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무력한 연루자의 신세로,
그저 모든 것을 지켜볼 뿐이다


"왜 야구팬은 이토록 자주, 그리고 유난히 화를 내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화낼 기회가 많아서다. 그런데도 야구팬은 매일 경기를 본다. 
못하면 못한다고 화를 내고, 잘하면 이렇게 잘할 수있으면서 어제는 왜 못했냐고 화를 낸다. 
경기는 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쏟아낸다. 감독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고, 믿었던선수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팀이 아무리 잘해도, 사소한 에러 하나로 경기는 뒤집힌다. 그리고 팬은 온 마음을 쏟아도 경기에 개입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 의미를 붙잡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팬은 경기를 꺼버리지 않는다. 
한번 마음을 준 이상,
손바닥 뒤집듯 팀을 바꾸지도 않는다. 
절망을 끝까지 지켜보며,
다시 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다만, 화를 내면서 말이다." - P-1

나는 야구 규칙을 하나도 몰랐다. 어느 정도로 몰랐냐면, 공격과 수비의 구분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공을 던지는 쪽이 공격이 아니라 수비란 말인가? 몇 해 전의 나처럼 야구를 전혀 모른 채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저쪽에서 먼저 공을 던졌다면 이쪽에서 방망이로 막아내는 게 수비여야 말이 되지 않나? 이런 혼란은 야구라는 스포츠를 본질적으로 오해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잠시 다른 스포츠를 떠올려보자. 근대 이후 체계화된 스포츠 대부분은 전쟁의 형식을 닮았다. 축구와 농구는 수비망을 뚫고 상대편 골문 (적진의 요새)에 공을 넣는 것이 목적이고, 배구는 공(폭탄)을 우리 진영에 떨어뜨리지 않고 받아넘겨 점수를 올린다. 럭비 역시 공을 들고 달려가 상대 골라인을 넘거나 땅에 공을 내리찍으면(승전국의 깃발을 꽂듯이) 득점한다.
펜싱이나 양궁은 말할 것도 없다. 추상화의 단계를 거치지도 않은, 싸움의 원형에 가까운 스포츠니까.

그런데 야구는 좀 이상하다. 두 팀이 번갈아 공격과 수비를 맡는데, 득점의 핵심은 공을 빠르게 던지는 것도, 방망이로 멋지게 쳐내는 것도 아니다. 규칙은 복잡하지만 목표는 단순하다. 안타를 쳐서 달리 - P-1

든,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몰래 도망가든,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선수가 구장을 한 바퀴 돌아 ‘홈‘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스포츠인가!

야구의 요점을 이해하고 나니 익숙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메로스가 쓴 고대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나선다. 귀향길은 단순한 항해가 아니었다. 폭풍우와 해류, 유혹과 음모, 신들의 장난과 괴물들의 방해가 끝없이 이어졌다. 순풍이 불어 멀리 나아가는 날도 있었지만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제자리인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를 잃어도, 배가 부서져도, 지혜롭게 헤쳐나가 마침내 10년 만에 집으로돌아왔다.
야구도 그런 모험담이다. 전쟁이 아닌 귀환의여정. 타석에 선 아홉 명의 타자는 저마다 한 명의 오디세우스다. 이들의 여정에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기회를 상실할 때마다 그것을 ‘아웃‘이라 부른다.
그 안에 살아남아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공을 방망이에 빗맞혀 파울이 나면 타석에서 스 - P-1

윙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마치 바위를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또, 타격 후 다음 베이스를 향해 달릴 때는 절대 망설이거나 뒤돌아봐선 안 된다. 지하세계에서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올 때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던 오르페우스처럼.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무사히 홈을 밟으면 1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귀환을 막는 수비진은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 투수는 공을 던지는 사람이다. 골리앗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다윗의 심정으로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진다. 다만 표적은 미간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이다. 때로는 바다 위의 님프 세이렌처럼,
타자의 눈과 마음을 홀리는 변화구를 던져 전진을 방해한다. 타자가 그 유혹을 뚫고 공을 쳐내면, 아킬레우스처럼 날렵한 야수들이 공을 낚아채려 전속력으로 들판을 누빈다. 아, 이 얼마나 신화적인 스포츠인가!

