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남은 시간 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지음, 박시현 그림 / 풀빛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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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두렵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죽는지 안다면 달라질까? 죽는 날을 알 수 있다면 아는 게 맞을까? 좋을까?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속 이야기를 살펴보면 사람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죽음이 두렵지라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알게 된 이후에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 어차피 언제 죽을지 아니까 마음껏 즐기다 가겠다는 듯 더 방탕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나 또한 죽음이 두렵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이 더 값진 하루라 생각하기에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은.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이혜린 저/ 풀빛



 

"어느 날… 나에게 너의 죽음이 보였다."

 

 

이 책의 주인공 담이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가지게 된 특별한 능력 - 죽음의 디데이 - 을 지니게 된다. 관계 맺은 사람들 머리 위로 뜬 초록색 링 안에 새겨진 선명한 숫자, 바로 죽음의 디데이를 볼 수 있다. 대단한 초능력 같지만 볼 수만 있을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담이는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친구 동우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커다란 상실감과 자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 어느 누가 이겨낼 수 있을까? - 담이는 스스로 관계를 끊어버린다.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 타인과의 교류를 단절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털보 아저씨와 소미소를 만나게 되면서 차츰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담이는 자신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존재, 같은 고통과 좌절을 겪은 존재, 하지만 다시 일어나 나름의 살아가는 의미를 찾은 털보 아저씨를 만나 안정을 되찾고 여물어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찡하면서 뭉클했다. 살아가면서 가족만큼 친구, 동지, 어른이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담이는 소중한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품고 산다. 그래서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냈지만 '소미소'라는 강적을 만나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남들의 죽음의 디데이를 곁에 두고 살면서 굳게 잠가두어야만 했던 감정들이 다시 온몸을 타고 흐른다. 사람의 온기가 지닌 힘이 아닐까 싶다. 그제야 17살, 제 나이처럼 보였다.

 

이렇게 몽글몽글한 이야기가 진행되다 위기가 찾아오고, 이야기는 반전을 품고 있었다. 이 반전은 해일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담이는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털보 아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담이는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삶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살아있으니까 산다. 대신 우리는 매일 살아가는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다 간혹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숭고한 '희생'과 '사랑'을 하기도, 만나기도, 보기도 한다.

큰 아픔 뒤 생긴 특별한 능력을 다시 남을 위해 사용하는, 다정하고 단단한 심성을 지닌 담이와 털보 아저씨 같은 이들 덕분에 세상의 온기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우리는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자책하기도 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어두운 터널 속에 머무르지 않고 끝끝내 빛을 마주하고자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살아간다. 의지를 가지고 단단히 여물어가는 인물들 뒤로 삶을, 자신을 사랑하는, 웃는 우리가 겹쳐 보였다. 사람 때문에 아팠지만, 사람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언제 죽을지 알면, 그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 있어요?"라는 담이의 질문에 답한 할머니의 말씀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렇게 너랑 같이 앉아서 오순도순 밥 먹는 거. 우리 담이 잘 크는 모습 지켜보는 거."

"에이, 별 거 없네요."

"인생은 원래 별 게 없단다."

"근데, 사람이라는 게 또 그 별 거 없는 것들 때문에 살아지는 거야. 나를 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생기니까."

 

삶과 죽음 그리고 살아가는 의미를 풍미 가득한 빵 내음과 함께 풋풋하고 싱그러운 십 대 감성으로 풀어낸 <너에게 남은 시간_죽음의 디데이>

풀빛의 첫 번째 청소년 소설 대본집으로 만나 뜻깊게 다가왔다.

 

 

100자 감상평 *

담이와 미소, 털보 아저씨를 만나 삶의 의미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유한한 삶의 끝을 미리 안다는 게 오히려 고통이 되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남을 위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이들의 의지가, 마음이 삭막한 이 시대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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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타 선생과 우주 문지아이들 176
김울림 지음, 소복이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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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동심에 좋은 울림을 주는 작가'이고픈 김울림 작가의 첫 책 <고타 선생과 우주>를 읽고 새삼 느꼈어요. <고타 선생과 우주> 전하는 좋은 울림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인 저에게도 전해졌으니까요.

 

 

 

고타 선생과 우주/ 김울림 글/ 소복이 그림/ 문학과지성사


 

<고타 선생과 우주>는 여러 관점에서 자극이 되는 동화네요. 착한 아들인 우주, 초심을 잃고 고리타분한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최고 분재사 고타 선생, 아들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본인들이 결론 내리는 우주 부모님. 같은 상황에서 제각각 펼쳐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통해 동화 속 등장인물들을 마주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우주라면 저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우주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면 좋았을 것 같아?

