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어 원더풀 월드
정진영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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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춰 바람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을 표현할 방법이 소설밖에 없다고 깨달았다는 저자의 말이 이렇게 멋지게 들릴 일인지.


상상력이 기발하다. 감히 로또 번호 6개를 일렬로 죽 긋는다거나 또 그런 희귀 로또를 맞은 직원이 튄다는 설정도 재밌고, 게다가 줬다 뺏으려 혈안이 된 빌런 사장의 성화에 상익, 재유, 희철, 정연이 추노가 된 듯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 중인 희주를 쫓는 일도 흥미롭다.


여산정공에 갇힌 서로 닮은 듯 닮지 않은 궁색한 인생들이 펼치는 로드무비로 희주를 쫓는 추격전에서 회사에 궁둥이 붙이고 있는 각자의 사연을 뜻하지 않게 밝혀지는 모습에서 어찌 보면 지질한 궁상의 모습이 우리 모습임 깨닫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각자 간직하던 꿈으로 빛나는 인생이기도 했던 순간들을 반추하는 인물들이 그렇게 밉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이 돌아가며 반복하는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라는 말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냥 하던 거나 계속해야지 뭘 어쩌겠냐는 의미보다는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고 말겠다는 새로운 다짐이자 각오일지도 모르겠다.


109쪽


읽으면서 MBTI 극 J인 성향의 내가 보기엔 인생은 J가 아닌 P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즐거움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가끔은 즉흥적인 게 계획처럼 될 때가 있어서 사는 맛이 있기도 하지 않을까.


"꿈을 향해 달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있었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며 앞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던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과연 무엇일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역 앞에 남겨 두고 나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149쪽


몸이 불편한 나로서는 자전거 종주는 엄둘 낼 수 없지만, 상익이 달린 그 길을 동행하듯 풍경이나 풍요로운 먹거리를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마도 오늘 밤엔 꿈자리에선 고라니와 멧돼지가 뛰놀 듯하다.


"'우회'라는 단어는 희한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198쪽


나는 살면서 무언가에 가로 막혔을 때 저 단어 앞에서 자존심이 건드려진 적이 있었을까. 늘 편하고 대충 살아 온 인생이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어마 무시한 자극제가 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심준호는 왜 이럴까? 싶거나 희주는 과연 로또가 터진 것일까? 처럼 추리를 하며 읽게 돼서 반전의 묘미도 있어서 더 후딱 읽게 된다. 손에 안 들었다면 몰라도 들었다면 중간에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추가 메뉴처럼 등장하는 삶에 대한 메시지도 빼놓을 수 없다.


191쪽 

228쪽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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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어 원더풀 월드
정진영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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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안 들었다면 몰라도 들었다면 중간에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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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미술관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박민경 지음 / 그래도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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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인권 혹은 인권으로 보는 미술은 어떨까 궁금했다. 법학과 정치학을 차례로 공부한 저자 박미경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5년 근무 중이며, 인권을 주제로 라디오와 여러 매체에서 진행자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브런치북 <재미난 인문으로 보는 인권!>을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밝힌다.


어린 시절 방에 걸린 달력 속 명화들을 보며 상상하던 그림들을 직접 마주하자 소름 돋고 깊은 사유를 이끌어냈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그리고 명화 속 인권 이야기는 시대의 부조리였고 그리하여 우리의 인권은 한 단계 진보한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여성, 노동, 차별과 혐오, 국가, 존엄의 5개의 주제로 인권의 주요 개념을 풀어낸다. 인권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 그래서 이 책이 남다르다.


49쪽,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


성냥팔이 소녀의 결말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참혹한 아동 학대가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림 한 장에서 시대 상황과 나아가 어떤 인권 침해가 숨어 있고 화가의 속내를 들춰보는 해설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는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겠다.


얼마간 깨달음 비슷한 걸 느낀 "혐오와 차별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다."라는 저자의 말이 격하게 공감이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혐오와 차별들은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떤 결속을 다지려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계기가 된다. 어쩌면 국가의 결속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의 결속을 와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위험에 처하면 누군가 도와 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누가 나를 위험에 빠트릴 것을 두려워 해야 하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신뢰가 깨져 버린 사회'라는 유명 심리학자의 평가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 상식이 없어진 정치도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도 없고.


194쪽, 아름답고 찬란한 역사만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200쪽, 국가가 구조해야 할 의무에 대하여


스페인 내전, 게르니카 만행에서 황해도 신천 양민 학살로 이어지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아무리 참혹한 역사라도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또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5·18민주 항쟁, 4·16세월호 사건, 10·29이태원 사건 그리고 여전히 사과받지 못하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제 침략이 어떻게 인권을 침해했는가를 더 선명하게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어렵게만 여겨지는 인권을 가깝고 쉽게 느낄 수 있다. 눈에 띄는 전 세계의 사건을 미술이라는 예술적 부분에 머무르지 않고 감춰진 시대의 잔혹사를 들춰내 사유하게 만든다.


