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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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대치동』

 

대치동/조장훈 지음/사계절

'교육은 백년지 대계'라고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100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할 만큼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그만큼 거시적인 관점으로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사회의 계급 간 힘겨루기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론이 뒤흔들 때마다 명확한 기준 없이 입맛대로 요리되는 입시제도 속에서 휘둘리는 이들은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이 2015년 이후 증가하여 OECD 주요 회원국 평균의 2배에 육박하며 전체 4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격변하는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이 청소년, 청년세대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이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입시제도에 무던할 수 없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레이더를 켤 때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이가 입시 경쟁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그 유명한 대치동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가? 그곳의 서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지?

 

예상했건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절실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욕망과 모순에 마음이 편치 않다. 한복판에 서 있었던 저자의 객관적인 자세에 새삼 경외심이 든다. 20여 년간 대치동에서 접하고 보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이 책은 저자 말대로 인류학적 보고서이자 참여관찰 기록지이다. 과거를 분석하여 현재를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육자로서 미래의 희망을 논하는 그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우리에게 공을 넘긴다.

"노동의 가치와 지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도 우리는 존귀해질 수 있을까?"

 

'아에로크'라는 나라의 성인식

- BBC News의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각색해서 들려주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처참하다. 민족 학자 아르놀드 방주네프가 분석한 기존 집단으로부터의 분리 - 새로운 집단으로 이행하기 이전의 경계적 상태 -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 새로운 그룹에 편입되는 통합의 단계로 나누었다. 우리나라 청소년이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통과의례'라 할 수 있는 대학 입시는 청소년들을 분리시키고 경계적 상태에 머무르게 하면서도 통합의 단계로 이끌지 못했다. 경계적 상태에 머무르는 청소년들이 방황하더라고 부모와 사회의 보호를 받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야만 자발적으로 통과의례에 도전할 수 있고, 그래야만 통과의례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생산하는 축제로서 기념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학 입시가 통과의례가 될 수 없는 이유로 '학벌주의'와 '교육열'을 든다. 대학이나 기업, 사회 모두 구성원들이 능력을 갖춘 인재이기를 원한다.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성과일 것이다. 이미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성과를 낼 수 있기에 능력을 평가받을 수 있다.(평가 기준이나 적용의 적당함은 차치하더라도) 하지만 신입사원이나 신입생의 경우에는 성과주의 도입이 어렵기 때문에 학력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래서 학벌주의가 대두되게 되고 그 학벌을 쟁취하기 위해 교육열이 과열된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학력이, 대학의 졸업장이 능력을 보증해 주는 걸까? 우리나라의 교육 열기는 대학 입학하기까지가 제일 치열하다. 졸업은 입학만 하면 보장된 수순이다. 그렇기에 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기여 입학'을 불허한다. 대학 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제고도 우리 사회에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싶다. 취업의 도구가 아닌 '학문의 장'인 대학 본연의 역할 부재를 통감한다.

 


 

 

저자가 기록한 <대치동 스토리>와 <대치동 사람들>은 흥미로웠다. 어쩌면 내가 아직은 그 치열한 입시전쟁 당사자가 아니기에 외부자의 시각으로 그 내밀한 욕망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경험한 돼지엄마에 대한 미묘한 감정 변화가 나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 것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2014년 이후 대치동 네 종족의 주요 거주 분포 개략도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우리 집 십 대 두 아이들은 합기도 학원만 다니고 있다. 그전에 잠시 다녔던 피아노 학원까지 학원 경험 전부이다. 그렇다고 교육에 무관심한 집은 아니다.) 주위에서 접하는 사교육 이야기는 별천지였다. 그러니 사교육 1번지로 이름을 날리는 대치동 이야기는 블랙홀같이 느껴졌다. 끝도 없는 욕망이 넘쳐나는 데 고갈되지 않는 신기하면서도 이상한 공간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인턴 중 한 명이었던 이상현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게 새치기하는 사람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 새끼 하나 살리자가 우리 중에 하나 희생된 건 사실이지 않냐? 장그래가 우리라고 생각하냐. 걔는 걔고, 우리는 우리."

"우리 엄마가 나 학원, 과외에 쓴 돈이 얼만데 이건 역차별"

"난 중고딩 내내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초딩 때는 학원 몇 개를 돌았는지 모른다. 대학 때는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중소기업을 다닌다면서 "임시로 다니고 있는 것. 우리가 계속 우리로 남으려면 대기업에 가야 한다."

역차별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콕 박혔다. 이는 괴물로 변해버린 입시 제도가 이 시대의 청소년, 청년에게 새긴 생채기 같다.

 

- 학원 관련 규제의 완화

- 입시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와 다양화

-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의 유입


 

대치동 학원가 생태계의 구조와 행위자들의 관계도
 


저자가 요약한 대치동 신화의 배경 중 3번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의 유입은 저자가 말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입시제도는 없기에 사회적 지위 향상 또는 계급 재생산을 위해 노골적이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내밀하고도 세속적인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한다.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목적이 자원을 적절히 분배하여 구성원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라면 대치동을 주목해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자녀의 계급 상승이라는 세습적 욕망일지라도 그대로 성찰하여야지만 좀 더 나은 교육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술, 구술 강사 시절 의과대학의 수시 면접 파이널 수업 시 일화를 예로 들며 대치동 사람들이 실현한 이 희한한 교육적 효율성을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하고 싶다는 그의 고민이 진실되게 다가왔다. 힘겨루기에 일관성을 잃어 매번 새로운 제도가 쏟아지는 입시 전쟁에서 적응해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자명한 바, 경제력을 갖춘 이들만이 아닌 모두에게 평등하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의견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교육은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의무이기 이전에 개인의 권리다.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공교육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저자는 학원 사교육의 장점과 인적 자원의 흡수로 공교육을 시스템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미시적 방향과 함께 앎의 즐거움, 앎의 행복을 회복하는 거시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학벌주의'와 '교육열'이 불러온 폐해를 직시하게 된 지금, 우리는 노동의 가치와 지성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에 깊게 공감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부동산과 학벌에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과 학벌을 통한 재산 증식과 계급 상승을 꿈꾸며, 그 과정에서 일한 만큼의 소득을 얻어 가는 노동 윤리의 정당성은 파괴되고, 반지성주의가 자라나고 있다. 누구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학벌을 욕망하는 기이한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불로소득을 욕망하는 사회는 노동을 비천한 것, 회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노동에 대한 존중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존중까지 잃어버렸다. 건물주가 아이들의 꿈이 되는 지금, 이를 씁쓸하게만 지켜보고 있는 게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가 내동댕이쳐버린 존엄성을 되찾는 일은 우리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단체처럼 투사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대학에 가서 스스로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자신을 꾸미는 일'

교환 가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선언이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길에 힘을 보태고 싶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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