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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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 그대로 폐인처럼 일드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트릭이나 장치 등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지금까지 나온 추리소설의 트릭들은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가장 쉽게 익힐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일단 모든 트릭이 총망라된 만화책 ‘명탐정 코난’을 섭렵하고, 더불어 애니메이션도 보고, 그 다음에 시작한 게 수많은 일본드라마들이었습니다. 과연 일본은 추리왕국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컨텐츠가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일본드라마를 차츰차츰 익혀갔고, 개중에는 원작이 있는 드라마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시다 이라는 I.W.G.P(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를 본 후에 원작을 찾아 읽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일본드라마들에서 저만 느낀 걸까요, 묘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원작보다 드라마가 더 반짝거린다는 것, 어쩐지 이 소설들은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반짝거려서 종잡을 수가 없다!

기시 유스케의 ‘자물쇠가 잠긴 방’

 


저는 기시 유스케의 ‘자물쇠가 잠긴 방’을 소설보다 먼저 일본드라마로 접했습니다. ‘열쇠가 잠긴 방’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2분기에 방영하였고 주연은 일본의 인기 그룹 아라시의 오노 사토시가 도둑인지 컨설턴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구별하고 싶지 않다) 인물 에노모토 케이를, 라이어 게임과 최근엔 케이조쿠 SPEC으로 주가를 더이상 올릴 데가 없는 토다 에리카가 아오토 준코 역을, 엘리트 변호사 세리자와 고의 역할엔 짐승의 길 등에서 열연한 사토 코이치가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 세 명의 호흡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절로 원작을 찾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다크존’ 출간을 기념하여 기시 유스케 님이 오시기 전에 ‘유리망치’와 ‘도깨비불의 집’을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당연히 사인회 가서 사인도 받았지.) ‘도깨비불의 집’이 가볍게 읽힌다면 ‘유리망치’는 탄복할 트릭으로 가득합니다. 때문에 이 책, ‘자물쇠가 잠긴 방’을 더더욱 기다렸는데요, 과연! 역시! 기시 유스케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의 기본 플롯은 간단합니다. 가공할 밀실의 트릭을 풀어라! 작가 기시 유스케는 이 작품 ‘자물쇠가 잠긴 방’에 네 개의 밀실을 내놓습니다. 에노모토 케이와 아오토 준코는 이 사건에 ‘어떤 사정’으로 끼어들고, 여러 정보를 얻어 밀실을 깹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 지식의 범위를 약간 벗어나는 부분 때문에 확인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노모토는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밀실은 분명히 깨졌습니다. (서 있는 남자, p.91)

 

첫 번째 에피소드 ‘서 있는 남자’는 드라마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영상으로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충격적이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는데, 책으로 보니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더군요. 드라마로 본 영상이 머릿속에 없었다면 이 트릭의 정체를 깨기는 상당히 힘들 듯하였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자물쇠가 잠긴 방’은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탐정 갈릴레오가 떠오르는 추리소설 속 과학의 이야기입니다. 추리소설의 트릭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달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이런 식의 시도는 신선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 기시 유스케의 놀라움은 이런 점이 아닐는지.


세 번째 에피소드 ‘비뚤어진 상자’는 ‘상자’에 여러 의미를 줍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결함주택이라는 ‘상자’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마음의 ‘상자’,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 참 힘드셨겠네요.”

아오토 준코는 동정심을 가득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헥터 가마치요 살해 사건 때는 극단 여배우 마츠모토 사야카가 용의자로 몰릴 것 같다며 의뢰를 해서 해결에 한몫했다. 범행 때 왜 헥터가 기르던 경비견이 짓지 않았는가라는 수수께끼의 어처구니없는 답을 알아낸 사람은 자칭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였다. 에노모토는 지금 자못 불편한 듯이 준코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오늘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셨으니 뒤늦게나마 감사를 드리겠다는 명목으로 신작 상영에 초대받았다. 극장에 사람이 꽉 들어차서 만원이 된 건 무료입장권을 마구 뿌린 덕분인 듯하지만. (밀실극장, p. 302)

 

 


네 번째 에피소드 ‘밀실극장’은 전작 ‘도깨비불의 집’과 이어집니다. ‘도깨비불의 집’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했던 ‘개는 알고 있다’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코지 미스터리의 성격을 띱니다. (기시 유스케와 코지는 상당히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꽤 어울립니다)

 

네 에피소드는 책으로 펼쳤을 때 흥미진진합니다만, 드라마로 보면 더더욱 즐겁습니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여러분께서는 책을 읽은 후 하루 날을 잡아서 대낮부터 팝콘이나 쥐포를 준비하고 옆에 맥주 한 병 놓고는 배 위에 노트북을 얹고 느긋한 마음으로 일본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을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나처럼 된다. 특급변(태완)소, 일드폐인... ...

