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 모두의 반려질병 보고서
강영아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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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딱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들의 삶은 매 순간이 치열해서 '적당히'란 포장지가 필요하고, 또 그런 치열함이 여전히 진행 중이겠다,라는 것.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감각은 그랬다. 질병을 처덕처덕 붙이고 사는 워킹맘 이야기라서?


아무튼 이런저런 전문직에 몸담았거나 여전히 담고 있는 11명의 워킹맘이 작심하고 자신의 반려질병(생소하고, 어감이 주는 가벼움이 있어 좀 아이러니하지만)을 드러낸다. 온몸에 파스를 붙인 것처럼 처덕처덕 붙이고 살아야 하는 질병을 보고 있자니 우리 모두 사는 게 참 아프다 싶다.


결국 전업주부에 건강한 할머니를 소망하는 삶에 대한 보고서 같아 더 서글프지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쌩쌩한 절은 것들에게는 처방전이, 지금 아픈 세대들에겐 위로가 되는 책이다. 책날개에 '날씬병아리' 작가 소개를 보고 '북한 강변'에서 피아노 치고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인생 2라운드가 무척 궁금했다.


매력적인 표지만 보고 11명 여성의 '잘난' 커리어를 쏟아내는 이야기일 거라는 섣부른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불쑥 '병'이라는 주제에 공감대가 은근 간질거렸다. 질병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진 모르겠으나 장애 역시 삶의 궤적에 늘 함께해야 하는 '반려 불편함'이라서.


29쪽, 몰디브


남성 독자로서 저 먼 우주의 섭리쯤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질염을 처음부터 꺼내든다. 한데 이 질병의 발현을 생생하고 직설적이고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당당함은 꽤나 사이다 같다. 특히 많은 여성이 숨기기 급급할 거라 예상되는 질병을 몰디브 작가는 귀찮은 것쯤으로 치부하면서 "아래가 가려워서"라는 말로 약 처방을 요구한다. 멋지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질병이든 장애든 일상에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숨기지 않고 삶에 받아들이고 외부로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이 완벽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들춰야 한다. 몰디브 작가의 질염처럼.


뜬금없이 '뜨악' 하는 통증으로 시작해 불안과 두려움을 동반하고 나서야 서서히 존재를 드러낸 이정화 작가의 급성 임파선염은 그동안 수많은 신호를 보내도 스스로 돌보지 않았던 반격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무심했다는 질병의 진격 역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짠함이 있었다. 늘 피로와 맞짱을 뜨면서도 이음미 씨는 아내와 엄마, 며느리, 딸의 역할을 척척해내는 동안 반려 질병인 갑상선 기능저하가 롤러코스터를 탔었다.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을 배웠다.


또, 이름도 생소한 삼차신경통의 세상 끔찍한 통증을 이겨내고 제주에서 프로실행러 기질을 뽐내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노마드맘의 이야기도 오래전 3년 정도 제주살이를 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았다. 아, 그의 아픔에는 미안하지만.


112쪽, 날씬병아리


한편, 쟁쟁한 커리어를 쏟아낸 동년배 날씬병아리 작가 앞에서는 어깨가 한참 겸손해졌다.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산 건지. 아무튼 워킹맘의 고단한 일상을 알아줘야 한다고 외치는 그의 이야기는 애초에 궁금했던 이유가 책날개 작가 소개였는데 띄어쓰기의 함정이었다니 한참 웃었다. '북한 강변'이 아니라 '북한강변'이었다.


183쪽, 김지은


암이지만 괜찮아라고 꿋꿋하게, 한 달 살기와 여행으로 전 세계를 돌며 감각들을 넓히는 김지은 작가의 이야기는 아파도 어떻게든 삶은 이어진다는 생각을 갖게 해서 좋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감정과 감각들이 그를 통해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디 그가 완치 판정을 받길 바란다.


이 책은 결국 워킹맘들에게 세상은 더 강하고, 더 많은 노력을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버티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만큼만 애쓰고,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적당한' 삶을 살라고 위로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신이 괜찮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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