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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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다산북스





무라야마 유카 작가의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이 1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독자 요청 쇄도로 이뤄진 결과라 더 고무적이다.


1999년 출간되었던 이 작품은 당시 사춘기에 겪는 불안과 외로움, 소통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어 '영원한 청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이 재출간되어 우리를 찾아왔다는 소식은 벅찬 기쁨이다.









바다처럼 푸른 덧표지에는 하귤과 블루노트가 놓인 시트가 그려진 정물화가 있다. 덧표지를 벗겨보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로 뒤덮인 표지가 우리를 반긴다. 예상치 못한 자연의 찬란함에 탄복하였다. 이 소설은 어떤 눈부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나? 들뜬 마음은 서둘러 책장을 넘기고 있다. 






접점이 없을 듯한 두 주인공, 온 마음을 서핑에 빼앗긴 야마모토 미쓰히데와 공부 잘하는 모범생 후지사와 에리다. 

미쓰히데는 대부분의 말이 농담이라 '가벼운 녀석'으로 통하고, 에리는 학생회 부회장으로 공부는 물론 착한 아이, 착한 딸로 통한다. 교집합이 없어 교류가 없던 이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치게 된다. 이 만남은 미쓰히데와 에리를 의외의 관계로 엮이게 만드는데……







"서로를 원하지만 사랑은 아닌 이 관계가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간절한 걸까?"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캐릭터의 매력은 인물들이 세상에 비치는 이미지와 상반되는 면을 섬세한 언어로 잘 그려낸 점에 있다. 

에리는 착한 아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욕에 관한 고민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가슴 앓이를 한다. 미쓰히데도 싱거운 농담과 여자 관련 소문으로 경박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진지한 부분이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자연스러운 일도 막상 본인에게는 

자연스럽다고 할까, 가장 마음 편한 일인 경우가 많아. 

누구나 당사자밖에는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게 

바로 그런 거겠지?"

- 미쓰히데가 에리에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경계에 서있는 청춘들의 고민들이 현실성 있게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안팎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기대, 평가 속에서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는 미쓰히데와 에리는 어느새 서로가 간절해진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점점 더 빠져들면서 그 외는 공유하지 않는, 일반적이지 않는 관계에 대한 생각도 깊어져 간다.








개인적인 고민에 집안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미쓰히데와 에리의 관계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겪고 감당하고자 애쓰면서 에리도, 미쓰히데도 '지금'을 넘어서려는 모습에서 울컥하였다. 힘들고 어렵지만, 각자 정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이 아름다운 청춘들의 몸짓이 안쓰러우면서도 다부져 보였다. 


미쓰히데와 에리만큼 미야코와 다카유키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둘 역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느낌이 감지되는 포인트들이 중간중간 나와서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사람들을 사귈 때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던 미쓰히데가 파도 앞에서 망설이고 달아나려고 한 물러터진 마음을, 두려움을 떨치고 덮쳐드는 파도를 뛰어넘으려 일어섰다. 


미야코를 사랑하는 자신을 숨긴 채 미야코의 주변을 맴돌던, 자기 안에 꿈틀대는 욕망을 숨겨야 했던 에리가 미쓰히데에게는 진심을 말했다. 결코 사랑 따위는 아니지만 더 강할 집착을. 




반드시 옳은 일만 골라서 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다……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이 소설은 청춘의 불안과 고독, 단절과 소통에 관한 메시지뿐 아니라 에리와 미쓰히데의 집안 이야기를 더하였다. '청춘'을 '개인'으로서 더 나아가 '가족' 구성원으로서 '삶과 죽음'의 시간에 올려놓았다. 




죽음이란 심장이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란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를 잃어가는 것이다. 




죽은 자들을 뒤로하고 끊어졌던 관계들이 다시금 이어지려는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에리와 미쓰히데의 관계 또한 깊은 여운과 함께 질문으로 남는다. 풀릴까? 아니더라도 당사자들만 아는 사정이리라 생각하면 다 될 일이다. 두렵고 아프지만 '지금'을 마주하고 뛰어넘고자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에게 이런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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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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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북하우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라는 제목으로 확실하게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엘리스 피터스/ 북하우스


엘리스 피터스 작가가 창조한 인간미 넘치는 캐드펠 수사는 이 이야기에서 그의 매력을 아낌없이 발산한다. 흡인력 강한 작품으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엉덩이를 뗄 수 없게 만든다. 첫 번째 이야기('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가 시리즈 전반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전개되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캐드펠 수사'를 입체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잉글랜드에서는 왕권을 두고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어이 1138년 초여름, 그 여파가 슈루즈베리까지 미치고 만다. 수도원조차 스티븐 왕의 편과 모드 황후 편으로 나뉘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스티븐 왕은 슈루즈베리 성을 점령한다. 그리고 그를 따르지 않는 세력에게 본보기로 삼기 위해 포로 94명을 처형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린다. 

