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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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카고 예술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창작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에세이와 소설을 발표해 온 주목 받는 작가가 어린 시절과 정신 병동에 3년간 입원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회고록이자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고백한다.


"정신 병동은 정신질환을 치료도 하지만 생산하기도 하는 시스템"이라는 성찰과 동시에 독서와 글쓰기는 병원 밖 삶으로 회귀하는 여정일 수 있다고 말이 인상적이다. <뉴욕 타임즈>, <뉴요커> 등 주요 매체의 호평 속에 동시대 중요한 여성 문학으로 자리매김한 책이라고 한다. 그럴만하다.


특히 이 책은 자신의 정신 병동 장기 입원과 그로 인한 낙인의 기억을 문학 작품 읽기 경험에 깊이 겹쳐내며 써 내려간, 회고록과 문학비평을 아우르는 눈부신 에세이로 평가받는다.




공교롭게 정신질환과 관련된 책을 연이어 읽게 됐고, 지금 쓰고 있는 브런치 연재의 에피소드도 정신 질환 이야기라서 왠지 요즘 내 정신 상태가 이와 비슷하게 멜랑꼴리해서 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 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엄마의 삶을 대신 살아온 듯한 오리나가 '자신에게도 아침이 오겠냐'라고 묻자 효신(이정은 분)은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냐'라며 맞을 준비가 되었다면 아침은 꼭 온다고 했다. 문득 이 장면을 더듬게 된다. 그때 나는 효신의 말을 들으며 그랬다, 그럼 그곳에선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구나, 밤만 있는 사람도 있겠구나 했었는데 저자의 글에서 확인하는 기분이다.


"사람은 외로움으로, 아무와도 얘기하지 않고 여러 날, 여러 주를 보내는 것으로도 이상해해질 수 있다." 19쪽


주목할 것이 아무와도 여러 날, 여러 주를 얘기하거나 만나거나 하지 않아서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그렇게 된다고 한다. 근데 그게 정말 그래서 사람은 어차피 외롭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이미 기억도 희미해진 이십 년 전에 작가가 겪고 느꼈던 일들의 회고록이라지만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빠져들었다. 느낌 상 1인칭 소설 같았달까? 단지 내 귀에는 뛰어내리든 뛰어들든 뭐든 결정을 내리라고 '지금'이라는 재촉해대는 말이 들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위안 삼으면서 읽게 된다.


또, 정신병원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스며들어 자신이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치료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의미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돌봄이 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런 작가의 경험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그게 병원에 들어 '갔던지' 혹은 '있던지' 아니면 나와서 다시 들어가야 하는지 같은, 정신병원이 중심이라는 게 문학적이 될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아무튼 정신 병동에서의 삶이 그에게는 생존의 연장 선상이라기 보다 머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42쪽


"당시 병동에는 매일 아무 맛도 첨가 안 된 뻥튀기 한 봉지만 먹고 다른 건 아무것도 먹지 않던 여자 간호사가 한 명 있었지만, 그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미친 게 아니었다. 내 의료 차트에 나의 식습관을 '기괴하다'라고 적었던 사람이 이 간호사다." 43쪽


과연 우리는 미쳤다는 걸 알기나 하나? '미친 여자'로 낙인찍는 사회 관습이 아닌 그의 말대로 나는 병원에 '살았던'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것이라면 그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문득 궁금했다.


109쪽


한참을 더 읽다가 맞닥뜨린 히스테리라는 단어에 큭 했다. 앞에서 읽었던 '돌아다니는 자궁'이라는 의미가 달려왔다. 히스테리가 여성만 걸리는 정신병이었다는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버렸다.


