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열쇠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0
황선미 지음, 신은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뜻밖의 책 선물을 받습니다. 지인들이 건네준 재미난 책들, 출판사에서 보내준 신간들, 경애하는 작가님들의 작품들. 책을 선물받으면 그저 신이 납니다. 가장 신이 나는 책 선물은 결코 예상치 못한 책일 것입니다. 알라딘에서 대체 무슨 이유로 보내준 지 알 수 없는 이 책, 『목걸이 열쇠』처럼 말이에요.

    

 

마음 속 초록공책을 여는 목걸이 열쇠는 어디에 있나요?

『목걸이 열쇠』

  

 

한 달에 보통 2~30권정도의 책을 삽니다. 심할 때엔 50권, 100권이 넘어설 때도 있습니다. 지난 달에도 그렇게 책을 샀습니다. 이 서점서 열 권 저 서점서 열 권 돌아다니다 열 권 ... ... 이런 식으로 사고 사고 또 사다 보니 늘 책장이 부족합니다. 대체 이 책들을 다 어따 꽂나 언제 다 읽나 끙끙거리는데 이것 참, 당황스러운 책이 두 권 곁에 왔습니다.

시공주니어문고 시리즈...라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니 이걸 나한테 왜?”였습니다. 난 추리소설작가인데요? 빼도박도 못하는 삼십대 중반에 결혼도 안 했는데요! 조카도 없고요! 이왕 줄 거면 추리소설로 달라고요!

하지만 받은 책을 안 볼 수는 없는 성격이다 보니 읽었습니다. 마감을 끝내고 아픈 머리를 식힐 때엔 가벼운 책이 좋거든요. 그래서 이 책을 들고 아침에 나왔는데 이것 참, 왜 이리 감동적이랍니까. 어떻게 이 가벼운 책에서 1월에 가장 뭉클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떠오른답니까.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싯다르타』는 1월에 훌쩍거리며 읽다가 마지막 몇 장 남겨놓고는 내려놓고 까먹었다가 어젯밤 아이러브커피 하는 중간에 겨우 정줄 잡고 마저 읽었습니다.  읽다가 말다가 정줄 잡고 마저 읽은 『싯다르타』는 그의 다른 저작들이 그렇듯 두 가지 방법의 구도求道를 이야기합니다. 부처 싯다르타가 세속에서 벗어나 득도하는 이야기와 또 다른 싯다르타가 인간을 겪으며 득도하는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합니다.『싯다르타』 속의 싯다르타는 말합니다. 모든 것은 같다. 모든 것 안에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진리가 있고 도가 있다. 그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그래, 음, 그렇지……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저는 또다른 싯다르타를 발견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향기는 요즘 왠지 외롭습니다. 가슴이 커져서 브래지어도 하게 되고 동갑내기 소꿉친구인 동수도 왠지 싫어졌습니다. 향기는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혼자 두는 엄마 아빠 탓이라고요. 때문에 향기는 비밀경찰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모두 벌을 주겠다고 결심하고는 작은 초록공책에 체포 1호! 2호! 이름을 적습니다. 자신에게 한 나쁜 짓을 하나, 둘 적어갑니다.

 

체포 2호는 환경미화원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예전 향기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습니다. 향기가 ‘삼삼이’를 위해 괜찮은 종이상자를 구하려 집 앞 재활용처리장을 기웃거렸을 뿐인데 주변을 어지럽힌다고 앞뒤 재지도 않고 혼을 냈습니다. 때문에 향기는 초록공책에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체포 2호로 적고는 죽을 때까지 쓰레기를 치우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에게 정말 나쁜 일이 생겼습니다. 아주 흉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향기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혼자서 길도 잘 못 걷고, 마스크로 가린 얼굴은 늘 눈물범벅입니다. 때문에 향기는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자기 때문에 아저씨가 저렇게 된 건 아닐까, 신경이 쓰입니다. 그 후로 향기는 조금씩 바뀝니다. 자신이 체포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그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 자신 역시 남들에게 사소한 잘못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갑니다.

