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된 여우 - 어른도 함께 읽는 동화
금관이야(박미애) 지음, 김경수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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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된 여우/금관이야/고래책빵



삵에게 새끼 한 마리를 잃은 후 아침마다 비명과 함께 눈을 뜬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미의 고통은 과연 사그라질 수 있을지……

금붕어가 사는 빨간색 목도리를 감고 산을 올라 소나무 옆에서 소원을 빈다.

작은 발이 남긴 자국이 소나무에게 새겨질 만큼 매일 오르는 그 아이의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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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경험한 어미 여우와 애나는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애나 엄마가 뜨개질로 처음 뜬 빨간 목도리. 그 붉은 실이 둘을 운명으로 묶어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애나에게서 부모님을 빼앗아간 사고 후 여우가 새끼를 품에 안고 더 깊고 깊은 골짜기로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사람과 동물의 공존은 정말 불가능할까? 동물에게 사냥은 생존이다. 죽고 사는 문제이건만 인간에게는 재미이자 돈벌이일 뿐이다. '인간의 재미가 되기 위해 동물은 피를 흘려야 한단 말인가?' 여우의 피 끓는 탄식은 사과의 말로 가볍게 넘길 계제가 아니다.

 

"여보 눈을 떠 봐! 여보…" "애나야…, 애나야…"

남자의 울부짖음이 여우의 가슴속에 박혔다.

새끼를 떠나보내고 나니 묻어두었던 울부짖음이 여우를 사로잡는다. 여우는 애나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소나무는 그렇게 애나와 여우를 어루만져 주고는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서 있다. 무한한 시간의 강을 건너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우리네 삶을 굽어살피는 듯하다. 달이 오케이 하는 날, 애나는 그토록 소망하던 언니를 얻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둘이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인 애나와 여우, 손을 꼭 잡고 마을로 내려오는 두 사람 그림자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책에서 나오는 99번의 재주넘기. '9'자가 가지고 있는 결핍, 부족의 의미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그 부족한 '1'을 채우는 것은 간절함으로 표현된다. '한 방울의 물에 잔이 넘친다'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가 꼭 있다. 여우가 애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사랑을 보여주는 간절함처럼 말이다. 부족한 '1'을 채울 수 있는 간절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9'가 혹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듯하다.

 

어른도 함께 읽는 동화 <언니가 된 여우>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애나의 시선으로,

새끼를 다 떠나보내고 애나를 지켜주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마을로 내려온 어미 여우의 시선으로,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거미코 아저씨, 애나, 여우, 마을 사람들을 한결같이 지켜보고 있는 소나무의 시선으로,

그리고 세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마을 사람의 시선으로.

각각의 입장이 되어서 읽어보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언제나 작가님의 든든한 곁이 되어주는 여우씨와 거미씨의 추천서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지구는 인간의 시선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의 다채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훨씬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해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준 애나, 여우 언니에게도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전한다.

"행복하길 바라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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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
임성근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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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임성근 지음/팬앤펜



우리 집 아이들은 김치 없으면 밥을 안 먹은 것 같다고 해요. 신기하죠? 텃밭에서 정성껏 키우신 채소들로 다양한 김치를 맛깔나게 담아서 보내주시는 어머님 덕분입니다. 가까이 살면 배우면 되는데 멀어서 쉽지 않아요. 그리고 정확한 레시피가 아닌 감과 손맛을 전수받아야 하는 거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이렇게 멋진 편지, 선물과 도서를 받고 맛있는 김치 만들기 도전해 봅니다.

 

우선, 이 책은 '김치는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음식'이라는 생각을 지워줍니다. 라면처럼 누구나 김치를 부담 없이 손쉽게 담가 먹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이끌어 준답니다. 요즘 많은 1인 가족과 핵가족에 알맞은 소량의 김치, 장아찌를 뚝딱 만들 수 있는 간편한 레시피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어떤 게 좋은지 몰라서 그냥 보이는 대로, 마음대로 재료를 구입했는데 배추, 무, 갓, 쪽파, 오이, 마늘, 양파 등 다양한 재료들의 특징, 제철, 맛, 생김새 등 잘 정리된 정보 덕분에 재료 고를 때 도움이 되네요.

