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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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비슷한 모습을 떠올린다. 남들과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 평범한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 그래서 천재의 뇌 역시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뇌가 만든 천재들』은 그 막연한 믿음을 실제 예술가들의 뇌와 삶으로 가져간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적 고통과 남다른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천재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묻게 되는 것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뇌를 ‘정상’이라고 부르는가.

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모두 다르다. 감각의 민감도도, 기억하는 방식도, 집중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에게 소리는 색으로 경험되고, 어떤 사람은 특정한 영역의 정보를 놀라울 만큼 오래 기억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차이는 재능보다 먼저 이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평균은 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더 온전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재를 특별한 뇌의 소유자로 보는 관점에는 이 모순이 따라붙는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천재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의 차이는 병리나 결핍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차이를 숭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교정하려 한다. 신경다양성을 천재성의 증거처럼 소비하는 태도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뇌가 특별하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특별한 예술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사이에는 수많은 삶의 경험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그녀의 고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가 겪은 사고와 수술, 반복되는 통증은 분명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지만, 고통이 곧 예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고통받은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위험하다. 상처가 작품을 낳았다는 설명이 반복될수록 그 상처를 가진 사람의 삶은 작품을 위한 재료처럼 취급되기 쉽다.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은 그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을 문학적 천재성의 비밀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질병은 인간의 경험에서 떼어져 하나의 낭만적인 장치가 된다.

예술가의 정신적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은 여성에게서 더욱 복잡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의 삶에는 오래도록 ‘광기’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들의 고통을 병리적인 개인의 문제로 기록하는 동안,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여성에게 무엇이 요구되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그 사람이 놓여 있던 세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광기’라는 이름은 그래서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누군가의 경험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순간 그 기준을 가진 쪽에 해석의 권한이 생긴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살핀 것도 이러한 분류의 역사였다. 한 시대가 정상이라고 정한 범주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치료되거나 격리되거나 기록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천재로 다시 불렸다. 과거의 광인이 오늘날의 천재가 되는 이 역설 앞에서, 천재와 광기를 처음부터 서로 다른 본질로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

더구나 천재라는 이름은 때때로 예술가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칼로의 상처,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울프의 정신적 고통이 작품의 위대함과 한데 묶이면 고통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질병은 누구에게나 잔인한 현실일 뿐이다. 그것이 작품의 가치 때문에 아름다운 경험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예술가를 존중하는 일은 그의 고통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작품과 삶 가운데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구별해서 바라보는 데 있을 것이다.

결국 ‘천재의 뇌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물음은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 더 오래 붙잡게 되는 것은 인간의 뇌를 하나의 기준으로 나누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다. 평균에서 멀어진 감각을 가진 사람에게 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사람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나서야 천재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러주는 일. 그 과정에서 바뀐 것은 그 사람의 뇌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드는 지금은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도 바라보게 한다. 계산하고 기억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만으로 천재성을 설명한다면 인간의 독점적인 영역은 빠르게 줄어든다. 그렇다고 인간의 창작이 단순한 능력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몸으로 세계를 겪고, 어떤 경험은 오래 기억하고 어떤 경험은 잊으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

