새로운 공동체 선전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공동체를 찬양한다고 해서 절대적 지도자를 찾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필연적으로 절대적 지도자를찾게 될 수도 있다. 
(현재 구루들 앞에 바짝 엎드려 기괴한 독재적 규율에 복종하고 있는 청년 중 상당수가 과거 1960년대에는 반권위주의자이자 반엘리트주의자였다는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오늘날 리펜슈탈을 탈나치화하며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현재는 사진가로서) 굳건히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사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파시즘적 갈망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징조다. 

리펜슈탈은 평범한 탐미주의자나 인류학적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은 정확히 정치적 · 미학적 신념의 연속성에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보다 과거에 이 사실이 훨씬 명백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구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리펜슈탈의 이미지에 끌린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관점이 없다면, 이러한 감식안은 온갖 파괴적 감정(사람들이 그 영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감정)의 선전을 기이할 만큼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결과를 불러온다. 물론 리펜슈탈의 작품같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아름다움만은 아님을 한편으로 모두가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쪽에 판돈을 건다. 이런 예술의 의심할 여지 없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한편, 고결한 척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태도를 깔보는 것이다. 엄숙하고 까다로운 형식주의 - P154

적 감상 뒤에는 더 폭넓은 감상, 바로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는 망설임이 전혀 없는 캠프적 감성이 있다. 현대적 감성은 형식주의적접근 방식과 캠프적 취향 사이의 끊임없는 절충에 의존한다.
오늘날 파시즘 미학의 주제를 환기하는 예술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아마 대다수에게 이런 예술은 그저 캠프의 변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은 한낱 유행일 뿐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다양한 취향의 유행이 우리를 구할지도모른다. 
그러나 취향에 대한 판단 자체는 그렇게 순수할 수 없는듯하다. 
10년 전에는 소수의 취향이나 상반된 취향으로서 대단히 옹호할 가치가 있어 보였던 예술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옹호할 수없게 되기도 하는데, 그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윤리적·문화적 문제가 전과 달리 심각하고 심지어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냉엄한 진실은, 엘리트 문화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것이 대중문화에서는 용인되지 않을 수 있고, 소수의 것으로서 오로지 무해한 윤리적 문제만 일으키던 취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수용되면 유해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취향은 맥락이며, 그 맥락이 달라졌다.
Π두 번째 증거물. 여기 공항 잡지 가판대와 ‘성인용‘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있다. 「누바족의 최후』처럼 예술을 애호하고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값비싸고 호화로운 책이 아니라 값싼 페이퍼백이다. 그러나 이 두 책은 도덕적 - P-1

기원이 같다. 근원적 집착은 같고, 진화의 단계는 다르다. 「누바족의 최후를 움직이는 개념은 SS 제복SS Regalia』 뒤에 깔린 더조악하고 강렬한 개념만큼 도덕적으로 거리낌 없지 않다. ‘SS 제복은 영국에서 편집한 어엿한 책이지만(역사를 개괄한 3쪽 분량의서문과 함께 책 뒤에 주석도 실려 있다) 

이 책의 매력이 학문적인 것이아니라 성적인 것임을 모두가 안다. 표지에서 이미 그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SS 완장의 거대하고 검은 스와스티카 위로 사선의 노란색 띠가 지나가고, 그 위에는 "100장 넘는 컬러 사진에 겨우 2.95달러"라고 쓰여 있다. 포르노 잡지 표지 모델의 생식기 위에 반은 농담으로, 반은 검열에 대한 존중으로 붙여놓은 가격 스티커와 똑같다.

