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무녀전 조선의 여탐정들
김이삭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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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작가의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스핀오프 역사추리소설인 『감찰무녀전』이 출간되었다.

 

 

감찰무녀전/ 김이삭 장편소설/ 고즈넉이엔티



 

신기 없는 무녀 '무산'과

귀신 보는 유생 '설랑'과

앞 못 보는 판수 '돌멩'

 

 


'척'하는 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속내만큼은 진국인지라 거역할 수 없는 왕명을 수행하면서 관원들은 듣고도 듣지 않고 보고도 보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무산과 설랑과 돌멩의 공조가 펼쳐지는 내내 이들의 처지에 가슴 저릿하면서도 두박신 사건 속 평범한 사람들 바로 옆에서 눈을 마주치고, 함께 공감해 줘서 가슴 뭉클하고 고마웠다. 이것이야말로 성심이 아닌 민심을 헤아리는 이들의 활약이 계속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유리라.

 

 

 

왜 따라왔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네가 어찌 될 줄 알고. 네가 어찌 될 줄 알고, 나는 왜…….

- 고생하여 꼴이 험한 설랑을 보고 무산이 속으로 하는 말(p.362)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 자기 대신 다친 설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무산에게 돌멩이 하는 말(p.382)

 

 

 

궁정상궁에 발탁되어 감찰궁녀로 자라온 무산은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의령이 죽은 후,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도 기리지 않는 한낱 궁녀의 죽음, 홀로 슬퍼하고 홀로 아파해야만 했던 무산은 스스로 궁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신병에 걸린 '척' 궁에서 나와 무당골에 자리 잡았다. 바둑돌로 살기 싫어서 궁에서 나왔지만, 신기가 없는 자가 무녀로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녀 앞에 궁정상궁 '순심'이 나타나 비밀 교지를 전한다. 신기가 없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는 무산은 왕명을 수행하기 위해 양반이지만 서자이며 귀신을 보는 '설랑'의 도움을 받는다.

 

 

▷ 감찰궁녀였던 무산에게 내리는 명

두박신에 관한 모든 걸 조사하거라.

맨 처음 퍼뜨린 이는 누구인지, 누가 만든 건 아닌지, 어떻게 퍼진 것인지, 남김없이 말이야.

 

▷▷ 무녀 무산에게 내리는 밀명

두박신이 진짜인지를 조사하거라.

두박신이라는 괴력난신이 진짜인지, 그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알아보거라.

 

 

무산은 설랑과 돌멩뿐 아니라 사헌부 감찰 김윤오와 전농시 소윤 이보정과 함께 조사를 하게 되는데…… 서로 다른 입장인 그들은 속내를 감춘 채 도성과 경기를 뒤흔든 '두박신'을 둘러싼 진실에 다가간다.

 

 


 

 

명령으로만 등장하는 성상은 민심을 사로잡은 '두박신'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피기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박신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고하라 한다. 씁쓸한 맛이 가시지 않는다. 소설의 시작과 끝맺음을 이루는 또 다른 이야기 '왕신'을 모시는 마을에서도 성상과 비슷한 이가 등장한다. 바로 '왕신'을 모시게 하고 금기를 만든 전전 가주이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을 보면서 귀신보다 더 무섭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을 이용하여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우매하고도 탐욕스러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대나무 같은 무산은 왕명에 굴하지 않고, 이 세상에 '두박신'을 만들어내고 퍼뜨리게 된 백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풀어놓는다. 그도 살고, 상처 입은 이들도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하고도 위험한 일을 벌인다. 든든한 벗 판수 돌멩과 함께.

곧지만 속이 비어 유연한 대나무 무산이기에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매번 노력한다. 이를 알기에 설랑도, 돌멩도, 순심도 그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리라.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리라.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은 큰 상처가 된다. 그 죽음을 납득할 수 없다면 더더욱. 무산이 의령을 떠나보내지 못한 것처럼, 소란이 미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두박신을 복수의 신으로 만들었던 소녀의 죽음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무산의 이야기는 찬란하다. 희망을 원한으로, 그리움을 분노로 뒤바꾸어버리기 전에 억울한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자 애쓰는 감찰무녀, 바로 우리가 간절히 듣고픈 이야기다.