네가 고타 선생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갔을까?

아이와 함께 읽으면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네요. 초등학교 중학년 아이라면 충분히 감정이입하면서 재밌게 읽을 거예요.

 


 


 


우주는 자신만 아는 '고타 선생의 비밀'로 점점 밝게 빛납니다. 별처럼! 그리고 이제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해내가는 과정이 뭉클하고 뿌듯하게 그려집니다.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우주는 눈부셨어요. 그렇게 밝게 빛나고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결국 우주는 고타 선생을 위해 큰 결심을 하게 된답니다. '진짜 마음'을 담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보여주죠. 우주가 반려동물을 바랐던 작은 마음을 뛰어넘어 자신이 품고 있는 '진짜 마음'을 부모님께 말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마음이 찌르르~ 저렸답니다.


 

 

 


<고타 선생과 우주>

착한 아들 프레임에 갇혀 진짜 마음을 숨겨야 했던, 자신이 점점 작아져 중요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답답했던 우주가 원리 원칙을 지키며 사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빠져 타인과 교감하지 않고 지내던 고타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을 계기로 '각성'하게 되는 성장 동화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잊어버린 혹은 흐릿해진 꿈, 바람, 믿음, 용기, 사랑, 별, 파랑 이런 것들… 그보다, 뭔가 할 수 있는 기분 같은 것이 가득 차오르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아 행복합니다.

'사랑한다'라는 이유로 자녀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우를 범하는 부모, 결과와 성과에 취해 소중한 사람과 가치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살아온 이,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기 싫어 진짜 마음을 꺼내 보이지 못하는 마음 약한 아이… 이들이 '가짜'를 버리고 '진짜'로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해나가도록 <고타 선생과 우주>가 의미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고타 선생과 우주가 찾은 '진짜'가 전해주는 감동이 깊은 울림이 되어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네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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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 이야기 - <메종드사이언스>의 인스타툰으로 이해하는 과학 세상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이송교 지음 / 북스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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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는 주로 '역사' 위주로 출간되었는데 이번에는 '과학' 영역으로 발간되었네요.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는 인스타그램에서 과학툰과 일상툰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메종드사이언스> 이송교 저자가 지은이랍니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 이송교 지음/ 북스고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8컷 과학 인스타툰으로 핵심 내용을 명확하게, 단순하게, 재밌게 전달하고 있는 그이기에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당연한지도 모르겠네요.

 

핫핑크로 시선 강탈하는 책표지를 넘겨보면 작가의 말인 프롤로그가 나옵니다. 이송교 저자는 핵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 월간지 <BBC사이언스>의 편집장을 지낸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다양한 과학 기사를 감수하고 칼럼을 쓰게 되면서 물리학 외의 다른 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꿈꿨던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자 마음을 먹습니다.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쉽고 가볍게 풀어내고자 시작한 <메종드사이언스> 과학 인스타툰이 결실을 맺어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로 출간되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각의 소주제에 해당하는 인스타툰 + 글이 조합된 구성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여러 과학 분야가 한데 모인 퀼트 이불 같은, 매력적인 과학 입문서입니다. 8컷 만화로 봤을 때는 '오호~' 싶었던 내용들이 글을 만나 '아하~'로 흡수됩니다. 그리고 진짜 신기하게도 글 안의 내용이 만화 안에 함축적으로 다 담겨 있답니다. 만화로 호기심을 자극하고(진짜? 진짜??) 글로 쉽고 친절하게 풀이해 주니(진짜! 진짜!!) 과학적 접근이 순차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우주'와 '뇌와 마음', '생명'과 '기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점진적으로 확장됩니다. 최신 과학 정보와 좀 더 심화된 내용까지 포괄적으로 담고 있어서 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답니다. 알듯 모를 듯 개념이 흐렸던 내용은 다시 한번 정리해 주고, 현 과학계의 이슈도 전하고 있어서 흡입력 있는 과학 입문서입니다.

 

 



 

이 책의 강점은

1. 그래프와 도표, 그림을 통한 도식화

2. 개념에 대한 친절하고 쉬운 풀이

3. 융합적인 과학적 정리와 사고

입니다.

 


 

 


'우주' 발생에 대해서는 고1 아이의 과학 책에서 봤던 내용이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개념 정리를 했답니다. 이야기처럼 편안하게 과학 이론과 개념을 풀어줘서 더 집중해서 읽어나갔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우주 발생에 관한 이론, 종말에 관한 이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등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신비로운 우주를 향한 과학계의 다채로운 가설과 계획들을 정리해 줍니다. 우주 발사체 나로호,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한국형 달 궤도선 다누리, 달 엘리베이터까지 최신 정보를 담고 있답니다.

