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걸
하비에르 카스티요 지음, 박설영 옮김 / 반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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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그저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파 속에서 손을 놓치는 순간, 그 짧은 틈. 그러나 <스노우 걸>은 그 찰나를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길게 이어지는 시간을 응시한다. 사라진 것은 아이 한 명이지만, 정작 멈춰버린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이다. 삶은 계속 흘러가야 하는데, 마음은 한 지점에 고정된 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비에르 카스티요는 우리에게 ’이후의 시간‘이라는 가장 잔인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그 시간은 흐르지 않는 강처럼,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안쪽에서는 모든 것을 조금씩 침식시킨다.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상실은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사라진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자리를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 사람을 붙잡는다.

기다림은 처음엔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가능성. 그러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다림은 방향을 잃는다.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흐릿해진 채 그저 버티는 행위로 변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감정은 형태를 바꾼다. 희망은 불안으로, 불안은 공포로. 기다림이란 결국, 끝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는 감정이다. 이때의 기다림은 더 이상 미래를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붙잡은 채 현재를 잠식한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순간을 끝없이 되돌려보는 일. 그래서 기다림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그 무게는 말없이 사람을 짓누른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상태 앞에서 사람은 오래 서성인다.

그 어둠 속으로, 뒤늦게 도착한 하나의 증거가 던져진다. 살아 있다는 가능성,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신호라기보다는, 오히려 끝나지 않는 고통을 다시 불러오는 계기가 된다. 이미 잃어버렸다고 받아들이려 했던 시간을 다시 끌어올리는 순간, 멈췄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붙잡을 수 있을 듯 보이지만 끝내 닿지 않는 거리 앞에서 사람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 이 소설이 그리는 희망은 따뜻하지 않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롭고, 오래도록 사람을 붙잡아 둔다. 테이프가 가져다준 가능성은 출구가 아니라 빠져나올 수 없는 원, 하나의 궤도를 만든다. 벗어나려 할수록,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보이지 않는 반복. 그래서 사람은 안도하지 못한 채, 끝내 닿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오래 머문다. 그 머무름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계속해서 흔들리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일지라도, 한 번 어긋난 감각은 이전의 형태로 쉬이 돌아가지 않는다. 되찾았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사이를 지나온 시간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떤 것들은 다시 손에 쥐어지지만, 그 감촉은 이미 달라져 있다. 그래서 회복이라는 말은 언제나 조금 부족하게 들린다. 되돌아온다는 것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변해버린 상태를 끌어안은 채 현재를 이어가는 일이다. 지워지지 않은 시간은 삶의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이후의 모든 순간에 은근하게 스며들기 마련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다만 다른 형태로 머무른다. 그리고 사람은 그 결을 따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바라보고, 살아간다.

기다림이 공포로 변해가는 동안, 끝내 도착한 진실은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계속해서 기다리고, 끝내 알고자 한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모순이자 동시에 버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노우 걸>은 사건의 결말보다,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서 있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무너진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위에서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존재.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인간은 그 고통을 품은 채 다음 순간으로 건너간다.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아마도 인간은, 무너지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방식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다림은 끝을 향해 흐르지 않는다. 그저 제자리를 맴돌며,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을 뿐이다. 그 시간 속에서 희망은 모양을 바꾸고, 확신은 흔들리며, 결국 남는 것은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순간들에 대한 감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계속해서 기다리고, 끝내 알고자 한다.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 이 이야기는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추천한다. 오래도록 무언가를 기다려본 적 있는 이들, 확실하지 않은 가능성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본 적 있는 이들, 상처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견뎌낸 이들에게. 그리고 사건의 끝이 아니라, 그 안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당신이 지나온 시간과 이 이야기가, 조용히 맞닿아 오래 남기를 바란다.

✏️도서출판 오팬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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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 영원히 기억될 예술가의 사랑과 음악
박은지 지음 / 저녁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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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늘 완성된 얼굴로 우리 앞에 도착한다. 흠결 없이 이어지는 선율, 정제된 리듬, 감정을 다듬어 건네는 한 편의 질서. 그러나 그 음표들 사이에는 끝내 전달되지 못한 말들이, 닿지 못한 마음들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멸의 연인>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을 따라가며 익숙한 선율에 낯선 온기를 덧입힌다. 사티와 쇼팽,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이름만으로도 완결된 세계처럼 보이던 이들의 음악이, 실은 한때의 사랑과 그로 인한 흔들림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들리던 곡들은 더 이상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이 지나간 자리처럼 미묘하게 일그러진 결을 품기 시작한다.

