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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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한 기록 노동자 희정의 글 <베테랑의 몸>

 


 

베테랑의 몸/ 희정 글 최형락 사진/ 한겨레출판

 



'베테랑'은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저자는 각 분야의 베테랑을 나름의 기준으로 찾아 인터뷰한다.

 

저자는 베테랑을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 균형 잡는 몸

2. 관계 맺는 몸

3. 말하는 몸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오롯이 새겨진 몸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울림이 되어 마음을 뒤흔든다. 들어봤지만 그 세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가지는 환상과 편견을 비로소 멈춰주었다.

 

"어떤 사람이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소명대로 그 길을 꿋꿋이 걸어온 이들은 베테랑이 되기 위해, 그 노동이 몸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어주었다. 자신을 베테랑이라 말하기는 주저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지키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였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자존심 지키며 일하는 사람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자기 일에 모르는 것은 없는 사람

말을 이해하는 사람

내 몸 다치지 않게 일하는 사람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사는 사람

수많은 활자들 사이에서 길 잃지 않는 사람

 

 

서로 다른 연령 · 성별 · 분야의 베테랑 12인들이 말하는 베테랑을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멈춰 서있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려하고 존중하여 나아가는 이가 바로 베테랑이었다.

 

12명의 베테랑 중 '로프공'과 '수어통역사'의 이야기가 나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지했던 '로프공'이라는 직종에 대해 베테랑 김영탁에게 배우고, 법이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여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안타까웠다.

 

산업안전법상 발이 땅에서 2미터만 떨어져도 비계나 안전대를 설치해야 한다는데 왜 로프공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로프에 의지하여 작업해야 하는지 먹먹하다. 저자의 말처럼 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일에 진심인 베테랑이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하는 걸까.

 


 

 

수어통역사 장진석처럼 대학생 때 수화를 잠깐 배웠었다. 당연히 농인의 언어인 줄 알았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괴리를 알았다. 그래서인지 장진석 수어통역사 이야기가 눈에 밟혔다.

구락부에 가서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서 '수어 못하는 불쌍한 젊은 애'로 몇 개월 보낸 일화가 크게 와닿았다. 온몸으로 전하는 언어, 얼굴 표정으로 전하는 언어인 수어를 보고 소통하는 농인의 세계로 한발 한발 내딛는 느낌이다.

농인이 있고, 언어가 있는 자리라면 통역사가 있다. 텍스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맥락과 의미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달해야 하는 그의 자리,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무겁게 깨닫는다.

 

 


 

 

12명의 베테랑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은 그들의 열정과 자부심에 반짝인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소통하여 지키고자 하고, 생존하고자 노력하고, 공존하고자 상상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과 저자의 시선이 고루 닿은 노동 현장은 인식의 변화를, 개선의 물결을 바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길을 쫓아 노동이 새겨진 몸을 지닌 베테랑들이 존중받으며 정당한 대우받는 사회를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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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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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어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이리도 방대할 수 있다니. 과학적·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이끄는 <악의 유전학>은 달콤 쌉쌀한 초콜릿처럼 매료시킨다.

 

 


악의 유전학/ 임야비 소설/ 쌤앤파커스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테러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혁명가 '이오시프'를 조명한 다음, 그의 어머니 '기적의 케케'가 묵혀둔 지난날의 비밀을 내민다. 차디찬 유형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차디찬 그곳에서 살아남은 존재로서 알려줘야 할 의무라는 듯 어머니 케케는 심연에서 어둡고 끔찍한 이야기를 끌어올려 들려준다. 그 이야기 끝에 조우하게 되는 존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는 무척 놀랐다.

 

과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다듬어가고 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그중 인간의 진화와 유전에 대한 영역은 큰 논란이자 불가사의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이나 유전법칙과 유전 물질인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불붙은 연구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악의 유전학>은 그 흥미로운 유전의 영역에 '악'을 포함시켰다. '과연 악은 유전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지독히도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케케와 베소 그리고 이오시프.

이 세 명이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듣는 일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져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를 꿈꾸는, 아름답고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참혹함은 아들 이오시프가 인간 백정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과 그 목적을 나열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는 왜 이리도 잔인하고 흉포한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을 어머니 케케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임야비 작가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차르의 로마노프 제국을 뒤집어엎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세운 스탈린을 <악의 유전학> 주인공으로 선택하였다. 레닌조차 그를 당에서 제거하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흉포하고 잔인하였던 인물, 스탈린. 이제 그의 탄생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절묘하게 재배열되어 그가 지닌 악의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스탈린이 한 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가 한 말들이 뿌리내려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때 이오시프일 수도, 리센코일 수도, 스탈린일 수도, 그 누구일 수도 있는 악을 마주하게 되었다.

