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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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나는 마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쉰 살에 약초학을 전공하여 약초원에서 진료를 보는 저자는 채취인이다.

 

"채취만으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채취 강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365일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자연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기록한 일지를 《야생의 식탁》으로 출간하였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 부키출판


 


자연 파괴와 기후 변화를 염려하면서도 블랙 프라이데이에 지갑을 여는 수많은 이들에 기함하여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한 모 와일드. 이 야심찬 행보가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존에 EIDF <최초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강렬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간 로컬푸드만 먹고살아보기'에 도전하는 5인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숙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머무르는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로만 사계절을 살아내겠다는 당차고 호기로운 이 도전의 끝이 무척이나 궁금한 나로서는 이 여정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를 통해서라도 자연을 향한 경외와 공존을 간접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을 남겨준 모 와일드 저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제는 누구가 실감하는 위기 속에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가 찾고자 하는 답 그리고 가능성을 보여준, 생생한 삶의 기록이었다. 글과 함께 수록된 세밀화는 그가 발견한 자연을 우리 삶 속으로, 눈앞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채취 전문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풀과 열매, 버섯들이 등장했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푸성귀들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깊은 곳에서 감사와 애정이 솟아올랐다. 자연에 예민해지는, 민감해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의 사이클을 맞춰나가는 저자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네가 이렇게나 멋지고 귀한 존재였구나. 자연의 은총이었구나. 무지한 자의 눈에만 쓸데없이 웃자란 잡초였을 뿐, 너는 놀라운 기능을 품고 있구나. 하루에 1,2번은 걷는 마을 하천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명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름 없는, 불필요한 잡초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 해졌다.

 

 

저자가 기억하는 지도, 식량 지도라고 말하는 그 지도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맛집 지도와 비교되면서 '음식', '먹거리'의 의미와 무게에 관해 생각이 깊어졌다. 맛집 순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오늘의 자연이 허락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모와 맷을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내 안에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야생식 실험을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①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② 일 년 동안 다양한 서식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식량을 구한다.

③ 돈은 쓰지 않는다. 모든 식량은 채취, 사냥, 선물, 물물교환으로 얻거나 내 기술과 교환한 대가여야 한다.

④ 야생 조류의 알 대신 유기농으로 풀어키운 암탉의 달걀을 섭취한다.

⑤ 물물교환으로 염소젖을 구할 수 있다.

⑥ 냉동, 건조 또는 보존처리한 야생식도 섭취한다.

 

얼마나 꼼꼼하게 야생식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저자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2번만 예외사항을 두었을 뿐이다. 그의 결심과 절제에 절로 탄복하였다.

 

 

"음식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가장 큰 선물이다."

 

 

그가 채집하고 섭취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의 관대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지나친 소비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류세'가 아닌 '공생세'를 향해 우리가 뚜벅뚜벅 나아가는 내일을 그려본다.

 

 


 

 

저자의 기록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의 교감, 자연으로의 회귀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1여 년의 시간 속에 함께 한 동료와 지인들의 교류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지키고 이어주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삶의 통찰은 깊은 공감과 함께 사고하는 힘을 길러준다. 구석기 시대 도구인 손도끼와 돌칼로 토끼, 까마귀, 사슴의 가죽을 벗겨내는 의식 같은 작업이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 솔라스탈지아에 대한 글처럼 말이다.

 



 

 

국적, 성별, 나이, 식습관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은 성스러운 생명 탄생의 환희를 베풀었고, 자연이 선사한 음식들은 주위와 나눌 수 있는 아량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단순히 야생식 가능 여부를 궁금해한 것을 뛰어넘어 저자의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야생식을 끝내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는 시점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모 와일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사람은

생명이 지속되는 한 견딜 수 있는 힘의 여유분을 발견한다."

-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지금 당장 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  《야생의 식탁》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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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이너스 2야 - 제2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1
전앤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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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넘치는 그림체와 문장으로 당당하게

 <우리는 마이너스 2야> 

외치는 청소년들이 수놓아진 책을 만났다.

