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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사는 남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이란 게 그렇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쓰는 글과 비슷한 구조나 설정, 혹은 배경만 비슷해도 관심이 갑니다. 또 도움을 받고 싶어져서 일부러 유심히 보게 됩니다. 때문에 저는 어디 한 번 죽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홈즈가 보낸 편지’를 쓰는 내내 비슷한 종류의 책이나 영상물을 찾아보며 비슷하게 쓰지 말아야지! 이건 피해야지! 했었는데요, 이번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역시 제가 쓴 소설과 비슷한 형식을 띱디다. 제가 쓴 ‘홈즈가 보낸 편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추리소설가 김내성에 대한 오마쥬라면, 이 소설은 일본의 거장 ‘에도가와 란포’에 대한 오마쥬랄까요?
에도가와 란포에게 바친다 !
우타노 쇼고의 ‘시체를 사는 남자’
헌책방에 갔을 때였나, 우연히 이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에, 우타노 쇼고 싫어!”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이 책에 에도가와 란포가 나온다는 말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제가 쓴 ‘홈즈가 보낸 편지’에도 에도가와 란포의 이야기가 조금 나오거든요. (김내성은 일본에서 유학 당시 에도가와 란포와 몇 번이고 서신교환을 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에 들렀는데 없더군요. 인터넷으로 주문하기엔 신간을 지를 것들이 너무 많아서 넘기고 넘기다가... 결국 지난 번 트위터 일미당 당주 부부네 들렀다가 빌려왔더랬습니다. 하여 책을 펼쳤는데... 이야! 제가 본 우타노 쇼고의 책들 중 가장 좋더군요!
우타노 쇼고의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7~8권정도 읽었는데 딱히 확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벚꽃이~’는 반전은 좋지만 전개과정이 지루했고, ‘밀실~’은 시리즈 자체로 볼 때엔 흡족하나 내용이 어딘가 허전하고, ‘우리집에~’는 흡족한 단편들이 꽤 있지만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쉽고... ... 뭐 이런 식의 투덜거림이 늘 가득했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작품들은 모두 좋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개인의 취향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입이 짧거든요. 혀도 고양이혀라서 뜨거운 것도 잘 못 먹고(이건 관련이 없나?) 아무튼 그리하여 별 기대 없이 이 책 ‘시체를 사는 남자’를 집었습니다.
호소미 다스토키는 우연히 탐정소설 ‘백골귀’를 접합니다. 이 소설 '백골귀'는 히라이 타로, 다른 이름으로 ‘에도가와 란포’와 유명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한 기이한 살인사건을 접하고 풀이한다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금세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합니다. 일단 살인사건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입니다.
‘백발귀’ 속의 주인공 에도가와 란포가 자살을 하려고 든다, 그런데 누군가 그를 살려냈다, 살려낸 사람이 오히려 죽었다. 것도 여장을 하고? 월애병, 달을 사랑하는 병에 걸려 그런 짓을 했다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이 에도가와 란포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하여 호소미 다스토키는 '백발귀'의 작가를 만나기로 결심합니다. 만난 작가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작가가 들려준 집필사연은 소설만큼이나 흥미로웠고, 호소미 다스토키는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에서 이야기는 크게 방향을 틉니다.
이 이야기 속, 특히 '백발귀'에서 에도가와 란포는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부분은 과연! 에도가와 란포의 기이한 동성애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떠오릅디다.
"~동성애도 어엿한 문화입니다. 일부 지저분한 남창들이야 별개지만, 진정한 동성애자들은 지적이고 문화적인 존재란 말입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지요. 문화는 이른바 여가활동에서 비롯된 거라서 의식주가 풍족한 시대에 내일의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꽃피고 있어요. 동성애도 그런 시대에 크게 번성한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도 그렇고 에도 시대도 그렇고.“
나도 모르게 흥분돼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짐승 세계에 문화가 존재합니까? 짐승이 동성끼리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진정한 동성애는 고등동물인 인간에게만 허락된 굉장히 고차원적이고 순수한 플라토닉에서 비롯된 연애란 말입니다.”
“플라토닉은 이성 간의 연애에도 존재하지 않나.”
하기와라 씨가 머쓱한 듯이 끼어들었다.
“아, 그건 다릅니다. 이성 간의 연애는 육체적 욕망을 전제로 이루어지지요. 그건 고등동물인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서글픈 숙명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육체를 추구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물론 플라토닉한 연애도 있겠지만 그건 차후에 생겨난 감정일 뿐입니다. 그에 반해 동성 간에는 욕정보다 플라토닉한 감정이 먼저 자리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진정한 연애는 동성 간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겁니다.”
“흠, 그럼 여성을 사랑하고 있는 나 같은 인간은 죄다 짐승이로군.”
“아니, 그건 너무 비약적인 생각이지요... ...” pp.96~7
‘시체를 사는 남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로 진행합니다. 첫 장에서 백발귀를 다룬다면 다음 장면은 이 소설을 읽는 호소미 다스토키의 시점으로. 처음에는 이질적인 것만 같고, 따로 다룬다고 하여 큰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는 뒤로 갈 수록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라는 작가의 호소가 튀어나올 듯 강하게 나아갑니다. 과연! 책을 모두 접고 나면 “그럴 수 밖에 없었군!”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소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소설 속 드러나는 추리소설가에 대한 작가의 시선입니다. 위에 인용한 것처럼 추리소설가가 착상을 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작가의 책이 팔리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저는 특히 마지막 인용문을 보고 뜨끔했습니다.)
탐정소설가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사실적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발생한 범죄사건에 흥미를 갖고 그 사건에서 소설의 소재를 끌어내려는 작가다. 다른 한쪽은 공상적이라고나 할까, 황당무계한 창작물에만 흥미를 갖고 현실의 범죄사건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작가다. p.11
“자네에게 소설이란 뭔가? 흥미로운 범죄 사실을 캐내고 거기에 살을 붙여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그런 안이한 자세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런 작품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겠나? 나는 아니라고 보는데. 소설은 창작물이야. 현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건 자신의 창작력을 보완하는 정도에서 끝나야지, 자네처럼 실제 사건에 창작력을 보태는 건 아무래도 공감하기 어렵군. 자기 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결여돼 있으니까. 처음에 그 노트를 발견했을 때 그보다 더 멋진 작품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그보다 더 재미있는 범죄사건을 직접 창작해보겠다는 생각 말이야.” p. 87
"자네 이름을 아는 독자가 몇이나 되겠나. 생판 처음 들어보는 신인작가의 소설을 누가 사 보려고 하겠어. 정말 책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 사겠지. 책은 말이야, 저자 이름을 보고 사는 거야."
니시자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잘 알지. 데뷔작인 ‘몽환, 파란 환상’이 거의 다 반품 처리됐거든. 다음 작품인 ‘빨간 환상’도 마찬가지고. 그런데도 난 포기하지 않았어. 출판사도 내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고. 그래서 ‘하얀 환상’과 ‘검은 환상’을 잇따라 출간했는데, 그게 운 좋게도 저명한 평론가의 시선을 끌어 과분한 상을 받게 됐지. 내 책이 팔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야. 상을 받고 유명해지자 수상작인 ‘몽환’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까지 다 베스트셀러가 되더군. 작품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호소미 다스토키라는 이름이 책을 팔아주고 있는 거지." p.177
우타노 쇼고는 이러한 씁쓸한 이야기를 극 중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통해 차근차근 늘어놓습니다. 작가에 의한 작가의 이야기,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우타노 쇼고의 소설들 중 최고로 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도,
작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