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주의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5
설재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월 내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장마가 7월 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늘어가는 피해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릴 듯 쏟아붓는 이 비도 이렇게 야속한데 1년 내내 비가 그치지 않는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접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범람주의보/ 설재인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저자인 설재인 작가는 작년 서울 반지하 침수로 일가족 참사 사건을 접하고 이 글을 쓰고자 결정했다고 한다. 그 간절한 마음이 소설을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햇볕마저 없으니 마음까지 썩었단다."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혜인이네는 아빠, 엄마, 혜인이 이렇게 3인 가족이다. 하지만 어느 날은 4인 가족이 되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아버지 서창식씨를 데리러 가야 한다, 다리 밑으로.

 

 

 

 

한 달 동안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26일 올해 장마가 종료되었다는 기상청 발표가 있었다. 긴 장마 기간과 높은 강수량은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였다. 그런데 소설 <범람주의보> 속 서울은 1년 내내 비가 온다.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까 싶은데 소설 속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누비스 사의 워터프루프 시스템 덕분에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보송하다. 자연적인 햇볕이 없어도 누비스 사의 일광욕 센터에서 우기 이전의 햇빛과 동일한 빛을 쐰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오히려 우기 덕분에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참 놀라운 기술력과 적응력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감춰져 있었다. 

 

 

통협동

쏟아지는 비로 모든 일상이 붕괴되어가는 시기에 도시의 물길은 한곳으로 흘러들어갔다. 도시는 우기에 대비하여 새롭게 단장하고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그 도시의 빗물과 오수, 폐수는 정화되지 않은 채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게 두었다. 아니 그 물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통협동은 도시의 오염 물질이 모여들어 질척이는 장소가 되었고, 여전히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피부에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

 

 

혜인이는 학교에서 비가 내리기 전과 비로 인해 망가진 서울을 배웠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따라 통협동으로 가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깊숙한 곳에 참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혜인이가 교육받은 이야기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도시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은 통협동의 참혹한 현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번 삐뚤어진 구석을 감각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어."

 

 

소설에는 부당한 일을 두고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부당한 일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같이 싸우는 이,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 무관심한 채 편의만 누리는 이 그리고 부당한 일에 소리높이는 이로 인해 피해볼까 무서워 전전긍긍하는 이.

 

혜인이 부모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 통협동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자신의 가족을 지킨 죄를 갚고자 스스로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할아버지를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들의 피해가 두려워, 자신들의 몫이라 여긴 유산을 뺏길까 두려워 '노망'난 할아버지라고 양로원에 입원시켜버린다.

 

 


 

 

혜인이는 할아버지와 참 많이 닮았다. 본인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곧 자신이며, 자신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혜인이 곁에는 동료가 있다. 서로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동료가. 그들과 힘을 합쳐 할아버지를 양로원에서 구해내면서 혜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진 듯하다. 보장되고 예정된 미래가 아닌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무궁무진 펼쳐지는 예측불가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혜인이를 절로 응원하게 된다. 멋지다, 혜인아!

 

 

"나는 이슬이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건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야 관찰이 가능한 아름다움이니까.

그러니 내게 이슬이란, 노망과 같은 층, 같은 자리에 위치하는 단어."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힘들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녹슬지도 침수되지도 않은 감각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감각기가 느끼는 바를 흐르는 물에 띄워 세상으로 내보낼 것이다."

 

"나는 좋았다. 아빠의 손이 지나간 뺨에 성여민의 것과 비슷한 무늬가 생겼다.

곧 사라지겠지만, 무늬를 품어 본 경험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엔

아주 큰 차이가 있을 테니까."

