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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잠시 장충동에 살았었다. 몇 걸음 걸어나가면 좌로 태극당이 우로 장충동 족발집들이 보였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장충단공원과 장충체육관이었다. 다른 곳들은 참 자주도 가보았으나 장충체육관은 손에 꼽힐 정도로밖에 들르지 않았다. 처음 들른 것은 이곳에 살 때조차 아니었다. 십 년도 더 전에 한 권투영화 시사회를 한다고 하여 장충체육관을 찾았었다. 영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시사회를 하기 전 영화사 관계자들이 장충체육관 중앙에 임시로 세운 링 위에 올라 “이곳에서 참 많은 시합이 있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던 것은 기억한다. 적막이 흐르고 사위가 껌껌해지더니 영화가 시작되었다. 12라운드처럼 묵직한 울림이 가득찬 그 영화... ... 대박이 안 났으니 내가 제목도 기억 못하겠지만서도 그 때의 추억은 그 날 영화가 끝나고 나와 맞았던 그 해 처음 내렸던 눈처럼 기억에 아릿하게 새겨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찾은 장충체육관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전혀 달랐다. 장충체육관은 땡처리로 유명해져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하나 샀다. 그 운동화를 얼마나 신었었는지 또 그 운동화를 언제 내다버렸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오늘 다시 한 번 장충체육관을 만났다. 운동화도 영화도 아닌 순수한 사각의 링, 권투의 흥분이 솟구치는 모습 그대로.
진정한 능력자'들'을 위한 소설이다
최민석의 능력자
가끔 그런 소설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손이 가고 마음이 끌려 어느덧 집어서 읽기 시작하는 소설. 처음 이 붉은 표지의 소설이 서점에 깔렸을 때부터 나는 이미 소설에 홀려 있었다. 그것은 내가 유달리 붉은 표지의 소설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며 또 이 소설의 제목이 ‘초’능력자에서 ‘초’가 빠진 단순한 능력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나는 동시에 이 소설의 제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여 무의식중에 능력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나의 무의식은 언제나 나보다 똑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이 그토록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 소설 속에 내가 어린 시절부터 한참동안 기억하던 장충체육관이 새록새록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새롭게 만난 장충체육관은 소설 속의 이야기이며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나 자신이란 소설 속의 화자이자 지금의 나 자신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한 부분을 따온다면 그래, 샤덴프로이데! 샤덴프로이데!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허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쓰지 못한다는 것과 동음이의어다. 소설을 쓰는 자는 소설을 쓰면서 소설을 읽고 소설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가 늘 의심하고 자신의 능력을 비웃으면서도 또 쓰게 된다. 끊임없는 반복의 매커니즘 속에서 소설가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단순한 반복 속에서 점점 커져서 마침내는 마음 속 깊은 곳을 갉아먹어 어둠과 망각이라는 깊은 절망으로 소설가를 빠뜨리는데 이 소설 속 능력자‘들’이 그러하였다.
미치광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 적이 있는가. 듣다 보면 뜻밖에도 너무나 이치가 맞고 사리에 통달한 듯하여 감탄을 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 속의 미치광이가 그러하다. 또 이 미치광이와 어울리는 소설가는 너야말로 미치광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미치광이를 미치광이가 아니게 만들고 소설가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또 그러한 모두를 하나의 능력자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이자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그 무언가 어찌 보면 ‘초’능력이라는 단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이 붉은 책,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장충체육관에 발을 들이게 한 이 책 속에 있었다.
덧붙이는 말.
좋은 소식이 있어 서평과 함께 소식을 전합니다. ‘홈즈가 보낸 편지’ 증쇄 했습니다. 더불어 ‘트위터 탐정 설록수’의 출간이 좀 빨라질 것 같습니다. 포스트잇 이벤트는 ‘트위터 탐정 설록수’와 함께 진행할 예정으로 현재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언제나 응원해주시는 분들 감사드리오며 날이 많이 춥습니다.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으니 저는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