헤리버트 수도원장은 참혹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을 적절하게 매장해 주고자 나서고, 캐드펠 수사를 적임자로 임명한다. 캐드펠 수사는 시신들을 수습하던 중 한 구의 시체가 더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였고, 그 후에는 해적과의 전투가 끊이지 않은 성지의 해안을 순회하는 배의 선장이었던 캐드펠 수사는 어느 잔혹한 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버려진 정체불명의 젊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진정 최선을 다한다.


우선 처형이 아니라 살인당한 시신이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였다. 처형된 포로들 사이에 버려진 비열한 살인의 내막을 파헤치고자, 신원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그의 발걸음에 심장이 뛰었다. 누가 왜 이토록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가?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도 남녀 간의 사랑이 그려진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을 겪었으나, 꺾이지 않는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은 극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에게 반하여 목숨을 던져서라도 그들을 지키려는 용감무쌍한 젊은이들의 투지는 활활 타올랐다. 



캐드펠 수사의 뛰어난 지략이 돋보이는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왕권을 둘러싼 혈전이 몰고 온 피비린내와 공포가 뒤덮인 슈루즈베리에서 '서약'과 '충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젊은이들의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경계해야 할 적이었지만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존중했던 캐드펠과 베링어의 공조가 빛을 발하는 결말이었다. 서로에게 진심을 속이고 머릿속으로는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을지라도 호젓한 밤 나들이 동무였던 그들이 나눈 강한 유대감 덕분에 비열한 살인자를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망나니야말로 내 호적수고, 

녀석을 다른 상대와 바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려갈수록 극 곳곳에 '여기요!'하며 문구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어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한 인간이 지닌 다양한 면면들을 매혹적으로 그려낸, 

캐드펠 수사의 모험과 지략이 돋보이는, 

수작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덕분에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흠뻑 빠져든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 [수도사의 두건]을 펼칠 시간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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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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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북하우스




완간 30주년 기념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새 옷으로 단장하고 독자를 찾았다. 색감의 대비로 단조로움을 피하고 초상화 중 눈 부분만이 드러나있는 표지는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시리즈의 저자는 엘리스 피터스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로 영국 문학의 대가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이다.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선보였다. 중세 시대 영국의 한 수도원에서 허브 정원을 가꾸며 신을 섬기는 적요한 생활을 보내는 캐드펠 수사가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역사추리소설로, 총 21권이다. 장장 18년 동안 계속된 이 시리즈는 전 세계 각국에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역사와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울려 독자뿐 아니라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이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는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이다.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수도사가 되기 전 십자군, 해적선을 격파하는 배의 선장 등 다양한 모험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식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약제사이기도 하다. 만년에 신에게 귀의하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생활을 하는 이 수사는 세상사에 해박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깊다. 그는 수사이기 전에 인간적인 매력으로 주변인들을 사로잡는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엘리스 피터스/ 북하우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사건은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는 임무 중에 발생한다. 

1137년 슈주르베리의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성인의 유골을 안치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중 종교적 열병이 넘치는 콜룸바누스 수사가 발작을 일으키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계시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한다.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샘물로 치료를 받고 유골을 가져오고자 한다. 

로버트 부수도원장을 위시하여 팀을 꾸려 귀더린으로 향하고, 반대 진영의 단호한 입장을 마주하게 된다. 지위와 계급에 따라 사고하는 거만한 로보트 부수도원장의 비열한 회유책은 오히려 더 큰 갈등을 조장하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반대 진영의 대표 격인 지주 리샤르트가 화살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생생하게 묘사된 생활상을 통해 중세 시대의 종교인들과 민간인들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 역사적 호기심을 키우는 이야기는 그 당시 종교가 일상에 미치는 방대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지역, 인종, 계급, 성별에 따른 갈등과 반목이 극 전반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12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로, 시대상이 잘 반영되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갈등의 불씨는 탐욕, 권력, 허영 등 현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라 더 매력 넘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수도복을 입든 평복을 입든 누더기를 걸치든, 

그 속에는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인간이

들어 있는 법이오. "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연민을 지닌 캐드펠 수사가 웨일스 인과 잉글랜드인, 사랑과 계급, 사랑과 종교의 대립으로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고자 동료들과 고군분투하는 과정들이 펼쳐진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균형과 배려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자연스레 신뢰를 주고, 그를 중심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흐름은 놀라웠다.





"아드님은 부인께 온당하게 보답할 겁니다. 

아드님이 속죄하는 동안 묵묵히 지켜보되, 

아드님의 죄를 변명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아드님은 그에 대해 무척 고마워하고

사랑으로 보답할 겁니다."





