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8월, 한국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반국가단체 인민혁명당 관계자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제1차 인혁당사건). 그렇지만 실제로 검찰이 기소할 수 있었던 사람은 13명뿐이었고, 최종적으로는 3명에게 징역 6년, 다른 10명에게는 징역1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빈 껍데기일 뿐인 날조 사건이었다.
 1970년대 전반 한국 사회는, 1972년 박정희유신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인해 반정부 민주화운동이 고양되던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계자를 적발하고(민청학련 사건), 1974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총 23명을 체포했다. 
그들의 죄상은 "인혁당을 재건하여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한 점"이었다. 
다음 해인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판결로부터 불과 18시간 후인 9일 아침에 형을 집행했다. 
오글 목사 부부는 국가에 의한 무자비한 살육 행위에 당당히 항의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고, 그 까닭으로 한국에서 강제로 추방당했다.
 인민혁명당 피고의 사형 집행은 박정희 시대의 한국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2005년에 한국 국가정보원은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2007년 사법부(서울중앙지법)는 사형이 이미 집행된 8명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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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6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 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 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7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8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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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는 
아이가 하루하루 앞으로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멈춰 있거나 뒤로 갈 때 보고만 있으면 안 됩니다. 동생을 본 아이가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으려 할 때우리는 아이가 퇴행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할 수 있는 게 분명한데도 못 하는 것처럼 굴기 때문이지요. 큰 스트레스가 있을 때 아주잠깐은 그럴 수는 있지만 더 허용하면 아이의 성장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는 힘들어도 앞으로 가도록 아이를격려해야 해요. 

식사할 때 계속 움직이는 아이를 그대로 두면 학교급식 시간에 문제를 겪을 겁니다.
개인으로서는 살 만큼 살았고,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로서는 늘 초보 같은 느낌일 거예요. 

부모가 되기 전에 나는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엄마로서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 믿을 수없을 정도입니다. 
다른 부모들은 여유 있게 하는 걸 혼자 쩔쩔맨다고 생각하면 자괴감과 자책감에 잠을 설칠 수도 있어요. 

이때 나침반으로 삼아야 하는 건 아이의 성장입니다.
아이가 혼자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는데 내가 도와주면 아이의 의존심을 키우는 걸까, 
아니면 완성을 못 시켜서 자존감이 떨어질까, 
시험을 못 보면 다른 애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을까, 학원에 보내서라도 점수를 잘 받아야 자신감 있게 행동하지 않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대답은 천양지차이고, 우리 애에게 맞는 솔루션은 없

이 감정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표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합니다. 

불안은 위험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감정인데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학교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지금부터 아이들이 겪는 일은 대부분 일상적으로 익숙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 모두에 감정적 반응을 하게 되면 아이는 대수롭지 않은 일과 중요한 일을 구별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반응을 보고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엄마 개인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아이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때, 엄마는 초등학생부모라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아기를 돌보던 단계는 벗어나고 좀 더 큰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다가오는 청소년기와 그 이후 시기에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어요. 

초등학생엄마가 해주어야 할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반복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이기에 핵심을 꼭 잡고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엄마는이제 한 발 뒤로 물러나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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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와 주혁이한테도 네가 나를 변명해주길 바래. 그 애들은공부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없으면 훨씬 홀가분하게 이 땅을 잊을 수 있겠지. 그 애들을 원망하지는 않아. 그 애들처럼 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지…………진진아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줘.

내 생애에 이런 편지를 받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모가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내리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모 집으로 달려가면서 쉴 새 없이 부르짖었던 마음속 내 기도는 단 한 줄이었다. 하나님, 이 편지가 이모의 장난이게 해주세요!
제발 장난편지로 만들어주세요!
장난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니, 절대 그렇게 믿어야 했기에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이모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수선을 피우거나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진짜가 되어버릴까 겁이 났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일이 진짜가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의 열쇠로 대문을 열고,
나머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기이한•정적이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미국인이야. 엄마한테는 충격이었겠지. 엄마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었어. 엄마가 그것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그렇게 못난 분이 아니셨어."
나도 시인했다. 
이모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삶 대신죽음을 선택한 것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이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모 같은 사람이 뿌리 내리며 살기론 이 세상이 너무 얇았던 것이다.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 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모든 일을 끝내고 이모 집을 떠나던 날, 나는 거실의 오디오박스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몇 장의 시디를 발견했다. 이모가 자주 듣던 유행가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유행가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 사랑하는 이모의 심금을 울린 노래들, 그노래들 속에 ‘헤어진 다음날‘도 있었다.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보잘것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이모부는 건재하다. 이모의 엄청난 배신으로 상처는 입었으나,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애쓰는 기차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주리는 미국에서 푸른 눈과 밤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주리는 신부답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 살펴보니 주리의 입은 활짝 열려있지만 주리의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나는 곧 결혼한다. 어머니와 이모에 이어 나도 4월의 신부가 된다. 물론 4월 1일 만우절은 아니다. 

