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조선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0
정명섭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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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능력이 있어 견디는 게 아니야.

한 줌의 용기와 희망으로 버텨내는 거지."

 

 

 

빙하 조선/ 정명섭 저/ 다산책방




 

'조선 시대에 빙하기가 닥쳤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서 세상에 나온 『빙하 조선』은 정명섭 작가의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한 문장에서 눈덩이처럼 커진 궁금증으로, 화길과 경혜 그리고 월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눈으로 뒤덮인 엄한 세상에 한발 한발 자국을 새기며 재난에 맞서나갔다. 그 활약을 함께 하다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온몸이 달궈졌다.

 

신분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꽁꽁 얼어버린 상황에서 임금은, 관리는, 양반은, 백성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려내는 작가의 펜에 깊은 고뇌가 묻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놓을 수 없는 절실함이 녹아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소설은 한번 손에 들면 내려놓지 못하게 인간사 여러 감정들을 자극한다. 초반 화재를 진압하는 멸화군의 숨 가쁜 활약으로 독자의 시선을 강탈한 『빙하 조선』은 초여름 6월 펑펑 내리는 눈으로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6월, 수확을 마친 겨울과는 다르게 비축한 식량이 여유롭지 않은 시기에 닥친 추위는 신분에 상관없이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살아남기 위해 제각각 선택한 결정들은 서로 충돌하여 피를 불렀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에 망연자실하기도 하였지만, 읽는 내내 옳은 답을 호기롭게 입에 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제 열여섯, 화길과 부광의 백두산 여정을 더 절실히 응원하게 되었다. '백두산의 따뜻한 땅'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들 앞에 펼쳐질 수많은 고난과 어둠을 알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처지가 달라서, 원하는 바가 달라서, 신념이 달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은 길 위에 서있던 소설 속 인물들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화길과 월화 그리고 경혜의 선택, 부광과 타이샨의 선택, 성창 대군의 선택. 재난 상황에서 바라는 바가 다른 이들이지만 향하는 곳은 같다. 한파, 눈 폭풍,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그들은 살고자 자연의 따뜻한 곳을 찾았다. 자연의 은혜는 누구에게 허락될까?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기보다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빼앗아 살아남으려는 아비규환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힘을 내는 이들의 행보가 비록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화길과 성창 대군이 지닌 신기한 능력이 아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걸 보면 『빙하 조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난세에 영웅 난다.'라는 말처럼 위기 상황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가 있다.

위기를 미리 예측하여 대비하고 멸화군을 가족처럼 챙기는 듬직하고 의리 있는 화길의 아버지처럼,

두렵지만 아버지가 기억하는 따뜻한 땅을 찾아 나선 용기 있는 화길처럼,

여진족에게 약탈당하고 죽임당하는 조선 사람들을 위해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용감한 월화처럼 말이다.

위기에서도 의미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평범한 백성들로 이웃과 함께 살아남기만을 바란다. 정당한 통치자라 주장하며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무참히 죽이는 성창 대군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왕실, 이들이 다스리는, 다스리고자 하는 조선은 이미 꽝꽝 얼어있었을 지도 모른다.

 


 

"힘이 강하고 잔인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착하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건 확실해."

"그렇다고 악하게 살아남고 싶지는 않아."

"살아남는 게 최선이고 좋은 일이면 방법은 중요하지 않겠지."

"그렇게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겠어."

"살아남는 게 옳은 일이라면 그게 바로 의미가 되겠지."

- 따뜻한 땅을 찾아서, p.98,9

 

 

 

백두산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중 옷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고기를 먹고, 흉악한 여진족이 붙잡힌 조선 사람들을 오히려 살려주는 참극을 본 이후 나눈 화길과 부광의 대화가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무섭도록 날선 투로 묻는 『빙하 조선』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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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라, 공! - 각자의 방식으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1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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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라, 공!/ 박하령 저/ 자음과모음



 

 

만날 때마다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하는 박하령 작가님.