그렇게 신화를 닮은 순간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새 경기장 전체가 하나의 극장으로 변모한다.
스릴러 영화가 몰입을 유도하듯, 야구도 관객을 긴장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인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그것 - P-1

이 서스펜스다. 야구만큼 서스펜스가 가득한 스포츠는 드물다. 아니, 경기 자체가 승부가 아니라 긴장감을 위해 설계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투수가 마운드에 선다. 포수와 눈빛을 주고받고, 사인을 교환한다. 고개를 젓는다. 다시 젓는다.
이윽고 마음을 정한다. 주먹을 글러브 속에 숨겼다가, 몸을 비틀며 팔을 뻗어 공을 던지는 그 순간, 관중의 기대와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다. 스트라이크일까?
볼일까? 아니면 파울일까? 심판이 수신호로 판정을 내리는 순간, 하나의 고비가 일단락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투수가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사이, 우리는 2루 주자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포수가 마스크를 벗어 젖히고 황급히 공을 던진다. 도루는 성공할까? 실패할까? 서스펜스는 다시 이어지고, 관중은 또 한 번 숨을 죽인다. 아, 이 얼마나영화적인 스포츠인가!

야구의 매력을 알게 된 나는 슬슬 프로야구를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중계를 해주는 플랫폼에 접속해, 닥치는 대로 경기를 보며 규칙을 익혔다. 나는 운동신경도 떨어지고 경제관념도 희박하지만 호기심과 집중력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 P-1

이긴 걸로 충분해

야구는 시간제한 없이 ‘초‘와 ‘말‘로 나뉜 아홉개의 이닝을 소화하면 끝나는 경기다. 
9회 말은 홈팀의 마지막 공격이다. 그런데 9회 초가 끝났을 때 이미 홈팀이 1점이라도 앞서 있다면, 9회 말은 생략된다.
경기를 그대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두 팀이 공수 교대를 반복하며 점수를 겨루는스포츠 중 이런 규칙을 가진 건 내가 아는 한 야구이다. 이긴 팀 입장에선 점수를 더 낼 기회가 있음에도 그냥 판을 덮는 셈이다. 
고스톱으로 치면 손에 좋온 패를 쥐고도 ‘고‘를 외치지 않고 ‘스톱‘하는 것과 같다.
프로야구에서도 득실 차는 순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득을 따진다면 불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구는 그 중단을 손해라고 보지 않는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대에게서 점수를 더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왜냐고? 오늘은 이긴 걸로 충분하니까.


당신 손으로 직접

믿음직한 선발투수를 내세워도, 그 어깨에 모든걸 맡길 순 없다. 타자 한 명은 안타를 쳐도 괜찮다. 뒤에 여덟 명이나 대기 중이니까. 하지만 선발투 - P-1

수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혼자서 몇 이닝이고 경기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때 감독은 타이밍을 보고 과감히 교체를 결심해야 한다.

 한 이닝이라도 더 던지고 싶어 하는 투수, 조금만 더 믿어주면 상황을 만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투수라도, 현명한 감독이라면 결연히 끌어내려야 한다.

축구장에서는 호루라기 소리와 전광판 안내로 교체가 이루어진다. 야구는 다르다. 감독이나 투수코치가 직접 마운드로 걸어간다. 멀리서 자신을 향해오는 감독을 본 투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지만,
이내 공을 내어준다. 
수고했다며 궁둥이를 툭툭 두드려주는 손길. 야구에서 교체는 그렇게, 손으로 직접 이루어진다.


최고의 피아니스트처럼

야구를 잘 몰랐을 땐 타자가 섹시해 보였다.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리 파울이라도 날려 보내면 관중은 탄성을 터뜨린다. 야구의 묘미를 알고 나신 투수의 매력에 취향저격 당했다. 홈런을 맞을까 봐 피하지 않고, 삼구삼진에 영혼을 걸 줄 아는 게 바로 낭만투수다.

그런데 야구를 보면 볼수록 포수만큼 낭만적인 - P-1

포지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포수는 경기의 전체 흐름을 읽을 줄 알고, 투수를 다독여줘야 할 타이밍을 안다. 
언제나 묵묵히 투수 뒤에 서 있지만, 포수가없다면 투수도 없다.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2023년 겨울, 오랜만에 열린 콘서트에서 가수 이소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크게 동요했다. 이소라 언니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야구에 빠졌다니. 어슴푸레한 무대에서 그는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구가 노래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모니를 이루고 있더라고요. 마치, 제가 어떤 노래를 던져도 이분이 훌륭하게 다 받아주시는 것처럼요."
무대 한쪽에는 그의 오랜 동료, 피아니스트 이승환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서 있었다.