 

 

* 무산과 설랑, 돌멩의 수사활극 외에도 『감찰무녀전』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점이 또 있다. 김이삭 작가의 탄탄한 사전조사가 뒷받침된 서사가 그렇다. 예로 이보정의 홍패를 보면서 무산의 생각에 대한 출처를 들 수 있다. 이런 배경이 읽는 내내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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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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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를 향한 인간의 호기심은 오랜 열망이다. 아득히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인간의 발걸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 그곳을 수놓은 듯 반짝이는 별 무리를 보고 설레지 않는 생명체가 있을까. 그 시선은 호기심이 되고, 그 호기심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도전이 되어 인간은 우주에 닿고자 부단히 꿈꾸는 중이다.

 

이번에 만난 동화집도 그런 이야기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그리움과 궁금증이 반짝이는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를 찾아왔다. 우주를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노래 <우주의 속삭임>이다.

 

 

 

우주의 속삭임 - 반짝이는 별먼지/ 하신하 저/ 문학동네


 


<우주의 속삭임>은 제24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왕성한 활동으로 친숙한 하신하 작가이다. 꾸준히 어린이의 꿈을 응원하는 그가 들려주는 SF동화 5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제본 서평단 활동으로 접한 작품은 '반짝이는 별먼지'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여행자의 집 '별먼지'를 꾸리며 살아가는 '나'가 주인공이다. 건강하던 할머니는 심한 관절염 때문에 휠체어에 의지한 채 생활하게 되고, 집도 이름처럼 찾는 이 없이 먼지만 쌓여간다.

 

"우주 복권의 선물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할머니가 복권이 당첨되었다며 선물을 기다리는 어느 날, 지친 여행자가 '별먼지'에 찾아온다.

 


 

 

'할머니'의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지는 게 세상"이지만, '나'의 항변처럼 '별먼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신기하다. 고전 동화에서 일어난 기적처럼 뚝딱뚝딱 진행되는 일들이 모두 50년 전 '할머니'의 예측이었다니!

참신한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단단한 무언가를 얻은 듯 자연스레 충만한 삶을 그리게 된다. '나'와 '제로'처럼.

 

 

 

 

이 글에 따르면 나도 지구 최고의 복권에 무려 2번이나 당첨된 셈이다. 이 어마 무시한 행운을 누린 나는 '나'와 '제로'가 관리하는 우주 호텔 별먼지에 머무르다 지구 첫 우주 공항에서 오로타 행성행 우주선을 탈 미래를 꿈꿔본다. 꿈꾸는 자에게, 믿는 자에게 꼭 찾아올 약속을, 오늘 밤하늘 반짝이는 무수한 별 어딘가에서 고개를 끄덕일 친구와 할 것이다.

이 책으로 함께 할 동료가 많아질 거라는 느낌에 행복하다. 다른 4편의 동화는 어떤 속삭임일지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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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 - 입학에서 적응까지 초등 저학년 생활 마스터하기
송유진.최지원 지음 / 청어람M&B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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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아이가 1학년이면 엄마도 1학년"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이다. 새로운 공간과 단계에 진입하는 아이가 겪는 몸과 마음의 변화와 긴장이 가장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모도 부담을 느낀다. 특히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학보모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까지 '보육' 환경에서 생활하던 아이가 '교육'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몫이 부쩍 늘어나기 때문이다. 즐겁고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우리 아이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부모는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준비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흔히 선배맘들의 조언을 참고한다. 하지만 아이들마다 성향과 기질이 다 다르기에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고 불안한 예비 학부모와 저학년 학부모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도서가 바로 여기 있다.

 



 『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 

- 입학에서 적응까지 초등 저학년 생활 마스터하기

 

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 송유진ㆍ최지원 지음/ 청어람 M&B




초등학교에서 1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자 교육심리학을 공부한 이력을 지닌 송유진 저자와 최지원 저자가 이제 막 첫발을 뗀 학생과 학부모님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출간한 뜻깊은 책이다.

