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말 그대로 폐인처럼 일드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트릭이나 장치 등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까, 지금까지 나온 추리소설의 트릭들은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가장 쉽게 익힐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일단 모든 트릭이 총망라된 만화책 ‘명탐정 코난’을 섭렵하고, 더불어 애니메이션도 보고, 그 다음에 시작한 게 수많은 일본드라마들이었습니다. 과연 일본은 추리왕국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컨텐츠가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일본드라마를 차츰차츰 익혀갔고, 개중에는 원작이 있는 드라마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시다 이라는 I.W.G.P(이케부쿠로웨스트게이트파크)를 본 후에 원작을 찾아 읽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일본드라마들에서 저만 느낀 걸까요, 묘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원작보다 드라마가 더 반짝거린다는 것, 어쩐지 이 소설들은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반짝거려서 종잡을 수가 없다!

기시 유스케의 ‘자물쇠가 잠긴 방’

 


저는 기시 유스케의 ‘자물쇠가 잠긴 방’을 소설보다 먼저 일본드라마로 접했습니다. ‘열쇠가 잠긴 방’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2분기에 방영하였고 주연은 일본의 인기 그룹 아라시의 오노 사토시가 도둑인지 컨설턴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구별하고 싶지 않다) 인물 에노모토 케이를, 라이어 게임과 최근엔 케이조쿠 SPEC으로 주가를 더이상 올릴 데가 없는 토다 에리카가 아오토 준코 역을, 엘리트 변호사 세리자와 고의 역할엔 짐승의 길 등에서 열연한 사토 코이치가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 세 명의 호흡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절로 원작을 찾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8월 ‘다크존’ 출간을 기념하여 기시 유스케 님이 오시기 전에 ‘유리망치’와 ‘도깨비불의 집’을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당연히 사인회 가서 사인도 받았지.) ‘도깨비불의 집’이 가볍게 읽힌다면 ‘유리망치’는 탄복할 트릭으로 가득합니다. 때문에 이 책, ‘자물쇠가 잠긴 방’을 더더욱 기다렸는데요, 과연! 역시! 기시 유스케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의 기본 플롯은 간단합니다. 가공할 밀실의 트릭을 풀어라! 작가 기시 유스케는 이 작품 ‘자물쇠가 잠긴 방’에 네 개의 밀실을 내놓습니다. 에노모토 케이와 아오토 준코는 이 사건에 ‘어떤 사정’으로 끼어들고, 여러 정보를 얻어 밀실을 깹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 지식의 범위를 약간 벗어나는 부분 때문에 확인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노모토는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이걸로 밀실은 분명히 깨졌습니다. (서 있는 남자, p.91)

 

첫 번째 에피소드 ‘서 있는 남자’는 드라마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영상으로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충격적이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는데, 책으로 보니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더군요. 드라마로 본 영상이 머릿속에 없었다면 이 트릭의 정체를 깨기는 상당히 힘들 듯하였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자물쇠가 잠긴 방’은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탐정 갈릴레오가 떠오르는 추리소설 속 과학의 이야기입니다. 추리소설의 트릭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달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이런 식의 시도는 신선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것, 기시 유스케의 놀라움은 이런 점이 아닐는지.


세 번째 에피소드 ‘비뚤어진 상자’는 ‘상자’에 여러 의미를 줍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결함주택이라는 ‘상자’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마음의 ‘상자’,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 참 힘드셨겠네요.”

아오토 준코는 동정심을 가득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헥터 가마치요 살해 사건 때는 극단 여배우 마츠모토 사야카가 용의자로 몰릴 것 같다며 의뢰를 해서 해결에 한몫했다. 범행 때 왜 헥터가 기르던 경비견이 짓지 않았는가라는 수수께끼의 어처구니없는 답을 알아낸 사람은 자칭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였다. 에노모토는 지금 자못 불편한 듯이 준코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오늘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셨으니 뒤늦게나마 감사를 드리겠다는 명목으로 신작 상영에 초대받았다. 극장에 사람이 꽉 들어차서 만원이 된 건 무료입장권을 마구 뿌린 덕분인 듯하지만. (밀실극장, p. 302)

 

 


네 번째 에피소드 ‘밀실극장’은 전작 ‘도깨비불의 집’과 이어집니다. ‘도깨비불의 집’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했던 ‘개는 알고 있다’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코지 미스터리의 성격을 띱니다. (기시 유스케와 코지는 상당히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꽤 어울립니다)

 

네 에피소드는 책으로 펼쳤을 때 흥미진진합니다만, 드라마로 보면 더더욱 즐겁습니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여러분께서는 책을 읽은 후 하루 날을 잡아서 대낮부터 팝콘이나 쥐포를 준비하고 옆에 맥주 한 병 놓고는 배 위에 노트북을 얹고 느긋한 마음으로 일본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을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가 장담하는데, 나처럼 된다. 특급변(태완)소, 일드폐인... ...

  

추신.

이 책 뒤에 붙은 후기가 흥미진진합니다.

지난 8월 사인회 때의 기시 유스케님과 번역가 김은모의 짧은 질의가 들어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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