180쪽


"나는 X를 느껴요. 혹은 Y를 느껴요,라고 말하는 일에 진저리가 났다." 302쪽


작가가 '미쳤다'는 프레임에 갇혀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고 밝히면서 이 말도 안 되는 사회 제도적 관점에서 '고통스러운 내면'의 탐색을 통해 문학으로 펼쳐낸 점이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터운 작가의 경험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깊은 위로와 공감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와 전문적이거나 철학적인 문체는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관심에 따라서는 좀 딱딱하게 느껴져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정신적 고통과 치유에 관심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푹 빠질만한, 의미 있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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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지만 립스틱은 빨갛게 - 12빛깔로 읽는 마음의 지도
김옥기 지음 / 트라이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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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는 마음에 언어이며 변화의 시작'이라는 신념으로 30년간 컬러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퍼스널 이미지 브랜딩(FIB) 대표 김옥기는 일본,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컬러와 심리를 공부하고 국내 컬러 1세대로 통한다.


12컬러 바틀 기반의 컬러 코칭 시스템 < 컬러 인 포스>를 개발, 102개 컬러 감성 카드 특허로 다양한 컬러 프로그램으로 확장시켰다. <감성 컬러 배색 가이드>, <이미지메이킹과 국제 매너>를 공저했다.




책의 표지가 강렬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색 이야기라니 표지가 달리 보였다. 개인적으로 컬러에 관심이 많은데, 그건 오래전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일하면서 봤던 컬러의 마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화를 스캔을 뜨고 채색을 하면서 선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낮과 밤 또 새벽의 시공간이 달라질 때마다 같은 캐릭터들은 색이 변주될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 된다. 그때는 현장에선 그렇게 컬러의 마법을 담당하는 파트를 '색지정'이라고 했다.


캐릭터나 스토리가 밋밋한 작품이 컬러가 덧칠해지면 전혀 다른 작품이 되는 마법을 '색지정의 승리'라고 할 정도로 컬러는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은 무조건 읽어야 했다. 12가지 컬러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12기지 빛깔을 만들어내게 하겠다는 저자의 당찬 포부가 희망차게 다가왔다. 제목은 울고 있지만, 여전히 나답게 서고 싶은 마음이란 뜻일까.


목차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12개의 컬러 그리고 덧붙여진 심리 중 딱 하나만 고르라면 개인적으로는 단연 마젠타다. 한데 이기심의 감옥이라니. 평소 엄마가 나무라듯 하신 '저만 안다'라는 말이 쩌렁 울린 느낌이 들었다. 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레드는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컬러, 쓰러져도 일어서는 걸러, 오늘도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는 파워의 컬러다." 22쪽, 레드


레드, 그 컬러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나 넘치는 에너지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았고 주로 이끌며 중심이 되곤 했다.  스물한 살, 목이 부러지면서 그 컬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순간, 필요한 것은 비난도 논리도 아닌 새로운 '연결'입니다." 199쪽, 터콰이즈


'빨주노초파남보'로 퉁치던 어릴 때의 컬러는 무지개 면 충분했다. 한데 책을 읽으며 색이 더해지자 나타난 '터콰이즈'는 생소했다. 그린 같기도 블루 같기도 한 이 색에 마음이 끌리자 요즘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이 책은 단순한 색채 해석서가 아니라, 12가지 색으로 감정을 이해하는 마음의 지도에 가깝다. 각 장마다 제시되는 색의 상징은 향기, 보석, 명상 같은 감각으로 연결하면서 단순히 보는 것에서 삶에 스미는 감각으로 확장한다. 컬러와 연관된 저자의 이야기와 컬러에 녹아있는 감정을 풀어주면서 심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싶다.


덧붙여 과도하거나 모자란 부분을 보색 컬러로 보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모르고 입고 고르던 물건의 컬러가 어떤 식으로든 내 감정 상태와 연결된 것이라는 게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색을 보는 눈이 달라진달까?






그리고 각각의 컬러 해설과 셀프 코칭 질문은 그날의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어 아주 유용하고, 마지막 표지 속지에 책 내용을 기반으로 개발한 감성 스타일 진단, 컬러 사운드 테라피, 컬러 코칭과 힐링 알람을 QR코드로 알아볼 수 있다. 자신만의 컬러를 확인하고 추천 인테리어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살짝 감정의 균형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자신을 위로하는 색 하나를 찾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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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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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순간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대전의 빵집, 북두신권,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 같은. 어쨌든 재밌는 생각이 터져 좋았다. 작가의 필모도 흥미롭다. 2020년 <숲이 부른다>로 공포소설 대상으로 등단한 후 2024년엔 <고양이 서점 북두당>으로 판타지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쓰기만 하면 대상이니 이 또한 판타지 아닌가?




