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쇼펜하우어가 아니다 - 천재도 부자도 아닌 청춘에게 고독은 선택지가 아니다
Flat 4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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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니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한국에는 저자의 지적처럼 얼마 전부터 쇼펜하우어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십여 년을 넘는 동안 '헬조선'이나 'N포 세대'처럼 가열하게 살아도 버티기 힘든 청춘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여서 조금은 네 멋대로 살아 보렴이라고 응원하는 것 같아서 아닐까.


저자 플랫 4는 국내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며 이룬 성취감에 도취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 겪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타인과의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거창한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공감을, 복잡한 이론보다는 일상적인 통찰을 제안한다.




"고독이 고립이 되는 건 한순간임과 동시에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서, 결코 고독을 미화하거나 따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저자의 말이 빠르게 눈에 박혔다. 덧붙여 쇼펜하우어는 천재에다 부자이고 사회성이 아주 많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쿨내 진동하는 막말을 쏟아낼 수 있었다고 저자는 우리와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데 이게 은근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하하하.


그러면서 본론에 앞서 니체 바람이 불더니 이제는 쇼펜하우어의 바람이 부는 열풍이 부는 것이 이유 없이 불지 않았음을 이해하게 된다. 두 철학자의 정반대인 삶의 자세가 아주 간결하게 납득되면서 나는 어느 줄에 서야 할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현재를 담보한 미래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얼핏 염세주의로 비쳐 보일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열풍처럼 불어닥쳤는데, 저자는 그 이유로 150년 전 '삶은 원래 고통'이라는 철학자의 독설이 주는 카타르시스에서 찾는다. 삶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고, 사는 건 원래 그런 거라서 네 잘못이 아니라는 태도는 실패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에게 역설적으로 위로를 주는데 이런 고통을 정당화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한다.


읽다 보니 가슴이 뻐근해지는 지점이 있는데, 나 역시 관계의 피로도를 운운하며 꽤 오랫동안 만남을 피했다. 내심 은둔자의 고독을 은근 미화하면서 그랬다. 나는 MBTI가 극 I이고, 사람들을 만나면 기가 빨린다고 포장하면서 위안했다.


저자는 20~30대 느슨한 관계 맺기에 집중하다 보면 40대에는 외로움으로 찾아온다고 지적하는데, 이 시간이 지나면 자발적 고독을 즐기던 20~30대가 비자발적인 고립으로 50대에 쓰나미로 온다고 첨언하고 싶다. 이때는 이미 연락처도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지만 설령 만날 이유가 있어도 만나줄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다. 내 경험상 그렇다.


이런 고립과 관련된 재밌는 사실은 고독한 천재들로 포장된 니체, 바그너, 고흐, 고갱 등이 실상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주변의 지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었으며 단순히 고독한 천재의 신화 정도였다고 폭로한다. 하여 고립은 미화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쇼펜하우어의 고독을 어설프게라도 흉내 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에게 열광할수록 성공과 기회에서 멀어질 뿐이며 가능성을 탐구하며 인생의 방향성을 만들어 갈 20대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뼛속 깊이 공감한다.


이어서 저자는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게으름으로 포장하면 안 된다며, 쇼펜하우어가 욕심을 적당히 내려놓는 게 좋다고 하는 조언은 위험하다고 경계해야 한다면서, 20대의 시간은 허비해야 하는 때가 아니라 치열하고 가열하게 자신을 몰아세워야 하는 때라며 쇼펜하우어와 니체 사이에서 저자는 니체의 손을 번쩍 들어준다.


근데 실은 삶의 태도 그때그때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게 참, 아니러니한 것이 눈을 뜸과 동시에 눈알에 힘을 빡 주고 가열하게 버텨내야 하는 현실을 보자면 쇼펜하우어의 적당함이 필요한데, 또 한편으로 보자면 시간은 유한해서 분명 뭐가 됐든 시기라는 게 존재하니 20~30대에 치열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고 사정없이 무릎 떨리는 40~50대는 치열해지려고 해도 치사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서 니체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


77쪽


"누군가를 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개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느냐' 정도로 평가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비굴해지거나, 비겁해진다는 것과 연결되기 쉽다. 최소한 줏대 없는 사람이 된다." 107쪽


