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시아라는 단어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해본다. 푸코는 이 단어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보단,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여러 함의들을 도출해낸다. 그러나 푸코는 파레시아가 우리 시대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방법과 규범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자연스레 방법과 규범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것이 푸코의 강의전략 아니었을까? 파레시아는 누군가가 강요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주체의 자유로운 실천이기 때문이다.푸코는 자신에게 철학자라는 딱지가 붙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덕후'라는 딱지를 붙여본다. 그의 진득한 덕질은 항상 새로운 사유 가능성,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