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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평점 :

<혼모노> 성해나 작가가 강력 추천했다는 홍보 글은 차치하고 우선 눈을 끈 건 다름 아닌 '덕질'이었다. 나 역시 소위 '조크든요!'로 대변되는 트렌드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유행에 민감한 X세대 아니던가.
동대문 흥인 시장에서 털 안감의 스노우청자켓을 학교에 유행 시키고, 오렌지족과 야타족을 부러워하던 10대 시절의 부활과 들국화를 쫓아 다니던 시절,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일하면서 일본까지 날아가 LD를 사고 피겨와 가샤폰에 매진하던 시간을 떠올리며 생면부지 작가의 '덕질'이 매우 궁금해졌다.
이 책은 제12회 브런치북 종합부문 대상작으로, 필명 편안한 제이드로 활동 중인 저자 김지원이 자신의 인생 궤적에서 30년 넘게 이어져 온 '덕질'을 총 4장으로 나누어 썰을 푼다. 1장은 덕후로 살아가는 기쁨과 고충을, 2장은 아이돌부터 프로게이머 등 다양했던 덕질의 연대기를, 3장은 덕질 비하인드 스토리와 4장에선 덕후로서 터득한 삶의 철학을 단순한 취향을 넘어 자신을 사랑하는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읽다 보니 추천사를 쓴 소설가 성해나의 표현대로 '덖질'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애를 이리저리 타지 않게 잘 익혀내는 과정이랄까. 흠, 덕질의 세계를 잘 모르는, 작가의 구분에 따르자면 머글인 나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혹은 콘텐츠 내지는 물건들을 규칙을 세우면서까지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 좀 당황스럽다고 해야 하나, 의아하다 해야 할까, 아무튼 좀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하는 덕질이 정신건강에 좋을는지. 공공기관에 안 다니면 좀 다르나?라는 생각이랄까.

49쪽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성공한 사람을 동경하고, 실패한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곤 한다. 성공엔 다 이유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실패에도 사유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성공이든 실패든, 그 사람의 능력뿐 아니라 수많은 우연과 다른 환경적 요인에 의해 갈리는 것이다." 141쪽
망돌에 관해 덕후로 겪는 여러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을 자신의 일상의 변화로 끌고 오는 지혜로움도 엿볼 수 있어서 나름 괜찮은 덕질일 수 있겠다 싶다.

152쪽
책을 읽는 동안 추억 여행을 한 기분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에서 8년 넘게 일하면서 하루 종일 애니메이션을 틀어 놓고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스타를 하며 밤을 새우던 기억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작가는 '덕질'을 통해 얻는 다양한 감각들과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 '덕질'의 유무에 상관없이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특히 '덕질'이 현실 도피라는 부정적 인식이 아니라 삶의 활력과 용기를 얻는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이기도 해서 번아웃에 허덕이는 모든 이에게 공감을 선사한다.
'덕질'은 돈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메시지는 아마도 강력하지 않을까 싶다. 그 안에서 망돌의 덕질처럼 웃픈 작가의 덕질 스토리를 보면서 세상은 역시 뭐든 쉬운 일이 없겠지만 이런 덕후 역시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화려한 문장이 치덕치덕 하지 않고 담백하고 통통 튀는 경쾌한 문장에 푹 빠져들게 된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묵직하게 공감되는 문장이 많아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매력 넘치는 책이다. 덕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한 수 배우고 말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