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안녕하십니까, 잠시 포스팅이 뜸했던 특급변소입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또 실실 쪼개면서 빅 이벤트를 하나 준비 중이거덩요. 저어기 깔대기의甲이라는 그럴 듯한 카테고리도 만들었겠다, 이대로 있기는 곤란하잖습니까? 하여 그 이벤트의 밑준비를 하기 위하여 본래는 이번주에 포스팅을 쉴 예정이었습니다만... 사정이 바뀌어서 이렇게 포스팅을 합니다요. 아우 포스팅하고 싶어 쓰러질 뻔했네. 이왕 이리 된 거 내일은 배트맨 리뷰도 올릴 거임. 내가 인셉션이랑 단테의 신곡이랑 배트맨이랑 기타등등 다 섞어서 이런 제길 대체 뭐라는 거니 이해할 수 없는 리뷰 하나 올릴 테니 기대 안 해도 됨. (?)

 

그리하여 이번에 쓸 서평은 자그마치 인문서적입니다...!

 

제가 본래 추리소설을 쓰다 보니 추리소설 서평만 올립니다. 인문서적은 별로 귀찮아서 안 올립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기억하시다시피, 저는 본래 인문학적 지식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엣헴)

 

여기, 증거자료도 있어.

 

 

디지털 작가상 수상 기사.  http://cameraian.blog.me/130127418126

 

 

어때, 인정하지?

난 저런 여자야!!!!!!!!!!!!!!!!!!!!!!!!!!!

 

 

흠흠. 아무튼 전 저런 관계로다가 자주 인문서적을 읽습니다. 사실 소설이랑 비슷한 규모로 인문서적을 쌓아올리는 편인데요, 특히 그레이엄 헨콕의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크크)이라든가 연금술 관련 책자들, 스칸디나비아 신화-에다- 관련 책자들 등을 좋아합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 신화-이렇게 말하면 뭔 소리인가 싶지? 어벤져스의 록키 말야 록키. 걔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신화에 나와.-라든가 용관련 신화 설화 등을 잘 모읍니다. 용 특히 좋아하고, 그밖에 여러가지 기묘하게 분석한 책들을 모으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재료들 남 가르쳐주기 아깝고 하여 잘 안 알려주는데요, 이번엔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책을 한 권 발견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번에 발견한 책, 정확히 말하자면 눈에 띈 책은 '가장 인간적인 인간'입니다. 원제는 THE MOST HUMAN HUMAN,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이웃님의 서평을 통해 접했습니다.

 

 

단예님의 서평 : http://keith1867.blog.me/110141899895

 

 

응?

따라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상당히 추상적인 서평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감이 안 옵니다. 때문에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언제나처럼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 들러서 이 책을 들고 튀었습니다. 흐흐. 저는 북셀프를 이용하기 때문에 모든 결제는 핸드폰으로 처리, 그냥 들고 튈 수 있거든요. 하여 일단 목차를 살펴보니, 목차부터 흥미롭더군요. 차례대로 그냥 읊겠습니다. 가장인간적인인간 신분확인 표류하는영혼 장소적합성vs.순수기법 '책'에서빠져나오기 반전문가체계 끼어들기 세상에서가장형편없는증인 그대로있지않기 커다란 놀라움 가장인간적인인간 보시다시피 목차가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가장인간적인인간, 제목으로 시작하여 제목으로 끝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책은 무슨 책일까? 왜 이런 제목을 붙였고,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여러분은 트위터를 하시나요? 저는 트위터를 합니다. 트위터를 안 하시면, 카카오톡은 하시나요? 안 하신다고요? 흠, 그렇다면 일단 참고 들으세요. 트위터에는 '봇'이란 게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봇'이 있는데, 이 '봇'들은 일정한 시간마다 정해진 말을 한다든가, 혹은 어떤 단어에 반응하여 말을 하곤 합니다.

 

개중엔 이런 '봇'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지능형 봇 http://twtkr.olleh.com/CoreaBot

 

 

재미있는 지능형 봇은 정해진 멘션을 타임라인과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제가 어떤 '단어'를 말하면 대답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대답은 상당히 생뚱맞아서 ... ... 뭐냐? 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 봇은 말 그대로 '인공지능'을 시도하는 봇입니다.

 

카카오톡에는 심심이가 있습니다. 심심이는 앞에서 말한 재미있는 지능형 봇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단어를 말하면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변 : 안녕

심 : 넹^^

변 : 뭐해?

심 : 헤헤..그냥그냥..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반응이 이상합니다.

 

 

변 : 올해 올림픽 심판 판정 어떻게 생각해?

심 :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럴 듯해 보이는 대답도 있습니다.

 

 

변 : 통합진보당 사태는 어떻게 생각해?

심 : 어떤 대답을 원해여?

 

 

이 책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바로 저런 심심이나 재미있는 지능형 봇과 같은 자동으로 대답해주는 인공지능형 대화상대와 인간의 싸움을 그립니다.

