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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무녀전 ㅣ 조선의 여탐정들
김이삭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월
평점 :
김이삭 작가의 『한성부, 달 밝은 밤에』 스핀오프 역사추리소설인 『감찰무녀전』이 출간되었다.

감찰무녀전/ 김이삭 장편소설/ 고즈넉이엔티
신기 없는 무녀 '무산'과
귀신 보는 유생 '설랑'과
앞 못 보는 판수 '돌멩'
'척'하는 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속내만큼은 진국인지라 거역할 수 없는 왕명을 수행하면서 관원들은 듣고도 듣지 않고 보고도 보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무산과 설랑과 돌멩의 공조가 펼쳐지는 내내 이들의 처지에 가슴 저릿하면서도 두박신 사건 속 평범한 사람들 바로 옆에서 눈을 마주치고, 함께 공감해 줘서 가슴 뭉클하고 고마웠다. 이것이야말로 성심이 아닌 민심을 헤아리는 이들의 활약이 계속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유리라.
왜 따라왔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네가 어찌 될 줄 알고. 네가 어찌 될 줄 알고, 나는 왜…….
- 고생하여 꼴이 험한 설랑을 보고 무산이 속으로 하는 말(p.362)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 자기 대신 다친 설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무산에게 돌멩이 하는 말(p.382)
궁정상궁에 발탁되어 감찰궁녀로 자라온 무산은 서로 의지하며 지내던 의령이 죽은 후,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도 기리지 않는 한낱 궁녀의 죽음, 홀로 슬퍼하고 홀로 아파해야만 했던 무산은 스스로 궁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신병에 걸린 '척' 궁에서 나와 무당골에 자리 잡았다. 바둑돌로 살기 싫어서 궁에서 나왔지만, 신기가 없는 자가 무녀로 살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그녀 앞에 궁정상궁 '순심'이 나타나 비밀 교지를 전한다. 신기가 없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는 무산은 왕명을 수행하기 위해 양반이지만 서자이며 귀신을 보는 '설랑'의 도움을 받는다.
▷ 감찰궁녀였던 무산에게 내리는 명
두박신에 관한 모든 걸 조사하거라.
맨 처음 퍼뜨린 이는 누구인지, 누가 만든 건 아닌지, 어떻게 퍼진 것인지, 남김없이 말이야.
▷▷ 무녀 무산에게 내리는 밀명
두박신이 진짜인지를 조사하거라.
두박신이라는 괴력난신이 진짜인지, 그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알아보거라.
무산은 설랑과 돌멩뿐 아니라 사헌부 감찰 김윤오와 전농시 소윤 이보정과 함께 조사를 하게 되는데…… 서로 다른 입장인 그들은 속내를 감춘 채 도성과 경기를 뒤흔든 '두박신'을 둘러싼 진실에 다가간다.

명령으로만 등장하는 성상은 민심을 사로잡은 '두박신'이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 살피기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두박신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고하라 한다. 씁쓸한 맛이 가시지 않는다. 소설의 시작과 끝맺음을 이루는 또 다른 이야기 '왕신'을 모시는 마을에서도 성상과 비슷한 이가 등장한다. 바로 '왕신'을 모시게 하고 금기를 만든 전전 가주이다.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을 보면서 귀신보다 더 무섭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을 이용하여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하고자 하는 우매하고도 탐욕스러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남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대나무 같은 무산은 왕명에 굴하지 않고, 이 세상에 '두박신'을 만들어내고 퍼뜨리게 된 백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풀어놓는다. 그도 살고, 상처 입은 이들도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하고도 위험한 일을 벌인다. 든든한 벗 판수 돌멩과 함께.
곧지만 속이 비어 유연한 대나무 무산이기에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매번 노력한다. 이를 알기에 설랑도, 돌멩도, 순심도 그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리라.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리라.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슬픔은 큰 상처가 된다. 그 죽음을 납득할 수 없다면 더더욱. 무산이 의령을 떠나보내지 못한 것처럼, 소란이 미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두박신을 복수의 신으로 만들었던 소녀의 죽음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무산의 이야기는 찬란하다. 희망을 원한으로, 그리움을 분노로 뒤바꾸어버리기 전에 억울한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자 애쓰는 감찰무녀, 바로 우리가 간절히 듣고픈 이야기다.
* 무산과 설랑, 돌멩의 수사활극 외에도 『감찰무녀전』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점이 또 있다. 김이삭 작가의 탄탄한 사전조사가 뒷받침된 서사가 그렇다. 예로 이보정의 홍패를 보면서 무산의 생각에 대한 출처를 들 수 있다. 이런 배경이 읽는 내내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