 

리센코 후작은 '획득 형질의 유전'에 심취하여 인간에 적용해 보기로 결심한다.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한랭 내성' 형질을 장착하기 위한 기나긴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는 늠름하고 강력한 백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득에 넘어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열정적이고 굳게 믿었던 리센코 후작은 기한인 20년 후 도망치기에 바빴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도 없으면 문제도 없다."

 

 

사상과 신념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깨우치며 받아들이게 되어 따르게 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분명 그 믿음의 시작부터 그릇되었다면 결과 또한 옳지 못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를 가능케한 우생학처럼 말이다. 이미 결과가 정해놓고 시작한 실험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한랭 내성 형질 획득은 문서 속에서만 성과가 보이는 실험이었다. 이로 인해 리센코는 열정을 폭력으로, 광기로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리센코는 백성을 개조하고자 하였고, 스탈린은 세상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원하는 바를 위해 수많은 목숨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진정 악은 유전될 수 있는가. 이오시프의 가련한 큰아들 야사를 떠올려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일 뿐이다."

 

 

 

차르와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는 세상을 뒤집으려 했던 이오시프 자신도 결국 공포와 처형으로 인민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생명은 그 자체로 귀히 여겨야 할 존재이다.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잊어버린 악의 최후는 비루하고 쓸쓸했다.

 

 


 

 

- 한줄평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악의 유전학>

악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은 서늘하고도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기적의 케케가 가라앉았다 건져올려진 차디찬 연못이 다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인상 깊었던 부분

케케는 리센코 후작이 죽은 (나타샤와 베소의 딸) 소냐를 위해 흘린 눈물 뒤에 이어지는 먹물 같은 눈물을 보고는 겁을 먹었다. 그 미세하게 떨렸던 검은 눈물이 악과 관련된 것이라 케케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베소와의 결혼도 따뜻한 어둠이었고, 베소도 검은 설렘이라 표현되었다. 이미 악으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도 따뜻함을, 설렘을, 달콤 쌉쌀함을 느끼며 버텼던 케케는 진정 기적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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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4 - 813의 비밀 어린이 세계 추리 명작 시리즈
모리스 르블랑 지음, 이혜영 옮김 / 국일아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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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일아이 어린이 세계추리명작 시리즈 『아르센 뤼팽 4: 813의 비밀』이 출간되었네요. 아르센 뤼팽의 놀라운 추리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인간의 탐욕과 광기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르센 뤼팽 4 : 813의 비밀/ 모리스 르블랑 지음/국일아이




 


 



 

변신의 귀재인 뤼팽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러 인물로 변장하여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줍니다. 사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번에는 뤼팽이 어떤 인물로 등장하여 헷갈리게 할지 기대하며 읽는 재미가 있는데, 『813의 비밀』에서는 재미를 넘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이번 『813의 비밀』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살해된 다이아몬드의 왕 '루돌프 케셀바흐'의 부인인 '돌로레스 케셀바흐'는 사건 당시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나이를 봤다고 증언합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장의 '르노르망 국장'이 등장합니다. 일흔 살이 넘었지만, 특유의 예리하고 정확한 눈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입니다.

 

파버리 소령, 리베이라, 알텐하임 공작. 다양한 인물로 변장하고 범행을 저지르는 악당으로, 뤼팽의 수사를 방해하고 위험에 빠뜨리게 합니다. 뤼팽과 알텐하임 공작의 팽팽한 대결은 극 전체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뤼팽이 풀고 있는 암호의 힌트를 알려준 어린 소녀 아질다도 등장합니다. 뤼팽은 아질다 덕분에 사건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됩니다.

 

 



 

 


 

 

『813의 비밀』은 다이아몬드의 왕 '루돌프 케셀바흐'의 죽음으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가 호텔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의 아내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르센 뤼팽은 루돌프에게 도둑질하러 왔다가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루돌프의 아름다운 부인인 '돌로레스 케셀바흐'와 종업원들의 증언으로 검은 망토를 입은 사나이를 쫓게 됩니다. 그리고 'L.M'이라는 이니셜을 지닌 인물도 수면에 떠오르게 됩니다.