인간이 지어 준 진짜 이름인 진명을 바랐지만 여덟 번의 생을 살아오는 동안 이름을 갖지 못한 고양이 쿠로는 그중 세 번째 만났던 인간 나쓰메 소세키조차 이름을 주지 않고 떠나자 스스로 긴노스케라 이름을 붙였다.


고양이가 실제 아홉 번의 생을 그것도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이어 간다는 서사가 판타지 자체인 데다 작가와 연을 이었던 고양이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북두당 서점에 모인다는 이야기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자칭 긴노스케는 결국 예민하고 염세주의자였던 긴노스케에게 물들어 여덟 번의 생을 이어오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종족인 고양이가 보이는 선의를 믿지 않는다.  '재수 없게 불행을 마주했다면 그냥 체념하고 몸을 맡기'라니 인간 긴노스케의 영향력이 대한 하긴 했나 보다.


근데 읽다 보니 긴노스케처럼 시크한 고양이의 본성은 아홉 번의 생을 통해 반복되는 관계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고양이가 달리 보였다.


"어차피 언젠가는 누구든 혼자가 된다. 기대는 곧 의존이 되고, 의존은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 믿는 순간 상처받는다." 23쪽


의존이 어떤 의미에서 패배의 결과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뭐, 대략의 의미는 공감되긴 해서 문장을 보면서 인간이 일방적으로 만들어내는 관계에선 역시 진심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생각한다.


한편 젊은 청년들을 스스로 죽음으로 내던지게 만들었던 전쟁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은 것으로 미화하거나 일본인들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표현이 은근하게 깔려 있어 심기가 좀 불편했다. 아이들을 내세워 자신들이 피해자라던 지브리의 <반딧불의 묘>처럼. 하지만 어쨌든 고양이의 시점으로 인간 군상에 대한 표현이니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전쟁 이후 경제성장기를 바라보는 인간 군상은 우리가 겪어온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꾹꾹 눌러가며 읽게 된다. 참혹한 전쟁 이후인지 아니면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건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것들을 곱씹게 된다. 일본 작가의 비판적 글에서 그들 나라의 잘못을 곱씹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183쪽


"서점 주인이 낙심해 있으니 우리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단지 그 정도의 이유였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도 그 정도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216쪽


두 다리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고 앞발톱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도서 재고 정리를 하던 루루의 죽음에 마녀가 침울해 하는 것을 지켜보는 전생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 기타호시의 울적한 표현이 와닿았다. 누군가 위로가 필요한 줄 알지만 선뜻 그러기 어려울 때, 해줄 게 없어서 마음만 동동 거릴 때의 기분이 공감됐다.


얼마나 멋진가! 자신의 신년을 지키기 위해 신 따위에게 맞선 고양이라니.


"고작 그거냐. 할 말 다 했으면, 어서 꺼져라. 그리고 하나 더…. 내 이름은 긴노스케다. 헷갈리지 마라, 신 따위가." 368쪽


이 책은 네 마리의 고양이와 인간 북두당 서점 마녀 기타호시, 초등학생 마도카의 이야기가 너무 생동감 있게 펼쳐져서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몰입했다. 북두당에 갇혀버린 기타호시의 저주와 작가와 전생을 살았던 고양이들의 이야기라니 정말 판타스틱했다. 그것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의 주인이 쿠로, 아니 긴노스케였다니!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사랑하진 않지만 책은 사랑해서 선뜻 읽게 된 책인데 판타지에 빠져 읽다 보니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생긴 듯도 하다. 고양이와 책과 판타지를 사랑한다면 강추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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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븐을 켤게요 - 빵과 베이킹, 그리고 을지로 이야기
문현준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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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6년 전에 홈베이킹을 시작하고 3년 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베이킹을 하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을지로에 <문토>라는 베이킹 공방을 열었다. '저 사람처럼 누구나 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주는 '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내가 부러운 건, 뭐가 됐든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럴싸해 보일 정도의 손재주를 가졌다는 거다. 무역 일을 하다 빵을 만든다니 내겐 놀라운 능력자다.


