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같은 아이 책 먹는 고래 34
이준관 지음, 어수현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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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 가운데 매서운 바람과 함께 겨울이 성큼 찾아왔습니다. 마음이 허해서인지 유독 더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바람이 온기를 빼앗아가버려 한껏 움츠린 몸으로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바로 일곱 편의 아름다운 동화가 수록된 <풀꽃 같은 아이>입니다.

 

 

풀꽃 같은 아이/이준관 글/어수현 그림/책 먹는 고래 34/고래책빵




큰 숨을 내쉬고 움츠렸던 몸뚱이를 펴 봅니다. <풀꽃 같은 아이> 속 순수하고 어여쁜 동화들이 전해준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가 서서히 퍼져 나갑니다.

모든 것이 바쁘게 변하고 흘러가는 오늘날, 잠시 멈추고 소중한 것을 떠올려보라고 소곤거리는 동화책입니다. 얇은 책, 짧은 글이지만 천천히 읽어내려가면 글과 글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더 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소외받는 이와 남들을 괴롭히는 마음에 대한 동화가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풀꽃 같은 아이>, <눈물을 먹고 사는 여우>, <별 등대지기>를 통해 아이들이 소외받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풀꽃 같은 아이>, <별 등대지기> 두 편에서는 엄마가 무당이라서, 떠돌이라서 놀림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억울한 오해를 받는 억울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두 아이의 대응은 극과 극인데 결말은 두 동화 모두 좋지 않아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진중한 의미를 담아 그려냈겠지요.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고 모두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결말이었어요.

 

 


 

 

<눈물을 먹고 사는 여우>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친구를 괴롭혀 울면 눈물을 모으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자꾸 '여우'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불안이 커져가던 아이는 결국 괴롭히던 친구처럼 울고 맙니다. 눈물이 뚝! 뚝! 과연 그 눈물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이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은서를 볼 수 있겠죠. 저도 덩달아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거지와 왕자>, <마지막 손님>, <눈사람이 있는 골목>은 곁을 돌아볼 수 있는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살다 보면 힘겨운 시기가 분명 있습니다. 그 상황에 처하면 주위는 보지 못하고 본인의 고통과 상처만 크게 다가옵니다. 그러면 자꾸 불만이 쌓이고 분노를 터뜨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정한 방법으로 시련을 벗어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깐만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관계없는 이일 수 있지만, 소중한 이일 수 있습니다. 도와주고자, 바로잡고자 애쓰는 마음과 행동으로 세상의 온기를 높여주는 이들의 이야기가 정겨운 그림과 함께 펼쳐집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리를 절룩거리는 아저씨지만, 세상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생선 장수 아저씨가 들려주는 바다와 고래 이야기는 마음을 벅차오르게 합니다. 아저씨가 들려주신 바다가 보고 싶어 용감하게 떠났지만 못 본 아이들이 분명 언젠가는 이 세상의 끝에 있는 바다에 꼭 가볼 것이라고 믿으며 책장을 덮습니다.

 

소중한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주는 어여쁜 동화책입니다.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동화책 <풀꽃 같은 아이>를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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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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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쫓아오는밤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소설추천

 

"도망칠 때에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프롤로그. 첫 문장

 

 

 소설Y 대본집 #06 <폭풍이 쫓아오는 밤> 

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무언가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 강렬한 시작으로 시작한다. 주황색 표지를 한 장 넘기는 순간부터 이서의 목숨을 건 탈주에 빠져들어 함께 달리게 된다.

 

 

소설Y 대본집 #06 - 폭풍이 쫓아오는 밤 - 최정원 지음 - 창비

 


아빠, 신이서, 신이지. 주인공 이서네 가족 구성원이다.

열일곱 살 언니와 여섯 살 여동생, 11살 나이차 늦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지는 엄마가 재혼해서 낳은 동생이다. 엄마는 이서와 차를 같이 타고 가다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로 죽었다. 이서는 그날의 진실을 가슴 깊이 묻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사랑받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이서야, 우리 더 행복해지자."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야. 행복하려고 웃는 거지."

 


 

 

엄마, 남수하. 또 다른 주인공 수하네 가족 구성원이다.

열일곱 살 수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축구 선수였다. 그 사람한테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행복했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야. 안 돼. 싫어!"


