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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팩터 -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
앤디 하버마커 지음, 곽윤정.이현응 옮김 / 진성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20xx년 1월 1일 00:00
새해를 맞이해 원대한 결심을 했다.
나는 유명인이 되겠다!
하지만 나는 유명인이 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데다 조건도 좋지 않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에 대단찮은 외모,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내. 결혼 계획은 물론이고 여자친구도 없다. 이런 내가 유명해지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감이 잡힐 리 없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유명’ ‘인기’ 등의 단어로 검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권의 책을 찾아냈다. ‘폭스 팩터’ 부제가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이다. 뭔가 제목이 그럴 듯하다. 뭣보다 이 책의 제목인 ‘폭스 팩터’가 무슨 뜻인지 흥미가 생긴다. 바로 지르기로 한다. 주문 완료.
20xx년 1월 3일 23:45
새해 첫 출근부터 야근을 했다. 빌어먹을 상사는 나에게 일거리를 주지 못해 안달인 것 같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보니 기쁜 소식-아니 물건-이 도착했다.
폭스 팩터,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
책이 가볍고 몇 장 안 되는 것이 금방 읽겠다 싶었다. 일단 목차를 펴서 대충 훑는데 ‘살인자 폭스’라는 단락이 확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그 단락에서 인용한 인물 중 한 명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오제이심슨이 아닌가? 현장에서 잡혔는데도 풀려났던 오제이심슨... ... 분명 일전에도 어떤 책에서 오제이심슨의 이야기를 봤던 것 같은데. 흥미가 일었다. 씻고 나와서 바로 읽어주겠다.
20xx년 1월 4일 03:56
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신을 차려 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나도 모르게 그만 집중을 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이 책을 독파해 버렸다. 폭스 팩터는 첫 장부터 날 사로잡았다. 일단 폭스 팩터의 단어 뜻이 아하! 싶었다. 폭스 팩터는 ‘자신을 매력적으로 부풀리는 어떠한 힘’을 가리킨다. 그리고 폭스 팩터의 이름을 짓게 한 이 책 첫 장에 등장한 폭스 박사란... ... 설마 그 폭스였을 줄이야! 나는 그만 “크핫!”하고 웃었고, 연이은 ‘폭스박사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두 번째 장의 안티 폭스 팩터에서 언급된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은 겉모습 때문에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허나 이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그 첫 인상을 깨고 보다 큰 감동을 주었다. 세 번째 장은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다. 너무나 겉으로 보이는 인상이 좋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르고도 용서를 받는 살인자 폭스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xx년 1월 7일 14:02
며칠 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 취소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폭스 팩터를 경험했다.
나는 삼성동에서 일한다. 일은 지리멸렬하고 선배와 후배는 늘 나의 스트레스를 돋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의 낙으로 삼는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사우나 1층에 붙은 매표소처럼 작은 커피집의 단골이다-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집 커피는 다른 집 커피들과 달리 매우 진하다. 게다가 난 이 커피집의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 딱히 예쁘지는 않다. 그렇게 친절하지도 않다. 화장도 안 하고 오고, 어쩔 때엔 상당히 피곤한 듯한 표정도 한다. 아! 하품하는 것도 봤다! 헌데 이 아가씨가 어딘지 모르게 참 마음에 걸린다. 신경이 쓰인다. 그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건네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볼우물이 살짝 패이게 웃으며 “도장 찍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은근한 매너에,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정말 소중한 듯 내미는 그 작은 동작이... ...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이 아가씨가 상당히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수도 잦다. 가장 심한 실수는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내 얼굴을 아직도 못 외운다는 것이다! 나는 늘 가서 같은 커피만 마시는데도 이 아가씨는 내 얼굴을 도통 못 외우고! 늘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안드로이드도 아니건만! 게다가 손님이 몰릴 때엔 내게 줄 음료를 다른 손님에게 내밀며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헛기침을 하며 “그거 내거...”라고 말하고, 이 아가씨는 얼굴이 벌게져서 몸을 깊이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외친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나고 이제는 이 가게에 오지 말까... ...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이 가게에 온다. 이상한 일이다. 오늘도 이 아가씨는 내 얼굴을 못 외웠고, 내 주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거스름돈마저 틀렸는데 나는 이 아가씨를 내일 또 보러 오고 싶다! 보이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단 말이다, 그 볼우물이!
바로 이게 폭스 팩터다. 폭스 팩터란 그 사람이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들마저 무마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힘이다.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나 미소에 그만 나도 모르게 너그러워지게 하는, 살인마저 “세상에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케 하는 무서운 힘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사소한 실수로도 질책을 받는다. 왠지 내 말을 선배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존재 자체가 흐릿하다'는 말마저 듣는다. 왜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까? ... ... 왜 나는?
20xx년 1월 8일 01:34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니 방법은 역시, 폭스박사가 되는 것이다. 주변의 폭스박사를 생각한다. 그 커피집 아가씨의 시선이나 동작을 생각해 본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사람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 법을 아는 아가씨였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는 평소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마주치고 가만히 바라보며 말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 핸드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차림새도 그닥 신경쓰지 않고 다녔다. 가끔 피곤하단 이유로 머리도 안 감고 출근한 때도 있었다. ... ... 이러한 내 모습이 나를 유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을까?
때문에 나는 거울 앞에 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연습한다. 손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힘을 주는 법을 생각하고 부드럽게 말해본다.
“안녕, 좋은 아침이네.”
“밥 먹으러 가자.”
낯간지럽긴 하지만 일단 실천해 보기로 한다.
이번 서평은 '협찬은 아무나 받나' 출간을 맞이하여,
'협찬은 아무나 받나'와 같은 문체로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