 

『싯다르타』의 소설 속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문이 됩니다. 사문, 다른 말로 하면 탁발승입니다. 반 벌거숭이가 되어 밥을 빌어먹고 노숙을 하는 그런 스님이 되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그 길을 갑니다. 인간을 피부로 느끼며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 마침내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납니다. 이런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싯다르타의 앞에 아들이 나타납니다. 아들은 예전의 싯다르타처럼 자신을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런 아들을 보며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 누구도 이토록 사랑한 이가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토록 곁에 두고 싶은 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싯다르타를 버리고 도망쳐버립니다. 그 아이의 모습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나를 떠나려고 하느냐! 소리치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모든 것이 같구나, 모든 것이 내 안에 있구나 깨닫습니다.

 

향기와 싯다르타는 둘 다 자신과 남이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동화책 『목걸이 열쇠』 속 향기는 싯다르타처럼 인생의 진리를 알지는 않습니다. 향기는 여전히 사춘기이고, 혼자 있는 것이 싫을 뿐입니다. 부모님이 좀 더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너만 아프니?

나도 아프단 말야.

너는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지.

난 혼자 아파야 돼.

약도 내가 짓고

밥도 내가 찾아먹어야 되고

슬퍼서 죽겠단 말야!

생일을 나처럼 보낸 애가 있는 줄 아니?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너라도 내 속을 썩이지 말아야 될 거 아냐!

p. 91

  

그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납니다. 동화책 속 나오는 향기가 내 모습과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마음속에 아이가 깃든 듯한 나의 철없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초록공책을 숨겨두고 속상한 일을 하나 둘 적어가는 내 자신이,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열쇠로 꼭꼭 잠궈두면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내놓는 마음이, 열쇠를 곁에 두고 “제발 날 좀 봐주세요!” 하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낯이 익어서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때문에 나는 싯다르타를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깁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둔 초록 공책에 그 말 한 마디를 적고, 나머지 나쁜 마음은 차근차근 지우개로 지어갑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우개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20121228, 문화체육관광부 대강당에서는 제 6회 디지털작가상 수상식이 열렸습니다. 저는 이날 홈즈가 보낸 편지로 우수상을 받았었고, 대상은 종료되었습니다의 박하익 작가님이셨습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대상과 우수상이 모두 나와서 ~”하는 분위기였죠. (크크) 그리고 이날 대상을 받은 박하익 작가님을 처음 뵌 저는 보자마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암여고 탐정단, 언제 나오나요?” (크크)

 

안녕하세요? 저는 예전에 탐정이었어요

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후의 미스터리

 

가끔 살다 보면 말입니다. “, 이건 뭐지?” 싶은 책을 만납니다. 이건 참 재미나다, 이건 꼭 좀 곁에 두고 싶다 이런 책 말이에요. 또 아주 좋은 단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 단편을 발견할 때엔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어집니다. “어이, 작가님! 이 건방진 독자를 위해 장편으로 좀 써주지, ?” 하고 협박을 하고 싶어집니다. 지금의 선암여고 탐정단을 발견했을 때에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 3에서 무는 남자를 처음 보자마자 "하악하악, 협박하고 싶어!" 중얼거렸죠. (안 되면 물어버리려고 했어. 무는 변소.)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즐거운 소식이 왔습니다. 바로 이 무는 남자가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소식이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려 마침내! 올해 제 곁에 선암여고 탐정단이 왔습니다!

     

문제 1. 신종 변태가 이동한 자취의 방정식을 구하고 그에 접하는 돌멩이를 날려라

문제 2. 비밀 파일과 골분 항아리의 연립 방정식을 풀고 사라진 핑크 토끼의 좌표를 구하여라

문제 3. 제시된 명제들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여 투명 미로를 미분하라

문제 4. 두 가지 독립 사건에 희생당한 검은 콩 두유의 원한을 풀고 총격의 진범을 찾아라

문제 5. 무한급수의 레플리카가 수렴하는 합을 구하고 살인자를 판별하라

 

  선암여고 탐정단은 제목처럼 깜찍한 분위기를 풍기며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목차부터 독특합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각기 문제의 형태로 우리 앞에 주어집니다. 마치 수능시험지를 받아든 것처럼 이 묘한 제목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첫 장을 넘기면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흥미진진한 여고생들의 모험이 냠냠냠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다가옵니다. , 정말이지 소제목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꿰뚫는 솜씨가 첫 번째 문제의 직선으로 뻗어 날아가는 돌멩이처럼 신속정확합니다.

