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황토를 화폭에 담다

처음에 변시지는 제주에 내려가면서 한두 해 정도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점차 제주의 마력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변시지가 제주를 그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제주가 변시지를 완성한 것이다. 제주는 변시지에게 어린 시절 원시 자연과 어우러진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태풍으로 잃고 절부암에 몸을 던진 아낙네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었고, 역사적으로 늘 본토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핍박의 땅이었다. 추사김정희와 같은 선비들에게는 유배의 땅이었으며, 4·3 항쟁으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은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었다. 절절한 사연을 안고서, 오늘도 바람을 맞으며 처연하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고장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폭풍‘의 섬이었다.
변시지는 ‘바람‘으로 시작된 제주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 살아남은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미술 양식을 전부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원의 고요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그리는방식으로는 도저히 제주의 원시적이고 척박한 미학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는 거친 바람을 피하는 법이 아니라, 그것과 마주하는 법을배워야 했다.
화가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혼자 제주 생활을 이어갔다. 

될 듯 말 듯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는몇 날 며칠을 술에 빠져 지내며 별도봉 자살바위를 배회하곤 했다.

숨을 참고 바다 깊이 힘차게 뛰어들어 고기를 잡은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해녀의 모습이 액자 틀을 따라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 

때로 목숨을 걸고 생을 영위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에서, 문신은 스스로 살아나갈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나중에 쓴 문신의 회고록에서 특히나 인상적인 대목은 그가 자신의 가난한 아버지에게 보낸 존경과 찬사이다. 

그의 아버지는 탄광 노동자, 푸줏간 점원 등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늘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한때 아버지가 마산 추산동 언덕 위에서 온실 재배를 한다고, 거름을 만들기 위한 분뇨통(장군)을 져다 나른 적이 있었다. 친척들은 냄새나고 창피하다며 아버지를 욕하고 분뇨통을 엎질렀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계속했다. 

문신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삶을 헤쳐나가는 아버지 모습에 깊은감명을 받았다. "그 모습이 지금도 내 눈앞에 생생히 살아나면서 나에게 그 무엇인가의 용기를 갖게 해준다"고 문신은 썼다.

화가에서 조각가로

그가 바라본 삶이 이러할진대 못 할 것이 무엇이랴. 1961년 문신은 무일푼으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비싼 비행기 값을 지불하고 파리에 도착하니, 주머니에 달랑 50달러가 남았다고 한다. 

구사일생으로 화가 이용(1904~1989) 부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후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화가 김홍수(1919~2014)가 알선해 준 일자리에 문신은 정착했다. 파리 외곽에 있는 라브넬의 고성(城)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석공, 미장, 복수 등 격렬한 노동의 종합판이었지만, 문신은 이 일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스스로도 이 경험이 화가에서 ‘입체‘를 다루는 조각가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파리에서도 뭐든지 잘해내는 그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 존 크라븐이라는 전시기획자의 눈에 들어, 문신은 1970년 프랑스 남쪽 항구도시 발카레스에 거대한 나무 조각상을 설치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가봉의 대통령이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1890~1970)에게신물한 아비동 나무를 예술가들에게 나눠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문신은 그중 가장 큰 통나무를 골라, 가장 깊이까지 파 들어가는작업을 시도했다. 45도 온도의 모래사장에서 높이 13미터, 직경1.2미터의 나무 둥치와 무려 8개월간 사투를 벌이다가, 전기톱에 손목을 다쳐 피가 철철 흐른 적도 있었다. 문신은 이 경험을 통해 "하나의 창조라는 생명의 잉태를 위해서는 붉은 피가 엉기어 떨어지는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진정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인간형이었다.
<태양의 인간>이라 불리는 이 작품으로 문신은 유럽 화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때까지 10여 년간100여 회의 전시회에 참여했고, 작품도 꽤 잘 팔렸다. 

통상 ‘시머트리(대칭)‘를 특징으로 한다. 
나무,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털 같은 재료로 좌우가 서로 대칭이 되는 알 수 없는 형상들을 그는자꾸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조각이 개미나 나비 같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씨앗이나 식물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아주 오래 전 고대인이 만들었을 법한 토템 같다고도 하고, 훨씬 멀리 미래의 우주에서 날아온 미지의 생명체 같다고도 했다.