  

추신.

이 책 뒤에 붙은 후기가 흥미진진합니다.

지난 8월 사인회 때의 기시 유스케님과 번역가 김은모의 짧은 질의가 들어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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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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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이란 게 그렇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쓰는 글과 비슷한 구조나 설정, 혹은 배경만 비슷해도 관심이 갑니다. 또 도움을 받고 싶어져서 일부러 유심히 보게 됩니다. 때문에 저는 어디 한 번 죽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홈즈가 보낸 편지’를 쓰는 내내 비슷한 종류의 책이나 영상물을 찾아보며 비슷하게 쓰지 말아야지! 이건 피해야지! 했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역시 제가 쓴 소설과 비슷한 형식을 띱디다. 제가 쓴 ‘홈즈가 보낸 편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에 대한 오마쥬라면, 이 소설은 일본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에 대한 오마쥬랄까요?  


에도가와 란포에게 바친다 !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헌책방에 갔을 때였나, 우연히 이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에, 우타노 쇼고 싫어!”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이 책에 에도가와 란포가 나온다는 말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제가 쓴 ‘홈즈가 보낸 편지’에도 에도가와 란포의 이야기가 조금 나오거든요. (김내성은 일본에서 유학 당시 에도가와 란포와 몇 번이고 서신교환을 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에 들렀는데 없더군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엔 신간을 지를 것들이 너무 많아서 넘기고 넘기다가... 결국 지난 번 트위터 일미당 당주 부부네 들렀다가 빌려왔더랬습니다. 하여 책을 펼쳤는데... 이야! 제가 본 우타노 쇼고의 책들 중 가장 좋더군요!


우타노 쇼고의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7~8권정도 읽었는데 딱히 확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벚꽃이~’는 반전은 좋지만 전개과정이 지루했고, ‘밀실~’은 시리즈 자체로 볼 때엔 흡족하나 내용이 어딘가 허전하고, ‘우리집에~’는 흡족한 단편들이 꽤 있지만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쉽고... ... 뭐 이런 식의 투덜거림이 늘 가득했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작품들은 모두 좋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개인의 취향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입이 짧거든요. 혀도 고양이혀라서 뜨거운 것도 잘 못 먹고(이건  관련이 없나?) 아무튼 그리하여 별 기대 없이 이 책 ‘시체를 사는 남자’를 집었습니다.


호소미 다스토키는 우연히 탐정소설 ‘백골귀’를 접합니다. 이 소설 '백골귀'는 히라이 타로, 다른 이름으로 ‘에도가와 란포’와 유명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한 기이한 살인사건을 접하고 풀이한다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금세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합니다. 일단 살인사건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입니다.

 

‘백발귀’ 속의 주인공 에도가와 란포가 자살을 하려고 든다, 그런데 누군가 그를 살려냈다, 살려낸 사람이 오히려 죽었다. 것도 여장을 하고? 월애병, 달을 사랑하는 병에 걸려 그런 짓을 했다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이 에도가와 란포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하여 호소미 다스토키는 '백발귀'의 작가를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만난 작가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작가가 들려준 집필사연은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웠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에서 이야기는 크게 방향을 틉니다.

 

이 이야기 속, 특히 '백발귀'에서 에도가와 란포는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부분은 과연! 에도가와 란포의 기이한 동성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떠오릅디다.

 

"~동성애도 어엿한 문화입니다. 일부 지저분한 남창들이야 별개지만, 진정한 동성애자들은 지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란 말입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지요. 문화는 이른바 여가활동에서 비롯된 거라서 의식주가 풍족한 시대에 내일의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꽃피고 있어요. 동성애도 그런 시대에 크게 번성한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도 그렇고 에도 시대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흥분돼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짐승 세계에 문화가 존재합니까? 짐승이 동성끼리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진정한 동성애는 고등동물인 인간에게만 허락된 굉장히 고차원적이고 순수한 플라토닉에서 비롯된 연애란 말입니다.”