258, 262,264쪽, 존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특히 세계인권선언 조항과 헌법의 조항을 연결 짓는 설명과 <궁금해요> 코너를 통해 추가적인 법 조항이나 관련 상식을 꼼꼼히 챙겨 주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개인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우리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림 속 뒤에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보는 눈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인권을 알고 싶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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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미술관 - 당신의 기본 권리를 짚어주는 서른 번의 인권 교양 수업,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
박민경 지음 / 그래도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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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어렵게만�여겨지는�인권을�가깝고�쉽게�느낄�수�있다.�눈에�띄는�전 세계의�사건을�미술이라는�예술적�부분에 머무르지�않고�감춰진�시대의�잔혹사를�들춰내�사유하게�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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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대화 공부 - 서로의 차이를 넘어 품위 있게 공존하는
켄지 요시노.데이비드 글래스고 지음, 황가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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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를 읽다가 뭐지? 했다.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 가볍게 생각했던 의식의 흐름이 갑자기 느려졌다. '멜처 다양성, 포용성, 소속감 연구 센터의 디렉터'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저자 켄지 요시노와 데이비드 그래스고는 뉴욕대 법학대학원 교수와 겸임교수다.


저자들이 연구센터에서 겪은 일을 논픽션으로 풀어냈고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는 대화법'이 담았다니 특히나 대한민국의 민낯인 차이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시점에 다름으로 존재하는 1인으로 기대감이 잔뜩 들었다.


"편견은 아주 사소한 상호작용에서부터 끝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법이 전부 다루지 못한다" 9쪽, 난감한 대화


저자가 표현한 문장을 보는 순간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법치국가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너무 많은 현실에서 '우린 그래서 다양성에 대한 사회정의를 말해야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다.


저자들은 7가지 원칙을 통해 정체성에 관한 대화의 질을 높이는 규칙을 설명한다. 대화에서 빠질 수 있는 4가지 함정, 탄력성, 호기심, 부동의, 사과, 실천, 관용이 그 원칙으로 풀어낸다.


회피에 관한 이런저런 설명들 가운데 울컥할만큼 공감되는 내용이 있다. 장애와 관련된 포용적이라는 표현이 '다름'을 '같음'으로 해석되길 바라는 표현이 많은데 나는 다름을 그냥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늘 있었다.


걷는다는 의미로 도보와 휠체어로 하는 이동은 같지 않은가라는 식이 과연 비장애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데 저자가 장애 인권운동가 칼리 핀들리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정의하는데 속이 시원했다.


"당신이 '나에게는 당신의 장애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면서 장애인에게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다름으로 다뤄질 때 무례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정체성이 아예 안 보이는 척하는 것은 과잉 교정이라 못박는다.


69쪽, 탄력성을 길러라


저자는 또 '특권'에 대해 지적하면서, "정체성, 다양성, 정의에 관한 대화는 격렬한 감정 반응을 불러일이킨다."라고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그런가? 생각한다.


물론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거나 들어누워 도로롤 점거 할 때는 그렇지만 보통의 시민들은 토론에서는 격렬보다는 자기연민식 반응이 더 활발하게 작동되는 게 현실이 아닐까. 비장애인은 쓰레기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장애인은 커버링에 급급해 자기 생각이나 소신보다는 자기 감정을 최대한 억누를 게 뻔하다.


그래서 고착형 보다는 성장형 사고 방식을 키우고, 자기 체면을 통해 자기 가치를 높이는 연습하고, 상대방의 말이나 의미를 부풀리지 말고 '특권', '편견', '세대차이'에 대한 오해를 하지 말고, 나아가 공포, 분노, 좌절, 죄책감같은 불편한 감정은 이름붙이기로 환기하라고 조언한다. 애니메이션 <인 사이드 아웃>처럼 말이다.


227쪽, ‘어떤 종류’의 도움을 원하는지 고려해라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선의의 배려나 도움들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자가 백금률을 지키라고 지적하는 내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 어딜가도 혐오를 느낄 수 있는 사회에서 이 책은 정말 소중하다. 아까워 야금 야금 꾹꼭 씹으며 천천히 읽게 된다. 종교, 정치, 이념, 이슈 등 나 이외의 다른 생각들과 부딪치지 않고 지혜롭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과 다른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필독서다. 강추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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