  

매년 인공지능 학계에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큰 기대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연례행사가 열린다. 바로 튜링테스트라고 불리는 경기이다. 이 검사의 명칭은 컴퓨터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에 튜링은 이 분야의 가장 오래된 물음 중 하나에 답을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바로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생각한다고, 또는 컴퓨터에게 지능과 마음이 있다고 말해도 될 만큼, 고성능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만약 언젠가 그런 기계가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었다. - p.20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긴장합니다. "과연 내가 이 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크리스찬은 인간입니다. 인간다운 인간, 그냥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답다는 게 뭘까요?

 

크리스찬은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실존의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며 여러 책들을 찾아 읽는가 하면, 시사상식도 놓치지 않습니다. 대회에서 당일 뉴스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자신의 '적'인 인공지능 대화형 로봇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그들의 약점을 찾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 책은 그 모든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철학은 물론이요, 영화와 음악,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 그 모든 것이 있어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자연스레 저는 이 책을 보며 또 다른 실존에 대한 놀라운 책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에서도 몇 번이고 언급되었던 책, 바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입니다. 조금은 낯선 제목일 수도 있을라나요? 이 책은 말 그대로의 책입니다. 작가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들과 여행을 가며, 자신을 찾아가는-혹은 잃어가는- 과정을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모터사이클을 관리하는 것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런 대회가 열리는 것일까요?

라마찬드란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힌트를 얻어 봅시다.

 

라마찬드란, 조금 선가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라마찬드란 박사는 아바타의 바탕에 깔린 '환상사지' 이론에 대해 몇 글자 적기도 하였던 그런 뇌신경학자입니다. 이 책에서는 라마찬드란 박사의 이야기를 실레로 들며 이 대회의 의의를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내 환자 중, 예순의 나이에 갑자기 뇌 오른쪽 측두엽에서 생겨난 간질 발작을 경험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는 뉴욕 출신의 신경학자인데 발작 때문에 당연히 걱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놀랍고 기쁘게도 발작 이후로 난생 처음 시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생각도 시로 하기 시작했으며 수많은 시를 써냈다. 그가 말하길 때마침 약간 지쳐 있던 차에 이런 시적 관심을 통해 새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다. p.125

 

 

크리스찬은 현재의 인간은 과연 인간적인가, 자문합니다. 컴퓨터가 일상이 된 인간, 딱히 생각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인간, 하루하루에 함몰되어가는 인간에게는 무언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공지능이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인간적인 인공지능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인간,

THE MOST HUMAN HUMAN이 되기 위하여.

 

크리스찬은 말합니다. 너무나 자신과 비슷한, 인간이라고 속일 수조차 있을 듯한 인공지능에게 자극받아 인간 고유의 인간성을 찾아내자고, 자극을 받아 발전하고, 더욱 더 인간이 되자고.

 

이 책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책을 덮은 후,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인간입니까?

저는 단 세 글자로 대답했습니다.

 

1 아닙니다.

2 전,

3 변소입니다.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43827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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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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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뒷표지

저 남자가 누운 것이 뭐 같아요?

 

 

 

 

1997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았습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들었을까요? 아니면 과외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아아, 그 때부터 변소님은 문학소녀셨군요?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었습니다.

 

pc통신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천리안에서 잡퀴방이라는 소모임에 가입해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어른들과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때에 만난 어른들은 하나같이 술 좀 마셨다 하면 "이상문학상"이니 "하루키"니 "류"니 하는 말을 입에 거들먹거렸습니다. 특히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를 다닌다는 언니오빠들은 더해서는 "빵집습격사건"이니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의 번역이 어떻게 다르다"니 하는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였고, 저는 그저 듣기만 하였습니다.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저 사람들은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탁상공론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눈앞에 펼쳐진 향긋한 소주냄새에 취해 방긋방긋 웃느라 바빴달까요. 저는 "응, 그래." "그럼요. 오빠는 진리죠."같은 적당한 말대꾸를 하면서 생글거리며 속으로는 "하루키고 류고 자시고 술이나 마셔라 좀."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너네들 때문이라도 반드시 하루키와 류는 안 읽어주겠다."는 묘한 결심을 했습니다.

 

 

정말 하루키도 류도 읽지 않고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헌데 들어간 과가, 아아! 어울린 인간들이 죄다 그쪽이라 그런가 문예창작학과였고, 결국 이렇게 저렇게 접하다 보니 또다시 수업시간마다 "하루키"니 "류"니 "일본소설은 가볍다"니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우 귀찮고 짜증이 나더군요. 하여, 마침내 대학 일년생 때 하루키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접한 하루키는... ... 참을 수 없이 가볍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대로 읽기 시작해서 도서관에 꽂혀 있던 하루키의 모든 저작을 읽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했습니다-그러고 보니 언더그라운드는 논픽션이네요. 당연히 바로 옆에 나란히 꽂힌 무라카미 류도 몽땅 싸그리 다 읽었고,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 중에서는 특히 '코인로커베이비스'를 좋아했습니다- 하루키보다는 류를 더 좋아했습니다.