사랑은 언제나 사라진다. 관계는 끝나고, 사람은 떠나며, 감정은 시간 속에서 흐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못한 감정,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른 마음, 혹은 너무 늦게 깨달은 애정 같은 것들. 마치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사라질 시기를 놓쳐버린 채 다른 방식으로 머무른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의 감정은 다른 이름으로 현재를 통과한다. 이 책 속 음악들은 바로 그 겹침의 결과처럼 들린다. 이미 지나간 사랑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 관계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마음이 선율이라는 몸을 빌려 다시 시간을 살아간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자신을 이어간다. 음악은 그 한 가지 방식이다. 그래서 어떤 선율은 처음 듣는 순간조차 낯설지 않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슴에 닿는다.

사랑은 이들을 무너뜨린다. 베를리오즈의 집착은 현실을 잠식하고, 쇼팽의 불안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좀먹으며, 리스트의 열정은 삶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 사티의 사랑은 단 한 번이었기에 더욱 깊은 고요로 침잠한다.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이 있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들. 이들의 음악은 완성의 결과라기보다, 무너짐의 흔적에 가깝다. 질서와 형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생의 격렬함, 그것이 이들의 예술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견딜 수 없었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 형태를 얻는 아이러니. 파괴와 창조는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두 개의 물결처럼 겹쳐진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들. 저자는 그들을 단순한 영감의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각자의 삶과 욕망, 선택을 지닌 채 서로를 스쳐간 인물들로 그린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예술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남겨두는 일이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를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 끝내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 설명할 수 없었던 거리감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 하나의 작품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음악 속에 새겨진 타인의 흔적은 기억이면서 동시에 해석이고, 가까움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간극이다.

이미 끝난 사랑임에도, 여전히 현재를 건드리는 순간이 있다. 오래전의 감정이 아무 예고 없이 되살아나는 경험. 시간은 많은 것을 데려가지만, 모든 것을 데려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감정은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한다. 이 책을 지나고 나면, 익숙하게 들어왔던 선율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음악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견뎌낸 시간과 감정이 함께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남아 있는 자리. 그곳에서 음악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라 살아남은 감정 그 자체가 된다. 앞으로 우리는 같은 곡을 들으면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닫히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 이유 없이 같은 음악을 반복해 듣다가 문득 멈춰 서 본 적 있는 사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오래 머물러 본 사람, 그리고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들은 아마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어떤 시간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나왔다고 믿었던 감정이 낯선 선율 속에서 다시 숨을 쉬고, 잊혔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조용히 떠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주기보다, 이미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던 것을 다시 들려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마치 오래된 음악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도서출판 저녁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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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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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언제나 이야기의 형태를 요구한다. 겪어낸 것은 몸 안에 남아 있지만, 그것이 세계와 닿기 위해서는 결국 말이 필요해진다. 그 필연이 얼마나 잔인한가에 대한 증언, <슬픈 호랑이>. 기억은 단정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고, 시간의 순서를 거부한 채 흩어진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는 파편들 사이에서 말은 자주 비틀리고, 때로는 날것의 상태로 튀어나온다. 다듬어지지 않은 감각들이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질 때, 언어는 설명이 아니라 상처의 연장처럼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멈추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끝내 문장을 밀어 올렸을까.

여기에는 하나의 위태로운 시도가 놓여 있다. 자신을 무너뜨린 존재를 이해하려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를 해석 가능한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낯선 것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순간, 우리는 그 존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어떤 안정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계는 흐려지고, 도덕은 확신을 잃는다. 잔혹한 행위조차 특정한 맥락 속에서 설명되는 순간, 그것은 완전히 낯선 것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때 생겨나는 미묘한 감각-이해하고 있다는 착각과, 동시에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이 서로 충돌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의 이해는 결코 편안한 도착지가 아니다. 이해는 일정 부분의 동의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종종 용서와 혼동되지만, 그 어떤 화해도 약속하지 않는다.