제복에는 보편적 환상이 있다. 제복은 공동체, 질서, 정체성(계급장과 배지, 훈장처럼 착용자가 누구이고 어떤 공적을 쌓았는지를공표하는 것들을 통해 착용자의 가치가 인정된다), 유능함, 적법한 권위, 적법한 폭력의 행사를 암시한다. 
그러나 제복은 제복 사진과 같지 않다. 세복 사진은 성적인 자료이며 SS 제복의 사진은 특히널리 퍼진 강력한 성적 판타시의 구성 요소다. 왜 SS일까? SS는폭력의 정당성, 즉 타인을 마음껏 지배하고 그들을 철저히 열등한존재로 취급할 권리를 공공연하게 주장하던 파시즘의 이상적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이 가장 온전히 실현된 곳이 바로SS였다. SS는 몹시 잔혹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이상을실행에 옮겼고, 자신들을 특징 미학적 기준과 연결함으로써 그러 - P-1

행위를 극화했다. SS는 지극히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아름다운 엘리트 군사 집단으로 고안되었다. (‘SA 제복‘이라는 제목의 책은 볼 확률이 낮다. SS로 대체된 SA는 SS보다 덜 잔혹하지는 않았으나. 맥줏집에 있을 법한 뚱뚱하고 땅딸막한 유형, 한낱 ‘갈색 셔츠‘라는 별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SS 제복은 우아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졌으며, 기발한 느낌(과하진 않았다)이 있었다. 이에 비해 미 군복은 지루하고 대충 만들어졌는데, 재킷과 셔츠, 넥타이, 바지, 양말, 끈으로 매는 신발로 구성된 미 군복은 훈장과 배지로 아무리 꾸며도 본질적으로 민간인 복장과 다를 바 없었다. SS 제복은 꽉 끼고 무겁고 빳빳했으며, 다리와 발을 무겁게 감싸는 부츠와 손을 덮는 장갑이 있어서 착용자가 꼿꼿이 설 수밖에 없었다. 

『SS 제복』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SS 제복의 색은 독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검은색이었다. SS는 계급을 구분하기 위해 제복 위에 여러 장식과 상징, 배지를 달았는데, 그 종류는 옷깃의 룬 문자에서 해골 모양까지 무척 다양했다. 그 모습은 극적이면서도 위협적이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듯한 표지 사진은 매우 유혹적이지만,
책 속의 사진은 대부분 따분하다. 나치 대원들은 책에서 찬양한검은색 제복과 함께 거의 미군처럼 보이는 카키색 제복과 위장용 - P-1

외투 및 재킷을 배급받았다. 제복 사진 외에도 옷깃에 다는 패치와 커프 밴드, 계급장, 벨트 버클, 기념 배지, 연대 깃발, 트럼펫에 다는 깃발, 전투모, 공로훈장, 견장, 허가증, 출입증이 여러쪽에 걸쳐 실려 있는데, 악명 높은 룬 문자나 해골 문양이 있는 것은 별로 없고 계급과 부대, 배급 연도와 계절이 전부 꼼꼼히 설명되어 있다. 

거의 모든 사진이 무해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이 이미지의 힘을 입증한다. 

독자는 성적 판타지의 성무일도서를 보고 있는 것이다. 환상이 깊이를 지니려면 반드시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944년 봄, SS 병장이 트리어에서 뤼베크로 이동할 때 필요했던 여행 허가증은 무슨 색이었을까? 모든 증거 서류가 필요하다.
파시즘의 메시지가 미학적인 안목을 통해 중화되었다면,
파시즘의 예복은 성애화되었다. 이런 파시즘의 성애화는 미시마유키오의 『가면의 고백』과 『태양과 철』 같은 매혹적이고 경건한작품이나, 케네스 앵거의 <스콜피오 라이징 Scorpio Rising>, 그만큼흥미롭지는 않지만 더욱 최근작인 비스콘티의 <저주받은 자들 TheDamned>과 카바니의 <야간 배달부The Night Porter> 같은 영화에서발견할 수 있다. 파시즘을 진지하게 성애화하는 것은 문화적 공포를 이용한 세련된 유희와 구분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놀이에는 농담의 요소가 있다. 로버트 모리스는 최근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열린 자기 전시회를 위해 본인의 사진으로 직접 포스터를 만들었다.
사진 속 그는 상반신을 탈의하고 선글라스와 나치 헬멧처럼 보이 - P158