 

저자들은 학생의 바른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같은데 자꾸만 깊어져가는 학교와 교사와 학부모 간의 오해를 줄이고자 노력하였다. ('읽기 전에')

저학년 아이들 사례, 교육적인 조언, 실천 팁을 제공하고 있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학교생활 안내서이다. 저자들의 교직 생활과 교사 커뮤니티, 동료 교사의 경험담을 녹여내 어림짐작이 아닌 '오늘의 학교와 교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 학부모들은 실용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궁금할 수 있는 혹은 필요한 내용을 사례와 질문을 통해 환기시킨 후, 교사로서 객관적인 조언을 전한다. 구체적인 실천 팁까지 추가되어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한결 수월하다.

 

이미 두 차례나 경험한 선배 맘으로 주위의 예비 학부모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우리 아이들이 초등 저학년 때 고민했던 부분들을 꼭 집어서 명확하게 설명해 줘서 '그때 봤더라면 덜 마음 쓰였을 텐데…,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구나.'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첫아이를 입학시키고 괜스레 소소한 거 하나까지 불안하고 걱정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얼른 주위에 권해야겠다 생각이 커진다. 물론 읽어도 쉽게 가라앉을 불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간접경험한 경우라면 유연한 마음으로 초등 저학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칭찬부터 갈등까지 아이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얘기를 나누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상담서를 옆에 두고, 부담 한스푼은 덜고 기대 한스푼은 더한 학교 생활을 시작해 보자.

 

 

 

 


책이 두껍지 않은데 다루는 내용이 알차고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경력으로 쌓인 내공과 지식의 결합이 농축되어 키워드별로 학부모가 유념해야 할 주제를 잘 풀어내고 있다.




<관련 사례 - 선생님 가이드 - 팁>순으로 하나의 주제가 정리되어 있어서 한눈에 쏙 들어온다.


03. 쉬는 시간_ 쉬는 시간에 혼자 책 읽는 아이, 문제가 있는 걸까?

학부모 상담에 '쉬는 시간'에 대한 염려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교사의 관점에서는 다양한 쉼의 방식이고 일시적인 현상임을 알기에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데이터의 축적으로 여유 있는 교사의 조언은 자신의 아이에 집중되어 있는 학부모의 시선을 분산시켜준다. 그리고 여기서 마무리하지 않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경우에 쉬는 시간 메이트를 만들어주는 부모의 개입을 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팁이 이 책의 강점이 아닐까.



 

 

40. 평가_ 생활 통지표의 '잘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예전처럼 100점 만점에 몇 점 같은 점수나 석차, 평균이 없는 생활 통지표를 받고 아이의 학습 상태를 가늠하기 힘든 학부모들에게 초등 저학년 수행 평가에 관한 적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혹시 보통, 노력 요함 등으로 낮다면 다른 학생과 비교하지 말고, 아이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채워 가는 '과정 중심의 학습'을 강조한다. 서술형 평가 결과 한 단계 올리는 비법을 더해 학부모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총 62가지의 현실적인 키워드와 질문을 통해 저학년 학부모가 품을 만한 궁금증과 알아야 할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학생의 적응, 학업, 교우, 진로, 학교폭력 등 학생의 성장과 자립에 관한 주제뿐만 아니라 학교 활동 내 학부모 참여에 관한 주제도 잘 정리되어 있다. 학부모 상담, 학부모 총회, 학부모회 활동 등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망설여지는 사항들에 대해 부모의 속을 들여다본 듯하다. 꼭 참여해야 하나?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들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부터 저학년 학부모입니다』 책은

학교와 학부모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여 학생의 바른 성장을 위해 함께 힘쓸 수 있도록 애쓰는 마음이 엿보이는 책이다. 저학년 학부모와 예비 학부모라면 아이의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는 참고도서로,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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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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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루시드폴의 에세이 《모두가 듣는다》

 

 

모두가 듣는다/ 루시드폴/ 돌베개


 