 

 

혜인의 생각과 표현들이 마음에 와서 자꾸 부딪친다. 무섭고 아리고 따끔하기도 하다. 그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 죄책감, 분노, 공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거센 파도가 되어 들이닥친다. 분명한 건 소설 속 통협동의 상황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부끄러워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처럼 홀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혜인이는,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곁을 둘러보는 눈길과 관심이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외면했던 자신이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오수향 할머니를, 할아버지처럼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고 남들처럼 혐오해도 된다는 성여민을,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으면서 냄새나는 통로에서 대기하는 센터 청소원 인혜 씨를, 꿈을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게 된 유진이를 잊지 말자. 나만 아니면 되는 안온하고 편협한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하는 건강하고 다정한 세상을 그려본다. 혜인이가 찍은 영화 속 세상이 꼭 그럴 것 같다.

청소년이 꼭 읽었으면 하는 추천도서 <범람주의보> , 혜인이와 여민이를 만나 친구가 되는 청소년이 많기를 소망한다.

 

 

"언제까지 사람들이 모르는 척 버틸 수 있을까?

어른들은 이상하게도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최후의 순간까지 운이 좋을 거라고 여기는 듯 행동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들을 매우 뻔뻔스럽게 해내곤 한다.

가끔 보면, 신이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는 듯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담으로 과학하기
박재용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괴담으로과학하기 #박재용 #생각학교

 

역시 여름 하면 '괴담'이다. 며칠 전 읽었던 책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2>과는 다른 결로 괴담을 바라보는 책 <괴담으로 과학하기>를 연달아 읽었다. 과학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인 박재용 작가는 '괴담'이라는 장르를 과학적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비단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요즘 이슈화되는 NFT, 인공지능 AI, 챗 GPT까지 아울러 인간, 사회, 과학을 이해하는 괴담집이다.

 


괴담으로 과학하기/ 박재용 지음/ 생각학교




총 11가지 괴담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괴담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인문과학 이야기 그리고 <더 알아보기>까지 알차게 다루고 있다.

 

흡혈귀 - 좀비 - 폴터가이스트 - 유령 - 외계인 - 도플갱어 - 마녀 - 고양이 - 뱀 - 평행우주 - 인공지능

 

이 책에 실린 괴담은 기이하고 무섭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첫 번째 <흡혈귀 : 피를 빠는 광견병 환자>부터 흡입력 강한 괴담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non non estis. 아니야, 넌 아니야.'

 

박재용 저자는 흡혈귀 전설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준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피'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피의 다양한 측면은 피를 중시하고 선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경향으로 이어졌고, 문명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흡혈귀 전설이 생겨나게 되었다.

부제인 <피를 빠는 광견병 환자>라는 표현처럼 흡혈귀는 광견병 감염자나 감염 동물에서 유래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흡혈귀와 광견병 감염자를 비교해서 설명해 주니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흡혈귀가 광견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보이는 증상을 좀 더 과장되고 험악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 그치지 않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흡혈박쥐, 모기, 거머리 등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흡혈귀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악당'을 일컫는 비유로 사용되었던 흡혈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괴담 소재는 익숙하지만 이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사고를 기르는 과정은 색달라서 흥미로웠다. 좀비가 식민지의 고달픈 노예들과 관련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과 좀비에 관한 괴담을 식민지 농장주와 관리인이 노예들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퍼트렸다는 사실은 경악 그 자체였다. 마녀사냥 또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잔인무도한 학살극이었기에 괴담이라기보다는 비극이자 부끄러운 역사이다.

박재용 저자는 괴담을 무서운 이야기로만 한계 짓지 않고 시대의 바로미터로 바라보고 있다. 인터넷상의 사이버 블링, 악성 댓글, 사실 확인되지 않은 콘텐츠 공유, 인터넷 마녀사냥 등 현대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녀사냥과 폭력을 화두로 삼았다.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한다. 과학 이론은 계속 수정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의 우리는 분명 옛날 사람들보다는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모든 것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유령'이나 '폴터가이스트' 그리고 '초자연적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있는 것이지, 그에 대한 비과학적 설명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박재용 저자는 괴담의 영역에 평행우주와 인공지능을 포함시켰다. 흥미로운 시선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상당 부분 호응하였다. 챗 GPT가 출시되고 인류가 보여준 우려와 두려움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에 관심 있게 읽어나갔다. 특히 공공재로 인공지능을 관리해야 한다는 저자의 논리에 대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적극적인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공지능이 여러 직업군들을 긴장시키고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구축되는 게 기술 발전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괴담으로 과학하기>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있다. 횡행하는 괴담의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의미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을, 사회를, 세상을 좀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2 : 동아시아 편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이야기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덥고 습한 여름에 어울리는 이야기, 읽으면 어느새 등골이 오싹해져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는 '괴담'이 아닐까 싶다. 유튜버 괴담실록이 동아시아의 괴담들을 모아 모아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2>를 출간하였다. 무서운 이야기를 무서워하면서도 이끌리는 이인지라 반가운 소식이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2/ 괴담실록 저/ 북스고