저자는 착한 사람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면서 문제 회피형이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인정욕구가 많은, 그래서 나약함으로 비치는 사람은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는 쪽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상은 직장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렇지 않을까 싶어 좀 먹먹함이 있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고독을 즐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미 고독을 넘어서 고립된 문화로 가는 한국 상황을 저자는 우려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얕은 관계라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의 눈을 통해 한국 사회는 정이 없다는 지적하는데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길을 사정없이 피하려고 하고, 문을 밀고 나가면서 뒷사람을 위해 잠시 잡아주지 않는다는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30쪽


저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라는 말은 '나'와 '너'를 포함한 공동체를 의미하므로 쇼펜하우어의 고독을 즐기는 개인보다는 얕더라도 연대가 중요하다는 조언에는 단체로 나들이를 나온 날에도 한쪽 구석에서 홀로 있는 것이 마음이 편안한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이어진 윤의 간호사 친구의 말, '결혼해서 행복해'가 아니라 '다 버리고 결혼했으니 행복해야 해'라는 말이 한참 먹먹하게 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부정한다기 보다 그의 말을 오해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적당함'이 '포기하기 위한 핑계'는 될 수 없다면서 그저 냉소적인 태도에 현혹되지 말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조언한다.


또한 저자는 잠깐, 이게 정말 정답이야?"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듯한데 전체적인 문체가 가볍고 가독성이 좋아 철학 입문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심리적인 공감과 태도의 변화에 도움이 되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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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죽이기 -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내 인생에서 확실하게 쫓아내는 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김세나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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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부정적 어감의 제목에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자신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무례한 것'이라는 띠지 문구에 일면식도 없는 작가에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저나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관계 심리 전문가로 오랫동안 상담 현장에서 관계 상처와 나르시시즘을 연구해 오면서 나르시시스트와 얽힌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따귀 맞은 영혼>,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를 썼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빠져들기만 하는 '심리적 지옥'에 관한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지만 지독한 열등감과 공허함으로 관계를 망치는 심리를 지적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 그러니까 자기애가 '극강의 이기적인 인간'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현대에서 이 감정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이고, 이는 타인으로부터의 상처를 차단하는 보호장치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그런 자기애로 무장한 무례한 상사나 동료에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문득,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생각났다. 좀 짜릿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저나 저자의 나르시시즘의 정의를 보다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자기애라기보단 오히려 사이코패스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15쪽


한데 나르시시즘을 심리학적을 설명하는 부분의 번역이 방지턱처럼 덜컥거렸다. 뭐, 단어 하나에 집착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겐 '인'과 '자'의 괴리는 엄청 커서 18쪽의 '경계성 성격 장애자'가 아니라 '경계성 성격 장애인'으로 번역했으면 하는 감수성이 아쉽다.


결국 저자는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니라 관계를 무너뜨리는 정서적 폭력임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들과의 심리적 거리 두기,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 등을 조언하는데, 일상 속 교묘하게 타인의 감정에 빨대를 꽂고 자신의 공허를 채우는 그들의 작동 방식을 시원하게 해부한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 직장 상사와 동료 등 은근 가까운 관계에서 작동되는 지배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의 메커니즘이나 왜 그들에게 기가 빨리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직장을 포함한 인간관계에서 자기중심적 감정 발산으로 인한 관계 뒤틀림 주범으로 나르시시즘을 꼽는다.


덧붙여 직장 선후배 또는 동료 사이에서 무수하게 터져 나오는 상식 밖의 감정들을 다루면서, 모욕적이거나 여성 비하 등 어딘가 숨겨진 발작 버튼을 잘 알아두는 것이 이런 인간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는다고 공감되는 사례를 곱씹게 된다.


137쪽



한편, 저자는 이런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건강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자기 확신'에 의한 자의식형, 경탄형, 두려움형, 투쟁형, 거부·고집형, 체념형의 여섯 가지 반응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제일 중요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한다.