 



우리는 마이너스 2야/ 전앤 장편소설/ 사계절출판

 



제21회 사계절문학 대상 수상작으로 현 고등학교 교사인 전앤 작가의 소설이다. 학생과 함께 한 많은 시간이 탄탄한 토대가 되어 청소년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와 이해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에 자신을 찾아가는 흔들리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잘 담겨있다.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절로 떠오르는 입시보다는 '관계' 그리고 '인생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유쾌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세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상황은 결코 즐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홍미주, 김세아, 김세정.

갑작스러운 세아의 죽음으로 묶인 인연이 세 청소년들의 곪은 상처와 슬픔을 어떻게 치유해 줄 수 있을 것인지 기대된다. 자신들이 결정하지 않았던, 어른들이 과거에 한 선택이 가져온 오늘의 혼란과 아픔 그리고 분노를 제각기 다른 방패 뒤에 숨어 견뎌내는 세 아이들.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로 거듭나는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찰나 가제본은 끝났다. 야속한 이 단어를 괜스레 흘겨보고는 웃고 말았다. 

"NEXT U"

 


 


 


 

- 홍미주

"어떻게 하면 그런 거짓말쟁이 낙인이 딱 찍히니?"

 

충만했던 유년 시절이 끝나버렸다. 엄마, 아빠라고 믿고 함께 살아온 이들이 이모, 이모부라니. 진짜 엄마, 아빠 집으로 돌아왔지만 너무나 다른 환경은 미주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온다. 화가 나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화를 풀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지루하고 뻔한 시간을 견디고자 했던 미주의 거짓말은 그를 유령으로 만들어 버렸다.

 

 

- 김세아

"오늘 네가 주번이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어느 무리 안에 있든 항상 조용히 웃고 있던 세아가 죽었다. 그런데 죽은 세아가 미주에게 빌려줬던 돈 오백 원을 받기 위해 찾아왔다. 진짜 돈이 아닌 기억으로 돌려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세아는 미주한테 계속 찾아온다. 세아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궁금해지던 찰나 말했다.

"세정이 친구가 되어 줘."

 

 

- 김세정

"오래 살기요. 약속했어요."

 

세아의 이란성 쌍둥이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당한 아픔을 일부러 과장된 행동과 웃음으로 감춘 채 살아왔다. 자신의 눈앞에서 세아가 죽었다. 그 후 미주가 다가온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기억은 미주를, 우리를 움츠려들게 한다. 미주는 자신을 불 꺼진 상점처럼 느낀다고 했다. 전구를 가는 법은 간단하지만, 아주 잠깐 용기를 내면 되지만, "감전될까 봐 무섭다"라는 미주의 말에 가슴이 저릿저릿하였다.

"마이너스 1과 마이너스 1을 합치면 마이너스 2"라는 미주에게 "마이너스가 꼭 나쁜 거야?" 되묻는 세아의 말에 흠칫했다.

 

 

유령처럼 살아가면서도 혼자되는 게 무서운 미주가 세아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될 가능성이 열렸다. 이미 죽었지만 세정의 상처를 모른 채 미워하고 싫어한 지난날을 자책하며 떠나지 못하는 세아를 외면하지 않은 다정하고 따뜻한 미주와 어린 시절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만 겅중 자라버린 아이 같은 세정이가 함께 하는 내일이 찬란하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다음 이야기가 우리에게 선사할 귀한 마음을, 인연을 상상하며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을 돌아보았다. 곁에 있는 이와 온기를 나누는 오늘이 새삼 고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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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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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한겨레출판


 


한겨레 하니포터 7기 9월 신간도서 목록 중 <일터의 죽음>이라는 가제의 책이 있었다.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산재의 구조적 원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당연히 알아야 할, 읽어야 할 책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그것도 사고로 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일터에서 매일 일어나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는 일이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목숨을 빚진 자로서 사고로 잃은 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를 잃고 살아가는 남은 이들의 삶을 알아야 하기에 책을 펼쳤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할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인 신다은 저자는 그동안 모은 지식을 이 책에 담으면서 2가지 목표를 세웠다.