이번에는 중국, 일본, 한국의 괴담들을 집대성한 작품집이다. 혹자는 무서운 이야기를 왜 읽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무서움, 오싹함을 넘어 삶을 관통하는 우리네 이야기라 읽는다. 괴담은 인간의 집착, 욕심, 욕망이 불러온 처참하고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를 경계하여 바른 삶을 살고자 바라고 노력하게 된다. 괴담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사 귀히 여겨야 하는 마음과 지녀야 할 태도를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 죄책감, 욕망 등 타인에게 쉽사리 드러내기 힘든 속내가 '괴담'이라는 형태로 발산하여 전해져 내려오기에 인간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

 

 





우리의 조상뿐 아니라 가까운 두 나라, 중국과 일본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두려움의 키워드를 담아 분류하였다.

- 신과 인간의 경계

- [원한과 인간]으로 엮은 한국 괴담

- [욕심과 인간]으로 엮은 중국 괴담

- [재앙과 인간]으로 엮은 일본 괴담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2>는 총 4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마다 비슷한 듯 다른 결을 지닌 괴담 덕분에 읽는 맛뿐 아니라 생활상과 문화의 차이를 느껴보는 재미까지 누릴 수 있다.

 

 

인상 깊은 괴담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염라대왕을 매수하는 방법>

<미래의 아내를 죽여라>

<조선이 가장 두려워한 귀신, 마마신>

<넌 이미 죽었다>

<창귀의 숲>

<두 개의 몸을 가진 아내>

<도쿄를 불바다로 만든 저주 받은 기모노>

등이다.

 

 




염라대왕을 매수하는 방법

살아서 재물을 탐하고 남을 음해하는 자는 응당 죽어서라도 죗값을 받으리라는 진실 여부를 떠나 참으로 비통한 이야기였다. 이승의 죄를 물어 합당한 벌을 주는 곳이라는 저승의 왕 '염라대왕'마저 뇌물을 받고 악인의 편에 서서 선인을 핍박하는 내용에 욕지기를 느꼈다. '이랑신' 덕분에 옳은 결말로 마무리되었지만, 참 씁쓸하고 슬프고 화가 치미는 이야기였다.

 

 

미래의 아내를 죽여라

운명의 붉은 실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 붉은 실을 소재로 인간의 욕심과 우둔 그리고 운명과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월하노인'의 말대로 이루어졌으니 운명의 붉은 실은 참 질긴 듯하다.

 

 

조선이 가장 두려워한 귀신, 마마신

조선 후기 문인 임방이 쓴 <천예록>에 담긴 '마마신'에 대한 내용이다. 과거 천연두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당연히 이를 옮기는 마마신을 무서워하고 신처럼 대하게 되었다. 마마신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어린아이들이 연관되니 읽을 때마다 마음이 저릿하다.

 

 

넌 이미 죽었다 & 벗에게 수명을 나눠 준 신선

조선시대 최고의 선인이었다고 전해지는 북창 정렴의 일화는 기이하기는 하나 그만큼 마음이 훈훈해진다. 벗을 위해 천기를 누설하여 자신의 수명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일곱 가지 정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저자가 말한 바대로 정렴은 신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죽는 것을 택한 것 같다.