 

 

이후로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야금야금 먹어치웠습니다. 야마다 에이미의 120%cooool은 특히 좋아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시게마츠 기요시의 따뜻한 소설들도, 유미리의 소설들도 새록새록합니다. 그 후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인연은 계속되어서 몇 년에 한 번씩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야금야금 읽기는 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이 책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입니다.

 

표제작을 전 참 좋아합니다. 또 이 작품집의 마지막 작품에는 '양을 둘러싼 모험'과 '1973년의 핀볼'에서 언급되는 '양사나이'가 등장합니다. 사실 저는 그 '양사나이'를 읽으려고 이 작품집을 읽었었습죠. (맞나. 아니면 부끄러운데.) 그런데 제가 읽었을 당시에도 이 제목의 책이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습니다요. 아무튼 오랜만에 저 표제작이 읽고 싶어 서점에 갔는데, 마침 서점에 딱 있더군요. 바로 눈에 띄는 자리에 딱, 떡, 딱. 마치 제 손에 닿기 위해 그곳에서 오래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때문에 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샀고, 표제작을 읽었고, 마지막의 양사나이를 다시 만나며 "아아, 그랬었지. 그랬던 거였어."라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렇게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이름도 제대로 외우기 힘든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 중 제가 최초로 구입한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운 책이 또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바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살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기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저의 눈에 어떤 '것'이 보였고, 그 때문에 저는 기묘한 시공간의 틈으로 빨려들듯 갑자기 불안해져서는 "이 책을 사야만 해!"라고 소리를 쳤던 것입니다.

 

 

 

 

포스트잇과 책의 사이즈 비교.

 

 

 

그리하여 저의 이 책을 쫓는 모험은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스트잇이 문제였습니다. 저는 출근을 하다 버릇처럼 트위터에 접속했다가 이 책을 사면 포스트잇을 준다는 비채의 멘션을 발견합니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포스트잇이 있다니! 바로 갖고 싶어졌습니다. 일전에도 비채에서 나온 스노우맨을 책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단지 포스트잇을 받기 위해 구입한 선례가 있습니다. 그대로 코엑스 반디엔 루니스에 들렀고, 서점은 '4월의~' 단편집 마지막에 실린 '도서관 기담'의 첫 장면처럼 아주 조용했습니다. 점알, 책이 소리를 전부 흡수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책이 어디에 있나 확인하였고, 책을 한 번 들여다 본 후에 일단은 내려놓았습니다. 다음 날 18일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선물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났고, 친구들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물론 목표는 포스트잇이었기에 포스트잇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일까요? 포스트잇은 주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리가. 저는 분명 비채 담당자님의 멘션을 확인하고 왔는데요. 어쩌면 아직 서점에는 전달이 안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일단 포기하였습니다. 대신 같은 비채의 책 '스피벳'을 구입-아니 선물받았습니다.

  

일전 블로그 이웃 훙치뿡캭 양에게 추천받았던 책입니다. 약간은 불만스러웠지만 일단 책 자체가 너무 예뻤기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저는 반디앤루니스에 들러서 포스트잇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이 책을 사면 포스트잇을 사느냐고 꿋꿋하게 물었지만 이상하게도 포스트잇은 없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마침내 저는 비채 담당자님께 "받으실 수 있어요!!"라는 확인을 받았고, 신이 나서 바로 달려가 포스트잇-아니 책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포스트잇은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어째서?

왜?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분명 트위터에서는 포스트잇을 준다고 하였는데 왜 이곳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가? 순간 저는 묘한 기분에 빠졌습니다.

 

어쩌면 저곳, 트위터 속에서 내가 비채 담당자님과 이야기한 세상과

지금 제가 발을 딛고 선 이 코엑스 반디앤루니스란 세상은

전혀 다른 공간인 것은 아닐까.

전혀 다른 시간인 것은 아닐까.

세상은 어쩌면 아주 이질적인 공간으로 갈려 있는데,

나는 포스트잇을 뒤쫓다 보니 어쩌면 그 틈새로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책을 사도 포스트잇을 받지 못하는 세상으로 와버린 것은 아닐까.

 

저는 혼란에 빠져 비채 담당자님께 불안한 마음에 멘션을 날렸고, 마침 담당자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앞에 서 있는 카운터의 직원들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침묵과도 같은 5분이 지났고, 어디선가 한 명의 여직원이 달려왔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땀을 뻘뻘 흘리며 여직원은 나타나 저에게 포스트잇을 건넸습니다.

 

저는 포스트잇을 받으며 안심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서관 기담'을 다시 읽은 탓이야.