나는 다치기 전에도 전구 하나 가는데도 손이 가는 사람이었고 다치고 난 후에는 손이 자유롭지 못해 더 그렇다. 작가가 원래 베이킹을 꿈꾸던 사람 같지는 않고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책까지 펴낼 정도니 더 더 더 부러울 수밖에.


한데 작가의 '글의 시작'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생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어째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 철봉이나 우주의 팽창 그리고 멀어져 간 친구의 생각 같은 것들일까 싶어서. 이딴 게 그에게 어떤 파장을 주어서 그걸 없애자고 몰입도 높은 베이킹을 한다는 것인지…. 아무튼 그가 무섭다니 무서움이겠거니 했다. 여기선 베이킹이 중요한 거니까.


딱히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그의 공방은 빵뿐이 아니라 사람과 을지로의 맛도 담겨있어 재밌다. 신기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빵 만드는 건 어렵지만 그중에 소금빵이 조금 더 그렇고 특히나 개인의 손동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니 신기하다. 게다가 반죽은 한 번 시작하는 빠꾸가 없다는 게 왠지 더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앞으로 소금빵 먹을 때마다 작가를, <문토>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표현은 디테일하진 않지만 섬세하다. 작가의 설명을 볼 때면 그 오븐의 온도처럼 차츰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사람들과 만들고 나누어 먹는 공간에 슬쩍 껴있는 느낌도 들고.


그나저나 내가 먹어본 에그타르트는 그닥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 보면 한국식이었나? 그럼 포르투갈식을 맛보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나?


베이킹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베이킹 자체의 까다로움이나 재료 수급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들. 그냥 먹기엔 노발대발할 수준의 크기가 되레 베이킹에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도 알았다. 역시나 세상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33쪽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진짜 미안한 일이 되니 신중해야 한다." 106쪽


망해버린 베이킹 클래스에서 노심초사하는 작가에게 운영진 여성이 해줬다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T라서 그런지 몰라도 작가가 애를 쓰긴 했지만 공유 주방에 대한 준비가 서툴러 망한 건 망한 거다. 그러니까 비용까지 지불하고 부푼 마음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고 을지로에 공방을 왜 열었는지 아냐고 묻길래 알려줄 줄 알았다. 그쪽에서 쭈욱 살았나? 그게 아니라면 왜 굳이 사람 많고 복잡한 을지로일까 궁금했는데 궁금함으로 남았다. 개취이긴 하지만 엔틱과 레트로 가게가 많아서? 베이킹 공방인데 엔틱이 중요해? 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조금 웃었다.


138쪽

175쪽


작가의 공방에서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베이킹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자꾸자꾸 만들어 보고 싶을 만큼 자신감을 주려 애쓰는 공방에서 만들어낸 베이킹이라면 맛이 없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의 중간중간 앙꼬처럼 들어 간 사진이 이 책을 더 맛있게 만든다.


책을 보면서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 가득한 베이킹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빵이 고소하게 구워지는 오븐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볼 때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빵으로 맺어진 사람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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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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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에서 배우 박정민은 김금희 작가의 문장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출판사 무제의 대표란 것도, 김금희 작가도 그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보는 책보다 듣는 책이 먼저 발간된다는 색다른 발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작가의 문장과 목소리의 주인공 등 온통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에 주문해 놓고 이런저런 개인사에 묵혀두다 먼저 읽고 뒤이어 들었다.


작가는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산문, 소설, 장편, 중편, 단편, 연작으로 여러 작품과 젊은작가상 대상을 비롯한 아주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나는 <첫 여름, 완주>가 처음이다.