이번 청소년 소설 『굴러라, 공!』 역시 울림이 큰 책이다. 「나의 스파링 파트너」(자음과모음, 2020. 02. 06) 속 첫 번째 단편 <굴러라, 공!>에서 시작된 연작 소설이다. '나를 비추는 거울'의 한 조각이었던 이야기가 다양한 아이들의 입장으로 뻗어나간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생각과 태도를 통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현실을 유연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자세를 익힐 수 있다.

 

 

 

"홍모는 나쁜 짓을 했으므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건은 '주홍모'라는 아이가 남자아이들 단체 톡방에서 반 여자아이들 외모 순위 투표를 한 데서 시작한다.

 

바르고 정의로운 성격의 하윤이는 이를 공론화하여 홍모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데 오히려 역풍을 맞는다. 그것도 여자아이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홍모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하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공을 굴렸다. 하지만 그 공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버렸다. 과연 그 공은 어디를 향하게 될 것인가!

 

 


 

하윤이가 정의라고 생각하여 던진 공은 의도와는 다르게 굴러가게 된다. 공을 던진 당사자 하윤뿐 아니라 관련된 혹은 엮이게 된 이들의 입장과 고민들은 제각각이다. 이 시점이 바로 이 소설의 의의가 아닐까. 사실 속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살펴보게 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행동했는지 가늠해 보면서 청소년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고 깨닫게 될 것이다.

 

 


 

생김새부터 처한 상황, 입장 모두 다른 우리들은 자신이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 책 속 다섯 명의 아이들 또한 자라온 환경에서 체득한 대로 행동하다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번뇌하게 된다. 성장통을 겪는 것이다.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시도한 일이 도둑질을 부추기게 되거나(하윤)

헛헛함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 도박에 빠져들게 되거나(홍모)

세상은 평등하지 못하다고 믿으며 바라는 것 없이 포기하면서 살아가게 되거나(인섭)

연예인을 꿈꾸며 선한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하여 남에게 인정받아야지만 비로소 존재한다고 느끼거나(지희)

자기 확신이 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주눅이 들어 그 사람에게 선택권을 넘겨버리게 되는(시연)

아이들의 입장을 담아내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 <다윗과 골리앗이 함께 사는 법> 낮은 포복으로 각자도생 : 정인섭 편이 기억에 남고 가슴 아팠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세상 바라는 것 하나없이 포기하고 살아가게 되는 아이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고 더 크게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까? 굳이 인섭이 모가 그렇게 한 행동한 이유를 좋게좋게 생각하고자 하지만, 그로 인해 무너져 버린 인섭이 세상이 불쌍하고 미안했다. 그냥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줬더라면, 자기 편을 들어주는 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윤과 홍모, 인섭, 지희, 시연은 각자의 방식으로 공을 굴리고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공을 응시하며 벗어나고자, 해결하고자 고민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매는 듯한 막막한 현실 속에서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보면서 뉘우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답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청소년의 널뛰는 감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어 바로 앞에서 듣는 진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막막한 동질감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일처럼 부딪쳐 고민하고 아파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는 박하령 작가님의 말처럼 하나의 사건과 개인의 작용·반작용은 천차만별이었다. 또 책 속 방황하는 십 대 청소년들의 고민과 성장이 좀 더 크고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 보여준 어른답지 못한 모습 때문이었다. 자신을 바로 보고자, 바로 세우고자 분투하는 성장통은 아이들에 국한되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내내 굴러가는 공을 주시하며 건강하고 바른 방향으로 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굴러라, 공!』 다섯 아이가 격렬하게 외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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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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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앞표지에 그려진 소녀의 미소와 비눗방울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노란 뒤표지는 그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하다. 바로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작 마지막 히치하이커의 문이소 작가의 첫 SF 소설집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이다.