 

그런데 문뜩 서점을 한 걸음 나섰을 때 또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 여직원이 포스트잇이 존재하는 또다른 세상에 다녀온 것은 아닐까? 도서관 기담에서 나오는 그 지하와도 같은 세계로 저 여직원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달려갔다 온 것은 아닐까? 그 여직원은 나때문에 포스트잇을 둘러싼 모험을 치른 것은 아닐른지.

 

그 순간, 어디선가 '음메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제가 손에 든 책에서 들렸다고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분홍색 속표지에 포스트잇을 저렇게 붙여봤습니다.

작가프로필과 함께 어슷하게 보니, 멋집니다.

이러니 무라카미 하루키 님은 여자독자(특히 예쁜)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아, '저처럼'이란 수식어를 까먹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님은 '저처럼' 예쁜 여자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하루키 풍으로 좀 읊조려 봤습니다. 뭐 대강 저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렇게 책을 구했고 -정확히 말하자면 포스트잇을 구했고- 책은 좀 느긋하게 읽을 예정이었습니다. 현재 시귀 리뷰이벤트가 북홀릭서 진행중이라서 것부터 도전하고 싶어서 말이에요.

 

 

북홀릭 시귀리뷰대회  http://cafe.naver.com/hibookclub/468

 

 

하지만 이웃님들이 갑자기 이 에세이집에 대한 포스팅을 시작하더군요. 정확히 누가 제일 먼저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나, 가장 인상깊었던 포스팅은 오늘 새벽에 본 특급변소인증스토커 japanbooks님의 서평입니다.

 

 

http://blog.naver.com/japanbooks/20162810522

 

 

japanbooks님의 서평 중 특히, 목차를 파란 글씨로 나열한 바로 아래에 있는 기다란 문장은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그 한 문단만으로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사람인가,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서평을 보고 무척 기분이 좋았고, 때문에 사실 이 책은 한참 후에 읽을 생각이었으나 오늘 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아.

너무 좋더군요.

 

제가 이렇게 '하루키와 포스트잇을 둘러싼 모험'을 적고 싶어질 만큼, 하루키의 가벼움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즐겁고 유쾌한 아저씨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는 마라톤 귀신 무라카미 하루키 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분들 계십니까?

 

 

읽으세요.

 

 

참,

좋네요.

 

 

네이버 블로그 원문은 이쪽.

http://cameraian.blog.me/130143326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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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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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들어가기에 앞서,  생일선물이 또 도착을 했습니다. 생일이벤트는 완전히 종료했기 때문에 본래는 받았다는 말 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런, 지극정성이라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블로그 이웃인 넉살 참 좋고 사근사근한 부산아가씨 꿈꾸는 하마 양에게 누쿠이 도쿠로의 신간 '후회와 진실의 빛' 과 린지 페이의 '고담의 신', 스프링 노트와 펜, 그리고 차 몇 종류와 함께 긴 편지를. 마지막 문장이 빵터져서 저렇게 올려봤습니다. 스스로 미녀라고 하다니, 게다가 빨간 동그라미라니... 누가 내 이웃 아니랄까봐. 생일이벤트가 무엇이었는가 궁금한 분들은 아래의 링크 두 개를 참조해주시고.

 

 

여러분이 그토록 기다리던 변소님 오신 날 이벤트, 시작합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42233350

변소님 오신 날 이벤트 최종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http://cameraian.blog.me/130142955276

 

 

자, 그럼 서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소년아, 소년아, 소년아.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저는 묘한 고집이 있습니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괜히 읽기 싫은 이해할 수 없는 청개구리 심보랄까요, 때문에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펜스도 결국 지금까지 보지 않았고, 그 유명한 해리포터 마지막 편은 일부러 안 읽었으며, 최근에는 "나는 제노사이드를 삼 년 후에 읽겠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잊혀진 소설들이 꽤 있는데요, 그 중 한 권이 바로 이번에 마침내 읽고야 만 야쿠마루 가쿠의 장편소설 '천사의 나이프'입니다. 천사의 나이프는 일본에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출간되었구요, 출간 당시 나름 조용조용 이야기가 퍼졌더랬습니다. 저도 여러 명에게 추천을 받았고, 집에 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못 읽게 되더라고요. 읽으려고 손을 들면 다른 책을 자꾸 읽게 되고, 그 다음엔 남 줘 버리고, 어쩔 수 없지,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다 읽자! 하고 빌려 왔는데 다른 빌린 책들 읽다가 그만 시작도 못하고 반납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삼 년만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는 흥미로웠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한 남자가 아내를 잃습니다. 아내는 소년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소년법 때문에 소년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시간은 잘도 흐릅니다. 삼 년 반, 남자는 많은 것을 잊었습니다. 커피를 뽑는 매일매일에서 아내가 남긴 딸아이와 함께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소년들이 한 명, 두 명 살해당합니다. 것도 남자의 주변에서 소년들이 살해당합니다. 남자는 이 상황에서 범인으로 의심을 받는가 하면, 당시 사건에서 미심쩍었던 부분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사건의 이면에 숨겨졌던 진실에 점근해 갑니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구조를 따릅니다. 실제로 전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떠올렸는데요, 그 중엔 여러분이 익히 잘 아는 제노사이드의 작가 다카노 가즈이키의 '13계단'도 있었습니다. 13계단의 서평은 워낙 많이 올라오니 딱히 제가 언급할 필요 없이 링크를 하나 걸겠습니다. 2010년에 블로거 김크롱씨가 적은 짤막한 리뷰입니다.