 

첫 번째 문제에는 수수께끼의 무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여고생들이라면 누구나 학교 근처서 아담을 만납니다. 아담이라는 남자는 이름처럼 벌거벗고 다니며 여고생들을 놀래킵니다. 이 무는 남자는 그 아담과 하는 짓이 비슷합니다. 다만, 여고생들을 뱀파이어처럼 물고 다닌다는 점이 좀 다르달까요. 두 번째 문제는 기묘합니다. 한 여고생이 핸드폰에 달고 다니는 분홍 토끼 인형 핸드폰 악세서리를 도둑맞습니다. 범인은 어딘지 모르게 공포에 질린 아줌마입니다. 도대체 이 아줌마는 왜 이 토끼 인형을 훔쳐갔을까. 그 사연 역시 제목 한 줄을 연립방정식으로 풀이하면 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눈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아주 미묘한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최근 출간된 우타노 쇼고의 절망노트와 비슷한 스타트라인에 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왕따는 무엇일까. 왕따는 왜 일어날까. 또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은 명제 안에 있습니다. 네 번째 문제는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일어날 수 없는 총기난사 사건이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일어납니다. 과연 이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다섯 번째 문제는 ... ... 훗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문제 자체가 완벽한 설명이니까요. 무한급수의 레플리카가 수렴하는 합을 구하고 살인자를 판별하라.

 

요 아리송한 각각의 이야기 소개는 아리송하기에 매력적입니다. 또 그 아리송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가 참으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선암여고 탐정단이 어쩐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저의 여고 시절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그 시절을 떠올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거암巨岩을 입에 올립니다. 거암, 연극반의 이름입니다. 저는 이 거암에 가입해서 일 년 간 연극을 했습니다. 연극은 촌극을 조금 벗어난 수준이었습니다만, 난생 처음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한 그 과정은 촌극보다 훨씬 흥미진진했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시간이 흘러 여고시절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巨岩이라는 연극반에 다녔었어요.”라는 말을 하게 됐고요. 때문에 이 소설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 이 소녀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된다면 나처럼 말하겠구나저는 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여고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탐정단부터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탐정단에 가입해...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시 장충동에 살았었다. 몇 걸음 걸어나가면 좌로 태극당이 우로 장충동 족발집들이 보였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장충단공원과 장충체육관이었다. 다른 곳들은 참 자주도 가보았으나 장충체육관은 손에 꼽힐 정도로밖에 들르지 않았다. 처음 들른 것은 이곳에 살 때조차 아니었다. 십 년도 더 전에 한 권투영화 시사회를 한다고 하여 장충체육관을 찾았었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시사회를 하기 전 영화사 관계자들이 장충체육관 중앙에 임시로 세운 링 위에  올라 이곳에서 참 많은 시합이 있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던 것은 기억한다. 적막이 흐르고 사위가 껌껌해지더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12라운드처럼 묵직한 울림이 가득찬 그 영화... ... 대박이 안 났으니 내가 제목도 기억 못하겠지만서도 그 때의 추억은 그 날 영화가 끝나고 나와 맞았던 그 해 처음 내렸던 눈처럼 기억에 아릿하게 새겨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찾은 장충체육관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장충체육관은 땡처리로 유명해져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하나 샀다. 그 운동화를 얼마나 신었었는지 또 그 운동화를 언제 내다버렸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장충체육관을 만났다. 운동화도 영화도 아닌 순수한 사각의 링, 권투의 흥분이 솟구치는 모습 그대로.