"공감은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상대방과 전혀 거리를 두지 못하도록 만들어 함께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공감 능력이 큰 사람은 타인의 감정 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250쪽


즉, 나르시시즘적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결핍을 알아내고, 보완하고 현명한 교류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매우 정교하고 학술적인 이론을 포함한 통찰을 전한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관계의 힘듦을 개인의 예민함이나 자책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애로 포장한 나르시시트들의 병적인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동안 무너진 관계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데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상처 주는 사람을 이해하는 동시에, 더 이상 상처받는 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한 책이다. 관계에서 쪼그라들거나 피로감에 쪄들어 있던 사람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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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눈부시게 홀로 설, 그대에게 - 체스터필드가 전하는 품격 있는 삶의 태도에 관하여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문서연 편역 / 한가한오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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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복잡하게만 느껴질 때 저를 다시 붙잡아 준 것은 대단한 해법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기본에 가까운 아주 단 순한 태도였습니다. 동료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단정한 옷차림, 타인을 배려하는 말투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5쪽


이 책은 체스터 필드의 편지를 읽으며 수많은 공감을 했었다는 편역자가 두 아들에게 삼키기만 했던 말들이었다는 말에 내 아들이 생각났다. 고3이지만 마치 오늘만 사는 초3처럼 게임에만 열중하는 삶의 태도를 추구하는 아들이라서.


게다가 "언젠가 어른들은 사라질 테지만 그들의 지혜는 오래 남을 것"이라는 문장 또한 격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역시 삶은 태도다.


이 책의 원저자 필립 체스터필드는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자신이 경험하며 쌓은 사회적 관계와 인간의 품격, 교양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남겼다. 삶의 정답지를 들이미는 것처럼 "이렇게 살아라" 하며 아들에게 보내는 단순한 훈계가 아닌 현실적인 조언은 오늘날까지 널리 읽힌다.


그리고 원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을 펼치는 편역자 문서연은 고전을 현대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탁월한 감각을 지닌 편집자이자 작가다.




이 책은 약 280여 년 전 쓰인 아들을 향한 부정을 담은 편지를 바탕으로 하지만, 현대 사회의 고민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빠르고 쉽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의 역량은 스펙이 아닌 태도에서 나온다'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인간관계에서 존중과 경청의 중요성,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는 법, 성급한 성공보다 긴 호흡의 품격 있는 삶 그리고 감정과 태도를 다루는 성숙한 자세를 편역자의 친절한 문장으로 격려 받는다.


"공부가 잠시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여행자의 피로처럼 받아들이거라." 38쪽

"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의 차이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거라." 39쪽


75쪽


"읽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가려내고 판단하는 일이다." 140쪽

"이성은 비록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가 가진 안내자 중에 가장 신뢰할 만한 나침반이다." 488쪽


이 책은 어쩌면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마음이 소란할 때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 될지도. 읽을 때마다 그 울림이 다르다.


만약 지금 인생의 과도기에서 방황하거나,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든든한 위로가 될지 모른다. 뭐 사회 초년생이라면 조력자일 수도 있어서 성공의 의미를 새기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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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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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확실한 내 편이라고 믿은 품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경험이 있다." 32쪽


아직은 고작 <매끈하게 움푹한 곳>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 어느 책보다 감각적이라는 느낌이 좀 들어 설렌다. 벌거벗은 모에카가 누아르에 감겨 있는 모습이 아니라 사랑을 고민하고 검열하는 마음이 그랬다.


분명 '누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거기다 확실하게 믿는 사람에게 미끄러져 떨어지는 일이…. 나는 아버지였으려나. 대형 병원 구석진 한쪽, 어두컴컴한 복도 끝에 비교적 다른 창보다 큼지막한 창으로 어둠이 빛처럼 쏟아지는 새벽, 아버지는 이제 그만 치료를 포기하자고 했었다. 아마 조금 눈물이 났던가.


일본 치바현 출신으로, 2010년 <꽃에 눈멀다>로 R-18 문학상을 수상한 아야세 마루는 소설가로 꾸준히 주목받으며, 2016년 <이윽고 바다에 닿다>로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 2017년 <치자나무>가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작, 국제 문예지 <그란타>가 차세대 일본 문학의 주목할 작가로 알려졌다.





장례와 신발과 망자와 축하 케이크로 연결되는 이 조금은 기괴한 연결이 이상하게 감각을 자극하며, <230밀리미터의 축복>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문득 아마미 루루코처럼 '어딘지 연약해 보이고 행복이 흐릿한'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라고 생각했다.