“플라토닉은 이성 간의 연애에도 존재하지 않나.”

하기와라 씨가 머쓱한 듯이 끼어들었다.

“아, 그건 다릅니다. 이성 간의 연애는 육체적 욕망을 전제로 이루어지지요. 그건 고등동물인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서글픈 숙명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육체를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물론 플라토닉한 연애도 있겠지만 그건 차후에 생겨난 감정일 뿐입니다. 그에 반해 동성 간에는 욕정보다 플라토닉한 감정이 먼저 자리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연애는 동성 간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흠, 그럼 여성을 사랑하고 있는 나 같은 인간은 죄다 짐승이로군.”

“아니, 그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이지요... ...” pp.96~7

 

‘시체를 사는 남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로 진행합니다. 첫 장에서 백발귀를 다룬다면 다음 장면은 이 소설을 읽는 호소미 다스토키의 시점으로. 처음에는 이질적인 것만 같고, 따로 다룬다고 하여 큰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는 뒤로 갈 수록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작가의 호소가 튀어나올 듯 강하게 나아갑니다. 과연! 책을 모두 접고 나면 “그럴 수 밖에 없었군!”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소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소설 속 드러나는 추리소설가에 대한 작가의 시선입니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추리소설가가 착상을 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작가의 책이 팔리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인용문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탐정소설가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적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발생한 범죄사건에 흥미를 갖고 그 사건에서 소설의 소재를 끌어내려는 작가다. 다른 한쪽은 공상적이라고나 할까, 황당무계한 창작물에만 흥미를 갖고 현실의 범죄사건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작가다. p.11


“자네에게 소설이란 뭔가? 흥미로운 범죄 사실을 캐내고 거기에 살을 붙여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그런 안이한 자세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런 작품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겠나?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소설은 창작물이야. 현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건 자신의 창작력을 보완하는 정도에서 끝나야지, 자네처럼 실제 사건에 창작력을 보태는 건 아무래도 공감하기 어렵군. 자기 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결여돼 있으니까. 처음에 그 노트를 발견했을 때 그보다 더 멋진 작품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그보다 더 재미있는 범죄사건을 직접 창작해보겠다는 생각 말이야.” p. 87


"자네 이름을 아는 독자가 몇이나 되겠나. 생판 처음 들어보는 신인작가의 소설을 누가 사 보려고 하겠어. 정말 책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 사겠지. 책은 말이야, 저자 이름을 보고 사는 거야."

니시자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잘 알지. 데뷔작인 ‘몽환, 파란 환상’이 거의 다 반품 처리됐거든. 다음 작품인 ‘빨간 환상’도 마찬가지고. 그런데도 난 포기하지 않았어. 출판사도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고. 그래서 ‘하얀 환상’과 ‘검은 환상’을 잇따라 출간했는데, 그게 운 좋게도 저명한 평론가의 시선을 끌어 과분한 상을 받게 됐지. 내 책이 팔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야. 상을 받고 유명해지자 수상작인 ‘몽환’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까지 다 베스트셀러가 되더군. 작품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호소미 다스토키라는 이름이 책을 팔아주고 있는 거지." p.177

 

우타노 쇼고는 이러한 씁쓸한 이야기를 극 중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통해 차근차근 늘어놓습니다. 작가에 의한 작가의 이야기,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우타노 쇼고의 소설들 중 최고로 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도,

작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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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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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음, 너무 난해합니까?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역시 난해합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인간을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요, 어찌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것일까요? 아, 이제 좀 대답하기 쉬워졌군요. 아, 그렇죠. 사회 속에서 살아가니까 사회적 동물이지요.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사회가 ‘살 만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를 들어, 이놈의 사회가 살아가는데,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빌어먹을, 먹고 살 돈이 없다면 도대체가 우리는 이놈의 사회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탈출해야 합니까? 그럼 우리는 인간, 그만둬야 합니까? 아 것 참 모르겠네. 

  

왜 우리는 늘 돈이 없는가?

우석훈의 ‘모피아’

 

 저는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초라고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를 좋아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말 그대로 사회를 들여다봅니다. 강력범죄를 일으키고 그 뒤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의문을 줍니다. 그 의문을 풀이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들입니다. 특히 그 소설들 중 올해 초에 출간되었던 ‘짐승의 길’은 정재계의 흑막 고다마 요시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 주변의 이야기를 밟아갑니다.