"얼마나 많은 웃음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을까." 책날개 작가 소개 옆에 그의 필체로 된 사인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지 이런 여름에 얼마나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뜨거운 8월에 태어난, 난 여름이 싫다. 땀이 나지 않는 여름은 생명을 위협하니까.


와, 미치겠다. 어린 열매의 이 기멕힌 멘트에 물고 있던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하고 뿜어 내버렸다. 패드 화면에 세계 지도가 흐른다. 제길! 열매에게 쫓아가 귀엽다고 볼따구니를 잡고 늘려 주고 싶을 지경이다.


아, 재밌다. 무조건 재밌다. 아직 사춘기가 오기 전,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던 팔십 세 할아버지에게 열매가 <마스크> 한 편을 통째로 보여 줄(?) 만큼 열의를 보이더니 결국 공채 성우가 되고,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가 결국 종종 나오지 않는 날이 생긴 어느 날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쫙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하게도 그냥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30대가 된 열매에게 돈 빌려 증발해 버린 고수미의 이야기가 무척 안타깝고.


"보령에서 올라와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15쪽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이란 표현에 울컥할 사람이 많겠다, 싶었다. 마치 나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쉰이 한참 넘어가도, 경력을 채울 만큼 채워도 삶은 기어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 아니 당연하면 안 되는 일상이 점점 당연해지는 게 기이해진달까.


'여름 환한 햇살을 배경으로 내리는 빗소리 같은 느낌'이란 지문을 보면서 아, 그런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한다. 후텁지근함이 피부에 내려 붙지만 살짝 시원한 바람기 같은 게 있고 또 그 사이로 따뜻함이 밀려오는 느낌일까?

문득 더위를 먹든 말든 창밖으로 돌아누워 디민 얼굴로 따뜻한 햇살을 정통으로 다 받아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또, 할부지와 실없는 대화에서 '얼른 늙고 싶다'라는 말 할 때 열매의 심정이 읽혀 곤란했다. 젊음이 올매나 좋은지 알면서도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버려 늙었으면 하는 마음이, 세상 어디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랬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것들이 다 헛소리이기를 바랐다.


"그날 밤은 큰 도화지를 척척 접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 접었을 때 손열매는 밤의 교량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고 한 번 더 접자 개구리 소리가 왁왁 나는 개천을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사뿐히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었을 때쯤에는 늘 보는 버스 정류장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목이 아플 때까지 별을 보고 있다가 손열매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 외계인이라면서요'하고 심상하게 물었다." 101쪽


마치 시간이 공간을 접어내듯 공간을 타고 넘는 열매의 얼굴이 그려져 기분이 막 좋아졌다. 완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잘 정돈된 문장 사이로 자꾸 재치 넘치는 문장에 한참을 낄낄 거리게 만든다. 이런 문장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작가도 외계인 아니삼?


당황? 허무? 허구의 세계를 동경하는 창세기 비디오 대여점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완주 매점의 공간의 의미를 알아챘어야 했나? 어쩌면 자작나무 숲속의 어저귀의 공간이었던 공소도?


어저귀 말마따나 삶은 시작과 끝을 어차피 알 수 없으니 동강난 허리통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열매와 수미의 완주는 분명 희망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뭐, 그러고 보면 달리는 버스에서 졸 수 있는 열매의 시작으로 끝이 나는 걸 보면 희망일지도.


어쨌든 인간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가가 고맙고, 각자의 몫을 온전히 완주하길 바라는 박정민 배우의 끝인사도 뭉클했다. 이제 나는 내 몫의 완주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처음에 보는 세상에서 많은 부분 듣는 세상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획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읽고, 듣고 나니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특정한 감각들에 머무르지 않는, 오감이 다 휘몰아치듯 즐거운 독서가 됐다. 듣는 독서의 생생함에 낭독은 쨉이 안 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듣는 책을 볼 수 있다. 꼭 보고 듣고 하시길 추천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 https://www.nld.go.kr/



구매해서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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