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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평점 :
뉴스를 시청하면 빠지지 않는 부동산 소식들.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재개발, 증여, 영끌, 신도시 등 수많은 정책들이 발표되고 세태를 분석하는 그 수많은 뉴스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집'이 황선미 작가님 <기다리는 집>을 통해 뚜렷해집니다.
버드내 길 50-7번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집이
마을의 그늘이 되어 다들 외면하고
골칫거리로 변해갑니다.
예전의 추억을 간직한 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감나무뿐입니다.
그 집에 찾아와 쓰레기를 걷어내고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하는 낯선 이를 알아본 사람은 동네 터줏대감 떡집 영감님입니다. 그의 기억 속 감나무집은 동네에서 가장 컸고, 안주인은 높은 담장처럼 꼿꼿한 이었습니다.
"그대로 그저 고마워요. 없어진 게 아니잖아요.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버리고, 오래된 것은 참아내지 못하는 세상에 아직 고스란히 남은 곳.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과거를 증명이라도 하듯 용케 버티어준 곳. 빈집에서 세월을 먹으며 굵어진 감나무의 밑동을 볼 때는 가슴이 뻐근해지기까지 했답니다." _ 40쪽
온 동네에 불이 켜지고 나서도 긴 세월 어둠에 갇혀있던 빈집에 불이 켜지는 기적 같은 순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감나무집 식구들의 세월, 소문, 동네의 쓰레기 그 모든 걸 감싸 안아주었던 감나무집이었기에 더 애틋한 마음입니다. 기다리는 이가 아니어도 찾아오는 어느 것 하나 싫다 하지 않고 말없이 품어준 감나무집은 동네의 터줏대감이네요.
말없이 기다리기만 하던 집이 반가운 이에게 손 내미는 듯한, 붙잡는 듯한 삽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집을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었을 때 '보금자리'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문패 하나 걸었다고 그 사람 집이 되는 게 아니라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고된 일 세상만사가 물 흐르듯 곳곳에 흔적을 새기고 시간과 마음이 쌓여 집이 되는 거겠죠. 나의 집, 우리 집이 되는 거겠죠.
시간의 흐름대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감이 열리고 익어가는 감나무처럼 묵묵히 기다려준 집에 주민 모두 힘을 모아 담장을 쌓는 이상한 동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대화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세상 끝에서 찾아온 낯선 이도 그렇게 웃을 날이 분명 있겠지요.
기다리는 집/황선미/시공사
서정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그림으로 다시 만난 <기다리는 집>은 여전히 따뜻하고 이상하네요. 나중에 다시 찾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것 같아서 든든하고 포근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