진실되고 정의로우며 호방한 리샤르트 영주의 죽음에는 사랑하는 연인과 마음을 허락받지 못한 남자,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끔찍한 일까지 서슴지 않는 종교인이 얽혀있었다. 하지만 이 잔인한 비밀보다는 이를 정리한 캐드펠 수사의 방식이 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어느새 그가 추구하는 정의와 인간에 대한 연민에 이끌리게 된다. 





진정한 기적이라면, 그 까닭 같은 건 있을 수 없으니까. 

기적이란 이성과 합치될 수 없으니까. 

기적은 인간의 인과를 초월하여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겨나는 법, 

합리적인 기적은 기적이 아니니까.




특이하고 괴상한 세상에서 캐드펠 수사가 펼치는 인간미 넘치는 기적,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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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다함 생기부수정단 YA! 24
설재인 지음 / 이지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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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설재인!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그는 요즘 십 대들의 현주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기록부'를 특유의 필력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탄생시키고야 만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설재인 지음/ 이지북





한창 입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큰아이 덕분에 '생기부'에 대해 생각이 많은 요즘이라 더 와닿은 제목과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된 여러 사건들과 맞물려 올해 일부개정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 또한 이 소설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주었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은 독단적인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미래인 2030년, 정부는 '전 국민 생애 궤도 추적제'를 시행한다. 면접이나 상견례, 심지어는 동호회에서조차 상대의 생활기록부를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단순하게 학폭을 저지르고도 잘나가는 연예인들을 떠올리며 사람들은 적극 찬성하고, 이 제도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단 몇 줄의 기록.

교사의 관찰로 남겨진 이 기록은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렸다. 과거의 기록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 기록의 진정성이나 전후 사정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소설 속 상황이건만, 상상 만으로도 두렵고 끔찍했다. 

절대적인 기준이나 판단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데, 생기부 기록이 낙인처럼 삶 전반을 뒤흔든다니.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인가. 더욱이 그 기록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면 당사자는 억울하고 통탄스럽기 그지없을 것이다. 



설재인 작가는 이런 상황을 쌍둥이 고교생의 기발한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똑똑했으나 권력자에게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씁쓸한 과거에 잡혀사는 아버지 성호형 씨는 자신을 닮은 영리한 쌍둥이 남매 다 함·다정에게 '가늘게 오래 살자'를 강조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정이 전교에서 유일하게 수학 시험 100점을 받았다. 칭찬받고 싶었던 마음이었건만, 다함과 아버지의 질타에 풀이 죽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버지 호형 씨가 깨어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입원하고야 만다. 


입원비와 간병비 등 이런저런 경제적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쌍둥이가 선택한 일이 바로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이다. 원체 똑똑한 이들은 중3 때 타임머신을 발명했고 이를 이용하여 생기부 기록을 수정한다는 발상이다. 


어렵고 중요한 사항인지라 의뢰인 선정부터 신중하게 접근하는 다함 ·다정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며 다양한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다섯 번의 의뢰를 조사하게 된다. 의뢰인의 말과 과거 상황을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하여 생기부를 수정하게끔 유도한다. 


생기부가 수정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의뢰인들을 보니 다함 ·다정 따라 덩달아 뿌듯해졌다. 무언가 좀 더 옳은 각도로 바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버지 호형 씨를 좌절하게 만든 이와 얽힌 다른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소설은 점점 더 묵직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부끄럽지만 뉴스에서 접했던 현실의 사건들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부모를 내세워 생기부를 채워나가거나, 거짓말과 소문으로 불합리한 결과를 유도하기도 하는 만행과 폭력이 펼쳐진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에서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 망설이는 사람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을 건네거나, 뜬금없이 사랑 고백을 하거나, 의뢰를 거절하는 등일 뿐이다. 하지만, 의뢰인들의 사연과 그 시절에 실제 있었던 일들을 조사하는 과정들을 통해 다함·다정을 비롯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쌍둥이 남매는 의뢰를 처리하면서 타인의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우리가 잊고 지내온 혹은 외면해온 도리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그게 바로 용기라고 생각해요.

다들 자기한테 득 되는 사람 아니면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 세상에서 혼자 도리를 다하는 거요.

그게 용기고 선의라고 생각해요."




"세상 어딘가 제가 절대 풀지 못한 방정식이 남아 있다는 게 

괴로웠어요. (…)

제가 풀지 못한 게 아니라고. 

애초에 제대로 된 방정식이 아니었던 거라고. (…)

문제를 푸는 것보다 문제의 오류를 찾아내는 게 

훨씬 어렵고 또 세상을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오늘 우리를 보는 눈빛들을 마주하는데, 

처음에는 화가 났어. 휠체어 때문에 오래 걸리는 거, 

백두산 할아버지가 귀가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크게 말씀하시는 거,

그런 것들은 두 분한테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 (…)

그런데 왜 그렇게 티 나게 기분 나빠하는 거지? 