는 것을 썼다. 목에 건 징박힌 금속 복길이에는 두툼한 체인이 달리 있고, 수갑 찬 손으로 그 체인을 붙잡고 있다. 
모리스는 이것이 아직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술이 무릇 신선한 도발적 제스처의 연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이들에게는 충격을 주는 것이 예술의 유일한 미덕이다. 
그러나 이 포스터는 정확히 반대의 효과를 낸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는 것은 곧 사람들을 그 충격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한데, 나치 자료가 팝아트의 아이러니적 논평에 사용될 수있는 대중적 도상 체계의 방대한 레퍼토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치즘은 팝아트적 감성으로 해석된 다른 도상 체계(마오찌둥에서 마릴린 먼로에 이르기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매혹한다. 물론 파시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은 어느정도 호기심의 산물로 볼 수 있다. 194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나공산주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왁자지껄한 주장에 평생을 시달린 이들에게, 부모 세대의 훌륭한 대화 주제였던 파시즘은 이국적인 미지의 것을 상징한다. 또한 젊은이들은 대체로 공포와 비이성적인 것에 매혹된다. 요즘 대학 캠퍼스에서 파시즘의 역사를 다루는 강의는 (뱀파이어리즘을 비롯한) 오컬트 강의와 더불어 큰 인기를끌고 있다. 이에 더해 「SS 제복」이 뻔뻔할 만큼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단연코 성적인 파시즘의 매력은 아이러니나 지나친 친숙함때문에 위축되는 일이 없는 듯 보인다.
전 세계,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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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하나는 더 이상 성 정체성에따라 직장의 범위가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전통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진 가사 노동을 남성이 똑같이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요구 모두 강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남성은 이 요구들을 난처해하고 위협적으로 느끼는데, 요즘에는 두번째 요구보다 첫 번째 요구를 조금이나마 덜 불편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 현상은 가정생활의 문법이 (언어 자체처럼) 성차별적 억측의 가장 강력하고 완강한 요새임을 보여준다.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가정생활 방식에서 남성은 모든 가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가족과 아무 관련 없는 ‘바깥의 의무에 상당한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결책이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높이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되고, 모든 집안일과 책임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사일 자체도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가족은 봉인된 분자일 필요가 없고, 가족의 모든 활동이 ‘그 분자‘ 안에 속할 필요가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그랬듯, 많은 가사 업무를 공용 공간에서 더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수행할 수있다. (여유가 있는 각 가족이 개인 베이비시터나 가정부를 두는 것에는, 즉 프리랜서 여성을 고용해 아내의 비공식적이고 보수도 없는 하인 역할을 분담하거나 대체하는 것에는 진정한 유익이 없다. 
마찬가지로, (이기심과 두려움이라는 이유를 제외한다면) 각 가족이 자기 세탁기와 자동차, 식기세척기, 텔레비전 등등을 갖춰야할 이유는 없다. 여러 국가가 전근대 경제에서 산업화를 거쳐 - P91

상당한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개인 가사도우미(주로 여성)를 고용하는 가정이 점점 줄고 있는 한편, 각자 소유한 기계의 도움을 받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소비사회에서는
‘개별‘ 가족이 기계 하인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신념이지만, 이런 서비스의 대다수를 여러 가족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노동을 없애고 경쟁과 소유욕을 억제하고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가사 노동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은 아내와 남편의 역할,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억압적 정의를 바꾸는 데 꼭 필요한 단계 중 하나다. 또한 이렇게 하면 작디작은 가족들을 서로 갈라놓음으로써 각 가족의 구성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모든 현대 산업사회의벽들을 부술 수 있다.

현대의 ‘핵‘가족은 심리적·도덕적 재앙이다. 성적 탄압의 감옥이자, 일관성 없는 도덕적 해이의 장이자, 소유욕의 박물관이자, 죄책감을 생산하는 공장이자, 이기심의 양성소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들이 불안과 축적된 살인적 감정이라는 지나친 대가를 치르고 있긴 해도, 현대의 가족은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기도한다. 줄리엣 미첼 Juliet Mitchell이 지적했듯이, 오늘날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은 보통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는 대인 관계의 근사치(온기와 신뢰, 대화, 경쟁심 없음, 충실함, 자발성, 성적 쾌락, 재미)가 아직 허용되는 유일한 장소다. 노동과 모든 사회적 유대 관계에서 사람을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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