일 년 전쯤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다짐에 충실했던 일 년이었다. 
살필 수 있는 만큼은 다 살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4월의 결혼식에 내 손을 잡아줄 남자는 그래서 나영규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헤어진 다음날‘은 나와 김장우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진 다음날들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이모와는 달랐다. 나는 잘 견디었다. 김장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시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 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 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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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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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내린 눈이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기 힘들어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을 확인하는 일이 이모 인생에 닥쳐온 최고의 고통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어오는 이모의 뜨거운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달렸다. 달리는 우리두 사람의 머리 위로 눈은 점점 푸지게 쏟아지고 있었다.

참 이상한 밤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내내 그 밤이 이상했고 이모가 이상했다. 그래서 마음자리가 오래 뒤숭숭했다.
그 밤, 첫눈은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줄만큼 많이 내렸다. 폭설은 아니었지만 다음날까지 세상의 모든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모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던 그 시각에는 별로 감동적인 적설량은 아니었다.
쌓이는 눈을 볼 수 있는 곳,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고스란히 추운 땅을 덮고 있는 흰 눈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호흡이 가빠서 주저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이모와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번에도 내가 그 사실을 이모에게 일러주었다. 여기는 서울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강남의 번화가이고, 뒷골목까지 촘촘하게 모여있는 술집과 음식점과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첫눈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달리는 틈틈이 이모를 설득했다. 좀처럼 내 말을 믿으려

들지 않던 이모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달리기를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이젠 됐어. 그만 돌아가자. 난 택시를 타면 돼. 나부터 갈게"
이모는 그럴 수 없이 침착했다. 여태까지 한 짓은 모두 그냥 해본 장난이었다는 듯이. 실제로 택시를 타고 떠나면서 이모가 남긴 작별의 인사가 그랬다.

"모처럼 신나게 잘 놀았다. 진진아, 주책없는 늙은 이모하고 놀아줘서 고맙다. 안녕!"
첫눈 내리는 거리에 남겨진 나는 얼마나 황당했던지. 이모는 진짜 나와 신나게 놀고 싶어했는데 혼자 여러 가지를 유추하고 분석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여겨지던지. 그래도 여전히 장난이 아니라고 우기는 내 속마음은 또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모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김장우에게 두 번, 나영규에게 한번, 그렇게 세 통의 전화 메모가 있었지만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나영규에게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김장우에게 하기에는 내 감정이 영 복잡했다. 
그에게 전화를 하면 이모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모와 함께 첫눈 오는 거리를 달리다가 왔는데 아직도 해괴한 기분이라고, 이모한테 내가 홀린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그에게 하고야 말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여태도 고백을 하지 않았기에 김장우에게 내 어머니는 이

한 일은 이모가 추천한, 아니 이모를 사로잡은 노래, ‘헤어진 다음날‘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 얼마나 되풀이 그 노래를 들었던가. 마침내 나는 가사집을 보지 않고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있게 되었다.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나영규와 헤어진 다음날 내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와 헤어진 다음날 나영규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방바닥에 턱을 괴고 엎드려 그 슬픈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노래는 나의 노래가 아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되고 있었다.

진진아
지난 며칠간 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는지, 정작 지금 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너무 지쳐서 준비했던 그 많은 말들을 떠올릴 힘이 나지 않는다.
이 편지를 너한테 보내야 한다는 결심은 아주 쉽게 했었어. 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었어. 너라면 내가 다하지 못하고 가는 내 삶에 대한 변명을 마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지. 너라면 나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어.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하고, 말 안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

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는 상상도 적잖이 해보았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튼튼한 성곽에 갇혀 있었고, 성곽을 부수자니 마음을 다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나 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나 때문에 그러는 것, 나는 정말 못견디겠더라.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묵묵히 사는 길도 있는데, 난 그것도 안 돼. 정말 안 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진진아
나, 여기서 그만 이 생을 끝내기로 했다.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너무나 바보 같아서, 여러 사람이 크게 다치는 대형사고를 만나면 절대 생존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 잘 알아. 그러니 이 죽음도 뜻밖에 만난 하나의 사고라 여기자진진아
사고 뒤처리를 너한테 맡기고 가는 이모를 제발 용서해주길.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시간이면 나는 아마 떠났을 거야. 그때 나한테 와줘. 와서 나를 수습해줘. 이모부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그 이후일 거야. 숫자에 약한 내가 거듭거듭 시간을 계산하고 우체국에 가서도 물어보고 했으니 설마 틀리지 않겠지. 진실로,
이 마지막 일에는 실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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