 

1. 그나마 알려진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

그 기저에 기업 조직의 어떤 관습과 인식이 있는지 탐구하는 것

2. 연간 800여 명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의 조사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으며

이를 드러내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알아보는 것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산재 사망사고를 보도 내용대로 받아들인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고로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었다'라는 사실과 매번 되풀이되는 '피해자의 과실' VS '사측의 안전 관리 소홀' 변명 같은 원인 분석을 보았다.

한 사람,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을 귀한 목숨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그 자리를 그냥 흘깃 보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아프고 안타깝지만 한걸음 뒤에서 남의 일이라는 방어 기제가 결국은 이름 없는 죽음을 만드는 일을 거든 게 아닌가 싶었다.

 


 


 


 

신다은 저자는 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평택항 이선호 씨 등 기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산재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하였다. 이는 관련자의 위법사항을 수사하여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현재의 산재 조사와 수사와는 결을 달리한다. 사고마다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 다른 사고를 방지·대비하는 게 목적이다.

산재가 일어나면 은폐하거나 사적으로 보상하는 '공상'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설사 수사를 한다 해도 제대로 처벌받은 이도 없고 사고를 촉발한 구조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없다. 정확한 원인이 빠진 분석으로는 또 다른 사고를 부를 뿐이다. 저자의 설명 덕분에 산재 사고에 대한 접근과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산재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알게 되니, 사고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사고를 은폐하고자 하는 기업을 상대로 유족들이 대응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다. 그렇기에 연간 800여 명의 산재 사망자가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고는 연간 1,2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산재를 유형별로 분류하여 구조적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안전'을 일부 부서나 일부 전문가의 영역에 한정 지어 책임을 부가하는 현 모습이 언제 어디서든 산재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듯하여 불안하고 안타깝고 분통 터졌다.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는 비극적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더 비극적이다."

낸시 리브슨, <CAST 핸드북 : 사고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방법>

 

 

 

그렇다면 산재 위험은 왜 숨겨지는 걸까? 기업, 정부 기관, 노조, 언론까지 4가지 영역으로 산재의 원인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하는 사회 구조적 배경을 정리해 주었다. 산재를 둘러싼 소통의 부재가 드러났다.

 

기업 조직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생산과 안전이 대립하는 경우 기업 조직의 무관심 그리고 안전 관리를 특정 부서에만 맡겨놓는 구조가 소통의 부재를 부른다.

 

또, 산업안전감독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노동부와 현장에서 서로 다른 상황도 소통의 부재를 의미한다. 처벌과 예방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처벌과 원인 분석, 대안 제시가 함께 발맞춰가야 효과가 클 것이다.

 

안전한 일터를 구축하는 데 노조의 역할은 중요하다. 현장의 업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도 노조도 산업안전에 대해 최근에야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노조 스스로 체계적인 역량 강화는 물론 노조 활동폭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도 거론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말이 잘 알려진 소수의 사건들은 용기를 낸 동료들과 그들을 돕고 보호하는 노조와 시민단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수사 정보 유출을 이유로 유족들에게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유족들은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같은 사고가 다른 사람에게도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슨 조치가 취해졌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원할 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토록 힘겨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다니. 온당 유족이라면 죽음에 대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에 투사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무참하게 다가온다.

 


 


 

 

 

생산을 목표로 하는 기업. 하지만 생산량, 납기에 우선하여 그 일터에 나와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게 기업이다. 그리고 몇 단계로 내려가는 하도급이나 원ㆍ하청의 안전 관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안전에 관해 누구나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정부 기관이 주도적으로 노동안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환경 개선과 인식 변화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더 많이 물어야 한다. "왜?" 깊이 공감한다.

 

유족, 동료, 산재 활동가, 노조, 산업안전감독관, 안전관리자, 시민단체 등 다양한 창구로 조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저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산재와 안전 관리를 좀 더 면밀하게 지켜봐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다.

 


누구나 태어나 한번 죽는다. 죽음의 무게는 똑같다. 그 죽음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면 이는 살인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나.

