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길목에 헌 책방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에 가보니 지금은 철물점으로 바뀌어 버렸던데 헌 책방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웃음부터 난다. 아빠께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로 돈을 받아낼 만큼 대범한 성격은 아니었던지라 정직하게 돈을 받고 헌 책방에서 구입해 얼마를 남긴다던지 또는 다 본 책을 헐값에 넘긴다던지 하는 거래를 헌 책방에서 종종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에게 헌 책방은 가치 있는 것을 구입하는 곳의 의미 보다는 그냥 버리긴 아깝고 이왕 처리할 거라면 뭐라도 남기자! 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중 하나였다. <오래된 새 책>을 읽다 보면 사람에 따라 장소가 가지는 의미가 이렇게도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느낀 것.. 역시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아니 좀 더 솔직한 표현으로 미치면 어느 새 전문가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나라 출판계에서는 절판이 쉽게 되나 보다. 나는 특별히 소장하고 싶은 책이 아니고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거나 (반납 기한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책을 즐기지 못하고 의무로 읽게 된다는 이유로 지은이는 그다지 추천하고 있지 않지만) 지인에게 빌려다 본다. 영화는 독립영화 같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소규모 영화라도 보고 싶은 건 찾아가서 보는 의지를 갖고 있지만 책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취향이라 내가 구하고자 하는 책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절판된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아! 대학 교재나 참고 도서 같은 경우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꼭 읽고 싶었던 책이 절판되어 속상했던 경험을 하게 됐다. 인도 영화 <청원>을 보고난 후, 지인이 비슷한 내용이라며 추천해 준 뱅상 욍베르의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를 알게 되어 여러 곳의 인터넷 서점을 뒤적여봤는데 품절이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런 기분. 꼭 구하고 싶다! 어떻게 구하지? 하는 그런 기분. 다행히 지인분이 선물로 주셔서 내 책이 되었고 다음 단계?! 로 넘어가는 수고를 덜 수 있었는데 절판된 책만 찾아다니는 수집하는 사람들은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웃기기도 했다. 지은이가 소장하고 있는 책 중에 잊지 못할 책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절판된 책 중에 탑 오브 탑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책 등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대부분은 모르고 있던 책들이라 책 속의 책처럼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웃돈을 얹어주면서까지 그 책을 꼭 가져야 하는 것인지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가 수집하고 있는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살짝 내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난 돈이 적게 드는 것을 모아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ㅋㅋ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해 두었던 것이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은이가 소개해 준 책 중에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으로 헌책방 마니아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책이라고도 한다. 바로 신영복 옥중사색 <엽서>다. 왠지 재밌을 것 같은 책.. 두 번째 메모는 마음을 후벼팠던 문장! "책을 읽고 변한 것이 없다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지은이가 고등학생 때 라디오를 듣다가 DJ가 했던 이 말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데..나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메모-! 메모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대체 모비딕이 얼마나 유명하기에 최근에 읽는 거의 모든 책에서 모비딕을 다루는 걸까." 였다. ㅋㅋ 책 모비딕을 알게 된 것은 황정민 주연의 영화 <모비딕>에서 책의 한 구절이 영화 시작에 사용된 것을 통해서였는데.. 그 이후로 다른 책들에서도 다른 내용들로 계속 보게 됐다. 그래서 생각했다. 엄청 유명한 책이구나... 언젠가는 읽어볼 수 있을런지..-_- 뭐든지 새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헌 책의 가치와 발견의 기쁨을 선사해 줄 수 있을 만한 책.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던 책이었다. 뭔가 다른 사람의 사연과 추억도 얹혀져 있는 것 같아 낭만적이기도 하고..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