천재를 특별한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을 능력의 차이로만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인간마다 다른 뇌와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천재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 누군가의 특별함은 정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으로 어떤 세계를 경험했고, 그 경험을 어떤 형태로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천재의 비밀을 특별한 뇌에서 찾으려는 시선은 결국 인간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평균에서 벗어난 감각에는 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뛰어난 성취가 확인된 뒤에는 같은 차이를 천재성이라 부른다. 달라진 것은 그 사람의 뇌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차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언어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차이를 지워왔고, 천재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차이를 지나치게 미화해왔다. 천재와 광기 사이의 선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선의 두께가 아니라, 누가 그어놓은 선인가 하는 데 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가 살아온 세계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을까. 감각의 차이, 기억의 방식, 몸에 남은 고통과 설명하기 어려운 정신의 움직임까지. 《뇌가 만든 천재들》은 천재를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세워두기보다 그 능력이 태어난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경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따라 천재성과 창의성의 본질을 궁금해하는 독자, 프리다 칼로와 도스토옙스키, 버지니아 울프처럼 작품만큼이나 삶의 궤적이 강렬한 예술가들을 다른 각도에서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어울린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광기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을 규정해온 방식에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책의 여러 사례가 한층 복잡한 표정을 보여줄 것이다. 인간의 뇌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사실 앞에서 천재라는 이름도 조금 낯설어진다. 특별한 사람을 찾아내는 책을 기대했다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인간을 특별함과 평범함으로 나누어온 우리의 시선까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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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경험의 이야기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저녁달 편집부 옮김 / 저녁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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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일한 시간만큼의 돈,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경력, 혹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피로 같은 것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일: 경험의 이야기』는 그 뒤편에 남는 것을 바라본다. 스무 살의 크리스티 데번은 제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시작하고, 하녀와 배우, 가정교사와 재봉사, 간호사로 살아간다. 직업은 수없이 바뀌지만 그녀가 얻는 것은 경력의 폭이 아니다. 한 번 겪은 일은 다음 일을 대하는 태도가 되고, 한 사람과의 만남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이 크리스티 안에 조금씩 쌓인다.

크리스티의 직업에는 특별한 상승 곡선이 없다. 어떤 일은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어떤 일은 모욕과 피로를 안긴다.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지만 노동의 대가가 지나치게 적다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도 있다. 올컷은 그 과정을 성공담의 문법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노동의 풍경을 차례로 펼쳐 놓으며, 사람이 일하면서 무엇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매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그 안에서 크리스티는 계급과 가난, 편견과 친절, 타인의 욕망과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

이때 일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의 크리스티에게 노동은 독립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여러 일을 경험할수록 노동은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이 된다.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일터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누군가에게 하인으로 불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모욕이 있고, 가난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으며, 아픈 사람의 곁에서 밤을 지새운 뒤에야 알게 되는 삶의 무게가 있다. 크리스티가 얻는 것은 직업적 능력만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자기 바깥의 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감각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자립은 경제적인 독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만이 자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배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올컷이 그리는 자립은 고립과 거리가 멀다.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삶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태도에 가깝다. 여성에게 허락된 삶의 폭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던 시대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크리스티의 선택은 개인의 독립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선언처럼 읽힌다.

원제의 A Story of Experience는 이 모든 과정을 묶어주는 말이 된다. 경험은 지나간 일들의 합계가 아니다. 한 번 겪은 일이 다음 선택에 영향을 주고, 한때의 상처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감각이 되며, 실패했던 기억이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크리스티에게 경험은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재료다. 하녀였던 시간과 배우였던 시간, 재봉사로 버티던 시간과 간호사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시간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이유다. 각각의 시간은 사라지는 듯하면서도 그녀 안에 남아 다음 삶을 결정하는 힘이 된다. 올컷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거창한 사건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수없이 지나간 날들이 사람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고, 그렇게 달라진 사람이 다시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동은 고되고, 불합리하며, 때로는 인간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삶을 비관으로만 기울게 두지 않는 이유는, 경험에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다음 걸음을 내딛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살아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 안에 축적되어 앞으로의 삶을 지탱하는 근력이 된다.

『일: 경험의 이야기』가 오늘에도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노동의 가치에 있지 않다. 삶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일은 하루를 채우고 지나가지만, 경험은 사람의 다음 하루까지 따라간다. 오늘의 노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은 때로 버겁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모든 시간이 의미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겼던 시간조차 지나고 나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하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크리스티의 삶이 보여주는 것도 그런 변화다. 사람은 살아온 시간을 등에 지고 다음 날로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대단한 성공보다 수없이 반복해온 하루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 경험의 이야기』가 오래된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도, 노동의 의미를 설명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인간을 빚어가는 과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은 하루를 채우고 지나가지만, 그 하루에 무엇을 겪었는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일: 경험의 이야기』는 노동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시선을 임금이나 성공에 오래 묶어두지 않는다. 하녀와 배우, 가정교사와 재봉사, 간호사로 이어지는 크리스티의 시간은 직업의 이력이 되어가는 대신 한 사람의 감각과 태도를 바꾸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꾸려가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크리스티의 모습은 자립과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깊은 읽을거리를 건넨다. 여러 번의 실패와 상실을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좋아한다면 이 오래된 성장소설의 호흡도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노동과 삶을 잠시 다른 시대의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하루를 살아내고 그 경험을 다음 날의 자신에게 건네는 일만큼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으므로.