도루에 살고 도루에 죽고

나는 늘, 앞섶이든 등판이든 유니폼이 시커먼흙투성이인 선수를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 선수는 삼진을 당해도 1루까지 달린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냥 뛴다. 도루할 때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베이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 강의에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 첫째이유다. 전쟁 바람에 서재에 박혀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나와 청계천을 따라 4가에서 7에 걸쳐 늘어선 고서점에 산더미로 쌓여 있던 시절이다. 헌 책을 뒤지는 일도 재미있었지만 운만 좋으면 이미 금서가 되어 시중에서 자취를 감춘 귀한 책들을 싼값에 살 수 있다는 덤도 있었다. 
백석의 <사슴>, 가와카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 그 밖에 백남운, 전석담 등의 책을 구해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고서점 순례 덕이다. 고서점에서 여러 친구들과도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듣고 배우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에 서서히 눈떠 갔다.

당시 서울은 전쟁의 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맨 불타거나 허물어진 집뿐이었고, 가는 데마다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이며 오갈데 없는 거지들이 득시글거렸다. 
서울역 일대와 종로 2, 3가는 창녀로 뒤덮였고, 서울역이며 각 버스 정거장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밤낮없이 혼잡을 이루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가난했는가는 당시의 우리 국민소득이 50달러인 데 비해 북한은 160달러, 필리핀은 300달러라는 한 자료가 잘 말해 준다. 산업 시설이라고는 전국적으로 전무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고는 빗자루밖에 없다는 자조의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었다.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 독재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독재 체제라는 온상 속에서 부패는 극에 달하면서 가난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조롱했다. 경제 - P-1

고 정치고 나아질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전국을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다. 고서점에서 만나는 책과 친구들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에 새삼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나는 차츰 회의에 사로잡혔다. 

이런 현실에 살면서 <갈대> 같은 오늘의 삶과는 동떨어진 시를 쓴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뒤에도 <심야>, <사화산>, <그 산정에서>, <유아> 같은 몇 편의 시를 더 써서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시 쓰는 일이 점점 재미 없어지고 신명이 나지 않았다. 마치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허망함을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여러 사정까지 겹쳐 7, 8년 가까이 방황하면서 시를 쓰지 못하게 됐다. 그동안 시를 버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돈벌이를 하겠다고 광산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장사하는 친구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무슨 시험을 치르겠다고 공부를 해 보기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지만나한테 만만한 일은 없었다.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재주라고는 그나마 글 쓰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으며,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쓰되 지금까지와는 달리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시,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삶이 담긴 시를 쓰자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시 쓸 생각을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일 먼저 쓴 시가 <눈길>이다. - P-1

나는 예순이 넘은 지금도 자유, 정의, 인권, 이런 말을 들으면가슴이 일렁인다.

노무현 이름을 들어도 그러하다.
그에게서 희랍 비극의 원형을 본다.
제왕이나 천재가 주어진 거대한 운명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산화하는 비극으로부터 인간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인권‘을 열 걸음쯤 나아가게 한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라기보다 시인에 가깝다. - P-1

일본은 군국주의 세력을,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후과가 오늘의 위험한 우경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집착하는 한일 양국의 극우 세력은 일본 제국주의의 쌍생아로 국가주의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적실하다 하겠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의 강경한 대일 외교는 국내 정치와 함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지 근본적인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밖으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면서 안으로는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왜곡이 심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를 극찬하고 노골적으로 교학사 교과서에 특혜를 베푸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인가. 

2006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은 말했다. ‘이웃나라에 대해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자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는우리 역사도 잘못 쓰인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실천적 면모는 민족문제연구소로서도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역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도 놀랄 정도로 그 지향이 민족문제연구소와 일치하였다. 아니, 오히려 앞서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의 추측과는 달리 그가 개인적으로 연구소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거나 교감을 하던 관계는 아니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애가 없는 사람이 무언가를 모으면 ‘수집‘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무언가를 모으면 ‘집착‘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앉아서 다리를 떨면 ‘습관‘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면 ‘상동행동‘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감정 표현‘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소리를 지르면 ‘도전적 행동‘이라고 합니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먼 ‘재능‘이라고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그림을 잘 그리면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그 무엇이 발달장애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우리는 발달장애에 관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요? 
25년 동안 발달장애를 공부하며 발달장애 어린이와 발달장애 성인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만나오면서 
고민했던 문제들과 나름의 답에 관하여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발달장애와 발달장애인의 삶에 관해 알고 싶은 분들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작은 생각들을 담은 책입니다. 
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발달장애와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어 부족한 글을 함부로 세상에 내놓습니다. - P-1

나오는 글
자녀를 대신해 발달장애 부모님들께 드리는 편지

내가 음식을 씹게 하려고 
끝없이 나와 싸워주었고
의사와 치료사, 교사와 복지사들에게
수백, 수천 번 나를 설명해야 했고
나를 미소 짓게 하려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숨겨야 했고
헤아릴 수 없이 긴 치료와 교육의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내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인내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당신