문신 자신은 사람들이 이 창조물을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었다.
다만, 그는 어떤 대상을 의도적으로 재현하려 하지 않았고, 단지 그것이 무엇이든 작업하는 동안 이 형태들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런 문신의 작품에 프랑스의 권위 있는 평론가 자크 도느는 ‘생의 철학‘이 보인다고 말했다. "
도판느가 말한 생의 철학은 베르그송이나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의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문신에게 ‘생은 훨씬 더 실재적이라는 집에서 그들의 철학, 그 이상이다. 문신의 ‘시머트리는 땅에단단하게 발 딛고 선 어떤 존재가 어떻게든 중력을 거슬러 자라는동안 생겨나는 형상이다. 이 형상은 위로 자라면서도 옆으로는 좌우 균형을 유지하려고 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견고한 안정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태어나는 존재라고나 할까 생은 바로 그런 극단적인 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균형감각이다.
그러하기에 우주에 던져진 어떤 존재에게나, 생은 그만큼 어렵고, 신비롭고, 기적 같고, 엄중하다.

"나는 금산도 싫고, 금도 싫다.
나는 화가가 될 것이다!" 유영국

식민지 암흑기와 전쟁의 비극 속에 삶은 부서졌지만 예술을 향한 그들의 집념과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근원으로 돌아가 삶의 열망과 존재의 이유를 뜨겁게 되묻는
한국 근대 예술가들의 슬프도록 찬란한 유산

몇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회는 암울했던 우리의 근대 시기에 그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영롱히 꽃피운 문학과 예술의 애잔한 향연이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김인혜가 근대 문학인과 미술인들의 예술적 열정과 시대에 대한 고뇌, 그리고 따뜻한 우정을 생생히 기록한 이 책은 우리 근대문화사의 소중한 증언록이라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유홍준 (미술사가 명지대 석좌교수)

봄이 움트는 덕수궁 찻집에서 우리는 ‘거사‘를 도모했다. 김인혜는 폄훼된 한국 근대미술의 위대한 여정을 지상에 전시하기로 했다. 이상, 구본웅, 박태원을 시작으로백석, 김기림, 나혜석, 이중섭, 박래현 등 ‘경성 천재들의 파란의 삶과 예술, 뜨거웠던사랑을 천일야화』로 써내려간 원고를 읽으며 나는 울고 웃었다. 엄혹한 고난의 시대를 역동의 르네상스로 꽃피운 모더니스트들의 낭만과 투지는 경이로웠다.
- 김윤덕  (조선일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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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아니라 ‘어떻게‘입니다.
이미 살고 있는데즐겁게 살 건지, 괴롭게 살 건지,
그건 나의 선택입니다.
아침에 눈 떠서 살아있으면
‘오늘은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고생각해 보세요.

새로운 TF 팀을 만들어 지금 이 순간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소비 문명을 학습하게 하고, 이걸 모든 조직 안에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업 내 의사결정문화가 달라졌다는 걸 모든 조직원에게 알려야 합니다. DNA가 달라졌다는 걸 모든 조직원이 인지해야 비로소 혁신이 시작됩니다. 혁신은 개선이 아니라 모든 걸 바꾸는 일입니다. 기업이 혁신하려면, 기업이 생각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후회는자기 학대다