 

국가기밀서평단으로 작가님 긴급 미션과 함께 미리 도서를 만나볼 수 있었다. 총 5편이 방울들이 되어 이룬 작은 샘 같은 이 책은 나는 '혼자'라는 자각으로 불안하고 두려운 우리에게 어둠 너머 곁에서 손 내미는 또 다른 존재를 다정하게 그리고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일 지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기꺼이 손 내밀어 주고 어깨를 빌려주는 타인을 방울방울 보여주고 있다.

 

친한 친구일 수도, 오늘 처음 만난 이일 수도, 두려워하는 이일수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한 존재를 돕기 위해 베푸는 친절이 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역시 책표지처럼 따스하다. 파란색인데 신기하게도 온기를 품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다정한 온기뿐만 아니라 자꾸 피식거리게 되는 유머에 있다.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며,

인간에게 닥친 일들에 대한 인간 우월성의 확인이다."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중에서

 

"유머는 위대하고 은혜로운 것이다.

유머가 있으면

이내 우리의 모든 짜증과 분노가 사라지고

대신 명랑한 기운이 생겨난다."

마크 트웨인

 

유머는 우리가 가진 놀라운 무기이다.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은 그 힘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읽으면서 자꾸 피식거리는 나를 힐끔힐끔 보는 아들 내미의 관심을 봐도 그렇다. 책 잘 읽던 아이가 게임과 유튜브의 세계를 접하고 나서는 시들해져서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었건만. 이 책을 읽으면서 웃는 내가 신기한지 물어봤다.

 

"엄마는 책이 재밌어요?"

"어, 이 책이 재밌네."

"무슨 책인데요?"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으니 다 읽은 후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오래간만에 책에 관심을 보인 아들이라 신기하고, 고마웠다.

 

 

 

 

SF 소설집답게 평행우주, 웜홀, AI, 임종 서비스, 로봇 등 다채로운 소재들이 등장하여 과학적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오늘의 일상과 소설 속 미래 언젠가의 일상이 미묘하게 겹쳐있는 듯한 기시감에 빠져들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뒤흔들어놓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바람이 기저에 깔려있는 이 소설집은 소소한 일상 속에 큰 질문과 문제를 잘 녹여내고 있다. 읽어나가는 우리는 작가가 뿌려놓은 유머를 걷어들이면서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나가게 된다.

 

 

몇 년 새 뜨거워져 가는 지구에서 시작된 위기의식은 웜홀을 통해 버섯 종자를 가지러 온 평행우주의 먼 미래 공무원 웜홀 라이더의 입을 통해 현실화된다(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

 

 


 

그림으로 세상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가난한 일러스트레이터와 '나'를 인지한 순간에 대한 질문으로 번민하는 세계 최고의 지성인 AI가 서로를 이해하고 그림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가난한 일러스트레이터의 통장 잔고 변화는 다이나믹하다(젤리의 경배).

 

 


 

어제의 나는 흘러가서 없고, 내일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아 없는 단 하나의 시공뿐인 지구에 찾아온 스무 번째 나는 단절자이다. 존재의 흐름이 끊긴 내가 지구인과 다름없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하지만 '스무 번째 나'의 마지막 결심이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찬란하게 한다. 말과 글로 전할 수 없는 '유영의 촉감'을 나누며 사는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유영의 촉감).

 

"기억하는 한, 언제나 함께."