✏️도서출판 저녁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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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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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던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창밖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치던 계절의 변화가 문득 반갑다. 앞으로 찾아올 24절기가 괜히 궁금해지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기다리게 된다. 책 한 권을 펼쳤다가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이 다음 계절에도 다시 찾고 싶은 장소가 된다. 하루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마음이 머무는 곳은 조금씩 늘어난다.

미우라 시온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마음들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식물과 새, 책과 만화, 여행과 영화, 고양이와 사람.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시선을 더 오래 두게 된다. 작가는 세상을 대단한 의미로 포장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시간을 기꺼이 들려준다. 엉뚱할 만큼 솔직하고, 우스울 만큼 다정하다.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좋아한다’는 말은 취향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세상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곁에 있는 존재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마음. 미우라 시온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얻는 일이다. 식물을 아끼게 되면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새를 바라보게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아진다. 책을 가까이하면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기다리고, 계절에 맞는 풍경을 반기는 일도 결국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새 하루를 붙잡아 둔다. 관심은 시선을 바꾸고, 시선은 삶의 반경을 넓힌다. 마음을 내어주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풍요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연결은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같은 여름을 보내도 누군가는 더위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슬그머니 불어오는 바람을 기억한다. 어떤 날은 매미 소리가 계절을 알려주고, 어떤 날은 느즈막히 일어난 아침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이 마침 흘러나오고, 횡단보도에 도착한 순간 신호가 바뀌는 작은 우연들도 있다. 세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기꺼이 발견하는 감각에 숨어 있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은 거대한 행복부터 찾기 시작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질 날,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미래. 하지만 그런 날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을 버티게 하는 것은 훨씬 작고 평범한 것들이다. 제철 과일의 맛을 기다리는 일. 돌아올 사람을 위해 저녁밥을 준비하는 일. 삼각김밥 같은 몸매와 고소하고 뽀송한 냄새를 겸비한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는 일. 겨울의 시리게 푸른 하늘, 가을의 낙엽으로 만들어보는 책갈피, 짝꿍 몰래 슬그머니 주워 모아보는 도토리와 알밤들. 하루 끝에 마시는 시원한 탄산수 한 잔. 오래 아껴 읽는 책 한 권. 삶은 이런 작은 애착들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오래 다정하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더 많이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권하는, 그리고 더 많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세상을 향해 시선을 내어주는 일이 결국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의 일상으로 증명한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달라진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어쩌지.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마음이 머무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넓어지고,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계절을 발견하고, 스쳐 지나가던 존재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되는 순간 하루는 조금 다른 온도를 가진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책이다. 『마호로 역』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미우라 시온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문장 감각은 이번 에세이에서 일상의 가장 작은 부분을 포착하는 힘으로 한층 깊어진다. 평범한 하루 속 숨은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식물과 동물, 계절과 책처럼 오래 곁에 둘 존재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또한 삶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거창한 위로보다 오늘을 살아갈 작은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계는 넓어진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만의 다정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도서출판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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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만난 소년
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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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교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그 의미는 교실 밖에서 증명된다. 한 사람에게 건네진 말과 태도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는 성적표나 졸업장이 아니라 이후의 삶이 말해 준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스무 해라는 시간을 건너 다시 이어진 한 인연을 통해, 교육이라는 행위가 남기는 흔적을 바라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음을 닫은 소년 진영과 그의 곁을 지키는 교사가 있다. 진영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종이 위에 뿌리 없는 나무와 사막에 홀로 남겨진 거북이를 그린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 남긴 흔적이다. 선생님은 그림 속 상징을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림 너머에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 한 장의 그림 뒤에 숨은 시간과 감정을 살핀다. 그림은 진영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선생님이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언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의 의미를 빠르게 규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그림을 읽는 기술보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이 지점에서 『그림과 만난 소년』은 교육을 ‘가르침’보다 ‘기다림’의 문제로 전환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상처의 원인을 단정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가진 결핍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정하려 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칼 로저스가 말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은 이러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인간은 완성된 모습을 인정받을 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때 변화할 힘을 얻는다. 판단을 유보한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 아이를 움직인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도 사라지지 않을 관계가 있다는 경험이었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작품 속 교육은 기존의 의미와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한다. 오늘날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거나 능력을 계발하는 제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빠르게 배우는지, 얼마나 높은 성과를 얻는지가 교육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교육은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곁을 마련하는 일이다. 선생님은 아이의 삶을 대신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교육이 남기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경험은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된다.

