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머릿속을 스치는 이는 브뤼헐을 비롯하여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 (1571~1610)나 미켈란젤로 MichelangeloBuonarroti(1475~1564),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1313~1375) 같은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부터, 18세기 작가 대니얼디포 Daniel Defoe (1660~1731)20세기의 카뮈 AlberAlbert Camus (1913~1960)로 이어지는 역병의 참상을 작품화한 사람들이다. 평소라면 그다지 쓰지 않는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굳이 이들에게 바치고싶다.

그 위대함은, 먼저 참화 한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를 응시하며
기록하고자 했던 정신에서 기인한다. 
만약 인류 전체가 죽음으로 절멸한다면 그 기록은 누가 보게 될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쓴다는 행위(그린다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일단 용감하게 맞섰다. 이는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참혹한 역병 속에서 이를 묘사해낸 이들의 정신이 위대하다

 그 두 번째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죽음‘자기 자신의 ‘죽음‘마저도 똑바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죽음을 면할 수 없는존재라면 무엇을 위해 쓰고 그리는가? 
인간을 둘러싼 물음이 ‘죽음‘과 깊이 결부된 이상, 이 시점에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인문학‘의 기본이라고해야 할 정신이다. 휴머니즘(인문주의)의 발전과 심화가 페스트의 참화와 함께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새삼 이렇듯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내 나름의 ‘인문기행‘을 계속 써 내려갈 작정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번 장을 읽으면서 아마 세 단위의 시간대를 왕복할 것이다. 
첫째는 말할것도없이 얼마 전 미국을 찾았던 2016년이다. 또 하나는 그런 내가 때때로 회상에 빠지는 1980년대, 그리고 여기에 현재(2020년)라는시간이 추가된다.

그러면 다시 2016년으로 되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죽음의 산

C교수로부터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 위해 코스타리카에서 약일주일간 체재를 마치고 2016년 3월 19일 뉴욕으로 돌아왔다. 강연은 ‘새로운 보편주의를 향한 희구‘라는 제목이었다.(이후 ‘유럽적 보편주의와 일본적 보편주의‘라고 고쳐 졸저 일본 리버럴의 퇴락』(고분켄, 2017년, 한국어판은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한승동 옮김, 나무연필,
2017년)에 수록했다.)
C교수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인 여성으로 날카로운 관점을 지닌 철학 연구자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된 인간해방을 위한 힘겨운 실천에 자신의 연구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독일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화가송현숙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송 작가와 친했던 그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 인연으로 베를린 재독한국인 청중을 대상으로 내 강연회를 조직하고 통역을 맡아주기도 했다. 
C 교수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로도 교류는 이어졌고, ‘디아스포라‘를 테마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도 나를 발표자로 초대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코스타리카로 떠나서도 그는 나를 떠올리고 먼 곳까지 불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지구 반대편

까지 스스로 찾아 나설 리는 없었을 것이다.
코스타리카 대학 강연에서 나는 이 매뉴얼 윌러스틴‘mmanuelWallerstein(1930-2019)의 논의를 끌어와 의견을 펼쳤다. (월러스틴은그 당시만 해도 건재했으나 2019년 8월 31일 코네티컷 자택에서 향년 88세로 삶을 마쳤다.) 잠깐 그날의 강연 요지를 소개한다.

194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이베리아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 그라나다가 함락당하면서 기독교 세력에 의한 레콩키스타 Reconquista (국토재정복 운동)가 완성됐다. 
그렇게 유럽의 다원적 시대는 종언을 맞이하고 불관용이 넘치는 일원적 지배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해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교도의 고난은 500년 후 홀로코스트로 귀결되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유럽은 아시아 대륙, 아메리카 대륙 등으로 식민주의적 해외 진출을 펼쳤고 ‘근대 세계 체제‘(월러스틴)가 성립했다. 이는 지구상 대다수 사람에게는 전쟁, 기아, 노예노동,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저개발과 빈곤같은 재앙을 의미했다.
이러한 시스템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 귀중한 보고중 하나가 1552년에 라스 카사스 Bartolomé de Las Casas (1484~1566)가펴낸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다.
라스 카사스는 스페인 왕실이 주도한 바야돌리드 논쟁