 

우석훈의 ‘모피아’는 이 ‘짐승의 길’을 닮았습니다. 짐승의 길이 일본의 흑막을 이야기한다면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경제흑막 ‘모피아’를 이야기합니다. 모피아. 왠지 마피아와 어감이 비슷한데요, 맞습니다. 말 그대로 재계의 흑막이라고 할 만한 존재들을 가리키는 단어들입니다. 나라의 경제를 뒤흔드는 재경부 출신인사들이라던가 그 밖에 관련인사들, 국가의 경제를 생각한답시고 대통령조차 좌지우지 하는 놀라운 인물들이 바로, 모피아입니다.

 

‘한국의 돈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한국의 수많은 경제학자가 학부에서 처음 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갖게 되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제학도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이 질문을 잊는다. p.55

 

 

때문에 처음부터 위기의 연속입니다. 첫 챕터 제목부터 ‘왜 우리는 늘 돈이 없는가?’ 하고 강렬하게 밀어붙이더니만 끊임없는 위험을 예기합니다. 2014년 한국에 찾아온 위기가 어떤 것인가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손 쓸 수 없는 위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멍청히 지켜봐야만 하는 무능력함, 그 위기의 뒤에 숨은 것은 모피아였습니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모피아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자신들의 세가 약해질까 선수를 쳤습니다.

 

왜 우리는 늘 돈이 없는가? 간단하다. 돈이 잘못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머니로 들어올 돈이 엉뚱한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TV나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런 걸 바로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은 늘 좌절하고 쓰러지거나 무기력해졌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 특히 야당 출신의 대통령과 그 주변 집단은 집권에 대한 의지는 강렬했지만 통치 의지는 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모피아들은 강력한 통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출세하겠다는 개인의 욕망과 집단적 통치 의지가 뒤엉켜서 분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의지는 강렬하다. 개인은 실패할 수 있어도 집단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는 모피아! 그러나 그들의 집단적 성공으로 인해 우리는 늘 돈이 없다. p.144

 

대선을 고작 이틀 앞두고 이런 내용을 보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내가 누굴 뽑고, 어떤 국회가 서더라도 결국 달라지는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찌하여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다행히 통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며 조금씩 헤쳐 나가자고 말합니다. 조근조근 현실적인 방법(음?)을 이야기하며 모피아와 싸우는(음? 뭔가 어감이 묘해)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녹록치 않습니다. 결코 문장이 만만치 않아요. 때문에 현미밥처럼 씹어먹어야 합니다. 질겅질겅 소리가 나도록 질경이처럼 씹어먹는 것도 좋겠습니다. 자, 한 술 떠 먹어볼까요? 냠냠냠, 질겅질겅, 우물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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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의 나비
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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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TEXT이자 BIBLE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NOBLE이나 STORY의 영역을 넘어섰습니다. 셜록 홈즈가 하나의 존재로 인정을 받았고, 이 이야기를 갖고 사람들이 무한한 창작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무한히 그 인물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면서 셜록 홈즈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무한한 존재가 되었으며 끊임없이 발굴하고 발굴하여도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기에 셜록 홈즈는 단순한 NOBLE이나 STORY가 아닌 TEXT, BIBLE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설이 셜록 홈즈처럼 TEXT나 BIBLE로 훌쩍 뛰어넘긴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 한 권의 소설이 스스로 TEXT가 되려면, BIBLE이 되려면 어떤 짓을 해야 할까요? 이 책,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에 그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TEXT로 날아오른 한 A. A. 혹은 나비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

  

얼마 전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의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이유 있는 웃음이 좋다  http://cameraian.blog.me/130152832548

 

이 소설은 메타소설로써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습니다. 메타소설, 다른 말로 METAFICTION이란 말 그대로 소설이 소설이 되게끔 하는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을 일컫습니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와 ‘바틀비와 바틀비들’은 제목처럼 소설을 쓰는 과정을 지리멸렬하게 이야기하는데요, 이 소설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 역시 그러합니다.  