내가 하루를 무사히 보내게 하려고
당신의 하루는 한 시간처럼 보내는 당신
내가 넘어져도 괜찮은 자리를 위해 - P-1

자신이 넘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당신
장애 진단이 당신에게 가져다주었을
고통, 억울함, 그 두려움에도
어느 날 다시 일어나며
"우린 할 수 있을 거야!"라고 결심해준 당신

이 길고도 거친 나날들이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음에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여전히 내려놓지 않고
짊어지고 계신 당신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복지관에서 걸려 온 전화에
울화가 치밀어도
다시금 나를 그곳에 보내야만 하는 당신

내가 그렇게 발작을 하고 울부짖어도
그건 진짜 내가 아님을 이해해 주는 당신
내가 손을 뿌리치고 당신을 모른 척해도 - P-1

산산이 부서지는 마음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는 당신
당신이 매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동정해도 참아내는 당신

내 작고 작은 성취 하나에도
마치 세상에서 내가 처음
그 일을 해낸 사람인 양 기뻐하는 당신

이제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낄 때조차
다시 내 손을 잡고 일어서는 당신
내 친구들과 그 엄마들에게
끝없이 나를 설명해야 할 때도
나를 부끄럽게 여긴 적 없는 당신

내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한순간도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
당신은 언제나 나의 울트라 슈퍼 영웅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 P-1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어는 일본인만의 것인가?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는 현실 세계에서 미미와 같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세계 문학을 통해 오히려 이들이 ‘보통‘의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운데 아이들」은 세계 표준 문학이고 지금 바로 세계 각지에서 읽혀야 하는 일본 문학의 필두라는 호시노의 말에 공감한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 호시노와 같은 이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미야모토 데루는 "일본인 독자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 "남의 얘기가 끝없이 계속되는 소설이 지루했다"는 심사평을 발표했다. 

작가 온유주는트위터(지금의 X)를 통해 "너무나 화가 난다. 일본도 일본어도, 자신=일본인만의 것이라 믿기 때문에 가능한 반응이다"라고 반박했다. 미디어는 온유주의 소설과 미야모토 데루의 심사평 내용보다 대가에게 맞짱을 뜬 신인 소설가라는 프레임으로 요란스럽게 다뤘다. 두 사람 발언 - P-1

에 주목하는 기사들조차 비당사자(미야모토 데루)와 당사자(온유주)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온유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사자‘ 말이라서 설득력이 있다고 하신다. 대충 말을 해도 ‘당사자‘ 말이니 새겨듣겠다는 분들도 있다. 조심스럽다. ‘당사자‘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바르게 판단하는 건 결코 아니다. ‘비당사자‘이기에 오히려 문제의 중요한 측면을 알아채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당사자, 비당사자라는 대립 구조에 갇히고 싶지 않다. 세상의 구별 짓기, 선•긋기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당사자 말을 경청하는 비당사자라는 구도는 미야모토 데루가 심사평에 쓴 일본인(비당사자)과 상관없는 남(당사자)의 얘기라는 의식의 선한 버전일지 모른다. 
강의시간에 이런 말을 하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온다. "그럼 어떻게 해요?" 그럴 때 나는 출석 퀴즈로 온유주가쓴 ‘선의‘가 물어뜯는 마음」(아카하타신문, 2022년 9월 18일)을 읽고 간단히 감상을 적어보라고 말한다. - P-1

이 나라는 일본인뿐이라서 저는 단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마이너리티로 여겨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중략) 
작가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제 책을 읽었다는 어느 독자가 "일본이 이런 나라여서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는데 심정이 아주 복잡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달라는 얘기에 부응하기 위해 저는 그 사람에게 오히려 "당신을 괴롭게 해서 저야말로 죄송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용서받은‘ 상대는 위안을 얻은 것 같았지만, 
저는 계속 뭔가에 물어뜯긴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이너리티 편이라고 스스로를 자부하는 메이저리티일수록, 실은 자신의 ‘선의‘에 숨어 있는 무의식적 차별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선의에 숨어 있는 무의식적 차별은 뭘까? 이 글을 읽고 학생들이 쓴 일본어 감상을 일부 번역해 보았다.

A: 블랙 외국인에게 고향은 덥습니까? 달리기 잘하시겠어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의식적인 차별은 내자신이 의식하기 힘들다. - P-1

B: 마이너리티에게 친절을 베푸는 행위가 때때로 그들을 나보다 열등하다 또는 약자라고 규정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마이너리티를 특별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예컨대 같이 알바를 하는 외국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르치려 들거나 간섭하는 것도 자신은 ‘친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대는 무능한 인간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C: 자신이 마이너리티 편이라고 자부하는 메이저리티 태도를 보면 "당신이 차별당하는 일은 필연적이지만 난 달라요"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관과 자세로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 또는 "상대가 마이너리티라서 차별받기 때문에 불쌍하다"라며 메이저리티가 우월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행위야말로 차별이다.

