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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평점 :
"오늘부터 나는 마트에 가지 않기로 했다."
쉰 살에 약초학을 전공하여 약초원에서 진료를 보는 저자는 채취인이다.
"채취만으로 정말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채취 강습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365일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자연과 동고동락한 시간을 기록한 일지를 《야생의 식탁》으로 출간하였다.

야생의 식탁/ 모 와일드 지음/ 부키출판
자연 파괴와 기후 변화를 염려하면서도 블랙 프라이데이에 지갑을 여는 수많은 이들에 기함하여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한 모 와일드. 이 야심찬 행보가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기존에 EIDF <최초의 만찬>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강렬해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간 로컬푸드만 먹고살아보기'에 도전하는 5인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깊숙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이 머무르는 자연에서 채집한 것들로만 사계절을 살아내겠다는 당차고 호기로운 이 도전의 끝이 무척이나 궁금한 나로서는 이 여정을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활자를 통해서라도 자연을 향한 경외와 공존을 간접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귀중한 자산을 남겨준 모 와일드 저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제는 누구가 실감하는 위기 속에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과 그가 찾고자 하는 답 그리고 가능성을 보여준, 생생한 삶의 기록이었다. 글과 함께 수록된 세밀화는 그가 발견한 자연을 우리 삶 속으로, 눈앞으로 생생하게 전달해 주었다.

채취 전문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풀과 열매, 버섯들이 등장했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푸성귀들이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깊은 곳에서 감사와 애정이 솟아올랐다. 자연에 예민해지는, 민감해지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여 자신의 사이클을 맞춰나가는 저자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네가 이렇게나 멋지고 귀한 존재였구나. 자연의 은총이었구나. 무지한 자의 눈에만 쓸데없이 웃자란 잡초였을 뿐, 너는 놀라운 기능을 품고 있구나. 하루에 1,2번은 걷는 마을 하천 길에서 만나는 다양한 생명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름 없는, 불필요한 잡초가 아니라 다른 생명에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생명이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 해졌다.
저자가 기억하는 지도, 식량 지도라고 말하는 그 지도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맛집 지도와 비교되면서 '음식', '먹거리'의 의미와 무게에 관해 생각이 깊어졌다. 맛집 순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과 오늘의 자연이 허락한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모와 맷을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내 안에서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야생식 실험을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① 오로지 야생식만 먹는다.
② 일 년 동안 다양한 서식지를 돌아다니며 현지 식량을 구한다.
③ 돈은 쓰지 않는다. 모든 식량은 채취, 사냥, 선물, 물물교환으로 얻거나 내 기술과 교환한 대가여야 한다.
④ 야생 조류의 알 대신 유기농으로 풀어키운 암탉의 달걀을 섭취한다.
⑤ 물물교환으로 염소젖을 구할 수 있다.
⑥ 냉동, 건조 또는 보존처리한 야생식도 섭취한다.
얼마나 꼼꼼하게 야생식을 지키고자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저자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2번만 예외사항을 두었을 뿐이다. 그의 결심과 절제에 절로 탄복하였다.
"음식은 가장 사소하면서도 가장 큰 선물이다."
그가 채집하고 섭취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의 관대함과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지나친 소비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류세'가 아닌 '공생세'를 향해 우리가 뚜벅뚜벅 나아가는 내일을 그려본다.

저자의 기록 속에 녹아있는 자연과의 교감, 자연으로의 회귀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1여 년의 시간 속에 함께 한 동료와 지인들의 교류는 저자가 왜 그토록 자연의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지키고 이어주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삶의 통찰은 깊은 공감과 함께 사고하는 힘을 길러준다. 구석기 시대 도구인 손도끼와 돌칼로 토끼, 까마귀, 사슴의 가죽을 벗겨내는 의식 같은 작업이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 솔라스탈지아에 대한 글처럼 말이다.

국적, 성별, 나이, 식습관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은 성스러운 생명 탄생의 환희를 베풀었고, 자연이 선사한 음식들은 주위와 나눌 수 있는 아량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단순히 야생식 가능 여부를 궁금해한 것을 뛰어넘어 저자의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야생식을 끝내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려는 시점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모 와일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대지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사람은
생명이 지속되는 한 견딜 수 있는 힘의 여유분을 발견한다."
- 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지금 당장 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 《야생의 식탁》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