 


 

 


'뇌와 마음'편에서는 '수면의 뇌과학' 내용과 '환원과 창발'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시각 껍질이 시각 정보 처리 대신 다른 정보를 처리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꿈을 꾼다는 사실, 정말 놀라웠어요. 뇌의 가소성과 꿈을 연관 지은 재밌는 이야기였습니다.

환원주의는 과학에서 중요한 개념이지만 반대 개념인 '창발'도 유념해야 하는 뇌과학의 특징을 '레고'를 활용하여 풀이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생명' 편에서는 '미시간호를 습격한 괴물' 이야기가 신선했어요. 자연에 대한 '통제'와 자연에 대한 '통제를 통제'하려는 인간을 보여주면서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환기시켜주더군요. 한 종일 뿐인 인간이 생태계에 너무 깊숙이 개입한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지구를 위해, 인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현 상태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또 다른 개입(태양 지구공학) 등 생각거리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편에서는 코로나, 온실기체, 배양육, 지구를 지키는 바다, 플라스틱 등 현실의 위기 상황과 원인, 대처 방안을 살피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졌네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라는 이송교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합니다.

 


과학으로 소통하는 세상,

과학으로 오늘날 우리의 지구를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반성과 불안을 품고 또 다른 내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우리의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는 걸 알려주는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 다 같이 읽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과학 입문서로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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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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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서 있는 사람이고 사람은 걸어 다니는 나무"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글·사진/ 한겨레출판


 


나무처럼 살고 싶은 사진사가 찍은 나무 사진들에 흠뻑 담긴 마음은 보는 이들에게 절로 전해진다.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하듯 사진사는 사진으로 표현한다. '사진으로 그린다'라는 자세로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사진사 강재훈, 그의 사진에는 그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우리는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전하는 감동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나무를 찍은 그 사진 안에는 한자리에서 무던히 버텨낸 나무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눈길이 절로 간다. 거기에 강재훈 작가의 추억이 더해지니 마음이 반응한다.

 

 


 


왜 나무를 찍게 되었는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꺼내어놓은 그가 그리는 나무 사진은 도시의 단절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그리움과 이어짐'을 일깨워준다. 자연의 일부분임을 쉽게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에게 나무는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다. 사시사철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 나무를 그저 나무로 바라본 나에게 강재훈 사진사는 기꺼이 그가 교류한 나무와의 추억들을 나눠주고 있다. 말 없는 나무가 보여주는 베풂과 배려에 감복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걸어온 긴 시간을 사진으로 그리고 글로 정리해 주었다.

 

'나무'를 통해 세상과 자연과 마음을 살피는 글을 읽고 있노라니 절로 평온해진다. 그는 여정 중 마주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와의 인연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그런 진중하고 진심 어린 자세 덕분에 우리는 그 나무의 이야기에 이 순간 귀 기울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무를 매개로 확장된 저자의 사유는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은 강재훈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역사, 사회, 기후 위기까지 다양한 범주로 나아간다. 나무와 대화하며 일궈나간 생각은 온기를 품은 글과 나무 사진으로 우리에게 깊숙이 안착한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진동분교 오가는 길에서 반겨주던 파수 나무의 마지막 그루터기 사진,

몇 해째 나뭇잎을 달지 못하는, 바늘 같은 우듬지 사진,

농간 부리는 이들을 배척하는 배롱나무꽃 사진,

김홍도의 <세한도>같은 나무 사진,

수관 기피로 동반 성장해가는 배려 깊은 나무 사진,

다 함께 잘 사는 마을을 바라는 버팀목, 당산나무 사진,

온몸으로 철망을 품은 나무,

단종의 울음을 곁에서 보고 들어준 관음송 나무.