 

 

 

범인은 바로 너야! (1) : http://ionsupply.blog.me/130080707169

범인은 바로 너야! (2) : http://ionsupply.blog.me/130081952212

 

 

김크롱씨의 리뷰 범인은 바로 너야! (2)에는 천사의 나이프의 짤막 리뷰도 실려 있으니 함께 보셔도 괜찮습니다.

 

김크롱 씨가 리뷰에서 지적했다시피, 또 얼마전 천사의 나이프를 읽고 있다는 말에 몽쁘띠님께서 덧글을 달아주셨다시피, 이 작품은 좀 작위적입니다. 지나치게 우연을 남발한다거나, 이야기를 어떻게든 앞뒤가 다 맞게 짤려고 작가가 지나치게 신경을 쓴 부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재미납니다. 그렇게 인위적이고, 너무 지나치게 앞뒤를 딱딱 맞추려고 하는데도 이 책은 참 재미납니다. 또, 우리에게 피해자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때문에 에도가와 란포상을 탔구나, 생각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이 훌륭합니다.

  

 

 

이윽고 하야마는 누쿠이에게 한을 쥐어짜듯이 자신을 털어 놓게 되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쇼코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소중한 존재를 참혹한 형태로 잃어버리고 만 슬픔을.

그리고 피해자 측에 있어서 소년법이라는 법률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를 누쿠이에게 물었다. 어째서 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범한 죄가 가벼워지는 것인가. 피해자 측에 있어서는 가해자가 성인이든 미성년이든 잃어버린 것에는 변함이 없다. 어째서 미성년에게 살해당한 순간부터 피해자의 생명이 가진 가치는 가벼워지고 마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은 소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조차 없는 것일까. 소년들이 어째서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소년들이 지금 어떤 기분을 안고 있는지를 어째서 알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심판에 참가해 소년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p.68~69

 

 

작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중간중간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현재의 사법제도는 어떤 것인가, 한 번쯤 곱씹게 합니다. 때문에 저는 이번 책을 읽으며 우라나라의 소년법은 어떻게 되어 있나 궁금해졌습니다. 네이버에서 '소년법'으로 검색을 하니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에 대해 그 환경의 조정과 성행()의 교정에 관한 보호처분을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기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1942년 2월의 조선소년령()에 대치된 것으로서 1958년 7월 법률 제489호로 제정·공포된 후 1988년 전문 개정된 후 수차례 개정되었다.

소년범()은 정신발육이 미숙하므로 성인범()보다 교화 등이 용이하며, 또한 원대한 장래가 있고 범죄의 습성도 깊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소년사건을 소년보호사건과 소년형사사건으로 나누어 특별한 취급을 하고 있다. 19세 미만의 자를 소년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소년보호사건의 대상으로 하였다(2·4조). 총칙, 보호사건, 형사사건, 비행예방, 벌칙 등 4장으로 나뉜 전문 71조와 부칙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소년법 역시 일본과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대부분의 법률이 일제강점기 시대 때 제정된 이후, 계속해서 고쳐나가는 형식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천사의 나이프는 이런 소년법 이면의 문제를 심층깊게 논하고자 하였고, 제 생각엔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고 봅니다. 상을 탔고, 유명해져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제가 지금 이 순간 소년법을 검색했으니까요. 소년에게 묻고 싶어졌으니까요. 도대체 소년아, 너의 인생에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느냐고 소년아, 너는 무엇이 그리 서럽고 슬펐고, 또 아팠냐고 소년아,
 
소년아,
소년아,
소년아,
 
그렇게 되뇌이게 했으니까요.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요쪽 :

http://cameraian.blog.me/13014300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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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여러분이 이제는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제 본업은 바리스타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이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친절한 서비스? 물론 중요하고요. 손님을 끌어당기는 어마어마한 카리스마... 는 없어도 되고요.

