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없는 나에게 기독교인 친구가 물었다. 그럼 너는 뭘 믿고 살아? 나는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올 것과 그 월급이 교환 가치를 가질 것임을 믿는다.
화폐의 유통과 마찬 가지로 견고해 보이는 이념이나 심지어 자연과학도 그 기본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 사회적 합의를 깔고 있다. 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제, 믿음에 관해 숙고해 보면 그것은 사회적 상황이나 역사적 맥락에 따라 충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크고 높은 성을 지은 벽돌은 사실 쉽게 부스러지는 모래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문득 허무해진다. 법이 다 뭐고 돈이 다 뭐냐.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사실 옳은지 그른지 판단조차 하지 않았던 생각의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다.
현실을 살 때는 그 와르르 무너진 난장판을 슬쩍 베일로 가려두는 게 낫다. 현생 사는데 허무해지면 기운만 빠진다.
모든 일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 마라.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고, 모르는 것은 지나치고, 편안하게 살고, 행복을 느껴라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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