‘엔조 도’의 ‘어릿광대의 나비’의 첫 시작은 비행기 안입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을 만납니다. 한 인간은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낚시합니다. 이 인간, 비행기가 이동을 할 때 사람들의 생각이 체내에서 빠져나온답니다. 그 생각을 낚는 방법을 이 인간은 알고 있다나요? 은으로 만든 그물과도 같은 망, 자세히 보니 아니 이것은! 곤충채집망이 아닙니까?! 그걸로 생각을 낚는다고요?! 그 생각으로 돈을 번다고요?! 게다가 아주 독특한 사업도 진행하시네요! ‘그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뇨!


 

재탕을 노린 ‘호화 여객선에서만 읽을 것’은 아무래도 너무 안이하게 비친 탓에 오래도록 무시당했지만, 질리지도 않고 이어진 ‘통근 전철에서만 읽을 것’, ‘고등학교 앞 언덕길에서만 읽을 것’이라는 실패를 거쳐, 거의 자포자기로 보이는 제목인 ‘오토바이 위에서만 읽을 것’ 독일어판이 태평양을 횡단하는 대형 여객기 안에서 읽기에 적합하다고 판명되면서 멋지게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었다. 이때부터 ‘~에서만 읽을 것’ 시리즈는 그 책의 어느 언어판, 어느 판형을 어디에서 읽는 것이 적절한지를 찾는 게임으로 인기를 얻었다. 어릿광대의 나비, p.21

 

 

다시 곤충채집망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이 곤충채집망으로 낚는 생각들, 그 생각들엔 아주 예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아를레키누스 아를레키누스’ 라틴어로 의미는 ‘어릿광대’랍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나비인데요, 재미난 것은 이 나비를 처음으로 잡은, 요 묘한 사업을 일으킨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A. A. 에이브럼스. 흠, 나비에서 이름을 따왔을까, 아니면 이 사람의 이름이 나비로 갔을까요?  

이 소설 ‘어릿광대의 나비’는 에이브럼스의 이야기처럼 무엇이 먼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 이 순간에는 이것이 보였다 싶었는데 다음 순간에는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혹은 저곳에 존재하는 척했다가 귓속말을 걸기도 합니다. 상당히 귀찮습니다. 그래서 모른 체하면 징징거립니다. 왜 내가 보이면서 안 보이는 체하는 거야!

정말이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보는 듯합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온갖 잡스런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그리하면 저는 거대한 포충망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요리조리 이야기들을 모읍니다. 이 모은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100000000피스짜리 퍼즐 맞추듯 이곳에 뒀다가 저곳에 뒀다가 하다 보면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그 이야기는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었을텐데 낯섭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한 번 이야기를 잡아냈을 때, 또 나라는 사람을 거쳤을 때, 다시금 모습을 바꾼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떨 때엔 내가 아니라 내 손이, 혹은 내 눈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즉, 지금 타자를 치는 이 손가락은 내 손이지만 내가 아닌, 글을 쓰는 누군가가 조종을 하는 것이고 이 눈은 나이지만 내가 아닌 독자라서 내 손이 만든 글을 내 눈이 보고 무어라 조언을 하면 그 이야기를 손이 듣고 고치고 그 과정에서 잠시 입이 끼어들여 툴툴거린다던가 하면 시끄럽다고 짜증도 내고 잠시 잊혀진 위장이 꼬르륵 소리를 내며 지금 그렇게 싸울 틈이 아니다 이러다 우리 모두 굶어죽는다 같은 소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 읽는 것 읽히는 것 듣는 것 들리는 것 그 모든 것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의 착상에서 멀리 떨어진 것을 우리의 손이라는 다섯 손가락의 그물망으로 잡아낸,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다고 착각하며 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해한 척하는,

그런 거만한 생각의 끝에 치달은 이기심의 사치가 바로,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

소설을 쓴다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은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니에요.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닌데

진실보다 커다란 것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왜 그런가요."

 

마쓰노에의 기록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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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2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결혼, 남일은 재밌습디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저는 독신주의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혼자 있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일단 잠들기 전 한 시간정도는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음악을 듣던 일드를 보던 해야 하고(... ...) 우울하거나 글이 안 써지면 핸드폰 던지고 훌렁 배낭 메고 도망쳐야 하고 (... ...) 헌데 결혼하면 미안해지잖아요? 뭐, 이런 걸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꿈같은 이야기겠죠? 이런 인간이다 보니 딱히 결혼에 관심이 없습니다만, 결혼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요. 남 일이니까요. 내 일이 아니면 재밌습디다. 크크. 