스쳐 지나가는 뉴스가 아닌, 서사를 부여해 '노동자의 귀한 목숨이 스러진 중대한 사건'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죽은 이를 추모할 수 있고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김용균 씨, 김 군, 이선호 씨, 김다운 씨, 정창우 씨, 김재순 씨, 남현섭 씨…… 책 속에서 만난, 안타깝게 스러진 분들의 이름을 되뇌어 본다.

 

이름 없는 죽음을 밝히는 악전고투에 힘을 실어주는 걸음을 함께 하고자 기억하려 한다. 살고자 일하는 터전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퇴근할 수 있는, 존중받는 사회는 우리의 관심과 연대가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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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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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민 #지켜야할세계 #사전서평단 #다산북스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신작

 

지켜야 할 세계/ 문경민 장편소설/ 다산북스



 

 

문경민 작가의 신작 『지켜야 할 세계』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30년 차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지켜야 할 세계』는 특히 그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가제본이라 도입부만 볼 수 있어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의 죽음을 알고 읽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더 아리고 먹먹하게 다가와 중간중간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그가 지켜야 할 세계는 무엇일까?

어릴 적 헤어졌던 장애를 지닌 동생인지,

좋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고 들어선 학교인지,

학교에서 만난 동생과 비슷한 학생 시영인지.

그가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지켜내고자 했던 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정윤옥, 그를 두고 고집스럽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가 있고,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라는 이도 있다.

내가 지켜본 그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옹골찬 사람으로 자신의 바람과 기대를 부정하는 현실의 시선과 잣대에 상처 입으면서도 의연하게 나아가는 이었다.

 


사범대에 진학하였으나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동기들과는 달리 '교사'를 꿈꾼 정윤옥. 자신이 겪었던 교사와는 다른 교사가 되어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한 그였기에 교직 생활이 순탄치 못했으리라.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대학교를 거쳐 청운을 품고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을 그를 감히 헤아려보면 가슴이 지끈거린다.

 

 

윤옥이 어릴 때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제 서른 초반의 어머니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독해져야만 했던 산동네 생활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대신해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느라 집에 매어버린 어린 딸이 눈에 밟혔으리라. 지호한테도 나으리라 생각했고, 그보다 윤옥이 살고 어머니가 살고자 힘들게 떠나보냈건만 마음의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버렸다.

 

윤옥이 시영 학생을 보면서 챙기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의 기저에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헤어진, 떠나보내버린 동생 지호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가 시영을 계속 자신의 그늘에 두려고 하는 행보가 고등학교 관리자에게 거슬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학부모들이 작성한 '수업 관찰 분석 보고서' 내용으로 보아 입시에 전념해야 할 고2 학생을 담당하고자 하는 게 탐탁지 않은 것이라 예상되어 씁쓸하였다.

 



국어 교사로서 지식의 전달과 이해를 위해 쉼 없이 수업 내용과 교수법을 고민하는 윤옥을,

가족 같은 존재였던 수림 엄마를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부쩍 수척해지시고 멍든 얼굴에 다리까지 저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받은 윤옥을,

목사에게 떠나보낸 동생 지호를 찾아가서 비참한 진실을 마주하고 부서져내린 대학생 윤옥을 만나는 내내 그가 지켜야 할 세계에 대해 생각이 깊어져만 간다.

 

그가 걸어온 굴곡 깊은 인생길에 남들은 어쩔 수 없다고 다독일지라도 그는 인정할 수 없는 건 무엇이었을지. 부러지더라도 날선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던 윤옥이 보낸 마지막 한 해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염려가 되면서도 그가 지닌 투지를 알기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 같더라.

정말로 그런 걸까.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어쩔 수 없다.

이 문장으로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자책과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괜찮다고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두려워졌다.

 

문경민 작가가 정윤옥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켜야 할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본책으로 치열하게 촘촘하게 지켜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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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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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프로젝트, #봉봉,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환상만화앤솔로지

 


'만화'라는 장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이면서도 그에 걸맞은 평가를 못 받지 않나 싶어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에 웹툰이 크게 각광받고 있어 좋으면서도 오락성과 재미에 치중하면 어쩌나 염려도 된다.