지나간 잘못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것은어리석은 거예요.
후회는 실수를 저지른 자기를 미워하는 마음으로자기에 대한 또 다른 학대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 하는 게 미움이라면자기를 용서하지 못 하는 게 후회입니다.
후회는 반성이 아니에요.
‘나처럼 잘난 인간이 어떻게 바보처럼 그때 그걸 못했을까?"
이게 후회예요.
이제라도 그때 그런 수준이 나라는 걸 인정하고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화를 낼만한 상황이라는 기준 자체가지극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그 안에서 축적된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에 따른 것이니까요.
말로는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하지만실제로는 내 생각이고, 내 취향이고,
내 기준에 불과합니다.
화가 난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내 분별심판가름 때문입니다.
사사건건 옳고 그름을 가르려는 습관이내 안의 도화선마음의 습관에 자꾸만 불을 댕기는 겁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베푸는 마음만 내고 기대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사랑할 뿐이어야 합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은 건바다가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기대 없이 누군가를 좋아해 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 산을 좋아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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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명 특성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생산하는 데이터들이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찾고 있는것인지, 어떤 고객을 포기하고 어떤 고객을 잡아야 하는지, 심지어는 한 사람의 고객이 때에 따라 왜 다르게 반응하는지도 이해하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소비자를 헤아리는 마음고객이 왕인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 그들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는 건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자 필수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SNS 활동을 통해 디지털문명을 제대로 경험하고 공감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진정성 있게 대화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며 그 문명이 갖고 있는 유머 코드와 재치 있는 이모티콘 표현도 학습해야 합니다. 고객을 알려면 디지털 문명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된 SNS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학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소비자는 정말 다양합니다. 마켓 세그멘테이션을 전공한 사람들이 얘기하듯, 백인백색을 넘어 일인백색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도,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 면접을 보는 게 기본입니다. 신입사원이 그렇습니다. 매니저급 인재를 뽑을 땐 훨씬 더 많은 인터뷰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재가 엄청난 실적을 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그런 특별한 인재를 뽑기 위한 프로세스를 구축한 결과입니다. 이들이 뽑는 인재는 당연하게도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유튜브를 즐겨 보고 킬러콘텐츠를 보유한 유튜버들의 특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잘 활용해서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경험한 사람들, 유행한 게임의 특성과 소비자를 끌어들인 성공 요소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 아마존이 왜 다른 플랫폼에 비해 매력적인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경험한 사람들, 이런 인재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소프트웨어 기획이나 개발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 경험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어떻게든 스카웃하고 싶은 인재가 됩니다. 우리 회사는 이런 인재를 얼마나 찾고 있는지, 그런 인재들이 얼마나 활발히 활동하게 배려하는지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합니다.
킬러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뛰어난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킬러콘텐츠가 만들어진 과정을보면 종합예술과도 같습니다. 이 시대 가장 위대한 혁명가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의 문명 변화를

그 페이지를 인쇄해서 보관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6개월이 걸릴 일이었죠. 단순 반복 업무를질색하던 반 씨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 Python을 이용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반 씨의 카카오브런치에 올라온 글에 그 과정이 매우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반 씨는 일단 ‘파이썬과 함께라면 못 만들 것은 없다.‘는 마음가짐부터 다집니다. 그리고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실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바로 구글에 ‘Python crawler Library‘
를 검색합니다. 파이썬에서 라이브러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자주 사용하는 코드를 하나의 함수나 클래스라는 단위로 묶어서모아놓은 것입니다. 반 씨는 이중 셀레니움selenium이라는 이름의 라이브러리가 적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바로 ‘셀레니움으로 무적 크롤러 만들기‘ 사이트에 들러 학습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직접 코딩을 시작하죠. 이때부터는 전체 업무를 단계별로 나누고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야 하기에 생각의 힘이 작동합니다. 그렇게 반 씨는 직접 작업하면 6개월이 걸릴 업무를파이썬으로 30분 만에 해결해버렸습니다. 이 놀라운 혁신이 알려지자 고용노동부는 반 씨를 초청해 행정 업무의 자동화 방안에 대해 아이디어 제안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가 가진 디지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요? 답은 ‘불가능하다.‘입니다. 그가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인재가 된 것도 바로 디지털 문명에 기반한 새로운 소프트웨어산업의 생태계 덕분이지요. 그러니 어려서부터이 문명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비교해봅시다. 책으로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학원에 가서 코딩을 배운 아이와 구글링, 유튜브를 매일같이 보고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만든 오픈소스 코드를 풀어가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운 아이, 이 둘의 능력치는 얼마나 다를까요? 아마 후자의 아이가 새 문명을 이끄는 데 더 적합한 능력치를 가질 것입니다. 이제 스마트폰 문명에 기반한 디지털 학습 능력은 인류에게 필수적인 요건이 되었습니다. 이걸 단지 부작용을 걱정해 막기만 한다면 유능한 미래 인재도 성장할수 없습니다.
구글 신과 함께한 혁신디지털 문명이 익숙해지면 생각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2018년 사회복무요원으로 대구노동청 안동지청에서 일하던 청1년 반병현 씨가 멋진 혁신을 보여줍니다. KAIST 바이오-뇌공학석사를 마친 반 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며 매우 단순한 업무를 지시받았습니다. 안동지청에서 보낸 3,900개가 넘는 등기우편 13자리 등기번호를 우체국 홈페이지에 일일이 입력한 뒤

