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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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인간의 아름다움 읽고 쓰는 인간의 질서정연함

말하기의 세계의 나는 무척 어설프다. 거의 평생을 듣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전달하려는 바가 잘 상대에게 가서 닿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상대를 불쾌하게 하진 않는지 혹은 내가 너무 없어 보이지 않나 불안하다.

읽고 쓰는 세계에서의 나는 비교적 온전하다. 내가 쓰는 문장 안에 생각이 갇혀 버린 것처럼 갑갑함을 느끼곤 하지만 어차피 생각한 만큼만 쓸 수 있고 쓸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단념해 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말하기처럼 상대의 기색을 실시간으로 살피지 않아도 되고 진심이 아닌 말을 뱉고 전전긍긍할 이유도 없다. 말하는 나는 껍데기이고 읽고 쓰는 내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까놓고 말하자면 말하는 인간에 비해 읽고 쓰는 인간이 더 우아하다고 내심 우쭐해한다.

그럼에도 말하는 세계의 인간은 무척 아름답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 귀를 잡아끄는 목소리 쾌활한 웃음 리드미컬한 문장. 말하는 내용과는 상관 없이 앞에 있는 상대를 압도한다. 내가 갖지 못한 이런 인간적인 매력들을 생각하면 약간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

인류의 스승들은 문자 언어가 아닌 음성 언어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했다. 궁극의 진리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을 품고 있고 인식을 넘어서 미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일관성과 논리를 추구하는 글이 아닌 아우라와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음성 언어만이 진리를, 아주 일부라고 하더라도 드러낼 수 있는 것 아닐까. 강박적인 논리의 세계를 붙들고 있는 나 같은 바보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세상이다.


작가는 미래인과 소통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다. 고전이고 뭐고 일단 건강해야 쓴다. 작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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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것이 의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무엇도 의미 없게느껴지기도 해서 무엇에 집중하고 어디다 마음을 두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내 친구들은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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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는 사람이 공연에 완전히 몰두해 있어야 진정성 있는 무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기 행위에 심취해서 무대를 망치는 사람도 무척 많다. (지금은 없을 일이지만) 어린이 수백명을 땡볕에 세워두고 자기 말에 심취해서 끝으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하자면을 되풀이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말이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잘 계산하고 구성한 무대는 가치롭다. 관객이 몰입하는 게 중요하지 공연하는 사람이 몰입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받는 돈을 생각한다. 그 가격에 손실이 없을 행동을 하자고 다짐한다. 그렇기에 한 번도 마음을 놓고 ‘무대를 즐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무대는 ‘업무‘ 이고, 긴 업무가 끝나면 그저 피로감이 있을 뿐이다. 나도 언젠가는 작두를 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그걸 타는 것일까.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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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솔직한데 부담스럽지 않아서 더 좋다. 어려서부터 내 글쓰기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쓰고 싶은 어떤 마음이 있는데 그걸 표현할 글 구조나 문장, 적절한 단어를 알지 못해 부적절한 틀로 마음을 써내려 가다보니 내 뜻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곤 했다. 전형적인 게으르고 강박적인 글쓰기이다. 엉성한 그물로 낚시를 하다보니 진실은 다 빠져 나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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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나에게 기독교인 친구가 물었다. 그럼 너는 뭘 믿고 살아? 나는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올 것과 그 월급이 교환 가치를 가질 것임을 믿는다.

화폐의 유통과 마찬 가지로 견고해 보이는 이념이나 심지어 자연과학도 그 기본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 사회적 합의를 깔고 있다. 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 믿음에 관해 숙고해 보면 그것은 사회적 상황이나 역사적 맥락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크고 높은 성을 지은 벽돌은 사실 쉽게 부스러지는 모래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허무해진다. 법이 다 뭐고 돈이 다 뭐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사실 옳은지 그른지 판단조차 하지 않았던 생각의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현실을 살 때는 그 와르르 무너진 난장판을 슬쩍 베일로 가려두는 게 낫다. 현생 사는데 허무해지면 기운만 빠진다.

모든 일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 마라.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고, 모르는 것은 지나치고, 편안하게 살고, 행복을 느껴라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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