 

 




 

이 소설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과 쾌락 그리고 '돈'이 응축된 비극이었다. 자신의 위용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탐욕은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게 만들었다. 이 소설의 괴물은, 악마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소설 중반에 등장하는 악마에 관한 서사는 우리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 에 등장하는 악마는 과연 누구인가? 죄를 지은 자만을 벌한다는 악마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떳떳할 수 있는가? 세상에 태어나 못된 마음을 품거나 나쁜 말을 하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을 만큼 결백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심술궂게 굴어야지가 아니더라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삶이다. 죄가 있다, 없다는 판단과 진위 여부는 누가 하는가? 그렇기에 악마는 죄인만 벌한다는 말은 사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더 큰 공포와 불안을 야기했고, 그 결말은 처참했다.

이런 이야기를 업은 악마를 탐하는 자와 허영과 돈을 좇아 악마를 돌보는 자가 불러온 재앙은 그 옛날 오지 마을을 집어삼킨 것처럼 이서네 가족이 모처럼 떠난 가족여행 장소인 하늘뫼 수련원을 송두리째 헤집었다.

 


 

신이서 & 남수하

이제 열일곱 살인 이 아이들은 마음에 큰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 가족, 가족이기에 서로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울타리가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이지만, 피로 연결된 끈끈함이 풀리지 않는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서와 수하는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받고픈 가족, 결국 가족 때문에 힘들어한다.

엄마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서는 감정이 흐르지 못하게 동여맨다. 꽉 막힌 마음이 답답하고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워질 때쯤 달린다. 세상의 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공격적이고 전투적으로 뛰는 것이다. 뒤쫓아오는 상대를 내팽개치고,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꿰뚫고 나아가는 질주.

우연히 이서의 질주를 보게 된 수하는 이서에게 마음이 쓰인다. 한때 힘차게 필드를 누비던 자신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이서의 팔에 있는 상처 그리고 이서 그 아이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 여행을 온 이서와 교회 수련회를 온 수하.

둘 다 '하늘뫼 수련원'에 오고 싶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어긋나게 하기 싫었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만 벌한다는 괴물을 만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괴물, 악마의 정체를 떠벌이는 박 사장과 함께 괴물을 잡기로 한다.

벌받아야 되는데 벌 안 받고 있는 그런 사람

 


이서를 괴롭히던 죄책감, 죄의식

수하를 괴롭히던 두려움

괴물을 잡으려는 두 아이는 그 고통과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그 사람처럼 될까 봐 두려웠던 수하는 계속 엄마 뒤에 숨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서와 함께 괴물과 싸우게 되면서 자신을 시험하고자 한다. 눈앞의 누군가에게 분노를 퍼붓기보다, 눈앞의 누군가를 돕는 게 먼저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부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지독한 집착, 악의로 이서를 찾는 괴물의 모습에서 자각을 하게 된 이서는 괴물을 똑바로 마주한다. 괴물은 그날 엄마가 기억하는 이서의 마지막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피하지 않았다. 분명 끔찍하고 상처 입었을 텐데 엄마는 이서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서를 마주 보려 했다. 꾹꾹 빗장으로 잠가뒀던 방 속 마음들을 엄마에게 다 쏟아내버리고 고개를 돌려버린 이서를 마주 보려 했었다. 이서는 엄마 대신 괴물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난 그만 달릴 거야."

"다시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거야. 나도 웃을 거야."

"웃고 싶어."

 



 

 

 소설Y 대본집 #06 <폭풍이 쫓아오는 밤> 

 

 

목숨을 건 긴박한 추격전에 덩달아 숨이 가빠지고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괴물 자체보다 그 괴물을 '밥'이라 표현한 회장 같은 인간의 암흑 같은 욕망이 악마라 불러야 할 것이다. 불공정한 세상 속 악마의 유희를 위한 공간에 발을 잘못 디딘 이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자, 행복해지고자 괴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였다.

 

다시 가족을 잃는 것보다는 내가 죽는 게 낫다는 피맺힌 절규 같은 이서의 말에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통감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엄마가 원하는 바가 아닐 테다. 수하는 주위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 사람과 동류일까 봐 두려워하고 외면하기만 했다. 괴물에게 쫓기는 끔찍한 상황에 처했지만, 이서도 수하도 상처를 딛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서와 수하, 이렇게 둘이 함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주 대신 마법의 힘을 믿기 시작한 이서와 다시 축구를 시작한 수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늘, 다시 만난 그들의 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한순간에 읽히는 소설, 한편의 영화처럼 오감으로 와닿는  소설Y 대본집 #06 <폭풍이 쫓아오는 밤> 

조그마한 의심도 놓치지 않고 균열을 부르는 저주 대신 마법의 주문을 외워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우리 더 행복해지자."