 

'한끗 김치 양념'과 '한끗 장아찌 절임장' 같이 알짜배기 비법으로 김치 담그기를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나 서툰 사람도 간단하게 김치와 장아찌를 만들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죠. 한국 사람은 김치 없이 못 살잖아요.

 

 

쉬운 레시피뿐만 아니라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덕분에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알았어요. 김치에 소주를 넣는 이유가 방부 역할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 다들 알고 계셨나요?

 

이렇게 김치 재료를 고르는 방법(고추, 젓갈, 액젓, 마늘 & 생강, 소금 & 감미료), 김치 풀 쑤는 법, 통배추 절이는 방법에서 부터 각종 배추김치, 무김치, 채소김치 까지 40여개의 김치 레시피들이 한꺼번에 정리된 알짜배기 책이랍니다.

 

 


 

간장 장아찌와 소금 장아찌는 밑반찬으로 활용하기 좋은 아이템이죠.

우리집 식구들도 장아찌 좋아해서 오이, 양파, 깻잎, 고추를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익숙한 장아찌 뿐만 아니라 색다른 재료로 만든 장아찌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풋토마토 양파 장아찌, 돼지감자 장아찌 레시피에 자꾸 눈이 가네요.

 

그리고 '탈기'를 하면 장아찌 저장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것도 배웠어요. 용기 속의 공기를 빼면 호기성 세균의 번식을 억제해 장아찌의 맛과 색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네요. 장아찌를 담은 후 뚜껑을 꽉 닫은 후 그대로 뒤집어서 한 김 식힌 뒤 다시 세워 보관하면 끝. 참 쉽죠! 알기 쉽게 하나하나 알려주니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맛있게 완성할 수 있어요.

 

 

돼지감자는 차로 우려먹었는데 이렇게 장아찌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봄 되면 담가 먹어봐야겠어요. 사각사각 시원한 맛의 돼지감자 장아찌 얼른 맛보고 싶네요.

 

< 김치 & 장아찌 도전기 >

▷ 국물 깍두기

▷ 무 장아찌

 

- 주위에서 김장했다며 김치는 많이 주셔서 아직 김장 전이지만 배추김치가 많네요. 그래서 국물 깍두기 도전해 봤어요.


매번 소금에 절여서 깍두기 담갔는데 이렇게 그냥 담글 수 있다니 간편하네요.

감사하게도 재료가 가장 맛있을 때로 김치 담가 먹는 시기, 담그는 시간, 보관 기간까지 기록해주셨어요. 엄마같은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오후에 담그고 저녁에 먹으려고 보니 국물이 제법 나왔어요. 2일 정도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 보관하면 된다고 하네요. 무가 달고 수분이 많아서 시원하고 좋았어요. 맛있다고 우리 집 아이들에게 칭찬받았어요. :D 익으면 또 어떨지 기대됩니다.

 


 

- 무 장아찌 좋아해서 재래시장에 가면 꼭 사는 것 중 하나였는데 이렇게 직접 만들어 먹게 될 줄이야. 더욱이 간편하게 뚝딱 완성이네요. 매운 청양 고추 쏭쏭 썰어넣어 칼칼한 맛까지 추가되어서 더 좋을 것 같아요. 식으면 무거운 것을 올려서 누른 다음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3일 후 국물만 따라내서 한소끔 끓입니다. 완전히 식으면 다시 부은 다음 15일 동안 냉장 보관으로 숙성시킨 후 무에 맛이 들면 먹으면 됩니다. 시간아, 얼른 흘러라. 기도하고 있답니다.

 

한끗 쉬운 레시피로 한국인이라면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장아찌를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인도하는 친절한 요리책, 김치의 진입 장벽을 허물어준 고마운 책  <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

"나, 꽝손인데."

"나, 요리 정말 못하는 데."

걱정하지 마시고 얼른 책을 들고 펼쳐 보세요.