 

 


 

이토록 좋은 날 서비스는 죽은 이에게도, 이별을 고하는 이에게도 따스함을 선사한다. 작위적이다 반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젤리의 경배에서 젤리가 한 말처럼 '나'가 흩어지는 마지막 순간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을 꾸면서 맞이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배웅이다. 물론 어느 누군가에게는 몇 달의 생활비가 드는 고가일 수도 있다는 게 눈에 밟히지만(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문이소 작가의 발랄한 유머는 소설 전반에 묻어나지만 제목이 특히 그렇다.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 이 창의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우리를 몰입시킨 작가는 의뭉스러운 공간을 연출하다가 햇살처럼 관심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으로 이끈다. 우리 주변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생명체의 죽음과 탄생에 대한 다정한 책임을 만날 수 있는 단편으로, 많은 이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생명을 지키고 보살피는 이들이 기사와 마녀 바로 도망친 토끼 로봇과 은둔형 예술가라는 설정이 와닿는다. 살아남는다. 지켜야 하는 이가 있는 절박함이 전하는 진심이 로봇을 감동시키고, 그렇게 태어난 작은 생명을 눈 감을 수 없는 다정한 누군가가 보살피게 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렇게 이웃이,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따뜻하고 웃음기 머금은 세상을 담고 있다(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

 

 

다섯 편의 단편을 읽고 다섯 번의 긴급 미션을 수행하면서 지난 추억을 끄집어내보고, 내 집도 둘러보면서 웃고 다정한 하루들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새삼 '나'를 향한 세상의 소소한 다정을 깨달으며 미소를 지어본다. 위로받는 시간을 기대하며  『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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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낭군가 - 제7, 8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6
태재현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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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장르물 소재 중 가장 친숙한 건 '좀비'일 것이다. '워킹데드', '부산행', '킹덤' 등 좀비로 뒤덮인 참혹한 세상을 그린 작품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작품의 수와 영역이 확장되면서 좀비 아포칼립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또한 다양하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오락을 넘어 인간에 관한 사유와 세태에 대한 성찰을 다루는 각양각색의 글을 접할 수 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가 왜 만들어졌을까?

 


좀비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면서 읽어나가야 하는 의미심장한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은 절박한 추격전으로 긴장감이 고조되어 집중력이 높아지니 재미는 기본이다. 잠 못 이루는 긴 겨울밤,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물은 필수 아이템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에 황금가지 서평단 활동으로 읽은 

 『좀비 낭군가』  역시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작품집이었다.

세계 유일의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 공모전 ZA 문학상 수상작 다운 저력을 뽐내고 있다.

 

 

 

좀비 낭군가/ 제.7,8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황금가지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좀비는 시대, 공간,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괴수이자 우리였다. 비슷한 듯 다른 7편 속의 좀비들을 만나고 도망치고 해치우는 사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게 되었다.

부정하고픈 현실 앞에서 얼어붙은 채 휩쓸리는 자가 되느냐 아니면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자가 되느냐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끔찍한 대재앙 앞에서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인물들의 활약상에 고무되어 나라면? 질문의 답을 찾아 손끝에 힘을 주어 책장을 넘겼다.

 

 

 


 

 

좀비 낭군가 소설집 7편의 소설은

좀비를 상대로 싸우는 이들의 고군분투기(좀비 낭군가, 침출수, 삼시세킬, 화촌, 각시들의 밤)와 좀비가 주인공인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이야기(메탈의 시대, 제발 조금만 천천히)로 나눌 수 있다.

 

 



 

 

표제작인 [좀비 낭군가]는 조선 구전 민요인 <진주낭군가>를 글감으로 탄생하였다. 원 민요와 비슷한 형국으로 진행되다 막판에 발칵 뒤집어진다. 속이 얹힌 듯 답답함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슝~ 날아가 버렸다.

 

남편은 좀비가 된 것을 힘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왕'이라 칭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한윤이와 매향의 활약은 살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였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순종해야 했던 여인의 항거였다. 유교의 나라 조선이라 더 크게 다가왔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로 사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부인도 얼른 오시오.

이 삶에서는 두렵고 슬픈 것이 없다오. "

 

 

 

[침출수]

한 소녀의 처절한 사투는 '좀비' 사태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외래종 혹은 신종 벌레처럼 악행을 저지르는 이가 자신에게 지분거렸을 때부터. 인간 같지 않은 구더기 벌레가 지엄한 생태계의 결정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모른 척했을 뿐인데……

이제 열여섯 살, 한창 배우는 서툰 것 투성일 나이에 도아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극을 처리하는 해결사를 자초했다. 그 용기와 투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끝까지 붙들고자 애쓰는 그 아이를 통해 살아가는 이유를 나지막이 읊조려볼 수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억지로라도 웃을 생각이었다.

