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것의 비극성과 영원회귀의 필연성을 아는 사람,
또 그것을 알면서 존재하는 것의 비극성과
존재하는 것의 필연성을 사랑하는 사람,

-이것이 니체가
‘운명애 (amor fati)‘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나
‘초인‘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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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40대 후반에 <주역>에 입문한 공자 역시 나그네신세였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세상사의 이치에 통달한 성인으로 여겨지는 공자도 인생 후반에는 나그네를 뛰어넘어 ‘상갓집 개‘로 불릴 만큼 고단한 인생을 살았다. 당시 그는 그야말로 상갓집 개처럼 정해진 거쳐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그 운명을 받아들였기에 공자가 존재했다.

세상에서 외면당한 고독은 걸작을 만든다. 좌구명은 장님이 되고부터 《국어》를 만들었고, 주나라 문왕은 감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리고 나서야 《손자병법》을 탄생시켰다.
절대고독, 그것은 불후의 명작을 만들라는 신의 특별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절대 역사서가 어찌 영혼을 태우는 처절한 고통 없이 탄생할 수 있겠는가.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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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크리에이터는 동네와 지역을 브랜드로, 창조도시로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 골목 상권이 들어서면 주변 동네가 브랜드가 되고, 그렇게 되면 창조 인재가 유입된다.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후암동, 해방촌, 성수동 뚝섬 등이 골목 상권을 기반으로 사람과 돈이 모이는 ‘브랜드 동네‘로 성장한 곳이다. 

이곳에는 음식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코워킹(Co-working), 코리빙(Co-Living), 건축디자인 사무소, 복합문화공간, 공방 독립 서점 등 크리에이티브 공간이 가득하다. 소비의 공간이었던 상권이 스타트업, 소상공인, 예술가가 집적된 한국형 창조도시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지방에서도 로컬 크리에이터가 경제를 선도한다. 이들의 활약으로 광주의 동명동과 양림동, 수원 행궁동, 강릉 명주동, 진주남동, 대구 삼덕동이 지역을 대표하는 골목 상권으로 자리 잡았고 제주의 화장품, 강릉의 커피, 양양의 서핑 등이 지역적인 특색을 살린 지역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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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최후의 날을 가장 충격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무너진 건물도 손상된 벽화도 아닌 바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폼페이인들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폼페이에는 약 2만 명이 살고 있었으며 그중 2천여 명이 도시와 함께 화산재 아래 묻혔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과 가축들은 시뻘겋게 들끓는 마그마에 삼켜져 그대로 굳어버렸고 마그마는 점차 식어 암석이 되었다.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석 안의 시신은 썩어서 사라지고 그들의 모습을 닮은 구멍만이 남았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이 구멍에 석고를 부어 실물과 똑같은 석고상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석고상들은 그날의 절망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겁에 질린 채 어머니의 무릎을 꼭 잡은 작은 소녀의 울부짖는 얼굴,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거지의 망연자실한 표정, 목줄을 끊으려 애쓰는 개의 절박함. 개도 아니면서 사슬에 매여 죽기만 기다려야 하는 검투사들의 절망.....

생생함을 넘어 처절하기까지 한 모습들 앞에 절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리고 그런 급박한 와중에서도 보석과 재물을챙기다 그대로 굳어버린 인간의 탐욕스러움에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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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학에서 그리스 사랑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던 바이런은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그 당시 살고 있던 이탈리아 제노바 항을 출발하여 그리스의 메솔롱기온Mesolongion에 도착한 것이 1823년, 

그는 곧바로 터키에 항전하는 대열에 서지만 불행히도 1년이 채 못 되어 병사하고 만다. 그가 임종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전진! 전진! 나를 따르라. 겁내지 말라!> 였다. 

바이런은 유언처럼 그리스인의 애국심을 고취한 시  「그리스의 섬들」에서  그리스에 대한 사랑을 읊고 있다.

*수오니온의 대리석(포세이돈 신전) 절벽 위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기서는 파도와 나뿐 어느 누구도 우리 서로 속삭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거기서 백조처럼 노래 부르고 죽게 해다오.
노예들의 나라는 결코 내 나라가 될 수 없으리니.

당시 그리스 민중의 바이런에 대한 존경심은 후에 독립된 그리스의 왕위를 거론할 정도였다. 

따라서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와 헬레나 사이에 태어나 전쟁을 외치다 파멸한 오이포리온은 <근심도 고난도 함께 나누>고자 터키로부터 압박받는 그리스의 독립 전쟁에 뛰어든 바이런의 화신이다.

오이포리온; 성채도 성벽도 필요 없으니.
각자 오로지 자신의 힘만을 믿어라.
강철 같은 사나이 가슴이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굳건한 요새이어라.
정복되지 않으려면,
날래게 무장하고 싸움터로 향하라. - P2770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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