 

소설Y클럽 5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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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가 졸졸 따라와 높새바람 53
안점옥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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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방송 시대가 되면서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여 동영상 플랫폼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소비자에 한정되었던 일반인들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할로 확장되었다.

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시 상위권을 차지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이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진입장벽이 낮다는 장점과 동영상 촬영, 편집 관련 앱의 보편화 등의 이유로 유튜버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유튜브가 졸졸 따라와/안점옥 지음/높새바람 53/바람의아이들

 


<유튜브가 졸졸 따라와> 동화는 초등학교 6학년 안주찬이 유튜브 채널 '초등 한 끼'를 운영하면서 겪게 되는 변화와 갈등 그리고 화해와 성장을 담고 있다. 유튜브의 파급 효과와 영향력 그리고 부정적인 면과 우려를 잘 그려내고 있다.

 

 

 

주찬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과제로 '우리 가족의 일요일'이라는 주제로 3분짜리 영상을 찍었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주찬이의 모습을 누나가 찍고 편집해 준 그 영상이 베스트 영상으로 뽑혔다. 이후 부모의 이혼으로 혼자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주찬이는 영상을 찍으며 영상 속 자신과 놀기도 하고,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재미로 시작했던 유튜브로 존재감 없던 자신, '안주찬'이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좋아해 주니 기쁘고 행복했다. 주찬이가 유튜브에 진심이 되게 된 이유에 울컥했다. 자신을 사랑해 주고 인정해 주는 타인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주찬이는 요리학원 강사인 엄마와 요리를 좋아하는 아빠의 영향인지 입맛이 예민하고 요리를 잘 한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 주제도 '음식'이다. '초등 맛집 지도', '초등 한 끼', '맛 대 맛', '김밥 맛집 지도' 등 음식 관련 콘텐츠를 주로 제작했다.

살짝 열기가 식었지만 '먹방'에 열광하던 시기가 떠올랐다. 소확행이라 하여 음식, 맛집 정보를 나누는 우리네와 적은 용돈으로 먹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간식을 소개하는 한 끼 유튜버 주찬이와 팬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점점 높아져가는 관심과 인기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마는 주찬이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저자는 유튜브에 빠져드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주찬이 담임 선생님이 들려준 어린 시절의 밤 줍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에만 빠져 주위를 살피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생생한 경험으로 풀어냈다.

 

주찬이와 절친 나정 그리고 아역 배우 한결이 모두 주인공이 된 기분에 취해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지도해 주고 감싸주는 어른들과 친구 덕분에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죄책감, 후회를 되새기며 성숙해졌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봐 준 와따껌 덕분에 어린 친구들의 눈물은 마르고 웃음소리가 따뜻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읽으면서 이야기 나누기 좋은 소재와 주제의 책이다. 요즘처럼 1인 방송 시대에 시의적절한 책이라 더 와닿는다. 어린이의 관심과 어른의 우려를 세심하게 살핀 <유튜브가 졸졸 따라와>를 추천한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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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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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트렌드에 자유로울 수 없다. 개성이 중요시되면서도 개성 또한 타인의 인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인이 중시되는 사회면서도 개인이 실종된 느낌이다. 플랫폼 안에서 끝없이 보여주고 누르고 평가하면서 소비되는 하루가 반복되면서 오프라인 세계의 '나'와 온라인 세계의 '나', 두 인격이 진짜를 가리듯 충돌하기도 한다.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도우리 지음/한겨레출판



그래서 도우리 작가의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가 들려줄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허심탄회 인정할 건 인정하며, 놓치거나 가려진 이면을 표면으로 끄집어내고자 하는 청년의 숨을 보았다. 또래들이 내쉬는 숨과 입김을 쫓아 도우리 작가가 선정한 9장의 중독 문화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사회문화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향유하는 듯 하나 실제로는 가지지 못한 가상, 환상 같은 간극에서 오는 허탈 그리고 진정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같이 헛헛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하던 것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걸어나가니 무리에 휩쓸려나가게 된다.