가수 루시드폴이 전하는, '음악'으로 느끼고 귀 기울이는 세상을 조우하고 차오르는 만족감에 빠져든다. 음악을 향한 그의 진심과 집중과 귀 기울임은 세상을 듣는 행위로 귀결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번 에세이에는 지난 수년간 작업과 녹음 틈틈이 남겨둔 기록인 녹음 수첩뿐 아니라 새 음반 <Being-with>를 위한 라이너 노트가 수록되어 루시드폴의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Being-with>의 '소리'로 떨어져 있는 우리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기분을 감각할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음악' 듣기에 유독 약하다.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귀로 들어오는 선율을 체화하지 못한다. 같은 노래라도 들을 때마다 처음 접한 노래처럼 들을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래서 루시드폴 산문집 《모두가 듣는다》의 인도로 닿게 된 세계는 별세계였다. 갓난아이처럼 내가 모른다는 것도 몰랐던 세상의 소리를 듣고 공간을 감각하고 그 안에서 그의 말처럼 춤추고 호흡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찾고자 하는, 갈구하는, 전하는, 뿌리는 '음악'과 '노래'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BGM으로 그의 앨범을 틀어놓았다. 글로 해석해놓은 그의 음악은 어떤 걸까? 이런 과정을 거쳐 맺은 열매의 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서 들으면서 읽었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로 모은 식물의 노래(Moment in Love, Dancing with Water), 공사장 소리를 미분하여 고통받는 지구(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노래(Mater Dolorosa, Being-with), 떠나간 가족을 위한 노래(Transcendence, Being-with), 기존에 내가 알던 노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눈을 뜨는 듯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는 '음악은 무엇인가'에 몰두하던 사유를 차츰 '무엇이 음악이 되는가'로 돌리는 흐름을 보여준다. 듣는다, 귀 기울인다.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향한 삶이자 음악이자 노래를 들려준다.

 


 

우리는 듣는 만큼 보고, 듣는 만큼 느낀다.

- 모두가 듣는다, p.29

 

 

 


세상의 소리는 듣고자 하는 이만 듣는다. 그는 들리지 않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이들에게 아무리 "세상은 듣지 않는다" 해도 함께 사는 타자의 몸짓을 애써 듣고, 보려는 사람도 우리 곁에는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애쓴다. 그리고 그 스스로도 분명 존재하지만 누군가는 듣지 못하는 소리를 길어내는 수고를, 마음을 기꺼이 하여 음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들어보자고, 귀 기울여보자고 권하는 그의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던 나무의 소리도, 바다의 소리도, 지구의 고통 어린 울음도, 바람 소리도, 희귀질환을 앓는 환우의 통증도, 공사장의 소음까지도 다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그는 "노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노래는 이야기가 된"다고 했다.(너머, p.155) 이야기가 된 노래는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을 만난다는 건 루시드폴의 말처럼 커다란 축복이다.

필름과 테이프를 내려놓지 못하는 동시대의 음악가, 농부, 작가, 화학자 루시드폴이 만든 노래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나를 기울여 세상과 하나가 되어 춤추는 일, 표면에 부유했던 나를 내면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기는 일, 벅차오르는 행복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인도 출신 음악가 안수만 비스와스는

'듣는다는 건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일'이라고 했다.

다 함께 춤출 수 없는, 말하기 중독에 빠진 세상이 온건 아닐까.

그런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한 건 듣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다.

- 나를 기울이면, p.58,9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고, 인간이 나눈다. 이제 떠나가는 2023년과 떠오르는 2024년의 어느 지점에서 루시드폴의 음악과 사진과 깊이 있는 사유로, 세상의 소리에 나를 기울여보는 아름다움을 누려볼 수 있어 행복한 내가 보내는 초대장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귀 기울여봐요. 들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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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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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이다혜ㆍ이주현 지음/
한겨레출판

 

 


 

이번에 읽은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다.