 

 

창귀의 숲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라는 표현처럼 옛날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귀신이 창귀로 호랑이의 종노릇을 한다. 얼마나 호랑이가 무섭고 끔찍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일까 싶다. 조선시대 착호군 착호갑사의 창귀 이야기를 외전으로 추가하여 호기심이 충족되었다.

 

 

두 개의 몸을 가진 아내

어렸을 때 중국, 홍콩 영화에 심취했었다. 그중에 영화 <천녀유혼>이 있었다. 이 괴담이 <천녀유혼>의 제목 유래가 되었다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왕조현의 청초한 모습과 장국영의 순수한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그 둘의 사랑만큼 천랑과 왕주의 사랑도 실로 깊었다. 사랑하는 이와 떨어질 수 없어 귀신으로나마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하다니 기이하지만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도쿄를 불바다로 만든 저주 받은 기모노

1657년 일본에서 일어난 '메이레키 대화재'의 원인을 '후리소데의 저주'라 기록한 몇몇 문서들이 전해진다고 한다. 화재가 사흘이나 계속되고 동경의 7할을 불태웠고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하니 재앙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이 재앙에 관련된 괴담도 기이하고 유별나다. 예전에는 일찍 죽는 일이 흔했으리라 생각되는데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어린 소녀들의 한과 집착이 기이한 이야기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점에 눈길이 머문다. 왜 그럴까?

 


 



 

저자 괴담실록 덕분에 동아시아의 괴담을 상당량 접할 수 있었다.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적 차이를 잘 살려내어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고, 외전과 스페셜을 통해 다채로운 색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외전과 사도세자와 관련된 스페셜 이야기는 정통 역사서에서 접하는 인물과는 또 다른 인물을 만들어낸다. 진실 여부를 떠나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그 시절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 듯하여 흥미롭게 읽었다.

 

펼치면 어느새 빠져드는 괴담, 무섭지만 당최 놓을 수 없는 기묘하고도 이상한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2>를 읽으면서 무덥고 습한 여름날을 시원하게 보내는 호사를 누려보기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 휴먼스 랜드 (양장) 소설Y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휴먼스랜드 #창비 #소설Y #소설Y클럽 #김정 #미래사회 #기후위기 #영어덜트 #SF

 



노 휴먼스 랜드/ 김정 저/ 소설Y클럽 대본집 09





유별난 장마를 겪고 있는 이 여름에 서늘하면서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 <노 휴먼스 랜드>를 만나다. 집중호우로 한반도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이라 '노 휴먼스 랜드'가 눈길을 끈다. 지구를 아프게 한 인류가 없는 땅, 그 땅 덕분에 미래의 지구는 기후 위기를 완화할 수 있었다는 소설 속 설정이 와닿는다.

 

기후 위기는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노 휴먼스 랜드>는 근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재난을 바탕으로 인류가 할 수 있는 대안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무자비한 기후 재난을 2차례 겪은 후 한국 정부가 오클랜드 협약에 참여하면서 한국도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터전을 제한함으로써 기온을 안정화시키려는 프로젝트는 효과를 보고, 사람들은 '노 휴먼스 랜드'로 변해버린 고향, 조국을 다시 찾을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히 만들어진 국제기구인 유엔 기후재난 기구(UNCDE)는 출범 즉시 기후 난민을 구조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 표준 환경법을 제정하는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기후 재난을 기점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플래그리스'라는 단체가 UNCDE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설은 UNCDE가 특별 조사단을 한국에 파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UNCDE와 플래그리스의 충돌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절대적으로 믿은 나머지 타인의 삶을 무참히 짓밟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과학자들로 갈등이 고조에 달한다.

 


파커, 한나, 아드리안, 크리스 그리고 시은 아니 시은인 척 위장 잠입한 주인공 김미아. 이렇게 5명이 특별 조사단으로 한국에 발을 내딛는다. '노 휴먼스 랜드'라고 알려진 그곳에는 불법 거주민들이 존재했고 이는 긴장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불법 거주민보다 더 무시무시한 상대가 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더라고…….

