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촘촘히 추적한 인문서입니다. 저자가 어떤 문헌을 딛고 이 논의를 세웠는지 보여주는 주와 참고 도서, 독자가 다시 찾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찾아보기는 이런 책에서 장식이 아니라 학문적 최소 신뢰 장치입니다.그걸 빼놓고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책의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그 알맹이가 근거를 가진 논의였다는 증거만 조용히 삭제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일러두기를 보니 이 장치들을 온라인 링크로 제공한다고 안내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학술적 장치를 링크에 배치한 인문 도서는 처음 봅니다. 수험서 중에는 해답이나 부록을 링크로 제공하는 경우를 종종 봤지만, 인문서에서는 낯선 방식입니다.출판 시장의 어려움에 대한 글을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가격만을 중시하고 정작 중요한 장치는 다른 곳으로 미루는 방식이라면, 그것 역시 지금 출판 시장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아무리 싸고 좋아도 중요한 '가치'를 외주로 돌리는 건 적어도 인문학적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구매자도 아닌데 태클을 건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제대로 된 인문학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열망이 큰 독자로서 남기는 의견입니다.
책 내용과 번역 모두 훌륭하다. 다만 서문을 읽다가 의아한 점이 한 군데 있었다. 어렵게 원문을 찾아보고 나서 오역 내지는 과도한 번역이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 12쪽에 "17세기,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원문은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Englishman Francis Bacon explained that"이다. 올바른 번역은 "영국인 프랜시스 베이컨"일 것이다. 번역자의 의도대로라면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했어도 무방하겠다. 이 책의 번역은 두 번 틀렸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20세기 사람이고, 17세기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화가가 아니라 철학자다. 실은 틀린 번역이라기보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을 화가로만 알고 있었고, 게다가 활동 시기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친절하게도 있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사소한 사고가 난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