특별한 괴물이 아니라, 일상의 얼굴을 한 존재가 파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인식은 이 이야기 곳곳에 스며 있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이해에 도달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머리로는 따라갈 수 있지만, 감각은 끝내 그 자리에 닿지 못한다. 공감은 가능하지만 동일한 이해에 이르지 못하는 간극. 그 간극은 경험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말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이해는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떤 경험은 언어를 통과하는 순간에도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저자는 타인의 글을 읽으며 자신이 누구보다 그 문장을 깊이 이해한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독해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기억이 언어를 다시 읽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도달할 수 있는 이해에는 언제나 넘을 수 없는 선이 남는다.

그렇다고 침묵을 선택할 수도 없다. 말하지 않는 고통은 너무 쉽게 사라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에서 강하게 다가온다. 언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직접적이어서 독자를 밀어낸다. 감정은 완곡하게 포장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일은 이해라기보다, 일정 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경험에 가까워진다. 언어는 때로 고통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해야만 겨우 남겨진다. 정제되지 않은 감각이 그대로 드러날 때, 문장은 설명을 넘어 전달의 기능을 획득한다. 완전한 재현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어떤 형태로 타인에게 닿는다. 그 지점에서 언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타인의 경험을 가장 가까이까지 데려오는 매개로 작동한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전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혀 닿지 못하는 것과 일부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은 분명 다르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말하는 이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고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을 통과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겹쳐진다.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그러나 끝내 남는 것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자각이다. 그것은 거리에서 비롯된 한계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켜져야 할 경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감은 가능하지만 동일한 자리에 설 수는 없다. 그 사실은 때로 무력하게 다가오지만, 동시에 타인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멈춰 서는 일, 그 자리를 그대로 비워두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타인의 고통 앞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식일 것이다. 불편하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어떤 감각을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무엇을 읽고 싶은가보다,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외면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다가갈 것이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설명이 아닌 사유로 마주하고 싶은 이들, 이해와 공감 사이의 간극을 끝까지 견뎌보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또한 언어가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믿고 싶은 사람, 혹은 그 한계를 의심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문장들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곁에 서 있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곁에 서기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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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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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간다고 믿지만, 어떤 여름은 끝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달력 위의 계절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굳어버린 시간에 가깝다. 한때 함께였다는 사실, 그 함께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순간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지워지지 않는 시간에 대해 말한다. 오래된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그때의 감정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는다. 이미 지나간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순간과 분리되지 않은 채 이어진다. 지나간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아 지금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겹쳐지는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현재를 살면서도 동시에 과거를 통과한다. 어떤 관계는 끝난 뒤에도 끝났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기억한다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있던 순간이 이후의 삶 속에 남아 작용하는 방식에 더 가깝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하나가 선택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고, 때로는 삶의 방향까지 바꾼다. 누군가와 나란히 서 있었던 경험은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되어 이후를 이끈다. 판단의 순간마다 이유 없이 기울어지는 마음, 설명되지 않는 익숙함 같은 것들이 그 흔적이다.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의 결정을 미세하게 수정하며 계속 개입한다. 그래서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로 물러나 있을 뿐,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과거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판단과 감정 속에는 이미 타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겹쳐져 있다. 지금의 ‘나’라는 감각조차, 온전히 현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관계들의 흔적 위에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절에는 관계가 선택이 아닌 조건이 되기도 한다. 버티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던 순간들. 그때의 연결은 감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다정함과 두려움이 같은 자리에 놓이고, 서로를 지탱하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 형태를 만든다.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고, 동시에 그 관계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기대는 순간 의존이 되고, 의존은 다시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묶는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개인의 선택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는 하나의 조건처럼 남는다. 그런 경험을 지나온 사람에게 관계는 단순한 만남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후의 모든 연결이 그 시절을 기준으로 다시 측정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시절의 자신이 그 관계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동시에 그때의 자신을 불러오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기억은 대상 하나만을 남기지 않는다. 그때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을 통과하던 존재까지 함께 끌어올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은 변하지만, 그때의 자신은 그 자리에 머문 채로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시점의 자신이 겹쳐진 상태에 가깝다. 과거의 관계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그 안에 남아 있는 ’그때의 나‘ 때문이다. 잊는다는 것은 결국 그 일부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일과 닮아 있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겨진 시간은 현재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계절이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한때의 관계는 지금의 선택과 감정 속에 조용히 개입한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지만, 그 선택의 방향에는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인간은 단지 누군가를 사랑했던 존재가 아니라, 함께였던 시간을 통과하며 형성된 존재에 가깝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여름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 속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라지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한 존재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특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더 깊게 스며들 것이다. 이미 지나간 관계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 어떤 시절의 자신이 아직도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사람,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맺어졌던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기억과 시간,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이 책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시간 하나를 천천히 우리 앞에 펼쳐 보이며, 지금의 우리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소설로 남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미 지나온 자신의 시간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서출판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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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김멜라 외 지음 / 곳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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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소리 없이 사라진다. 무너지거나, 불타거나, 끊어지는 방식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그저 스며들 듯 사라진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들, 그러나 완전히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남아 있는 것들. 그 빈자리를 마주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붙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은 끝내 멈추지 않는다. 다섯 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시작되지만, 모두 같은 자리로 흘러온다. 사라짐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려는 작고도 완강한 몸짓. 이 책은 거대한 재난을 고발하기보다, 그 재난 속에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남기려는 마음의 형태를 집요하게 더듬는다.