하지만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 스피드입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제가 하는 이 바리스타 일에도 사람이 몰리는 시각이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오피스상권에서 일하는데요, 정오무렵부터 오후 두 시까지는 눈앞의 머신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요즘엔 예전보다 뜸해져서 일하다 말고 핸드폰도 꼼지락거리긴 하지만) 손님들의 점심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짧은 점심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버리기 위하여 빠른 시각 안에 음료를 내보내야 합니다. 때문에 바리스타는 눈앞의 상황을 바라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소개할 소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는 스피드의 미학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피-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카가와 시 시리즈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폴라북스에서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가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제목처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소설입니다. (후후) 생각만으로 웃음이 나오는 소설이랄까요? 아직 이카가와 시 시리즈를 접하지 않은 분이 있으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한 후에 읽어가심 좋다고 추천해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는 말 그대로 이카가와 시라는 수상한 이름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탐정 시리즈입니다.

 

그렇다면 이카가와 시는 어떤 곳일까요? 제가 설명하기보다 작가의 설명이 훨씬 보기 좋겠지요? 시리즈의 첫 편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의 프롤로그를 그대로 빌려오겠습니다.

 

프롤로그

 

지도상으로 그 도시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다. 굳이 말하자면 '지바 현 동쪽, 가나가와 현 서쪽' 정도에 있다. 뭐, 이 정도만 알면 무난하겠다.

예전에는 어항으로 번성했고, 특히 오징어잡이 항구로 전국에서 손꼽힌 적도 있었다.

이 고장 노인들이 즐겨 하는 옛날이야기에 따르면, 1년에 몇 번씩 해면이 불쑥 올라온 듯 보일 정도로 많은 오징어 떼가 항구 바로 옆까지 몰려와 열 개의 다리를 흔들며 "여서 와, 어서 와."하고 어부들을 불러냈다고 한다.

그런 오징어 떼를 말 그대로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어 경치 좋은 언덕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고 팔자 좋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건 오래전 이야기고, 그중에서도 특히 경기가 좋았던 때의 이야기다.

건물도, 사람도 이제는 예전의 광채를 모두 잃어버렸다. 잘나가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최근 20년 사이에는 오징어 떼가 항구로 밀려오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일확천금의 꿈이 과거로 사라져버렸으니, 이 도시에서 예전의 열기가 사그라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대도시에서 일하는 샐러리맨과 공업 지대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베드타운이 되어가고 있다. 이 도시만의 특징은 해마다 점점 히미해져 갈 뿐이다.

물론 사람들의 생활을 이제껏 버티게 해준 것이 항구와 오징어와 벼락부자의 꿈만은 아니었다.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한 줄기 일급 하천, 이 강의 역할도 대단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잡아들였던 오징어 대부분이 이 강을 통해 내륙의 각 도시로 운송됐다. 오래전부터 강은 이 도시의 생명줄이었으며, 짐을 싣고 오가는 배의 모습은 이 도시의 상징이기도 했다.

현재도 생활용수는 거의 이 강물에 의지하는 터라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 상당히 더러워져서 보기에 썩 좋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민의 자랑거리다.

예전에 오징어를 운반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던 이 강의 이름은 이카가와(오징어강)다. 그렇게 부르는 데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애착을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강 유역 일대를 일찍부터 이카가와 초(오징어강 동네)라고 부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30년 전, 인구가 늘어나며 마을이 시로 바뀌게 되었을 때 그 이름을 둘러싸고 도시가 양분될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승리를 거둬 그때까지 이카가와 초라고 부르던 지역은 무사히 시로 격상되었다.  

그런 사연으로, 현재 이 도시의 이름은 '이카가와 시'다.

요즘 들어 특별히 경기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이름에서 연상될 정도로 풍기가 문란하지는 않다(이카가와시는 일본어로 음탕하다, 수상하다는 뜻이기도 함).

 

  

이런 곳이 바로, 이카가와시입니다. 바닷가의 작은 도시, 예전엔 흥했지만 지금은 조금 썰렁해진 우리나라 여느 지방도시를 떠올리면 될 듯하겠습니다. 이카가와 시에는 당연히 대학교도 있고, 경찰서도 있고, 지방 부자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탐정도 있고요.

우카이와 류헤이! 라는 동네 최고의 명탐정이 이카가와 시에 있습니다요.  

이 콤비는 시리즈의 첫 권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콤비로 뭉친 이후 여러 사건을 해결합니다.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우카이는 이미 탐정이고, 류헤이는 대학생이자 '살인용의자'였습니다. 류헤이는 자신의 용의를 벗기 위하여 탐정이자 누나의 헤어진 남편(?)인 탐정 우카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방법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갑니다. '밀실을 향해 쏴라'는 이 콤비의 두 번째 사건으로, 류헤이가 본격적으로 탐정의 제자로 등장합니다. 우카이의 조수로써 그럴 듯...하지 않은 활동들을 선보이며 사건을 해결해 갑니다.