 

진정한 능력자'들'을 위한 소설이다

최민석의 능력자

 

가끔 그런 소설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손이 가고 마음이 끌려 어느덧 집어서 읽기 시작하는 소설. 처음 이 붉은 표지의 소설이 서점에 깔렸을 때부터 나는 이미 소설에 홀려 있었다. 그것은 내가 유달리 붉은 표지의 소설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며 또 이 소설의 제목이 능력자에서 가 빠진 단순한 능력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나는 동시에 이 소설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여 무의식중에 능력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나의 무의식은 언제나 나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그토록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 소설 속에 내가 어린 시절부터 한참동안 기억하던 장충체육관이 새록새록 가득했기 때문이었다소설 속에서 새롭게 만난 장충체육관은 소설 속의 이야기이며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나 자신이란 소설 속의 화자이자 지금의 나 자신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한 부분을 따온다면 그래, 샤덴프로이데! 샤덴프로이데!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허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쓰지 못한다는 것과 동음이의어다. 소설을 쓰는 자는 소설을 쓰면서 소설을 읽고 소설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가 늘 의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비웃으면서도 또 쓰게 된다. 끊임없는 반복의 매커니즘 속에서 소설가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그리움은 단순한 반복 속에서 점점 커져서 마침내는 마음 속 깊은 곳을 갉아먹어 어둠과 망각이라는 깊은 절망으로 소설가를 빠뜨리는데 이 소설 속 능력자이 그러하였다.

 

미치광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 적이 있는가. 듣다 보면 뜻밖에도 너무나 이치가 맞고 사리에 통달한 듯하여 감탄을 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 속의 미치광이가 그러하다. 또 이 미치광이와 어울리는 소설가는 너야말로 미치광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미치광이를 미치광이가 아니게 만들고 소설가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또 그러한 모두를 하나의 능력자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이자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그 무언가 어찌 보면 능력이라는 단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이 붉은 책,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장충체육관에 발을 들이게 한 이 책 속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좋은 소식이 있어 서평과 함께 소식을 전합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증쇄 했습니다. 더불어 트위터 탐정 설록수의 출간이 좀 빨라질 것 같습니다. 포스트잇 이벤트는 트위터 탐정 설록수와 함께 진행할 예정으로 현재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분들 감사드리오며 날이 많이 춥습니다.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으니 저는 계속 쓰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소설이든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이 소설을 쓸 수 있을까?”를 가늠한다. 어떤 소설은 “쓸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어떤 소설은 “나는 절대로 못 써!”라고 소리친다. 이번에 읽은 최혁곤 작가의 B파일은 후자였다. 내가 쓸 수 없는 소설 아니, 쓴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려야 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아주 재미난 소설이기도 했다.

 

 

 

내가 쓸 수 없는 소설을 만나다.

최혁곤의 B파일

 

소설을 쓰는 것은 재미나지만 마감은 싫다. 마감이 다가오면 눈앞이 캄캄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당연히 약속을 잡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내 ‘알맹이’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없다. 진짜 나 자신은 매우 초조하고 불안에 떨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카운트다운의 모래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이럴 때에 누군가를 만나면 큰 실례를 하는 일이 많아 나는 아예 사람을 피한다. 이러한 마감에 쫓기는, 게다가 아주 자주 쫓기는 또 다른 직업이 있다. 바로 기자라는 직업이다. 최혁곤의 B파일은 바로 그 기자들의 이야기다. 기자들(+2)은 의문의 죽음을 목격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죽음에 다가가고, 음모를 파헤친다는 아주 단순한 줄거리. 헌데 이 단순한 줄거리가 결코 단순치가 않다는 것이 이 소설 B파일의 함정이다.

 

일본에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있다.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라 하겠다. 또 미야베 미유키가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 불리는 소설가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소설가들의 소설을 원하고,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 없느냐고 묻는다. 나도 그렇게 많은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마침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네,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최혁곤 작가가 있어요.”

