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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광고 인문학 - 광고인의 시선으로 떠나는 유쾌한 인문 여행기
이지행 지음 / J&jj(디지털북스) / 2025년 2월
평점 :

개그맨 박성광의 이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저자는 스스로 B급을 자처한다. 그러면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B급'이란 타이틀 아래에서 더 자유롭고 유쾌하게 생각하기를 권한다.
'광고의 시선으로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저자 이지행은 스스로 B급 인문학자라 칭한다. 영화 주간지 <씨네 버스>에서 글을 쓰고 영화열차 <씨네트레인>을 기획했다. 20년간 거치지 않은 광고가 없을 정도라는 그는 '놀고 있네'라는 아지트를 만들어 글 쓰고 기획하며 논다.
진지하게 읽지 말 것! 매뉴얼도 있는 독특한 책
시작부터 재밌다. 매뉴얼이 있고 진지하게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스낵 인문서니 진지하지 말 것,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되고 삐딱, 유쾌, 상상하고 의심하면 땡큐고 B급을 이해하고 고급진 내용을 원하면 냄비받침 정도로 사용을 권장한단다.
이쯤 되면 좀 건방져 보일 수도 있지만, 묘하게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설득되면서 읽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
"광고는 결국 인간을 향한다."
짜릿했던 문장 중 하나였다. 광고는 팔아야 하는 물건이 주인공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인간을 향해야 한다'라는 말이 은근 짜릿하다. 어쩌면 광고의 목적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설득하고 감동시키는 일이라는 걸 확인 시킨달까. 그런 메시지를 예술 작품에 담긴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에 비춰 풀어내는데, 그 방식이 정말 참신하다.
역사 속 광고천재들의 등장!
책에는 총 6부에 걸쳐 31개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하나하나 다 흥미롭지만, 특히 마음 가는 데로 펼쳐도 된다는 매뉴얼에 충실해 보려 목차를 둘러본다.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가 폴폴 풍기다 못해 전성시대를 이끌었다는 프란시스코 고야와 귀스타브 쿠르베가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가 엄청 궁금하고, 상상의 끝을 보여줄 것 같은 히에로니무스 보스, 나쁜 인간의 표상인 아돌프 히틀러가 눈길을 끌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로움이 아니라 죄지은 놈은 "걸리면 다 죽이겠다"라는 잔혹한 법률에 가깝다니 좀 충격이었다. 그나저나 남편이 바람피우다 걸리면 갈라서고 아내가 걸리면 강물에 던지네? 아버지가 딸을 덮치면 추방하고 며느리를 덮치면 강물에 던지네? 함무라비 정의롭다더니 차별이 좀 심한 거 아님?

26, 27쪽
또 최고의 이야기 꾼으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를 구라쟁이이자 인류 최초의 예능인이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묘하게 납득이 되고 프란시스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가 스페인 최고의 티저 광고라고 상상하는 데다가 이야기마다 붙어 있는 '팁 태그'는 마치 광고 기획서의 메모처럼 간결하고 재치 있다. 찾아보게 만든달까, 읽는 맛이 있다.

201~203쪽

146, 208, 265쪽
나름의 주목할 문장
"형제의 우정 예술에 대한 사랑과 낭만이 대중을 홀렸고 그들에게 감정이입했다. 대성공한다. 인스타그램이든 유튜브든 남는 건 기록밖에 없다. 퍼스널 브랜딩은 꾸준함, 꾸준한 기록이다. 명심하자. 우리도 고흐가 될지 모른다." 265쪽, 아를 별 밝은 밤에 압생트 옆에 차고
"광고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다.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고, 욕망을 자극하며, 가끔은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광고는 삶을 팔지만, 동시에 삶을 비춘다." 336쪽, 나가며: 망할놈의 광고, 빌어먹을 인문학
이런 유의 재치스러운 문장들이 책 전체의 분위기와 철학을 잘 보여준다. 유쾌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 미묘한 균형이 담겼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광고나 마케팅에 관심은 있지만, 이론서는 너무 딱딱하다 느끼는 사람
광고를 어렵지 않게, 인문학으로 재미있게 접해보고 싶은 사람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얻고 싶은 크리에이터, 기획자, 디자이너들도 좋겠다.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추천!
키워드 'B급 감성 + 인문학적 통찰 + 문화 읽기'
《카피책》 – 정철
B급 감성의 정수는 결국 '말맛'이 아닐까? 카피라이터이자 광고인 정철의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언어의 힘을 다루고 있다.
《광고 천재 이제석》 – 이제석
비주류 광고인으로서 B급 정서와 사회 비판을 광고로 구현한 인물로 그의 작업과 사고방식은 이 책과 통하였으니!
《한 우물에서 한눈팔기》 – 창의융합 콘서트 콘텐츠
철학·공학·마케팅·민속학 전문가 13인의 융합 강연을 바탕으로, 분야 간 경계를 넘나드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총평을 해본다면!
처음엔 저자 본인이 하도 B급이라 해서 가볍게 읽으려 했는데, 'B급' 감성과 코드로 예술을 읽고, 그 속에 담긴 인간 심리, 문화, 시대의 흐름까지 광고와 연결 지어 흥미롭게 파고드는 책이다.
읽다 보니 진심으로 몰입된다. 게다가 읽는 순서에 상관없다더니, 시작하니까 결국 끝장을 보게 만든다. 한숨에 다 읽었다. 이런 책, 흔치 않다.
한줄평은 "B급은 무슨, 완전 A급이다!"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