그리하여 이번엔 단편집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가 나왔습니다. 이번 책은 그간 나온 책들과 달리 단편집인데요, '후지에다 저택의 완전한 밀실'은 한 남자가 밀실살인을 계획하고, 그 밀실살인게임을 탐정 콤비가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후후) 마지막 해결 과정서 정말 "우왓!" 하고 감탄해버렸답니다. ㅎㅎ 중간중간 지하철 타고 가는 것도 잊고 "크하하!"하고 웃기도 하고요.  '시속 40킬로미터의 밀실'은 달리는 차 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데요, 해결과정은 물론이거니와 마지막 결론도 흥미진진합니다. 아아, 히가시가와 도쿠야다운 "따뜻함"이 있달까요? '일곱 개의 맥주 상자'는 일상미스터리로 시작합니다. 의뢰인의 의뢰로 한 동네를 찾았다가 맥주상자의 행방을 찾는 과정을 그리는데요, 그 과정이 흥미롭고 역시, 웃깁니다. '참새 숲의 이상한 밤'은 오랜만에 류헤이의 두근거리는 러브스토리(후후)가 있을까요? '밀실을 향해 쏴라'를 보며 "이 눈치 없는 자슥!!"이라고 소리쳤던 분들이라면 "우리 류헤이가 어른이 됐어 ㅠㅠ"하며 기뻐하실 에피소드입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보석 도둑과 엄마의 슬픔'은 독특합니다. (후후) 독특합니다. 난 그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요.  

아아, 그리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다 읽었더군요. 그리하여 저는 본편이 또 언제 나오나, 출판사에서 스피드하게 어서 책을 내주셨음 좋겠다 하는 생각을 궁시렁궁시렁 했답니다.  

어떻게 여러분도, 보는 내내 "크핫!"하고 웃게 되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스피-드한 매력에 빠져보시렵니까?

꿀꿀한 장마철, 웃음으로 넘겨보시렵니까?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42565146

 

별점은 장편 시리즈가 안 나온 관계로 아쉬움에,

또 이걸 5점 주면 다른 시리즈는 뭐가 되냐? 5.5 막 가?

이런 생각으로 4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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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리 명탐정이 되고 싶어 - 히가시가와 도쿠야 : 상식으로 놀라움을 만든다
    from 신민식 독서노트 2012-07-23 23:06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이카가와 시 시리즈 최신작이다. 일본 원서로는 2011년 9월에 나왔고 국내 번역본이 2012년 7월에 나온 것이다. 국내에 순서대로 꼬박꼬박 번역되어 나오지 않아서 정리부터 해야겠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는 총 6권이 나왔고 아래와 같다. (출처 : 일본 위키) 密室の鍵貸します(2002年4月) 密室に向かって撃て!(2002年10月) 完全犯罪に猫は何匹必要か?(2003年8月) 交換殺人には向かない夜(2005年9月) ここに死体を捨てないでく..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진단테스트를 하다 쿨데레 쿨쿨 데레데레 뭐 이딴 평을 받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따라가서 적당히 스크롤 내리다 보면 나옵니다요.

 

 

특급변소님의 '첫' :

http://cameraian.blog.me/130142046025

 

 

헌데 사실 제가 나이가 좀 많다 보니 정확히 데레가 뭔지 모르겠었는데, 아는 동생이 카톡으로 알려주더군요. 쿨데레는 이런 뜻이다, 라고하며 저는 '츤데레'에 가깝다고요. 그렇다면 츤데레는 무엇이냐, 더 궁금해졌습니다. 츤데레는 애니메이션 용어더군요. 츤츤거리다와 데레데레하다의 합성어인데, 츤 상태는 상대방에게 냉담하게 보이는 것이고, 데레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이는 상태라고 합니다. 즉, 냉담한 척하면서도 잘 해주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라는데, 자세한 건 위키백과사전으로 돌립니다.  

 

츤데레 :

http://ko.wikipedia.org/wiki/%EC%B8%A4%EB%8D%B0%EB%A0%88

 

 

이 링크를 따라가시면 "아아, 그런 거야?"라고 바로 이해가 되실 거예요. 관련항목에 얀데레나 쿨데레 등이 있으니까 한 번 확인해 보시고. ㅎㅎ

 

자 그리하여 전 이 이야기들을 어디서 써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였는데 아아,

우타노 쇼고님의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가 바로 츤데레였습니다.

  

 

 

 

츤데레데레츤데레츤?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 우타노쇼고

 

 

여러분이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전 예전 밀실살인게임 시리즈의 서평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우타노 쇼고 님, 당신, 발전하고 있습니까? :

http://cameraian.blog.me/130105107647

 

 

서평을 따라가 보면 아시겠지만, 꽤나 쓴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때문에 이번 마니악스도 나온다기에 기대를 하면서도 내심 또 기대를 안 했습니다. 뭘 얼마나 더 당신이 보여줄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달까요. 그리하여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는 이번에도 제 손에 왔습니다. 처음엔 상당히 피곤한 상태에서 읽어서 읽다가 졸고 졸다 읽고를 반복했습니다. 묘하게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이전 두 권은 아주 집중도 잘 되고 술술 잘 읽혔었는데 이유가 뭘까? 라고 잠시 생각하다 보니 "아아, 이게 반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생각하길 그만뒀습니다. 흐흐. 생각 그만두기 잘 했더군요. 그게 반전 맞았더라고요. (미안하다, 또 맞췄다.) 하지만 그런 의아함이나 중간중간 내용을 보며 불만을 토로하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흥미로웠던 점들을 일일이 짚으면 스포일러가 되는 책이니, 읽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는 부분들만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 봅시다.