왜 면박을 주는 거야? (…)

나는 그렇게 상처를 줬던 적이 없을까? (…) 

별로 상상해 보지 않았던 것 같아,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는지."




다함 ·다정의 생기부 수정단 활동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현재가 변했다. 그리고 쌍둥이가 시작한 날갯짓이 관형 씨, 백두산 할아버지에게 번져나갔고, 이제는 아버지 호형 씨까지 이어질 것 같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성다함 생기부 수정단] 소설이 그리는 큰 그림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개인의 '생기부'로 시작해 세상의 '사연'으로 초점을 맞추는 설재인 작가의 아름다운 시선에 깊은 동감의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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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길었던 날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지음, 최지숙 옮김 / 그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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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길었던 날/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지음/ 그늘





동유럽 신화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카테리나 사르디츠카 작가의 소설 <밤이 길었던 날>은 그 생경한 동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신들을 믿는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다. 친숙하지 않아 더 이끌린다. 낯선 폭력과 억압 그리고 뒤틀린 인간관계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그 안에 잠재된 진실을 쫓게 된다. 








오랜 세월 대대손손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폐쇄적으로 살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다. 유치원에서 낮잠을 자던 아이들 중 네 명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코로춘'이라 부르는 동짓날에 아이들이 돌아왔다, 단 '한 아이'만 빼고. 이제 이야기는 그 아이들이 왜 사라졌는지를 밝히고 돌아오지 못한 '한 아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얼마나 두렵고 험난할지 어느 누가 섣불리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친구들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도라 로트너는 사라진 네 명의 아이들, 소냐 포레스, 톰 해틀러, 아스트리드 말러, 막스 말러와 친했다. 아이들이 사라지던 그날도 함께 있었지만 남겨진 아이였다. "가운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아이, 다른 아이들이 당한 일에 대해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던" 아이였다. 그런 그녀 앞에 죽었다고 믿었던 친구, 아스트리드가 12년 만에 다 자란 모습으로 나타났다. 소냐, 톰도 그날 함께 돌아왔다, 막스만 빼고.



여기 있느니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았으니까!




이제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여 끔찍하고도 잔혹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홀로 돌아오지 못한 막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실을 쫓는 아스트리드와 친구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부모조차 포기해버렸던 아이들이 스스로 깨어나 비열하고 잔혹한 악에 맞서는 서사는 큰 울림이 되어 마음에 새겨졌다. 






선과 악, 전통과 관습, 성장과 어른 등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이 책을 읽는 내내 꼬리를 물었다.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악령들은 저희에게 닿을 수 없으므로 저희는 깨어날 것입니다.





책에서도 나왔지만 즈두하크와 노즈니차처럼 서로가 있어 우리가 인식하는 존재들이 있다. 노즈니차는 악몽을 만들어내고 즈두하크는 그걸 막는 존재라고 한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우리가 이와 반대되는 '선'을 갈망하지 않을 것이다. <밤이 길었던 날>의 즈두하크 아스트리드처럼 '선'은 모진 고난과 역경을 겪고 이를 이겨내면서 성장해나가고 깨어난다. 그 험난한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고뇌하는 아스트리드를 보면서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에 차올랐다. 








악은 한없이 비열하고 이기적인 행보로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데 선은 이를 막기 위해 온 자신을 던져 맞섬으로써 숭고한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 그렇기에 악의 그림자는 끊어져도 선의 그림자는 이를 따르는 용기 있는 자들로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공포로 뒤덮여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도 아스트리드와 톰과 도라는 두려움의 실체에 한발 한발 다가서는 용기 있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기어이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겨내어 더욱더 단단하게 일어섰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이어졌다. 도라의 말처럼 고대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며 왜곡된 가치관을 지닌 채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었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 몸이 커졌다고 어른이 아니다고 한 톰의 엄마 발레리아 말처럼 경험과 그 경험으로 쌓인 깨달음과 지혜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리라. 아스트리드와 톰과 도라처럼 말이다. 



동지 그 후 열두 밤 동안 이어진 숨 가쁜 모험을 함께 하며 두려움과 용기 그리고 사랑과 용서에 대해 깊은 여운을 느꼈다. 아스트리드가 자신 안의 공포와 악마를 직접 마주하고 깨달은 진실이 깊이 새겨졌다. 깨어나라. 당당히 두려움에 맞선 이들여, 항상 함께 걸어가리니.



매력 넘치는 이색적인 소설 <밤이 길었던 날>이 선사하는 서늘한 공포를 이겨낸 자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리라.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여러분께 주저 없이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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