 

이 이상하고도 오묘한 중독 문화를 제대로 해부해 보는 도우리 작가의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재밌으면서도 씁쓸하고, 나를 보는 듯해서 헛웃음을 흘리다가도 아차 싶어 통감하였다.

 

도우리 작가가 선정한 대표 중독 9가지

 

갓생·배민맛·방꾸미기·랜선 사수·중고 거래·사주·안읽씹·데이트앱·좋아요

청년의 시기를 이미 살짝 지나온 나로서는 다행히? 몇 가지 중독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하나에만 빠져도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라 굳이 9가지 중독 모두 경험하지 않더라도 빠져들어 읽게 된다.

 

신조어들을 접할 때마다 참신함에 놀라게 된다. 축약어, 신조어 등 특정 세대가 사용하는 언어는 차이와 단절을 야기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있지만, 언어의 역사성을 고려한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다만 언어의 변화가 재미나 멋뿐만이 아니라 본질을 잃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전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신조어들을 접할 수 있다. '갓생', '안읽씹', '배민맛', '스벅맛', '체인지 룸 제너레이션'…… 현상과 세태를 반영하는 언어들을 보면서 모든 것들이 빠른 시대라는 걸 또다시 실감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무언가'에 중독되어 살아가나 보다.

 

 

9장에 걸쳐 살펴본 중독 문화 중 와닿는 주제들이 있다.

1장. 갓생 - 어른 되기 어려워진 시대에 어른 되는 법 -에서는 세계적인 현상인 갓생(god+生)을 분석하고 있다. 신이 살아가는 건데 일찍 일어나고 명상하고 물 한잔 마시는 등 소소한 일련의 일상 실천을 일컫는다. 저자는 이 모순부터 시작해서 갓생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이라 말하고 있다. 씁쓸하지만, 평이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희귀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인지 "갓생 사는 법 공유함 : 다시 태어나."(p.31)라는 표현이 도는 거란다.

 

특정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버린 기준과 갓생의 문은 좁디좁아 청년들이 더 크게 좌절하게 된다. 그래서 과감히 저자는 갓생에 집착하는 것을 그만두고자 한다. 마케팅 산업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갓생에 목매달기를 그만두고 진짜 삶으로 눈을 돌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3장. 방꾸미기 - 누구나 예쁜 집에 살 수 있다는 달콤한 말 -에서 독일의 영화평론가 볼프강 M. 슈미트가 <인플루언서>에서 "신자유주의하에서는 스스로를 가꾸고 파는 행위가 허용되고, 안팎과 공사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꾸준히 상품화해야 하는 요즘, 진짜 집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리송하다. 저자의 지적처럼 인테리어가 주거의 일부분일 뿐이다. 예쁜 집만 보여줄 게 아니라 기본적인 시설과 환기, 채광 그리고 치안이 잘 되는 안전한 집을 알고 싶다.

 

 

4장. 랜선 사수 - 그 많던 사수는 누가 옮겼을까 -에서는 '돌봄 노동'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인식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 시대에 돌봄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만큼의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는 더디고 힘겨우니 어찌 된 걸까.

 

 

6장. 안읽씹 - 톡포비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넘어 -에서 주장하는 '대화할 권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전화보다는 톡이 편해진 세상이지만, 개인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업무 관련도 톡으로 진행되면서 '톡포비아'에 대한 호소도 커지고 있다. 저자는 퇴근 후 업무 연락을 금지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관계를 더욱더 진하게 만들어주는 침묵, 기다림의 공간을 지킬 수 있는 '대화할 권리'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talk, 톡의 사전적 의미로 회귀할 때이다.

 

 

9장. 좋아요 - #외로움 #중독 #사회 - 좋아요가 불러온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고 든 생각은 '좋아요'는 권력이자 지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박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저자는 이를 끊기 위해 '괜찮아'를 제안한다. 괜찮아. 그냥, 괜찮으면 뭐 어때.

 

 


 

 

다양한 중독 문화를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다른 주제와 사회 현상으로 시야가 확장되기도 하는 즐거운 집중 시간이었다. 사주에 대한 관심이 '1'도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대안 종교의 치유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만큼 숨 가쁘게 치열하게 인정받고자 자리 잡고자 노력하는 청년들이 그려졌다.