 

 

"일인칭 슈팅게임을 하고 있다고 치자. 눈앞에 강철 몸체에 개조된 중간보스가 나타났어. 네가 소지한 무기는 글록19와 M67세열수류탄. 넌 글록을 선택해서 초고속으로 연사했어. 죄다 명중했지. 하지만 상대의 에너지는 반도 닳지 않았고 반격을 받은 넌 목이 꺾여서 게임 오버. 정답은 M67이야. 이거 한 방이면 적을 죽일 수 있지. 실제로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M67을 던지면 자신도 폭발에 휘말려 치명상을 입을 거야. 하지만 게임이잖아. 수류탄을 10센티미터 거리에서 던져도 플레이어는 전혀 다치지 않는다고 제작자가 설정했다면 그 설정은 현실보다 우선시 돼. 게임 속의 진실은 현실이 아니야. 제작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설정을 꿰뚫어보아야 게임을 공략할 수 있다고, ****." 

"아니, 하지만 그건 픽션이잖아. 이쪽은 게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발생한 살인사건이 토대라고. 제작자가 준비한 정답이 뭐든 간에 실제로 어땠는지 알고 싶어." 

"현실에서 진상을 규명하는 건 경찰의 역할이지." 

 

p.191,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우타노 쇼고, 한스미디어, 2012

 

 

191페이지의 대화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인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중간에 ****는 등장인물의 명칭입니다. 혹시라도 이 명칭이 등장하여 스포일러가 될까 싶어 지웠습니다. 이 두 인물은 슈팅게임의 예시로 들며 밀실살인게임의 타당성을 이야기합니다. 여러 소설에서 독자들이 "인정할 수 없다!"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소리치곤 하는 트릭들에 대한 변명이라고도,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전반에 등장한 트릭에 대한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전편들을 읽으신 독자분들이라면 분명 "아, 이건 좀."이라고 생각한 트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트릭들을 보며 우리나라는 물 건너 와서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서는 꽤나 혼이 나지 않았을까 싶었었습니다. 흐흐.

 

이 외에도 작가는 이 소설 곳곳에 그런 변명들을 숨겨놓았더군요. 전편에서 이러이러해서 부족했던 점을 이번 시리즈에서는 이러이러하게 구현시키려 하였다, 라고 말하는 듯한 부분들이 이렇게 또 나옵니다.

 

 

하지만 그렇게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부족함이 느껴졌습니다. 곁에서 보기만 해서는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직접 해보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밀실살인게임 추종자들이 속속 등장했죠. 하지만 죄다 흉내를 내는 데 그쳤어요. ** 씨 그룹이 만든 포맷을 그대로 물려받아 문제를 바꿨을 뿐이죠. 하나도 안 멋있어요. 따라 하려면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낫다고요. 진짜 추종자는 모방자와는 다릅니다. 선구자가 남긴 것을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멋을 더해 한 단계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문화란 그렇게 계승되고 발전해가는 거겠죠.

 

p.237,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우타노 쇼고, 한스미디어, 2012

 

 

또다시 **로 표시했습니다. 저 **이 앞 시리즈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요.

 

이 부분에서 보면 작가는 전작과의 차이점을 분명히 짚고 가려고 합니다. 이 책은 전작과 이렇게 다르다, 결코 전작의 인기를 힘입어 적은 것이 아니라고요. (이런 점이 츤데레했습니다. 크핫.) 실제, 이 책에는 몇 개의 살인게임이 등장하지만 서술방식과 풀어내는 과정은 전작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뭐랄까, 촉감도, 냄새도 다르달까요. 전작까지 보면서 특히 걱정하였던 '윤리, 도덕의 문제'부분도 확연히 나아지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지 말하면 또 스포일러가 되는 군요, 이것 참.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되는 소설이니 서평은 여기서 짤막하게 줄이겠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전편을 보신 분들이야 당연히 보시겠고, 전편을 안 보신 분들이라면 1편부터 찬찬히 훑어보시는 것도 분명 즐거우실 것입니다.

 

별점은 3점을 줬습니다. 전 시리즈도 그렇게 별점을 많이 안 줬었어요. 제 취향의 책은 아니라서요. 하지만 본격추리를 좋아하는 분들, 우타노 쇼고를 좋아하는 분들은 별점을 더 주실 것 같습니다... 아닌가? 츤데레가 심해서 안 주려나?

 

사진과 함께 보는 리뷰는 이쪽 : http://cameraian.blog.me/13014208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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