(1550~1551)에서 스페인 사람이 신대륙에서 자행하고 있는 엥코미엔디 Encomienda (식민지적 영주재산제도)는 사실상 노예제나 다름없다고 규탄하며 정복활동 중지를 호소했다. 
반면 논적이었던 세풀베다 Juan Ginés de Sepúlveda (1490~1573)는 "자연법에 따르면, 이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그들보다도 인간적으로 사리분별력을 갖춘 우수한 자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인간 중에는 자연 본성 면에서주인된자와 노예인자가 있다. 저들 야만인은 죽음으로 내몰릴지라도 정복당함으로써 비로소 대단하고 커다란 진보를 달성할 수있다."라고 주장하며 정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
윌러스틴은 이 논쟁을 이라크 전쟁(2003) 이후의 세계정세문맥 속에서 상세히 분석했다. (『유럽적 보편주의』, 김재오 옮김, 창비,
2008년) 그는 선진국이 간섭을 정당화하는 것이 예전에는 ‘종교‘
를 내걸며 이루어져 왔지만 현대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서구를 중심으로 한 범유럽 세계 (내 생각에는 일본 역시 여기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의 지도자와 주류 미디어, 체제 친화적 지식인의 레토릭에는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주의에 호소하려는 언사가 넘쳐난다. 그들이 ‘타자(상대적으로 빈곤하며 발전도상에 있는 국가의국민)‘와 관련한 정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러하다.

이는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니라, 적어도 16세기 이래 ‘근대세계 체제‘의 역사를 통해 구성돼온 권력의 기본적인 레토릭이다.

‘라스 카사스/세풀베다 논쟁‘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윌러스틴은 이렇게 권력에 의해 왜곡된 보편주의를 ‘유럽적 보편주의‘라고 부르고 여기에 진정한 보편주의, 즉 ‘보편적 보편주의‘를 대치하자고 주장한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근대 이후, ‘문명화(유럽적보편주의)‘를 구실로 삼아 자기중심적 국가주의(초개별주의)에 입각한 침략을 거듭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적 보편주의, 즉 천황제를 최고 가치로 하는 세계 질서를 그들은 ‘팔일우(온천하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라고 칭했다. 중국과 조선 등아시아 민족은 이러한 보편주의에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피지배민족의 독립 요구를 ‘민족주의적 편견‘으로 취급하며 탄압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근본적으로 부정당해야 마땅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천황제가 존속되었듯, ‘일본적 보편주의‘ 또한 살아남았던 것이다. 코스타리카 대학 강연에서 나는 이 점을 지적했다.
코스타리카를 떠나기 전날, 우리 부부는 C 교수의 안내로 수도산호세 근교의 이라수(razú 화산을 보러 나섰다. 화산국가 일본

에서 온 우리에게는 특별히 새로운 구경거리는 아니겠지만 코스타리카를 찾은 관광객에게는 반드시 안내하는 코스라고 했다.
눈이 부실 만큼 활짝 갠 열대다운 날씨였다. 표고 12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라서 그리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운전사가 가이드를 겸해 도중에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일찌감치 지쳐 있던 우리는 설명을 흘려듣곤 했지만 어떤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귀를 기울였다. ‘죽음의 산‘이라는 말이 들려왔던 것이다. 
차를 갓길에 세운 운전사가 계곡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죽음의 산이에요."라고 말했다. 파나마로 통하는 도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가 많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희생자는주로 자메이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였다. 카리브해 제도의 기후에 익숙해 있던 그들은 한랭한 고산기후와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깊숙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서양건너로 끌려온 뒤 카리브해 지역에서 다시 이 깊은 산속으로 연행되다시피 하여 목숨을 빼앗긴 셈이다.
햇빛이 드는 아름다운 마을을 품은 분지 저편으로 첩첩이 이어지는 산맥이 보였다. 나는 그 산줄기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저멀리 일본 규슈나홋카이도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와 광산에서 힘겨운 강제 노동에 쓰러진 조선인의 유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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