과연 뤼팽은 살인자일까요? 뤼팽은 비록 도둑이지만 나쁜 방법으로 돈을 모은 부자들의 돈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기에 갑자기 살인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네요. 역시 뤼팽은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진짜 범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루돌프 케셀바흐'가 끝까지 숨긴 비밀도 궁금했겠죠. 호기심 넘치고 모험심 강한 뤼팽이라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뤼팽의 수사가 쉽지 않습니다. 번번이 뤼팽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있어 뤼팽은 감옥에 수감까지 됩니다. 과연 뤼팽은 이 난관을 헤치고 나가 진짜 범인과 사건의 내막을 파헤칠 수 있을까요?

 


 


 

 

예상보다 큰 규모의 사건이 펼쳐지는 『아르센 뤼팽 4 : 813의 비밀』

러시아, 프랑스, 영국의 은밀한 협정과 러시아 황실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답니다. 뤼팽조차 놀라게 한 진짜 범인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독자가 있다면 대단한 추리력과 사고력을 가진 거겠죠.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도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행간과 맥락 사이에 숨겨진 단서를 유심히 살펴본다면 마지막을 그려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라 집중! 또 집중해서 읽어야 할 거예요.

 


 

 



 


이번 작품은 뤼팽을 끈질기게 방해하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변신한 그의 신분은 물론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적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리고 뤼팽은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마지막에서야 밝혀지는 진실은 큰 충격을 몰고 옵니다.

 

 


 

 


뤼팽이 쥐고 있는 암호 '813'과 'Apo on'를 추리하는 과정은 참으로 대범하고도 감탄스럽습니다. 헐록 숌즈와의 대결도 이번 작품에서도 빠지지 않네요. 감옥에 갇혀서도, 약속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여러 각도로 사고하고 추리하는 그의 자세는 참으로 훌륭하네요. 침착하게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고력과 거침없는 행동력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위트가 그의 매력이니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겠죠.

 




 

 


지금 우리는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근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왕실과 황실 등 신분이 곧 권력이 되는 아르센 뤼팽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이 한 가족을 어떻게 풍비박산 내는지 지켜보면서 씁쓸하고도 허탈했습니다. 

 


어린이 소설 『아르센 뤼팽 4: 813의 비밀』

추리력과 사고력 뿐 아니라 인간 군상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어 더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살아가면서 진정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아요. 위험천만한 뤼팽의 모험이 던진 질문에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해집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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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흐른다
송미경 지음, 장선환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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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푸르고 끝없이 흐르는 물 위에 빛이 닿아 반짝이는 찰나 마음이, 영혼이 술렁거리는 것은 살아있는 누구라면 그렇지 않을까?

 

등굣길에 스치는 강가에 하나둘 자신의 마음을 두고 오는 영아의 아니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낸 그림책 『나는 흐른다』를 만났다.

 

 


나는 흐른다/ 송미경 글/ 장선환 그림/ 창비



 

 

『나는 흐른다』 그림책은 『돌 씹어 먹는 아이』를 통해 아이들의 말 할 수 없는 비밀과 무의식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송미경 작가의 신작이다.

 

 


 

 

송미경 작가가 표출시킨 속마음은 강물속에서 너무나 자유롭게 유영한다. 수영하고 웃으면서 숨김없이 토해내는 마음의 물결은 잔잔한 강물에 파동을 일으킨다.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나, 또 다른 나, 수많이 존재하는 나. 마음이 자유로이 헤엄치며 강 이곳저곳을 누비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 그림책은 장선환 작가의 그림과 송미경 작가의 글이 한데 아우러져 진정한 주제가 선명하게 표출되었다. 글과 그림의 조화로 완성된 작품이다. 글이 그림으로 구체화되고, 그림은 글로 압축되었다. 서로의 미묘한 지점이 만나 공감각적으로 채워지니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고 힘 있게 다가온다. 내 안의 '나'를 물속에 두고 왔지만 일상은 변하지 않고, 오로지 홀로 흔들리고 불안한 영아의 심리를 내밀하게 표현해 내는 어조와 그림이 담담하여 흡입력이 더 커진다.

 

 

그림책은 읽을 때마다 묘한 분야이다. 보통 어린아이에게 보여주지만 어느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그림책은 꾸준히 보고 있다. 청소년이 된 아이들은 신기해라 하지만 그림책의 정수는 나이에 상관없이 보는 이에 달라지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그림책을 주위에 권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유롭게 강물을 헤엄치는 자신에게 "돌아와." 하지도 못하고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영아가 몸속에, 사회적 역할에, 규범에 갇혀있는 내면의 자신이 억눌러있는 것도 싫지만 떠나버릴 용기도 없어 망설이는 나 같아 눈에 밟혔다.

