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조선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0
정명섭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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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능력이 있어 견디는 게 아니야.

한 줌의 용기와 희망으로 버텨내는 거지."

 

 

 

빙하 조선/ 정명섭 저/ 다산책방




 

'조선 시대에 빙하기가 닥쳤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에서 세상에 나온 『빙하 조선』은 정명섭 작가의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한 문장에서 눈덩이처럼 커진 궁금증으로, 화길과 경혜 그리고 월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눈으로 뒤덮인 엄한 세상에 한발 한발 자국을 새기며 재난에 맞서나갔다. 그 활약을 함께 하다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온몸이 달궈졌다.

 

신분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로 꽁꽁 얼어버린 상황에서 임금은, 관리는, 양반은, 백성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려내는 작가의 펜에 깊은 고뇌가 묻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놓을 수 없는 절실함이 녹아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소설은 한번 손에 들면 내려놓지 못하게 인간사 여러 감정들을 자극한다. 초반 화재를 진압하는 멸화군의 숨 가쁜 활약으로 독자의 시선을 강탈한 『빙하 조선』은 초여름 6월 펑펑 내리는 눈으로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6월, 수확을 마친 겨울과는 다르게 비축한 식량이 여유롭지 않은 시기에 닥친 추위는 신분에 상관없이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였다. 살아남기 위해 제각각 선택한 결정들은 서로 충돌하여 피를 불렀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상황에 망연자실하기도 하였지만, 읽는 내내 옳은 답을 호기롭게 입에 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제 열여섯, 화길과 부광의 백두산 여정을 더 절실히 응원하게 되었다. '백두산의 따뜻한 땅'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들 앞에 펼쳐질 수많은 고난과 어둠을 알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처지가 달라서, 원하는 바가 달라서, 신념이 달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은 길 위에 서있던 소설 속 인물들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화길과 월화 그리고 경혜의 선택, 부광과 타이샨의 선택, 성창 대군의 선택. 재난 상황에서 바라는 바가 다른 이들이지만 향하는 곳은 같다. 한파, 눈 폭풍, 눈사태 같은 자연재해 앞에서 그들은 살고자 자연의 따뜻한 곳을 찾았다. 자연의 은혜는 누구에게 허락될까?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기보다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빼앗아 살아남으려는 아비규환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힘을 내는 이들의 행보가 비록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화길과 성창 대군이 지닌 신기한 능력이 아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걸 보면 『빙하 조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난세에 영웅 난다.'라는 말처럼 위기 상황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가 있다.

위기를 미리 예측하여 대비하고 멸화군을 가족처럼 챙기는 듬직하고 의리 있는 화길의 아버지처럼,

두렵지만 아버지가 기억하는 따뜻한 땅을 찾아 나선 용기 있는 화길처럼,

여진족에게 약탈당하고 죽임당하는 조선 사람들을 위해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용감한 월화처럼 말이다.

위기에서도 의미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평범한 백성들로 이웃과 함께 살아남기만을 바란다. 정당한 통치자라 주장하며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무참히 죽이는 성창 대군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왕실, 이들이 다스리는, 다스리고자 하는 조선은 이미 꽝꽝 얼어있었을 지도 모른다.

 


 

"힘이 강하고 잔인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네.

이런 세상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착하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건 확실해."

"그렇다고 악하게 살아남고 싶지는 않아."

"살아남는 게 최선이고 좋은 일이면 방법은 중요하지 않겠지."

"그렇게 살아남는 게 무슨 의미겠어."

"살아남는 게 옳은 일이라면 그게 바로 의미가 되겠지."

- 따뜻한 땅을 찾아서, p.98,9

 

 

 

백두산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중 옷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고기를 먹고, 흉악한 여진족이 붙잡힌 조선 사람들을 오히려 살려주는 참극을 본 이후 나눈 화길과 부광의 대화가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무섭도록 날선 투로 묻는 『빙하 조선』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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