덩달아 학창 시절의 기억을 더듬거려도 도무지 찾아낼 수 없는 얼굴이라서 신기루 같았다. 그나저나 아내 메이코에게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다가 결국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면 인간은 오히려 웃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 역시 예사롭지 않고.



78쪽

191쪽


이 책은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의 극적인 사건을 다루지는 않는다. 오랜 연인 사이에 생겨난 거리감,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선가 변질되고 있다는 예감 같은 그런 내밀하고 미묘한 균열을 감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기억의 달팽이라든가 손가락에 반한 다거나 하는 판타지 같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에서도 꽤 많은 내용과 부분이 감각적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조금 달떴다.


이 책은 사랑, 불안, 집착, 갈망, 이별의 기척, 관계의 흔들림을 통해 이 책은 분명 읽으면 읽을수록 끝을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감각적이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로 책장을 덮는 순간엔 곁에 있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그런 책이다. 재밌는 건, <매그놀리아 남편>의 이쿠토 이야기는 왠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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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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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인다는 것은 알고 싶어진다는 뜻이고 알고 싶다는 것은 좋아하게 될 확률이 큰마음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신경 쓰이게 됐다는 것은 좋아한다의 입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복잡한 사랑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쉬운 글로 정리하다니요." 15쪽


리빙하우스의 카피를 감탄에 마지않는 저자 오하림은 TBWA, 무신사, 29CM의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며, '내가 광고 회사 힘들다 그랬잖아', '도보마포', '일본광고' 계정을 만들고 운영하는 기획자다.


이 책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모아두고 싶고, 모아놓고 보면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그가 모은 9,000개의 광고 카피 중 68개의 카피를 추렸다.




JR큐슈 철도의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처럼 어느 것 하나 마음 흔들지 않은 게 없어 그대로 카피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89쪽


이 책은 일본 광고에 쓰인 인상적인 카피들을 모아, 그 문장에 저자의 기억과 맥락을 조미료처럼 뿌렸다. 그저 단순한 번역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대의 정서와 소비자의 감각이 저자의 절제된 감정을 통해 읽는 순간 공감하게 된다. 마치 한 줄의 예술을 넘어 마법 같은 느낌을 주는 카피의 세계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달까.


114쪽


그리고 이런 기막히고 코 막히는 카피도 그렇지만 '추신으로 쓸 말을 아껴 둔다'라는 둥 여기저기 첨가되는 저자의 감성 한 스푼은 기어코 온몸 감각 세포가 팡팡 터트리고 만다.


142쪽

168쪽

198쪽

292쪽


온기가 스민 편지를 쓰고 싶었던 일본우정그룹이나 적당한 애정을 과도하게 느끼게 된 힐데모어라든지 잠든 연애 세포를 깨우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도쿄 스카이트리나 게다가 당장이라도 코트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슬램덩크의 지고 싶지 않은 마음처럼 시공간을 넘어 잃어버리고 살았던 감정 폭발을 경험한다.


"언젠가는 회사라는 납작한 일반 명사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동사로 저를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31쪽


납작한 일반 명사, 살아 움직이는 동사 같은 기막힌 표현에 어딘가 깊은 곳이 꿈틀댔다. 별 이야기 아닐 수 있지만 소개할 납작한 회사도 없는 백수라서 더 그랬을지도.


"과거를 좇는 일이나 스스로에게 쓴소리하는 것을 낭만으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때로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성장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머물러 있는 감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다만 저는 여전히 나의 결핍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족함이 있다는 건, 여전히 더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의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사람은 결핍조차 그렇기 때문에 결핍을 느끼는 순간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270쪽


위스키 바, 카미야의 이야기에서 괜히 울컥했다. 나는, 무언가를 끝까지 사랑했던 기억은 없지만 저자에겐 카피가 그러했음이 오롯이 전해져서 그랬다. 카피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이 책은 '잘 쓴 문장'으로 억지로 설득한다기보다 '덜어 냄'의 공감이 돋보이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본질을 꿰뚫는 한 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감각의 아카이브 같아서 카피라이터나 기획자뿐 아니라, 문장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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