맘에 드는 요리를 고르세요. 그리고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시고 순서대로만 따라하세요.

참~ 쉽죠!!!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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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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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대치동』

 

대치동/조장훈 지음/사계절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10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만큼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그만큼 거시적인 관점으로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의 계급 간 힘겨루기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론이 뒤흔들 때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입맛대로 요리되는 입시제도 속에서 휘둘리는 이들은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이 2015년 이후 증가하여 OECD 주요 회원국 평균의 2배에 육박하며 전체 4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격변하는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이 청소년, 청년세대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이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입시제도에 무던할 수 없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레이더를 켤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이가 입시 경쟁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그 유명한 대치동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그곳의 서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지?

 

예상했건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절실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욕망과 모순에 마음이 편치 않다. 한복판에 서 있었던 저자의 객관적인 자세에 새삼 경외심이 든다. 20여 년간 대치동에서 접하고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이 책은 저자 말대로 인류학적 보고서이자 참여관찰 기록지이다. 과거를 분석하여 현재를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육자로서 미래의 희망을 논하는 그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우리에게 공을 넘긴다.

"노동의 가치와 지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도 우리는 존귀해질 수 있을까?"

 

'아에로크'라는 나라의 성인식

- BBC News의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각색해서 들려주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처참하다. 민족 학자 아르놀드 방주네프가 분석한 기존 집단으로부터의 분리 - 새로운 집단으로 이행하기 이전의 경계적 상태 -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새로운 그룹에 편입되는 통합의 단계로 나누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통과의례'라 할 수 있는 대학 입시는 청소년들을 분리시키고 경계적 상태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통합의 단계로 이끌지 못했다. 경계적 상태에 머무르는 청소년들이 방황하더라고 부모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야만 자발적으로 통과의례에 도전할 수 있고, 그래야만 통과의례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생산하는 축제로서 기념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학 입시가 통과의례가 될 수 없는 이유로 '학벌주의'와 '교육열'을 든다. 대학이나 기업, 사회 모두 구성원들이 능력을 갖춘 인재이기를 원한다.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성과일 것이다. 이미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성과를 낼 수 있기에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평가 기준이나 적용의 적당함은 차치하더라도) 하지만 신입사원이나 신입생의 경우에는 성과주의 도입이 어렵기 때문에 학력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래서 학벌주의가 대두되게 되고 그 학벌을 쟁취하기 위해 교육열이 과열된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학력이, 대학의 졸업장이 능력을 보증해 주는 걸까? 우리나라의 교육 열기는 대학 입학하기까지가 제일 치열하다. 졸업은 입학만 하면 보장된 수순이다. 그렇기에 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기여 입학'을 불허한다. 대학 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제고도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싶다. 취업의 도구가 아닌 '학문의 장'인 대학 본연의 역할 부재를 통감한다.

 


 

 

저자가 기록한 <대치동 스토리>와 <대치동 사람들>은 흥미로웠다. 어쩌면 내가 아직은 그 치열한 입시전쟁 당사자가 아니기에 외부자의 시각으로 그 내밀한 욕망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경험한 돼지엄마에 대한 미묘한 감정 변화가 나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2014년 이후 대치동 네 종족의 주요 거주 분포 개략도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우리 집 십 대 두 아이들은 합기도 학원만 다니고 있다. 그전에 잠시 다녔던 피아노 학원까지 학원 경험 전부이다. 그렇다고 교육에 무관심한 집은 아니다.) 주위에서 접하는 사교육 이야기는 별천지였다. 그러니 사교육 1번지로 이름을 날리는 대치동 이야기는 블랙홀같이 느껴졌다. 끝도 없는 욕망이 넘쳐나는 데 고갈되지 않는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공간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인턴 중 한 명이었던 이상현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게 새치기하는 사람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 새끼 하나 살리자가 우리 중에 하나 희생된 건 사실이지 않냐? 장그래가 우리라고 생각하냐. 걔는 걔고, 우리는 우리."