최근 26세의취업한 김태훈 씨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있습니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유합니다. 물론 지적재산권 가치가 높은 코드는 공개하지 않지만요. 김태훈 씨는 UNIST 학부 재학 시절, 딥마인드와애플이 비공개로 설정한 코드를 혼자 개발해 20여 차례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합니다. 구글 브레인의 수장 제프딘Jeft Dean도 그의 코딩 실력에 감탄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할 만큼 IT기업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김 씨는 그들 중에서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인류에 기여하는 안전한 인공지능을 개발하자는 취지로 만든 기업 오픈AI를 선택합니다. 2019년 일을 시작하는 그가 받을 첫해 연봉은 30~50만 달러(약 3억~5억 원)라고하니 참으로 어마어마합니다. 이것이 축적된 자본의 힘입니다.
이 정도 인재면 우리나라 대기업 초봉의 10배를 지불해도 아깝지않다는, 새로운 인재의 기준이 등장한 겁니다.
김태훈 씨는 훌륭한 프로그래머입니다. 그렇지만 SNS 활동과 오픈소스에 기반한 학습이 없었다면 과연 독학으로 능력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인주문기 앞에서 주문을 못 해 쩔쩔매는 분을 보면, 다가가 친절히 도와드리면서 이분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스마트폰앱사용법을 알려줄 때도 무엇이 디지털 소비세대와 달라서 어려움을 겪는지, 그걸 이해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디지털 문명에 대해 왜 불만을 가지는지,
정말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불편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감정적인 문제인지를 공감해야 합니다.
시장 혁명의 시대에 깊이 벌어진 문명의 틈을 메우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옵니다. 혁명은 급속한 문명 교체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기성세대에게는 신문명이 어렵습니다. 국민소득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에 태어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까지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생은축적된 시간의 역사입니다. 그 엄청난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분들을 국민소득 1만 달러, 2만 달러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서 더 값진 일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기성세대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청년이라면 세계 어디에 사는 사람들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시장은 무한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고객의 선택이 시장을 결정하는 디지털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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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시대의 감각있는 예술가를
그리고 그 예술가를 알아보고 지원한 사업가를 뒤쫓아본 시간

웬일인지
가족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세계와 비전과 감각을 공유한다고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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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무자본 창업이 가능할까? 
첫째, 모바일과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사업 초보자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동네상가를 임대해 운영하는 동네 장사뿐이었다. 창업 자본금도 5000만 원 넘게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1년 현재는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다. 무료 홈페이지, 무료 마케팅으로 전국의 수요자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무자본창업이 가능한두 번째 이유는, 엄청난 노하우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초보가왕초보를 도와주면 된다는게 내 사업철학이다. 꼭 프로가 초보를 도울 필요가 없다. 저렴한 가격에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왕초보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은 초보여도 상관없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달랐다. 내가 헤어숍을 창업했는데 근처에 나보다뛰어난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폐업하게 된다. 고정비때문이다. 프로만이 살아남는 세계였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초보가 왕초보를 도와주면 돈을 벌수 있는 시대다.
참고로 나는 디자인 재능이 전혀 없으며, 어떤 프로그램도 만질 줄 모른다. 내가 만약 지금 로고 회사를 만든다면 다음과같은 플로를 따라 월 3000만원씩 벌자신이 있다.

1. 무료 홈페이지 제작 플랫폼을 이용해 로고 디자인 사이트

를 만든다.
2. 로고의 시장가를 조사한다. 전문가가 만든 로고는 최소10만원에서 시작하며, 크몽에서 5만 원에 판매하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초보이므로 로고제작가를 2~3만원대로 책정한다. 로고 회사에 의뢰해서 판매 시스템을 알아본다. 보통로고 회사는 3개의 시안을 주고 범위를 좁혀나가면서 의뢰자를 만족시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3개의 시안을 준비한다.
3. 로고를 만드는 플랫폼을 이용해 로고를 디자인한다. 아임웹, 웍스, 망고보드 등 수십 군데 해외 사이트에서 30초 안에로고를 디자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4. 인스타그램 스폰서 광고를 통해 매일 5000원에서 1만원정도의 비용으로 광고를 돌린다. 크몽을 통해 광고를 해도 좋다.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이용한 무료 마케팅도 가능하다. 참고로 난 돈을 들이지 않고 모든 마케팅에성공했다.
5. 사이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6단계 밸런스 이론‘을 적용한다(자세한 내용은 이상한마케팅 회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칼럼 코너 참고).
6. 점차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두 달 하다 보면 사람