그 밖에도 비슷한 의견이 많았다. 특히 유학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다.
나는 이 글을 읽었을 때, 주인 의식이라는 단어가 떠 - P-1

올랐다. 이 나라의 주인은 ‘나‘라는 의식이 강하게 깔린 사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대표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온유주는 지금 마흔다섯 살, 세살 때 일본에 와서 일본 공교육을 받았다. 인생 경험을 거의 일본에서 했음에도 너는 손님이라는 대접을 정중하게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 역시 친절한 손님대접을 한국과 일본에서 톡톡히 받는 신세니..... 좋으면서도 씁쓸하다. - P-1

문은 열릴지니
부모 없는 아이에게
다리 잃은 병사에게
갈 데 없는 노파에게
명랑한 남녀 추니에게
분노에 찬 야생 곰에게
슬픈 눈을 가진 남양 코끼리에게
저것은
화성으로 향하는 로켓에 올라타는 비행사들불을 피우고 둘러앉는 법을 터득한 고대인들그것은
꿈꾸는 자들의 낙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곳

굳게 닫혔던 역사의 문, 그 ‘문은 열릴지니‘로 소설의 마지막이 ‘시작‘된다. 여기서 귀환병 오빠와 어린 기와코는 다시 만난다. 그들의 만남은 도서관 이야기의 마지막 정리 번호 ‘25‘라 쓰이고 ‘국립국회도서관 지부 우에노도서관 앞‘으로 명명된다. 도서관 안과 밖, 두 개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진행되던 소설이 결합되는 순간이다. 독 - P-1

☆ 마른하늘에 날벼락!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리라. 마른하늘에날벼락. 
사망자와 실종자가 2만 명이 넘는 대참사였다.

도쿄 피해는 동북 지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ㅈ당시 방사능에 관한 정보가 통제된 상태에서 느낀 극심한 불안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날인 3월 10일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 참석했다가 귀국한 터라 이날은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일본은 4월 1일에 새 학기를 맞이하므로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이는 방학이었다. 지진이 난 순간 나 - P-1

는 너무나 놀라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이 이름만 크게 불렀다. 그런데 아이는 대답하는 둥 마는 둥 바쁘게 집 안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하더니만 내 손을 잡아끌어 현관 쪽 복도에 앉혔다.

나중에 물어보니 가스불을 먼저 확인했고 베란다 창문과 현관문을 살짝 열어 대피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강진이 이어지면 창문이 휘어서 문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비상식량과 전등, 라디오를 챙겨서 현관에 놓고 몸이 완전히 굳어 꼼짝달싹 못하던 어미를 물건이 떨어질 염려가 없는 복도에 앉힌 것이다.
이어 조용히 자신도 내 옆에 앉았다. 

어릴 때부터 도쿄에서 지진 대비 훈련을 받은 덕분일까. 무척 침착하고 담담하게 움직여서 감탄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가 허등대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 P-1


폭발의 충격이 컸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후 하늘에서 재가 많이 내렸다.
그것을 재미 삼아 잡으려고 한 사람은
‘죽음의 재다. 만지지 마라‘는 핀잔을 들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좋은 냄새가 났다고.
어떤 냄새가 났느냐고 묻자,
무엇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잊히지 않는 냄새가 주변에 충만했다고
‘비유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나는 느꼈다.
이 나라는 무섭구나.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고
그분이 말해주신
그 감촉 그 자체를 시에 담을 수밖에 없다고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찾고 있다. - P-1

이 지진을 표현할 비유를 - P-1

놀랍게도 그해 7월 3일 열린 ‘접속의 정치학‘ 워크숍에는 학자 외에도 많은 시민이 참가했다. 여섯 시간 가까이 청중과 뜨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나는 변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까지 다양한 회의를 기획했다. 여러 전공, 여러 나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기에 참가자를 학자로 한정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연구자들과 식민지 검열에 관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었는데, 방사능 유출 이후 일본 미디어의 자기 검열에 따른 심각한 폐해를 보며 ‘검열‘ 연구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일본 근현대 문학이라는 좁은 세상에 사는 오타쿠에 불과했던 나는 3.11을 통해 현실 삶에 눈을 뜨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여전히 조금만 방심하면 ‘방콕‘ 인간이 되어버리지만 문을 걸어 잠그고 소통을 거부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