"우리 엄마가 나 학원, 과외에 쓴 돈이 얼만데 이건 역차별"

"난 중고딩 내내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초딩 때는 학원 몇 개를 돌았는지 모른다. 대학 때는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중소기업을 다닌다면서 "임시로 다니고 있는 것. 우리가 계속 우리로 남으려면 대기업에 가야 한다."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콕 박혔다. 이는 괴물로 변해버린 입시 제도가 이 시대의 청소년, 청년에게 새긴 생채기 같다.

 

- 학원 관련 규제의 완화

- 입시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와 다양화

-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의 유입


 

대치동 학원가 생태계의 구조와 행위자들의 관계도
 


저자가 요약한 대치동 신화의 배경 중 3번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의 유입은 저자가 말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입시제도는 없기에 사회적 지위 향상 또는 계급 재생산을 위해 노골적이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내밀하고도 세속적인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한다.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목적이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여 구성원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대치동을 주목해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자녀의 계급 상승이라는 세습적 욕망일지라도 그대로 성찰하여야지만 좀 더 나은 교육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술, 구술 강사 시절 의과대학의 수시 면접 파이널 수업 시 일화를 예로 들며 대치동 사람들이 실현한 이 희한한 교육적 효율성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하고 싶다는 그의 고민이 진실되게 다가왔다. 힘겨루기에 일관성을 잃어 매번 새로운 제도가 쏟아지는 입시 전쟁에서 적응해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자명한 바, 경제력을 갖춘 이들만이 아닌 모두에게 평등하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의견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교육은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의무이기 이전에 개인의 권리다.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교육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저자는 학원 사교육의 장점과 인적 자원의 흡수로 공교육을 시스템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미시적 방향과 함께 앎의 즐거움, 앎의 행복을 회복하는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학벌주의'와 '교육열'이 불러온 폐해를 직시하게 된 지금,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지성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에 깊게 공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과 학벌에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과 학벌을 통한 재산 증식과 계급 상승을 꿈꾸며, 그 과정에서 일한 만큼의 소득을 얻어 가는 노동 윤리의 정당성은 파괴되고, 반지성주의가 자라나고 있다. 누구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학벌을 욕망하는 기이한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불로소득을 욕망하는 사회는 노동을 비천한 것, 회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노동에 대한 존중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존중까지 잃어버렸다. 건물주가 아이들의 꿈이 되는 지금, 이를 씁쓸하게만 지켜보고 있는 게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가 내동댕이쳐버린 존엄성을 되찾는 일은 우리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단체처럼 투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대학에 가서 스스로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자신을 꾸미는 일'

교환 가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선언이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길에 힘을 보태고 싶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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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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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시청하면 빠지지 않는 부동산 소식들.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재개발, 증여, 영끌, 신도시 등 수많은 정책들이 발표되고 세태를 분석하는 그 수많은 뉴스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집'이 황선미 작가님 <기다리는 집>을 통해 뚜렷해집니다.

 

버드내 길 50-7번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집이

마을의 그늘이 되어 다들 외면하고

골칫거리로 변해갑니다.

예전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감나무뿐입니다.

그 집에 찾아와 쓰레기를 걷어내고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하는 낯선 이를 알아본 사람은 동네 터줏대감 떡집 영감님입니다. 그의 기억 속 감나무집은 동네에서 가장 컸고, 안주인은 높은 담장처럼 꼿꼿한 이었습니다.

 

 


 

 

"그대로 그저 고마워요. 없어진 게 아니잖아요.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버리고, 오래된 것은 참아내지 못하는 세상에 아직 고스란히 남은 곳.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과거를 증명이라도 하듯 용케 버티어준 곳. 빈집에서 세월을 먹으며 굵어진 감나무의 밑동을 볼 때는 가슴이 뻐근해지기까지 했답니다." _ 40쪽

 

온 동네에 불이 켜지고 나서도 긴 세월 어둠에 갇혀있던 빈집에 불이 켜지는 기적 같은 순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나무집 식구들의 세월, 소문, 동네의 쓰레기 그 모든 걸 감싸 안아주었던 감나무집이었기에 더 애틋한 마음입니다. 기다리는 이가 아니어도 찾아오는 어느 것 하나 싫다 하지 않고 말없이 품어준 감나무집은 동네의 터줏대감이네요.

