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의 핵심 동문선 문예신서 149
윌리엄 J. 웨인라이트 지음, 김희수 옮김 / 동문선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사게 된 계기는 김용규 선생님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으로 부터 비롯 되었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은 책의 두께만큼이나 많은 참고문헌 리스트를 자랑하고 있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 때문에 참고문헌과 관련된 책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는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결국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종교철학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칸트관련 책 몇 권과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종교철학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신의 존재와 관련된 논증부분이 재미가 있어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고, 얼마 전에 읽었던 민음인 출판사의 『종교철학』에서 2%정도 부족했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서 큰맘 먹고 이 책을 구입하였다.  

이 책은『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나 『종교철학』처럼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번역서 특유의 어체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읽다가 결국 62페이지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철학자들은 그 주장의 가치에 관하여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다. 이마누엘 칸트(1724-1804)에 따르면,“유명한 존재론적 주장에 의하여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는 단지 정말 잃어버린 노동과 노력일 뿐이다. 상인이 그의 현금 구좌에 얼마의 보잘것 없는 것들을 더 첨가함으로써 그의 위치를 더 낫게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우리의 이론적 영감을 단순한 아이디어들에 의하여 더 늘릴 수는 없다”  (『종교철학의 핵심』62쪽 ) 

위의 구절을 여러번 읽어 보아도 그 의미가 잘 이해가 안되었다. 그러다가 이 구절들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어딜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결국 아래와 같은 구절을 찾아내었다. 

“최고 존재자의 현존을 개념으로부터 증명하려는 그 유명한 (테카르트의) 존재론적 증명을 위한 모든 노고와 작업은 헛된 것이다. 인간이 순전한 이념들로부터 통찰을 더 늘리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상인이 그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자기의 현금 잔고에 동그라미를 몇 개 더 그려 넣어도 재산이 불어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187쪽 ) 

위의 글은 신의 존재론적 증명에 관한 논증 부분에서 많이 제시되는 《순수이성비판》에 나오는 칸트의 논리인데, 어떤 것이 눈과 마음에 더 들어오는 번역인지 뻔하지 않은가? 

앞의 것은 영어원서의 번역본 으로서 각주에 제시된 출처가 《순수이성비판》의 영역본이라서『종교철학의 핵심』의 원저자 또는 출처로 제시된 영역본 자체가 문제인지, 아니면 역자의 번역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기에 누구를 탓할 수는 없겠다.   

나는 여기서 책을 그만 읽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것 같아서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고, 리뷰를 쓰기 위해 한 번 더 열어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덮어 버렸다.

누군가가 잘못 했음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며 독일어 원전만이 번역의 기준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글이 한글로서 읽혀질 때 외계어로 읽혀지는 번역투의 문제가 아직도 공부하는 많은 학도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안겨주는게 안쓰러울 뿐이다. 

내가 별것도 아닌 것에 너무 까탈스러운건지 아니면 뭘 모르고 지껄이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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