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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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을 받았다.

 『흐르는 강물처럼』 

표지에 그려진 탐스러운 복숭아는 빅토리아의 장엄한 인생을 나타내는 듯하다. 저절로 손이 나가 매만지고 싶을 만큼 잘 여물었다. 관심과 노력 그리고 시간의 결집된 결과물로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


 

 

삶을 뒤흔드는 인연.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소녀는 험난한 인생의 파도에 몸을 실었다. 이리저리 부딪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는 마침내 두 다리로 우뚝 서 자신이 지나온 물의 흔적을 뒤로 한 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빅토리아 내시의 서사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그 풍경이 내어주고 앗아간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가슴에 남고,

그렇게 우리라는 존재를 형성한다."

프롤로그, p.14

 

 

광활한 대지에 흐르는 강물처럼 경이로운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앞에 펼쳐진다. 단조로운 인생 앞에 나타난 폭풍우로 전혀 달라진 삶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가는 그녀의 주체적인 태도에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그저 그녀를 뒤흔드는 상실과 슬픔에 무릎 꿇지 않기를 기도하며 먼저 무너져 내렸던 나는 그녀가 보여준 삶의 의지에, 회복력에 감복하며 따를 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거리에서 만난 낯선 남자. 차별받는 그는 이미 다른 곳에서 도망쳐 나온 상태다. 그런데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어긋나지 않은, 유연하고 느긋한 그. 윌슨 문을 만난 빅토리아는 순종과 인내로 뭉쳐진 자신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숲속의 집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빅토리아.

험난하고 치열한 사투 끝에 보금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누운 그녀는 '탄생하고 견디고 시드는 만물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찾아왔다. 혼자가 아닌 그녀는 숲의 심장이 뛰는 소리, 주변의 무수한 생명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같이 호흡하는 소리를 들었다.(p.187,8)

 


 

 

어린 시절 떠나보낸 소중한 가족들 그리고 동생의 손에 잔인하게 죽은 연인에 이어 또 한 번 깊은 상실을 겪는다.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슬픔,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p.209)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서는 빅토리아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찢겨나가는 듯하다. 해마다 찾아가 돌멩이를 놓으면서 답장처럼 놓였던 복숭아의 향기와 촉촉하게 자신을 적셔주었던 그날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을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고, 후회를 덜어주고 싶은 마음만 간절해져갔다.

 

 


 

다 잃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 하나.

내시 복숭아. 이를 향한 그녀의 집념은 경이로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응원하며 내시 복숭아의 부활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남고자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온 빅토리아가 보여준 의지는 새로운 대지에 뿌리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복숭아나무로 발현되었다.

 

 

빅토리아는 친구를 사귀는 데 서툴렀지만 누구보다 멋진 친구들을 만났다. 루비-앨리스 에이커스, 젤다 쿠퍼와의 소통은 그녀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람보다 자연이 편했던 소녀에게 사람 간의 정을 나누어준 소중한 이들. 그들의 존재에서 그녀는 세상 속으로 걸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가족에서 채울 수 없었던 결핍을 다정한 친구가 메워주면서 스스로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존재 '아들'을 되찾고자 용기 낼 수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몰라 방황하는 가여운 청춘, 루카스와 그의 또 다른 어머니 잉가 테이트 이야기도 시대의 고통을 껴안고 우리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어나 용기 내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든 생물과 조화롭게 주고받으며 소용돌이치며 다음 굽이로 밀고 나아가는 개울처럼 용기와 사랑이 그들에게는 넘쳐흐르니까.

 

 


 

 

 

순종적인 딸 토리에서 운명처럼 만난 '사랑'으로 잠자고 있던 자아를 깨달아 선택하고 행동하는 여자 빅토리아로, 엄마로, 한 사람으로 숨 막히는 대장정이 펼쳐졌다.

이 놀라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을 감내하며 근원을 갈구하는 강인한 삶의 궤적에 가슴 시리도록 아프면서도 강렬한 떨림을 느꼈다.

빅토리아 내시가 선택한 땅에 마침내 뿌리내리게 한 복숭아나무, 그 사랑과 용기가 내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상실에서 시작된 내시 집안의 분열은 호수 깊은 곳에 봉인되고 이제는 빅토리아의 축복받은 내일이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이 닿아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아들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 아들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자갈이 깔린 물가를 따라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을

이 땅이 단단히 붙잡아 줄 거라고,

아들도 나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 마지막 장 p.432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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