 

 


 

 

말없이 기다리기만 하던 집이 반가운 이에게 손 내미는 듯한, 붙잡는 듯한 삽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집을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었을 때 '보금자리'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문패 하나 걸었다고 그 사람 집이 되는 게 아니라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고된 일 세상만사가 물 흐르듯 곳곳에 흔적을 새기고 시간과 마음이 쌓여 집이 되는 거겠죠. 나의 집, 우리 집이 되는 거겠죠.

 

시간의 흐름대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감이 열리고 익어가는 감나무처럼 묵묵히 기다려준 집에 주민 모두 힘을 모아 담장을 쌓는 이상한 동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대화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세상 끝에서 찾아온 낯선 이도 그렇게 웃을 날이 분명 있겠지요.

 

 

기다리는 집/황선미/시공사



서정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그림으로 다시 만난 <기다리는 집>은 여전히 따뜻하고 이상하네요. 나중에 다시 찾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것 같아서 든든하고 포근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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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백제를 캐다
여홍기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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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제 사비성에 대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진 후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거나 숨겨져 있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미로 백제를 캐다>

 

 

이 책은 학예연구사, 정림사지 박물관장, 사직관리소장 등을 다양한 위치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고 지켜온 전문가 여홍기 저자가 백제 사비성에 대한 조사, 연구, 공유 등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을 밝히고 있다. 전문용어들이 많이 등장하여 일반인들보다는 고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더 도움이 될 듯하며,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부연 설명이 되어 있었다면 좀 더 집중하기가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생활의 터전인 부여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책으로, 호미로 캐낸 백제가 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백제 사비성 조사를 통해 땅속 깊이 묻혀서 우리 뇌리에서 차츰 잊혀 갔던 백제사를 다시금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책을 통해 저자는 상세히 밝히고 있다. 발굴 현장이 다 그렇겠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탐색조사를 하면서 찾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도 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유물들이 옮겨 다니게 되면서 유적지가 아닌 곳을 유물 출토지로 여겨 발굴조사를 벌이는 다소 황당한 상황도 연출되었다고 한다. 문화재 지정에 대한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예로 서나성을 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나성과 관련하여 쌓아온 연구성과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존 학설을 옹호하는 연구자와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연구자가 경쟁식 토론까지 벌였고 서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백제 역사유적지구가 인류가 보존하여야 할 가치 있는 유산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반가운 소식이면서도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부여 관북리 유적이 유적지로 인정받는 점은 높이 사지만, 단일 유산으로 설정된 것은 아쉽다고 전한다. 아직은 전체를 아우르는 백제사 조사가 완료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부여 지역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신도 신설 계획에 의해 개발이 진행되어 오면서 백제 유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유적 파괴와 수탈로 이어진 아픔이 있다. 그 이후 백제 유적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 또한 한계성이 드러나 안타깝다. 그렇지만 사라진 '백제 사비'를 드러내는 작업이 진행되어 사비 왕궁터, 나성, 부소산성으로 대표되는 백제 왕실뿐만 아니라 궁남지, 구아리 우물 등 백제 백성의 생활상 또한 파악할 수 있게 된 점은 쾌거일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혔던 바와 같이 유적지를 보존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백제처럼 먼 고대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도 독립운동가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분들의 희생을 생각해 보면 통탄스럽다. 우리 동네만 해도 계획도시로 아파트 단지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고 있던 중 신석기 시대 유물이 나왔다. 다행히 아파트 공사를 수정하였고 유물이 나왔던 곳은 선사유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는 마을의 명소가 되었다. 인근 초등학생들은 그곳으로 현장학습을 가고 가을이 되면 마을축제가 벌어지는 소통과 공감의 장이 되어주고 있다. 이렇게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있지 않고 현재를 일구고 미래를 풍성하게 해준다.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하고 후손에서 전달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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