 

예배당으로 들어가 선배와 종에 매달린 끈을 잡는다. “하나 둘 셋” 기합을 넣고 힘껏 잡아당기니 기분 좋은 울림이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댕... ... 댕... ... 댕... ...

결혼식의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태양빛을 가르며 흔들리는 종을 바라본 뒤 두 눈을 감고 기도했다. 모쪼록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나기를. (p.20)


츠지무라 미즈키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에는 흥미진진한 남의 결혼식이 무려 네 쌍이나(!) 등장합니다. 11월 22일 일요일 아르마이티 호텔 웨딩홀의 골드룸, 로열룸, 에머럴드룸, 펄룸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네 쌍과 그 가족들은 뭔가 다들 사연이 있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방부터 들여다보겠습니다.


골드룸의 신랑은 스즈키 리쿠오, 신부는 미타 아스카입니다. 이 신랑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신랑이 본래 록밴드의 보컬이었다는군요? 그리고 신부는 아스카인데... 어라? 이상하네. 뭔가 이상합니다. 뒤로 갈 수록 이 결혼... ... 뭔가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해요. 킁킁, 이건 무슨 냄새야? 썩은 복숭아 냄새가 나네?! 로열룸은 신부가 묘한 복장을 하고 있어요. 아니 저 파란 윗도리에 노란 치마 거대한 흰 깃은... 백설공주가 아닙니까?! 그런데 신부가 울상이에요. “내 머리띠가 없어졌어!” 백설공주의 포인트인 빨간 머리띠가 없어졌다고 찾아다니네요. 없어진 건 큰일이라치고... 저, 정말 그러고 결혼하시나요?! 에머럴드룸은 이거 뭡니까? 예식장 멘붕입니다. 아니 뭐 이런 신부가 다 있대요? 두 번째 결혼이라는데 비용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네요? 게다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요. 아주 달달 볶아요, 직원을. 저러다 직원이 폭발해서 부케라도 신부 얼굴에 던져버리면 대형사고가 나겠는데요? 마지막으로 펄룸 여, 여긴 부, 불륜입니까? 신부가 쌍둥이랍니다. 그런데, 쌍둥이 중 동생이 결혼하는데 언니가 묘한 말을 해요. 시, 신랑이랑 키스를 했다는데요?! 그, 그래도 됩니까?  

 

“마리카... ...”

사람들 눈엔 의좋은 자매로 비쳤겠죠. 동생을 축복하고 행복에 겨워 눈물 흘리는 언니와 고마운 마음에 우는 동생으로. (p.303)


츠지무라 미즈키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는 위와 같은 묘한 네 쌍의 결혼식이 교차로 진행됩니다. 저는 교차진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희한하게 이 책은 술술 잘 읽히더군요. 아마도 이 책의 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매력적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작가가 미스터리 구조를 영리하게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의 다른 책 츠나구 역시 그러했거든요.

 

츠나구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단 하룻밤, 만나게 해주는 전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편의 연작형식으로 진행이 되는데요,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흐르고 나면 “아아, 이리하여 이 책은 시리즈가 아니라 연작이었어!”라고 소리치게 된답니다. 츠지무라 미즈키는 참으로 구조를 잘 다루는 작가예요. 그리고 이 책, ‘달의 비밀은 뒷면에 부쳐’에서는 그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합니다. 과연 이정도의 작품이니까 일본에서 올해 봄 NHK에서 드라마로 방영할 만했겠어요. 일단 캐릭터가 다채로우니까 홈드라마에 어울리거든요. 또 이 교차진행 에피소드들에는 숨은 잔재미가 꽤나 있습니다. 이야기의 처음을 시작하는 묘한 기호들인데요, 이 기호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각각의 교차진행 에피소드의 화자 성격을 드러내요. 모두 본 후에 이 기호만 모아서 찬찬히 훑어봐도 재미나달까요?

 

그저 재미만 있다면 아쉽겠지만, 이 작품에는 메시지도 있어요. 만고불변의 메시지 말이에요. 그 메시지는 바로,

 

!! LOVE FOREVER !!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한다는 만사형통 대길일.

상담실의 테이블 위로 초여름 볕이 산뜻하게 쏟아진다.

하늘에서 쏟아진 빛이 창문을 통해 들이치니 꼭 마리아 면사포처럼 화사해 보인다.

예배당 웨딩벨이 이곳을 찾는 모든 이를 축복하듯 은색으로 빛났다.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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