 

 

나는 하나의 내가 되었어요.

언젠가 둘이거나 셋이었을,

지금은 하나인 내가 온몸으로 헤엄쳤어요.

 

 

 

시간이 흐르고 물 안에서 헤엄치고 웃는 나를 지켜보다 마침내 강으로 뛰어들었던 영아는 수많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완전한 '나'로 성장하였다. 이 가슴 벅찬 순간까지를 장선환 작가는 투명하면서도 힘 있는 붓질로 표현하였다.

 


 

 


 

한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그림책

그 안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라며

소중한 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그림책

반짝이는 강물 속에서 헤엄치며 웃고 있는 '나'를 찾고 인정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흐른다』그림책을 권한다. 옹골차진 영아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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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광고인이다 - 희망도 절망도 아닌 현실의 광고 이야기
임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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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광고인으로 살고 있는 임태진 저자의 진솔한 에세이 <이것이 광고인이다>

 


이것이 광고인이다/ 임태진 글, 그림/ 한겨레출판


에세이는 내가 모르는 타인이나 세상을 내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장르라, 읽을 때마다 선물상자를 여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광고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실의 광고인 임태진 작가는 광고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내용을, 호기심 차원에서 광고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읽어볼 만한 내용을 꾹꾹 눌러 담아 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광고를 잘 '팔아야 하는' 숙명처럼 광고의 세계 이모저모를 공감할 수 있게 잘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5초가량의 짧은 광고 너머 수많은 광고인들이 남긴 피와 땀, 열정, 걱정, 불안 그리고 자부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극한 직업? 노는 게 일?


 

 

임태진 작가의 말처럼 광고의 세계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100%가 아니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사실처럼 굳어버려 '광고업', '광고인'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었던 거다. 종합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고정관념의 외피를 깨뜨리고 전쟁터 같기도 하고 타임 루프 같기도 하지만 꽤 재밌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다.

 


아트 디렉터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작가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직접 그렸다. 사실 글보다 그림의 임팩트가 크다. 더 많이 실어주었다면 바랄 정도로 깨알 같은 코멘트가 폭소와 실소를 자아낸다. 노안으로 힘들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은 보상은 달콤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촬영 스텝들을 보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작업이구나.'라고 깜짝 놀랐다. 한 편의 광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작업을 거쳐야지만 비로소 우리가 볼 수 있었다. 이 사실을 마주하니 어떤 광고라도 허투루 보지 말아야겠다는 묵직한 마음이 들었다.

 

 

'광고'하면 참신한 아이디어와 전달력이 떠오른다. 별로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인지라 그들의 능력에 무한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드디어 그 비결이 밝혀졌다.

<4장.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에서 들려주는 갖가지 노하우와 노력들을 통해 지름길은, 쉬운 길은 없다는 진리를 또다시 깨닫는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아이디어 회의 또한 성장의 기회로 거듭난다.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팀이기도 한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동료의 생각과 고민을 듣고 배워가는 것이다.

 


 

 

 

 

오티 브리프부터 시사까지 한편의 광고가 나오기까지의 고군분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어서 광고업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이자 현장 보고서가 되어주리라. 임태진 작가는 종합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고 있어 그 구조에 맞춰서 설명하고 있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직업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 좋은 듯하다. 자신이 지켜본 촬영 현장 스케치까지 알차게 담아내 광고 전반에 걸친 이해를 돕는다. 다 먹자고 하는 일, 밥차와 커피차에 대한 무한 애정에도 깊이 공감했다.

 

 

 


 

 

그는 광고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넨다. 창조자이지만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불안과 만족도,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그이기에 그 말의 무게에 더 신뢰가 갔다.

그리고 완성된 광고 이면에 존재하는 진솔하고도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저 사실 이 브랜드 안 좋아해요, 사랑의 작대기, 콘티 깎는 노인, AI 시대에 필요한 광고인 등 일화를 통해 임태진 작가의 광고에 대한 진득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임태진 작가 본인의 경험으로 쌓인 광고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전현직 광고인들의 Q&A가 실려있는 집대성이다. 광고계에서 숨 가쁘게 달려온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현실과 전망 그리고 그들의 고민과 비전은 분명 광고에 뜻을 둔 이들만이 아니라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 팁 하나 풀자면 <부록>모르면 대화의 맥이 끊기는 '필수 실무용어 90'부터 읽고 책 읽기를 시작하는 게 내용 이해가 빠르다.

 

 

"니들이 광고를 알어?

네, 덕분에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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