들이 어떤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간은 극도로 단축되고 고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진다. 순수익이월 300만원에 달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7. 단가를 높여야 하는 단계다. 실무를 하면서 로고 공부를제대로 하기 시작한다. 디자인 실무에 대한 책을 볼 수도 있고, 업계 1위 회사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볼 수도 있다. 디자인학원을 다니거나 관련 강의를 듣는다.
8. 점차 입소문과 마케팅에 의해 초과 수요가 생긴다. 만들수 있는 로고의 양보다 의뢰 양이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면,
가격을 점차 상승시켜 수요를 조절한다.
9. 사업 자동화를 위해 직원을 고용하거나 아르바이트생을교육한다. 디자인 제품을 고급,중급, 초급으로 나누고 가격을 차별화한다. 매출규모가 커지면 이제 제대로 회사 형태로만든다. 이후 경영 서적을 보면서 회사 확장 방법, B2B 시장개척 등에 대해 공부해나간다.
10. 로고 회사가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로고와 관련도가 높은 주변 사업들(웹디자인, 배너 광고, 홈페이지 제작)로 확장해나간다.
11. 이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들도 무자본으로 창업해본다.
7번 이후는 기업 형태로의 발전이고, 사실 6번까지만 실행해도 먹고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인생의 자유를 보장할 확률은 높다.‘
이 책에서 경제적 자유와 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진정 말하고싶었던 주제는 행복이다. 만약 내가 행복에 대한 책을 썼다면 사람들이 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라는 주제를 미끼로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어디까지나 경제적 자유를 이룬 덕분이다. 누구도 돈 자체를 위해살지 않는다.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중요하다.
역행자 7단계 모델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그것이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주는 방법인 동시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끊임없이 생각했다. ‘어떻게 나 같이 멍청하고 열등했던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까지바뀔 수 있었을까? 나의 성공을 이론화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이 방법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경험을 스스로 신기하게 여기며,
10여 년간 원인을 분석했다. 그렇게 수없이 고민하여 이론화한 것이 역행자 7단계 모델이다.
특히 1단계에서 자의식을 해체하지 못하면 역시 불행할 가능성

이 크다. 발전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다.
하지만 지나친 자의식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순간, 꼰대가 된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린 친구들에게 충고하며 자위하기 바쁘다. 모바일 세상에서 "저건 사기야", "금수저로 타고났으니까 성공한 거지" 등의 댓글을 써대며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깎아내린다. 자기 상처를 피하기 위해 자기 확신만 강한 꼰대가 돼버리는것이다. 이런 회피가 반복되면 기회를 계속 놓치게 되고, 어린 시절 꿈꿨던 멋진 삶은 사라진다. 앞서 놓쳤던 기회를 합리화하기 위해 더욱 비뚤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역시 행복하기가 어렵다.
4단계의 뇌 최적화 또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뇌를 최적화하고, 지능을 상승시킨다면? 의사 결정력이 높아진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것은 대개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좋은 방향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가능성들을 찾아낸다면, 행복해질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역행자의 모든 단계는, 돈 버는 법으로 위장되어 있지만사실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직 미숙하고, 큰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 세상엔 나보다 똑똑한 사람, 부자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내가 이런 책을 내는 게 맞나 싶어 2년간 수없이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아이템은 수많은 사업 아이템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런 과정으로 돈을 버는구나‘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내가 로고 사업 아이디어를 말한 후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수많은 사례들이 나왔듯이, 여기서 제시하는 아이템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이 아이템들은 아무 기술력 없이, 돈도 거의 들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있는 것들이다. 나는 이 4가지 아이템들을 1주일 만에 생각해냈다. 아이디어 도출법은 간단하다. ‘와, 이거 누가 대신해줄 수 없나?‘ 싶은 걸 떠올리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행복을 주면 돈은 벌린다. 내가 창업한 사업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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