당시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게 그렇게 되려고 그랬나 보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렇게 느껴지는 때가."

 


 

미아는 X라는 존재에 의해 할머니가 그토록 다시 밟고 싶었던 고향인 한국으로 왔고, 맡은 임무를 무사히 수행해 돈을 받아 헤어진 엄마에게 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류를 대상으로 한 무서운 프로젝트의 내막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동료들의 이야기와 불법 거주민들의 사연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면면들을 비추고 있다. 이런 다양성과 정체성이 인류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근미래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무게감 있게, 현실감 있게, 생동감 넘치게 펼쳐진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의 신념이 얼마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고통스럽게 일깨우고 있다. 앤 소장의 집착과도 같은 연구가 많은 이들의 삶을 부숴버린 내막을 쫓는 여정을 함께 하는 내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가 없는데,

지구의 영원한 미래가 무슨 소용이에요?"

 

 

근미래에 우리 인류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를 가늠해 보면서 지구를, 인류를 위한 진정한 대책이 무엇일까? 생각이 깊어졌다. <노 휴먼스 랜드>는 우리가 경계할 지점을 명확하게 짚어낸 작품으로, 어둠 속에서도 손을 내밀고 손을 마주 잡는 우리의 모습을 힘 있게 그리고 있다.

 

 

"불안을 모아서 변화를 만들겠다고.

그래서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사람,

자신을 잃게 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 보겠다고.

무언가를 더 원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지 않아서

간절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환경단체를 만들 거라고."

 


소설Y클럽 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끼 화장실 고래책빵 그림동화 26
황미숙 지음, 박성은 그림 / 고래책빵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칠흑같이 캄캄한 밤,

새하얀 친구들을 만난 귀여운 아이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토끼 화장실/ 글 황미숙/ 그림 박성은/ 고래책빵  

 



예전에는 화장실 아니 뒷간이 집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어렸을 때 밤에 화장실 가는 일이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토끼 화장실>은 그런 추억을 소재로 아이의 성장을 판타지하게 그려낸 작품이네요. 두려움을 이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신비로운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겠죠. 부디 천천히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일곱 살 설아는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갔어요. 저녁에는 맛있는 떡볶이를 먹었죠. 저런, 깜빡했네요. 할머니 집에서는 물을 많이 마시면 안 되는데……

 


 

 


 

화장실은 밖에 있고,

할머니는 곤히 주무시네요.

설아는

"괜찮아요. 이제 곧 여덟 살인 걸요."

자신 있게 말한 자신을 후회하죠.

 

차마 할머니를 깨우지 못하는 설아의 마음,

오줌을 참는 설아의 모습이

그림과 글로 고스란히 전해지네요.

후회와 망설임 그리고 두려움까지.

꼭 쥔 주먹, 꼰 다리, 움찔거리는 발가락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를 지어봅니다.

 

 


 

 


설아는 어떻게 용기를 내어 화장실에 갈 수 있었을까요? 펑펑 쏟아지는 눈이 설아를 설레게 했네요. 눈송이 따라 마당으로, 화장실로 이어지는 설아의 발걸음이 자연스럽네요.

 

 

"똑똑!"

 


눈처럼 희고, 곰만큼 커다란 토끼가 화장실로 쏙~ 들어가네요.

 



 

 


어느새 두려움은 저만큼 날려보내고, 토끼 똥 모양을 재밌게 상상하는 설아입니다.

아이의 특성을 잘 잡아서 이야기를 구성한 <토끼 화장실>이네요.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일은 금세 잊어버리는 게 아이들이죠. 눈송이와 곰만큼 커다랗고 눈처럼 새하얀 토끼 덕분에 '혼자서 밖에 있는 화장실 가기' 성공했어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아이의 성장은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죠. 오줌이 마려워도 무서워 꾹 참던 설아에서 커다란 토끼를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든 귀여운 설아까지 설아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빠져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서움을 상상력으로 극복하는 경험은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토끼 화장실> 오늘도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겠네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