2002년부터 꾸준히 인권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제작한 영화 10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별별차별>(2012, 씨네21북스)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2013년부터 다시 10년 동안 세상에 나온 10편의 영화 이야기를 담은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를 출간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고 하는데 2013년에 제작된 <봉구는 배달 중>, <두한에게>, <얼음강>으로 비춰본 한국 사회와 2022년 작품 <힘을 낼 시간> 속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듯하여 씁쓸하다. 그래도 꾸준하게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기에 더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희망한다.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고통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실을 담은 상상의 이야기가 지닌 힘이 평화로운 내일을, 다정한 세계를 꿈꾸게 하고 기필코 이루게 할 거라 믿는다.

 

 

 

10편의 영화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숙제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웃을 비추고 있다. 사회경제 변화로 야기되는 상황들을 개인(혹은 가정)의 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할 때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와 불안, 부담을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0편의 영화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청년의 인권과 삶을 다룬 이야기

(메기, 이옥섭 감독, 2018)

청소년의 인권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최익환 감독,

2015/힘을 낼 시간, 남궁선 감독, 2022)

노인 인권에 대한 영화

(봉구는 배달 중, 신아가ㆍ이상철 감독, 2013)

스포츠 인권에 대한 영화

(4등, 정지우 감독, 2014)

존엄사를 대하는 또 다른 시선

(하늘의 황금마차, 오멸 감독, 2014)

고독사를 다룬 영화

(소주와 아이스크림, 이광국 감독, 2015)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한 이야기

(얼음강, 민용근 감독, 2013)

장애 인권을 담은 이야기

(두한에게, 박정범 감독, 2013)

파놉티콘, 디지털 감시 사회를 다룬 이야기

(과대망상자(들), 신연식 감독, 2015)

 

 

 


 

 

이 10편의 영화가 우리를 찾아오는 시간 동안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해 사회적ㆍ법적 변화가 있었다. 1939년 이래 지난 80년 동안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가 1만 9,7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2020년 대체복무제가 시행됨으로써 감옥에 수감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수가 늘어나지 않게 되었다.

 

책 제목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는 민용근 감독의 저서 <그들의 손에 총 대신 꽃을>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한다.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진행 중인 오늘날, 군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충돌하고 있다. <얼음강>이 풀리지 않는 문제에 실마리가 되어줄지 자신의 인생을 걸고 꺾이지 않는 신념을 그린 영화를 직접 보고 싶어졌다.

 

 

 

10편의 작품 중 본 작품이 <4등>뿐이라 아쉬움이 많다. 읽으면서 활자로 만나고 있는 이 작품들을 실제로 관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헛헛한 기분이 커갔다.

 

 


 

청년의 인권을 판타지스러운 구조 안에서 다각적 측면으로 바라본 <메기>, 청(소)년의 인권을 지나친 경쟁과 소비 구도에서 대체 가능한 부속품처럼 버려진(은퇴한) 아이돌들의 여행 서사로 풀어낸 <힘을 낼 시간>,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는 노인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을 아이와 노인의 하루로 따뜻하게 담아낸 <봉구는 배달 중>, '생과 사를 자연의 섭리'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으로 로드무비 형식으로 간암 말기 치매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그린 <하늘의 황금마차>, 평소에 의식하고 있는 주제인 디지털 파놉티콘을 과대망상과 연결 지어 중의적인 시선이 담긴 <과대망상자(들)>까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톺아본 영화에 그치기에는 서운하다. 상업영화가 아닌 인권 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를 편하게, 쉽게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 '69세'를 보고 노인과 여성의 오늘을 통렬하게 자각한 기억이 있다. 나이, 성별, 장애, 경제력, 학력, 직업 등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있다' 그 존엄한 사실로 존중받고 살아가는 나를 바란다. 그렇다면 결국 모두 다 존엄한 오늘을 보내는 이 시대의 우리가 되지 않을까. 서로 대립하는 권리가 아닌 병립하는 권리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교권과 학생 인권을 바라보는, 청년과 노인을 바라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한 현명한 해법은 다르다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기존과는 다른 열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사회에서 낙오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기억 대신 속해있고 존중받는다고 믿을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을, 용기를, 관심을 말하는 책이다. 더 나은 내일을 염원하는 우리에게 추천합니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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