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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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6 /10

권정생. 이름이 낮익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뽑아들었는데, 세상에, 그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일 줄이야! 소설가가 쓴 산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권정생은 정말로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 그의 글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런 문체로 민족의 슬픈 역사를 기록하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일러준다. 세속화된 교회를 비판하고 환경파괴를 걱정하며 전쟁에 반대한다. 온갖 문제가 만연한 세태를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분석하다니, 모순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의 글에서는 그게 실현된다. 내 입장에서 보면 결론이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권정생은 당위와 강한 신념을 줄곧 드러낸다. 너무나도 자연적이고 순진한 이유에서 도출된 그 주장, 그리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굳센 신념. 이 두 가지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자아내는 듯하다. 환경운동계의 거두라는걸 이참에 알았는데, 그럴 법 하다고 바로 납득해버렸다.

같은 산문집인데다가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최근에 읽은 <개인주의자 선언>과 비교가 된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논리적인 구조를 갖췄고 내 가치지향과 맞는 대안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고 있다. 읽으면서 공감가는 대목이 참 많았다. 글의 중간중간에 인용되는 책들도 내가 이미 읽은 책이 많았다. 그런데도 다 읽고 났는데 글에 애착이 하나도 안 갔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고민했는데 <우리들의 하느님>을 펴자마자 깨달았다. 나는 경험을 존중한다. 뛰어난 천재가 머릿속으로 고안해낸 사상서보다는 역사적 순간에 있었던 이의 회고록을 더 보고 싶다. 비록 인간은 사고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나는 허무맹랑한 꿈 속의 이야기보다는 동물적인 경험과 감각이 겪은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따지고 보면 소설가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실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해서 전달할 수 있는 작가는 소설가밖에 없다. 나다니기 싫어해서 다양한 경험이 부족한 내 특성도 한몫 하리라.
소설가 김훈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읽은 책을 들이대는 것은 게으르고 졸렬한 수작일 테지만 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책을 들먹인다." 무릇 작가란 본래 자기 경험에 기반해서 글을 쓰는 사람인 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들의 하느님>에는 작가의 경험이 빼곡히 깔려 있다. 단순히 정신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몸이 겪고 인생에 새겨진 깨달음과 교훈이 그대로 묻어난다. 비록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농업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은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야 한다, 꼭 필요한만큼만 살생·개발을 해야지 축적해서는 안 된다, 승용차를 타지 말자, 군대를 없애버리자 등―에 쉽사리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웃지도 않는다. 수십 년 경험과 성찰이 뒷받침하는 그 순수한 주장을 존중하게 된다.

경험이 묻어나고 진정성이 담긴 근래 보기 드문 글이다. 딱 내 취향이다. 다만, 그 내용·주장이 (내 기준에서 볼 때) 지나치게 순진해서 다른 이들에게 추천할 거리가 못 된다. 문체가 아니라 담긴 내용의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얘기다. 애석한 일이지만 6점(언젠가는 도움이 될 교양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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