여가를 보낼 때 대부분 여기 소개된 9가지 중독에 치중한다면 도우리 작가처럼 비틀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쫓아다니는 삶 말고 만들어가는 삶을, 소비하는 삶 말고 채워가는 삶을 나눌 수 있는 중독을 사랑하고 싶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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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마에카와 호마레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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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카와 호마레 작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흔적을 지워드립니다/마에카와 호마레 지음/라곰


 

 

이 책을 만나니 예전에 읽었던 에세이가 떠올랐다. 김완 작 「죽은 자의 집 청소」와 무라이 리코 작 「오빠가 죽었다」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금 찾아왔다. 타인의 삶을 제3자로 바라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짐했던 자세와 약속들도 함께 따라왔다. 오늘을 살고자 했던 나! 여전히 삶의 무게는 묵직했고, 덧없이 여겼던 일상은 소중해졌고, 어김없이 찾아오던 아침은 찬란했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다.

[데드모닝]의 사장 사사가와, 직원 모치즈키, 폐기물 수집 운반업자 가에데, 아르바이트생 아사이 그리고 일식집 꽃병의 사장 에츠코. 이들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겪었고 그 상실은 삶을 바꾸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들은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사이사이 자연스럽게 공개된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면서 이해되고 공감하며 나 또한 치유받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까.

 


단조롭고 지루한 바닷가 마을이 주인공 나 '아사이 와타루'의 고향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고향을 떠나 무작정 상경하였다. 하지만 도쿄에서의 삶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마치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기대와 희망을 품지 않은 채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그의 인생에 변곡점이 찾아왔다. 소원했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른 후 다시 도쿄로 돌아와 들어갔던 일식집 '꽃병'에서 자신같이 상복을 입은 사사가와를 만난 것이다.

 

사사가와는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을 운영 중이다. 책 속에서는 '상상력'으로 표현되는 데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으로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을 지워주는 곳이다. 아사이는 [데드모닝]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주변과 마음을 나누게 된다. 떠다니던 삶에서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삶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사람의 감정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 어려운 거지." p.23

 

 

아사이는 자신이 흔적을 지워야 하는 죽은 자의 삶을 알고 싶어 하고, 남은 이에게는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를 전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자신이 마지막 흔적을 지우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그들을 애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일부야, 조심히 들어." p.67

"누군가가 아끼는 걸 나도 똑같이 소중하게 다루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야." p.120

 

 

한적하다 못해 지루함이 응축된 고향에서 벗어났지만 사회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변두리를 맴돌던 소년이 특수청소를 하면서 삶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어느새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그는 지난 시절 항상 지니고 다녔던 전자사전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앞으로 걸어나간다. 빛나는 아침 햇살로.

 

 


"누군가의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의 단편을 운반한다고 생각하지." p.246

어디선가 새 생명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날 때, 또 다른 누군가의 심장이 멎는다.

매일 반복되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이치가 묘하게 현실감을 가지고 가슴에 와닿았다. p.253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주변인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참으로 다양하고 가슴 아프며 안타까운 죽음들이 등장한다.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에 죽음 또한 다 달랐다.

똑같지 않은 죽음, 그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죽은 이를 제대로 배웅하기 위해 사사가와와 아사이 그리고 가에데는 특수청소를 하고 폐기물 운반을 하였다. 이렇게 다정하고 진정 어린 마음으로 마지막 흔적을 지워주는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고립사 혹은 고독사, 자살. 현대사회에서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는 죽음의 형태가 담겨있어 시사적이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1인 가족 규모가 커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네 모습인 듯 하여 무거운 마음이 들면서도 상실 너머 애도와 치유를 담고 있는 이야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자신의 삶을,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다정한 그들이 우리였으면 좋겠다.

 

 

 

"아침은 죽은 게 아니야. 우리가 맞아주기를 계속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p.193

 

[데드모닝] 어두운 밤의 바닥에서 슬픔을 감싸 안으며 아침은 죽었다. 아침은 오지 않는다. 아침을 부정했던 사사가와의 단장에 가슴이 미어졌다. [굿모닝]으로 새 출발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죽음 이후 흔적으로 죽은 이를 만나고,

그들의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면 지금의 소중함을 뚜렷해질 것이다.

 

 "안녕, 오늘도 좋은 아침이야."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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