하지만 이번 하니포터 7기 활동 도서로 수령한 <웰다잉 프로젝트> 덕분에 노파심에 불과하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만화'가 뻗어나간 가지가 많으니 제각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해주면 될 뿐이다.




웰다잉 프로젝트/ 봉봉 글·그림/ 씨네21북스/ 한겨레출판


 

 


'웰다잉'

고령화 시대가 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기다리는 '죽음'이 아니라 준비하는 '죽음'으로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결국은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의 변화가 일었다.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과 함께 하면서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떠나가는 이에게도, 남겨진 이들에게도 이해와 수용, 치유의 시간이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은 결이 다르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환상만화 앤솔로지답게 '죽음'조차 상품화하는 자본시장의 추악한 면을 담고 있는 <웰다잉 프로젝트>가 표제작이다. 이를 필두로 총 6편의 작품들이 기이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고등학생인 큰 딸은 '불쾌하다'라고 책을 중간에 덮었다. 그만큼 이 만화에서 담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우매는 예 상보다 끔찍하고 지독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빛나는 게 아닐까.

 

 

 

『웰다잉 프로젝트』 - 「웰다잉 프로젝트」 중


 

 

<ANA> 아직은 싱그럽고 푸르른 잎사귀 같은 십 대의 눈앞에 그려진 인공 자궁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처참한 사건들이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간다.

이어서 <웰다잉 프로젝트>는 원하는 대로 죽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이 과정을 방송하는 리얼리티쇼를 배경으로 좋은 죽음, 아름다운 죽음, 완벽한 죽음을 맞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걸어가는 허황된 길을 보여준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죽은 단칸방 할아버지. 사람들이 보이는 지나친 반응에 그 마지막의 여운이 마음 깊숙한 곳에 이르기 전에 흩어지고 씁쓸함만 남았다. 그래서 아이의 '불쾌하다'라는 평에 오히려 안도하였다. 그 느낌을, 기분을 잘 간직하여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멈춰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주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편리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역시 만화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집이다. 6편의 작품이 소재로 삼은 상황과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행태는 독자인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웰다잉 프로젝트』 - 「붉은 여왕」 중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 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로운 영역까지 다룰 수 있게 된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으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이를 악용할 것인지. 만화는 기술 발달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들을 다양하게 엮어내고 있다. '그럴 수 있지.'에서부터 '어떻게 이럴 수가!'까지 우려를 넘어 기술을 금하는 게 옳지 않나 싶을 정도의 일들이 벌어진다. 윤리적인 영역과 경제적 이유로 인한 선택권 박탈 같은 보편적으로 야기되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백업 인공 자궁, 미수령 아이 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펼쳐졌다.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역사 흐름상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그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력은 철저하게 예측분석되어 악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구성원들과 합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만화를 통해 인공 자궁, 유전자 조작, 성형수술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제공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신은 변기>, <마지막 비행>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어리석음을 괴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안과 밖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명백한 시선차는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보고 듣고 맞다고 판단한 정보가 모래처럼 허물어지기 쉬운 토대 위에 쌓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작은 마음, 간단한 일부터 시작되어 종교가 되거나 시대의 아픔과 분노에 일어선 투사가 되어버렸다.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그리고 강렬한 욕망이 이 기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고조시켰다.

 

 


『웰다잉 프로젝트』 -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 중


 

 

그리고 결이 다른, 말랑말랑한 만화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가 있어서 앤솔로지가 더 풍부해졌다. 검고 끈적한 작품들 속에서 말랑하고 촉촉하게 안아주는 만화가 있어서 무거워진 마음에 날개를 달아준 듯 가벼워져 생기가 돌았다. 봉봉 작가의 센스가 아주 탁월하다. 물론 이 만화 또한 우울한 상황의 청년을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엔딩이라 너무 좋다. 편안하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햄스터가 손톱을 먹었다>를 다시 읽을 정도로.

 

기이하고 어둡고 불쾌한 상황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우리를 떠올리게 되는 힘 있는 환상만화 앤솔로지 <웰다잉 프로젝트>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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