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주의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5
설재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월 내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장마가 7월 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늘어가는 피해 소식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릴 듯 쏟아붓는 이 비도 이렇게 야속한데 1년 내내 비가 그치지 않는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접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범람주의보/ 설재인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저자인 설재인 작가는 작년 서울 반지하 침수로 일가족 참사 사건을 접하고 이 글을 쓰고자 결정했다고 한다. 그 간절한 마음이 소설을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햇볕마저 없으니 마음까지 썩었단다."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혜인이네는 아빠, 엄마, 혜인이 이렇게 3인 가족이다. 하지만 어느 날은 4인 가족이 되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할아버지 서창식씨를 데리러 가야 한다, 다리 밑으로.

 

 

 

 

한 달 동안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26일 올해 장마가 종료되었다는 기상청 발표가 있었다. 긴 장마 기간과 높은 강수량은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였다. 그런데 소설 <범람주의보> 속 서울은 1년 내내 비가 온다. 얼마나 힘들고 불편할까 싶은데 소설 속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누비스 사의 워터프루프 시스템 덕분에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보송하다. 자연적인 햇볕이 없어도 누비스 사의 일광욕 센터에서 우기 이전의 햇빛과 동일한 빛을 쐰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오히려 우기 덕분에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참 놀라운 기술력과 적응력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감춰져 있었다. 

 

 

통협동

쏟아지는 비로 모든 일상이 붕괴되어가는 시기에 도시의 물길은 한곳으로 흘러들어갔다. 도시는 우기에 대비하여 새롭게 단장하고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그 도시의 빗물과 오수, 폐수는 정화되지 않은 채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게 두었다. 아니 그 물길을 만들었다. 그렇게 통협동은 도시의 오염 물질이 모여들어 질척이는 장소가 되었고, 여전히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피부에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

 

 

혜인이는 학교에서 비가 내리기 전과 비로 인해 망가진 서울을 배웠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따라 통협동으로 가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깊숙한 곳에 참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혜인이가 교육받은 이야기들은 산산이 부서졌다. 도시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은 통협동의 참혹한 현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번 삐뚤어진 구석을 감각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어."

 

 

소설에는 부당한 일을 두고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반응을 보여준다.

 

부당한 일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같이 싸우는 이, 알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 무관심한 채 편의만 누리는 이 그리고 부당한 일에 소리높이는 이로 인해 피해볼까 무서워 전전긍긍하는 이.

 

혜인이 부모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 통협동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자신의 가족을 지킨 죄를 갚고자 스스로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할아버지를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들의 피해가 두려워, 자신들의 몫이라 여긴 유산을 뺏길까 두려워 '노망'난 할아버지라고 양로원에 입원시켜버린다.

 

 


 

 

혜인이는 할아버지와 참 많이 닮았다. 본인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곧 자신이며, 자신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혜인이 곁에는 동료가 있다. 서로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동료가. 그들과 힘을 합쳐 할아버지를 양로원에서 구해내면서 혜인은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진 듯하다. 보장되고 예정된 미래가 아닌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무궁무진 펼쳐지는 예측불가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혜인이를 절로 응원하게 된다. 멋지다, 혜인아!

 

 

"나는 이슬이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건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야 관찰이 가능한 아름다움이니까.

그러니 내게 이슬이란, 노망과 같은 층, 같은 자리에 위치하는 단어."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힘들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녹슬지도 침수되지도 않은 감각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감각기가 느끼는 바를 흐르는 물에 띄워 세상으로 내보낼 것이다."

 

"나는 좋았다. 아빠의 손이 지나간 뺨에 성여민의 것과 비슷한 무늬가 생겼다.

곧 사라지겠지만, 무늬를 품어 본 경험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엔

아주 큰 차이가 있을 테니까."

 

 

혜인의 생각과 표현들이 마음에 와서 자꾸 부딪친다. 무섭고 아리고 따끔하기도 하다. 그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 죄책감, 분노, 공감 등 다양한 감정들이 거센 파도가 되어 들이닥친다. 분명한 건 소설 속 통협동의 상황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부끄러워하고 변화를 위해 행동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처럼 홀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혜인이는,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이지 않을까. 곁을 둘러보는 눈길과 관심이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외면했던 자신이 벌을 받는 것 같다는 오수향 할머니를, 할아버지처럼 자신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고 남들처럼 혐오해도 된다는 성여민을,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으면서 냄새나는 통로에서 대기하는 센터 청소원 인혜 씨를, 꿈을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꿈을 포기하라는 말을 듣게 된 유진이를 잊지 말자. 나만 아니면 되는 안온하고 편협한 세상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하는 건강하고 다정한 세상을 그려본다. 혜인이가 찍은 영화 속 세상이 꼭 그럴 것 같다.

청소년이 꼭 읽었으면 하는 추천도서 <범람주의보> , 혜인이와 여민이를 만나 친구가 되는 청소년이 많기를 소망한다.

 

 

"언제까지 사람들이 모르는 척 버틸 수 있을까?

어른들은 이상하게도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최후의 순간까지 운이 좋을 거라고 여기는 듯 행동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들을 매우 뻔뻔스럽게 해내곤 한다.

가끔 보면, 신이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믿는 듯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