……

도아가 이 마을을 떠나면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서 그 사람 방에 놔주고 싶었다.(p.81)

 

"그래 도아야, 느그 할배 생각해서라도 견디야한다.

가서 응급치료받고 할배한테 전화 디리자, 알았제?"

 

 

 


 

좀비가 된 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삼시세끼를 챙기는 일이 당연지사가 된 보배가 좀비가 된 남편을 위해 '인간을 쇼핑하는 충격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삼시세킬]과 괴수로 변해버린 소녀가 지켜주는 바다의 풍요를 버리지 못해 신으로 추앙하고 매년 인간 제물을 바치는 끔찍한 섬마을 이야기인 [각시들의 밤]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로 혼란스러워도 '삼시세끼'라는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잘 살고 있다는 괴이스러운 이야기는 좀비 아포칼립스 다운 결말이었다.

태몽처럼 섬을 불태워버린 진홍의 이야기는 보호를 받는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고, 다수보다는 소수의 희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비극을 뒤엎었다. 풍요로울 수만 있다면 괴수조차 신으로 모시는 인간과 본능에 충실한 좀비 중 누가 더 역하고 끔찍한 것일까.

 

 

 

[화촌]

이 작품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이다. 작가의 참신한 상상력에 경이를 표한다. 휴게소와 화장실 낙서 그리고 터널까지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갖춰진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까지 맛깔나게 버물러 한상 차려놓았다. 아찔한 결말에 한방 제대로 먹었다.

 

 

천 년 전의 당신에게 알린다.

우리들은 모두 다음 세대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지금껏 인류가 해온 일이 바로 그것이겠지만. (p.229)

 

 

 

 

[메탈의 시대]

베이시스트가 좀비로 변해서도 첫 단독 공연을 접지 못해 좀비로 변한 이들 중 밴드 멤버들을 꾸리는 우여곡절이 펼쳐진다. 양심을 지닌 좀비 돌연변이 설정이 참 특색 있다. 생생하게 그려낸 밴드 공연 무대에 작가의 록 스피릿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이 넘치는 완벽한 오늘의 공연은 지켜보는 나에게도 짜릿함 그 자체였다.

 

드디어 메탈의 시대가 돌아왔다.(p.147)

 

 

[제발 조금만 천천히]

신선한 접근이다. '빨리 더 빨리'를 외치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상당히 획기적이다.

 

 

먼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사실이

약간은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해.(p.251)

 

 

시간을 촘촘하게 나눠서 치열하게 사는 삶. 내일의 성공을 위해 여유와 휴식을 포기하고 열심히 달리는 삶. 그러다 사람들이 속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완인들을 살해한다. 이유도 모른 채 벌어지는 무참한 살육의 현장에서 채하와 지원 그리고 그들이 구해낸 아이 예빈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좀비의 고정관념을 비틀어버리는 작가의 배포에 큰 박수를 보낸다.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는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일까? 좀비는 인간만 공격하는 걸까? 좀비는 본능만 남을까?

