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토끼 피터는 채소의 맛에 감격한다. 정말 부드러운 양상추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부드러운 양상추? 살짝 시든 양상추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양상추라는 채소의 싱그러움, 아삭게 씹히는 맛을 형용하는 말로는 신선한이나 아삭아삭한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인간 중심 발상이라는 것을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피터는 물론 야생토끼다. 그에게 인간이 밭에서 재배한 식용 양상추가 얼바나 부드럽게 느껴졌을지. 그리고 그 부드러움은 신선함 그 자체쳤을 것이다.-에쿠니 가오리는 늘, 천천히 바라보고 단어들에 자신이 바라본 것들을 풀어낸다. 거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생각치 못하고 지난 것들을.
1594.05.09 ‘종일 비가 내리다. 홀로 빈 정자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스며들어 심사가 산란하다. 무슨 말로 형언하랴, 가슴이 막막하기 취한 듯, 꿈속인 듯, 멍청이가 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하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왜적과 싸우며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 그 역시 고독과 싸우는 한 인간이자 지켜야할 사람이 많은 집안의 가장이며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처음에는 두 사람이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의 힘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것. 그 구제라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짐 정리하려고 쌓인 책들을 하나둘 정리하는데, 처음엔 이 책을 단숨에 읽고 헌책방 같은 데 팔아 버리려고 했었다. 자기전 침대에 누워 한 장 한 장 넘기다 다 읽었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알랭드보통이나 롤랑 바르트와는 또 다른 사랑에 관한 글이다. 개인이 개인을 사랑하는 것, 그 깊이와 방향, 방법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