이때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저장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끝났다고 선언된 것들을 다시 불러내는, 일종의 아주 미약한 반항이다. 물속에서 닳아가는 몸이 남기는 편지, 멸종 직전의 존재들이 서로를 이어 붙이며 건너는 시간,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목소리들.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사실을 반복한다. 세계는 쉽게 무너지고, 존재는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어떤 마음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 애씀은 이미 저항의 형태를 띤다. 사라진 것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태도. 비록 그것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넘겨버리지 않겠다는 의지. 기억은 그렇게 결과가 아닌 자세로 남는다.

이러한 몸짓은 언제나 손에서 시작된다. 흙을 파내는 호미, 엽서를 뒤집어 적어 내려가는 느린 동작들, 고통 속에서도 앞으로 기어가기 위해 뻗는 지느러미. 이 저항은 언제나 작고 느리다. 그것들은 멸종을 막지도, 개발을 멈추게 하지도, 떠나는 이를 붙잡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계속된다. 기억하려는 시도는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어떤 선언이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을 그저 두고 보지 않겠다는,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부정. 세상을 향해 외치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를 향해 조용히 버티는 방식에 가까운 것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힘. 한 번의 거대한 행동보다 수없이 반복되는 작은 행위들이 더 질기게 남는다. 다섯 명의 작가는 그 느린 반복을 통해 묻는다. 사라짐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윤리는 왜 이렇게까지 손이 많이 가는 방식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건네지는 모든 말은 어딘가를 향해 있다. 다만 그 ‘어딘가’는 불특정한 세계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한 지점을 향한다.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존재,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리. 도착을 알 수 없는 편지를 쓰고, 닿을지조차 알 수 없는 감각을 건네며, 이미 떠나버린 자리를 향해 말을 남긴다. 도착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보내졌다는 사실이다. 응답을 전제로 하지 않는 말,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 흘려보내는 마음. 이 책이 품고 있는 연결은 단단하게 묶인 끈이 아니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느다란 실에 가깝다. 그 위태로운 선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시간을 접어 보낸다.

발터 벤야민은 한때, 잊힌 것들을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과거를 구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썼다. 이미 사라진 것들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다시 불려 나오는 순간 다른 의미로 살아난다. 기억하는 일은 사라짐에 대한 가장 조용한 저항이 된다. 그것은 거창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때로는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된다. 아무것도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끝내 기억하려는 마음. 그것은 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 작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허물어져 가는 세계 위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외침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집요한 기억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끝내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사라진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닿을 것이다. 지나간 계절의 냄새를 오래 붙들고 있는 이, 떠나간 이름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불러보는 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억을 혼자서 지켜내고 있는 이에게. 또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버려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 거대한 말 대신 작은 몸짓으로 세계와 관계 맺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이야기는 마음 깊이 스며들 것이다. 어쩌면 끝내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혹은 이미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앉히기 위해, 누군가는 이 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읽기의 끝에서, 사라짐 앞에 서는 자신의 태도를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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