 

그렇다. 이 소설 B파일은 입을 떠억 벌리게 하는 웰메이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속도감은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이야기의 묵직함은 어디에 비견해야 할까! 아아, 이 소설은 그저 ‘최혁곤스럽다’. 때문에 이 소설은 맛이 있다. 다양한 사회의 맛이, 작가의 시선이 구석구석 배어 있기에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게 한다. 제대로 된 한정식 집에서 으리으리한 밥상을 받은 기분이랄까.

 

B파일의 가장 큰 장점은 리얼리티다. 최혁곤 작가의 기자로써의 이력이 발휘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기자들의 삶이 피부로 와 닿는다. 발로 뛰며 기사를 얻는 기자, 그와 반대로 손가락 하나로 기사를 얻는 기자, 많은 것들과 타협하는 기자, 수많은 기자군상들을 그려낸 러프스케치 안에는 풍부한 현실감이 숨쉬고 있다. 돈과 사회 계급을 생각케 한다. 자연스레 최근 읽은 소설 ‘모피아’를 떠올린다. ‘모피아’ 역시 그러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지배되고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그 이야기가 모피아 안에 있었고 이 소설 B파일 안에 있었다.

 

때문에 이 소설을 모두 읽고 났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B파일인가,

아니, 

이 사회 자체가 B파일인 것은 아닌가,

라고. 

 

 

추신. 

트위터 탐정 설록수 1차 마감을 무사히 끝내서 잠시 쉬며 (봄까지 마감은 켜켜이 쌓인 상태지만 일단 숨은 돌리느라) 밀린 숙제를 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쓰신 최혁곤 작가님의 새 책 B파일이 너무 안 팔린다는 안타까운 소문(이 무슨!) 을 듣고 몇 글자 읊조려 봤습니다.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사실 아직 B컷 안 읽고 버팅겼는데 바로 읽어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스 팩터 -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
앤디 하버마커 지음, 곽윤정.이현응 옮김 / 진성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xx년 1월 1일 00:00

 

새해를 맞이해 원대한 결심을 했다.

나는 유명인이 되겠다!

하지만 나는 유명인이 되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데다 조건도 좋지 않다. 3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에 대단찮은 외모,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내. 결혼 계획은 물론이고 여자친구도 없다. 이런 내가 유명해지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감이 잡힐 리 없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유명’ ‘인기’ 등의 단어로 검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권의 책을 찾아냈다. ‘폭스 팩터’ 부제가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이다. 뭔가 제목이 그럴 듯하다. 뭣보다 이 책의 제목인 ‘폭스 팩터’가 무슨 뜻인지 흥미가 생긴다. 바로 지르기로 한다. 주문 완료.

 

 


20xx년 1월 3일 23:45

 

새해 첫 출근부터 야근을 했다. 빌어먹을 상사는 나에게 일거리를 주지 못해 안달인 것 같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보니 기쁜 소식-아니 물건-이 도착했다.

 

폭스 팩터, 무의식을 조종하는 매혹의 기술.’

 

책이 가볍고 몇 장 안 되는 것이 금방 읽겠다 싶었다. 일단 목차를 펴서 대충 훑는데 ‘살인자 폭스’라는 단락이 확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그 단락에서 인용한 인물 중 한 명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오제이심슨이 아닌가? 현장에서 잡혔는데도 풀려났던 오제이심슨... ... 분명 일전에도 어떤 책에서 오제이심슨의 이야기를 봤던 것 같은데. 흥미가 일었다. 씻고 나와서 바로 읽어주겠다.