 

 


그의 사진기를 거쳐 우리에게 닿기까지 수없이 나누었을 그들만의 대화를 상상해 보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움직일 수 없으나 이미 많은 것을 베풀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움직이면서 이미 많은 것을 차지한 인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서로의 생장을 방해하지 않고 같이 자라고자 하는 수줍은 나무들의 이야기에 한 번의 부끄러움을, 스포츠 대회나 도로 등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무참히 훼손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사실에 또다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라나는 것을 가로막은 철망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성장하는 나무, 죽은 나무인 줄 알았건만 움싹이 돋는 나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보며 강재훈 저자가 전하고픈 경이로움에 빠져들고 있다.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에세이집을 읽고 오갔던 명절 나들이길에 유독 나무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이제 서서히 겨울은 가고 봄이 오는 듯하다. 강재훈 저자처럼 카메라를 메고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동네 곳곳에서 만나는 나무들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바라보고 대할 거다. 나랑 친구 할래요? 나무님.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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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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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고경태 저/ 한겨레출판



 

한동안 미드 <본즈>에 심취하였다. 오로지 '뼈'로 일어났던 상황을 구현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가는 그 과정은 매번 경이로웠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구나~ ' 싶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본 헌터>는 체질인류학자 박선주가 한국전쟁 유골을 치열하게 좇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고경태는 글의 구성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낸다. 홀수 장은 유골, 유족, 유품, 등 참혹한 현장의 목소리가 소리 내는 공간으로, 짝수 장은 유해 발굴을 이끈 체질인류학자 박선주의 삶과 신념 그리고 발굴 현장의 목소리가 담겼다.

 

 


 

책은 독특한 자세로 발굴된 유해 'A4-5'가 문을 연다. 2023년 3월 10일 충남 아산 성재산에서 '노출'된 유골로, 이 책의 씨앗이 되어 주었다. 이 유골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가와 후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이 세상에 고하는 외침이자 바람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 A4-5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묻혀 있는가"

 

 

박선주 선생님은 '본 헌터'로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선과 신념으로 한국전쟁 유해 발굴의 현장에서 인생을 보냈다. 흔들림 없는 학자의 자세로 국군 전사자 발굴, 민간인 희생자 발굴 모두 가리지 않고 '국가 정체성'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그의 뒷모습은 거대했다.

 

인간 박선주는 이과에서 문과로, 전자공학과에서 사학과로 마음을 바꿔 진학하게 된다. 언론인을 꿈꾸던 청년이 체질인류학자로 삶의 방향을 틀게 되는 데는 손보기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그에게서 직관과 열정, 과학적 사고의 방법 그리고 발굴 현장에서의 자세를 배웠다. 그를 따라 버클리대로 유학을 떠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인류를 포함한 영장류의 생물학적 특징을 연구하는 체질인류학을 공부했다.

 

 


 

 

인류학자 박선주가 걸어온 길을 톺아보니 구석기 시대부터 인연이 시작된다. 스승인 손 선생님은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한 고고학계의 스타였다. 덕분에 박선주 선생님은 제천 점말 동굴, 아치섬 인골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흥수아이'와도 연이 닿았다. 차근차근 뼈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던 그는 현대사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인류학자 박선주는 과학적 호기심과 탐구 정신으로 사실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모던 미스' - 우리가 사실처럼 알고 있는 어떤 지식이 꾸며진 이야기일 수 있다 -를 염려해두고 문헌과 증언을 비롯한 갖가지 기록과 직접 발굴하고 유해를 뒤져본 뒤의 결과로 사실 여부를 검증하려고 했다. <본 헌터>는 그 지치지 않는 탐구심과 열정, 책임감으로 유해를 분석하는 여정의 기록이다.

 

 

<본 헌터>는 뼈로 과거를 추적하는 이들의 시선뿐 아니라 유골, 유족 등 참혹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말하는 그날의 이야기가, 시간과 흙 속에 파묻혀 색 바랜 기억들의 파편들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얽히고설켜서 우리가 잘 몰랐던 처참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연출한다. 한국전쟁 시기 이 한반도에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으로 으스러진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조명한다. 왜 이렇게까지 죽였을까.

 

<본 헌터>는 민간인 희생자 발굴을 주 골자로 한다. 몇몇 들어본 지역의 이야기는 아는 것보다 끔찍했고, 비극이 벌어진 지역이 훨씬 많다는 사실 앞에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유일한 분단국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너머 사적인 감정이 뒤범벅된 민간인 학살의 내막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멸문, 뱃속의 태아까지 죽이는 인간성이 파괴된 순간에 멈춰버린 유족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배경은 군경, 미군, 적대세력 등 다양했다. '사색 없이 사형, 사형'당한 부역혐의자들은 제대로 된 재판조차 받지 못했다. 정치적인 목적이나 사적인 복수 수단으로 이용당한 사례도 많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가 되었던 최승갑, 충무공의 후손들, 맹씨네 연좌제, 황골 새지기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긴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그들의 피 토하는 고백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 고경태와 인류학자 박선주는 결코 회의, 불신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참혹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 억울한 죽음의 내막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이름과 고통을 후대에 사는 우리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에 겨울이 지나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먹먹한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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