좀비가 '왕'이 되고자 하고, 인간에 의해 '신'이 되기도 하고 도리어 일반인을 '좀비'라 부르는 그림을 통해 '좀비'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접근을 시도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들여다본 셈으로, '산다' 아니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아포칼립스를 뒤집는 희망의 내일을 그리기 위해 '아침'이 다가오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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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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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을 받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표지에 그려진 탐스러운 복숭아는 빅토리아의 장엄한 인생을 나타내는 듯하다. 저절로 손이 나가 매만지고 싶을 만큼 잘 여물었다. 관심과 노력 그리고 시간의 결집된 결과물로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


 

 

삶을 뒤흔드는 인연.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소녀는 험난한 인생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이리저리 부딪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는 마침내 두 다리로 우뚝 서 자신이 지나온 물의 흔적을 뒤로 한 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빅토리아 내시의 서사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프롤로그, p.14

 

 

광활한 대지에 흐르는 강물처럼 경이로운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앞에 펼쳐진다. 단조로운 인생 앞에 나타난 폭풍우로 전혀 달라진 삶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그녀의 주체적인 태도에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그저 그녀를 뒤흔드는 상실과 슬픔에 무릎 꿇지 않기를 기도하며 먼저 무너져 내렸던 나는 그녀가 보여준 삶의 의지에, 회복력에 감복하며 따를 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거리에서 만난 낯선 남자. 차별받는 그는 이미 다른 곳에서 도망쳐 나온 상태다. 그런데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어긋나지 않은, 유연하고 느긋한 그. 윌슨 문을 만난 빅토리아는 순종과 인내로 뭉쳐진 자신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숲속의 집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빅토리아.

험난하고 치열한 사투 끝에 보금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그녀는 '탄생하고 견디고 시드는 만물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혼자가 아닌 그녀는 숲의 심장이 뛰는 소리, 주변의 무수한 생명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같이 호흡하는 소리를 들었다.(p.187,8)

 


 

 

어린 시절 떠나보낸 소중한 가족들 그리고 동생의 손에 잔인하게 죽은 연인에 이어 또 한 번 깊은 상실을 겪는다.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슬픔,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p.209)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서는 빅토리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찢겨나가는 듯하다. 해마다 찾아가 돌멩이를 놓으면서 답장처럼 놓였던 복숭아의 향기와 촉촉하게 자신을 적셔주었던 그날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을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고, 후회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져갔다.

 

 


 

다 잃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 하나.

내시 복숭아. 이를 향한 그녀의 집념은 경이로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원하며 내시 복숭아의 부활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남고자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온 빅토리아가 보여준 의지는 새로운 대지에 뿌리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복숭아나무로 발현되었다.

 

 

빅토리아는 친구를 사귀는 데 서툴렀지만 누구보다 멋진 친구들을 만났다. 루비-앨리스 에이커스, 젤다 쿠퍼와의 소통은 그녀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람보다 자연이 편했던 소녀에게 사람 간의 정을 나누어준 소중한 이들. 그들의 존재에서 그녀는 세상 속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가족에서 채울 수 없었던 결핍을 다정한 친구가 메워주면서 스스로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존재 '아들'을 되찾고자 용기 낼 수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몰라 방황하는 가여운 청춘, 루카스와 그의 또 다른 어머니 잉가 테이트 이야기도 시대의 고통을 껴안고 우리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나 용기 내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생물과 조화롭게 주고받으며 소용돌이치며 다음 굽이로 밀고 나아가는 개울처럼 용기와 사랑이 그들에게는 넘쳐흐르니까.

 

 


 

 

 

순종적인 딸 토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사랑'으로 잠자고 있던 자아를 깨달아 선택하고 행동하는 여자 빅토리아로, 엄마로, 한 사람으로 숨 막히는 대장정이 펼쳐졌다.

이 놀라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을 감내하며 근원을 갈구하는 강인한 삶의 궤적에 가슴 시리도록 아프면서도 강렬한 떨림을 느꼈다.

빅토리아 내시가 선택한 땅에 마침내 뿌리내리게 한 복숭아나무, 그 사랑과 용기가 내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상실에서 시작된 내시 집안의 분열은 호수 깊은 곳에 봉인되고 이제는 빅토리아의 축복받은 내일이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닿아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아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 아들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갈이 깔린 물가를 따라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이 땅이 단단히 붙잡아 줄 거라고,

아들도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 마지막 장 p.432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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