 

 

20xx년 1월 4일 03:56

 

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신을 차려 보니 새벽 3시를 넘겼다. 나도 모르게 그만 집중을 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이 책을 독파해 버렸다. 폭스 팩터는 첫 장부터 날 사로잡았다. 일단 폭스 팩터의 단어 뜻이 아하! 싶었다. 폭스 팩터는 ‘자신을 매력적으로 부풀리는 어떠한 힘’을 가리킨다. 그리고 폭스 팩터의 이름을 짓게 한 이 책 첫 장에 등장한 폭스 박사란... ... 설마 그 폭스였을 줄이야! 나는 그만 “크핫!”하고 웃었고, 연이은 ‘폭스박사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두 번째 장의 안티 폭스 팩터에서 언급된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은 겉모습 때문에 첫 인상이 좋지 않았다. 허나 이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그 첫 인상을 깨고 보다 큰 감동을 주었다. 세 번째 장은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다. 너무나 겉으로 보이는 인상이 좋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르고도 용서를 받는 살인자 폭스들!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xx년 1월 7일 14:02

 

며칠 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 취소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 폭스 팩터를 경험했다.

  

나는 삼성동에서 일한다. 일은 지리멸렬하고 선배와 후배는 늘 나의 스트레스를 돋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의 낙으로 삼는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하기가 무섭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사우나 1층에 붙은 매표소처럼 작은 커피집의 단골이다-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다. 이 집 커피는 다른 집 커피들과 달리 매우 진하다. 게다가 난 이 커피집의 아가씨가 마음에 든다. 딱히 예쁘지는 않다. 그렇게 친절하지도 않다. 화장도 안 하고 오고, 어쩔 때엔 상당히 피곤한 듯한 표정도 한다. 아! 하품하는 것도 봤다! 헌데 이 아가씨가 어딘지 모르게 참 마음에 걸린다. 신경이 쓰인다. 그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무엇을 드릴까요?”라고 건네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볼우물이 살짝 패이게 웃으며 “도장 찍어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은근한 매너에,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정말 소중한 듯 내미는 그 작은 동작이... ...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이 아가씨가 상당히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수도 잦다. 가장 심한 실수는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내 얼굴을 아직도 못 외운다는 것이다! 나는 늘 가서 같은 커피만 마시는데도 이 아가씨는 내 얼굴을 도통 못 외우고! 늘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안드로이드도 아니건만! 게다가 손님이 몰릴 때엔 내게 줄 음료를 다른 손님에게 내밀며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헛기침을 하며 “그거 내거...”라고 말하고, 이 아가씨는 얼굴이 벌게져서 몸을 깊이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외친다. 나는 약간 짜증이 나고 이제는 이 가게에 오지 말까... ...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이면 다시 이 가게에 온다. 이상한 일이다. 오늘도 이 아가씨는 내 얼굴을 못 외웠고, 내 주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거스름돈마저 틀렸는데 나는 이 아가씨를 내일 또 보러 오고 싶다! 보이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단 말이다, 그 볼우물이!


바로 이게 폭스 팩터다. 폭스 팩터란 그 사람이 저지르는 사소한 실수들마저 무마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힘이다.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나 미소에 그만 나도 모르게 너그러워지게 하는, 살인마저 “세상에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케 하는 무서운 힘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사소한 실수로도 질책을 받는다. 왠지 내 말을 선배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심지어는 '존재 자체가 흐릿하다'는 말마저 듣는다. 왜 나는 이런 대접을 받을까? ... ... 왜 나는?

 


20xx년 1월 8일 01:34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니 방법은 역시, 폭스박사가 되는 것이다. 주변의 폭스박사를 생각한다. 그 커피집 아가씨의 시선이나 동작을 생각해 본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다. 사람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 법을 아는 아가씨였다. 사람들은 그런 것에 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니 나는 평소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마주치고 가만히 바라보며 말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 핸드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차림새도 그닥 신경쓰지 않고 다녔다. 가끔 피곤하단 이유로 머리도 안 감고 출근한 때도 있었다. ... ... 이러한 내 모습이 나를 유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을까?


때문에 나는 거울 앞에 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연습한다. 손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힘을 주는 법을 생각하고 부드럽게 말해본다.

 

“안녕, 좋은 아침이네.”

“밥 먹으러 가자.”

 

낯간지럽긴 하지만 일단 실천해 보기로 한다.

 

 

이번 서평은 '협찬은 아무나 받나' 출간을 맞이하여,

'협찬은 아무나 받나'와 같은 문체로 적어 보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