물론 진영의 변화가 선생님의 기다림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교육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마음을 내어 준 만큼, 진영 역시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이는 용기를 냈다. 수없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과정은 아이 스스로 선택한 변화의 시간이었다. 좋은 교육은 누군가를 대신 성장시켜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결국 한 사람의 변화는 가르치는 사람의 노력과 배우는 사람의 용기가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학창 시절, 모두 한 번쯤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노래를 불러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어른이 된 뒤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때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익숙한 가사였지만, 『그림과 만난 소년』은 그 노랫말 속 ‘은혜’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특별한 희생이나 위대한 가르침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아이의 마음이 닫혀 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일, 아직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먼저 믿어 주는 일이다.

좋은 스승은 많은 것을 알려 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삶의 한 시절을 함께 견뎌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결국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안전하게 내어놓을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경험은 시간이 지나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고, 결국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삶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한 사람의 삶에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몇 개의 시선이 있다. 누군가가 건네준 믿음과 기다림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사람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남는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한 아이의 변화를 기록하는 이야기이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떻게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42년간 교단에 서 있었던 임홍순 작가는 그림과 미술치료를 중심에 두고, 시와 음악, 문학 작품을 함께 엮어 아이의 내면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펼쳐 보인다. 정답을 알려주는 교육보다 한 사람의 속도를 기다리는 교육을 믿는 교사와 교육 관계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바라보며 이해받지 못했던 마음의 자리를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전한다. 또한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를 담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오래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누군가를 바꾸는 힘이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기다려 준 시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서출판 클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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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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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이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로, 문명을 만들고 지구를 지배해 왔다는 이유로 자신을 생명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인간은 언제나 다른 존재를 정의하는 기준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중심이었다. 그러나 가와카미 히로미의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그 오래된 믿음을 인류의 가장 먼 미래에 놓아둔 채, 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본다. 인류가 거의 자취를 감춘 세계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멸망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인간을 오래 응시한다. 종말을 이야기하는데도 절망보다 애정이 먼저 읽히는 이유는, 이 소설이 사라져 가는 문명보다 사라져 가는 존재를 끝까지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에 걸친 열네 편의 이야기는 서로 흩어진 조각처럼 시작된다. 시대도, 화자도, 문체도 조금씩 다르다. 공장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며,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가 긴 시간을 건너 인류를 지켜본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이한 풍경들이 이어질 뿐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를 비춘다. 연작이라는 형식이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아름다움. 하나의 생애를 완성하는 시간의 구조. 조각난 세계는 흩어지는 대신 서로를 완성하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인류라는 긴 생애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멸망조차 하나의 서정으로 직조해 내는 이 작품의 힘은 바로 그 거대한 연결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미래를 예견하는 SF라기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무대로 인간이라는 종의 오래된 민담을 새롭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인간다움은 이성이나 우월함보다 훨씬 사고한 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쟁심, 이유 없이 피어나는 질투, 누구에게도 완전히 닿지 못하는 외로움, 그럼에도 끝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때로는 인간을 가장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정의를 자랑해 왔지만, 이 소설은 생각보다 감정을 먼저 기억한다. 가장 연약한 부분이 가장 오래 남는다. 역설적이게도.

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세계는 멈추지 않고, 인간이 비워 낸 자리는 또 다른 존재들이 살아간다. 그 긴 시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중심에서 내려온 인간은 비로소 하나의 생명으로 선명해진다. 작품은 인간 중심주의를 무너뜨리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를 함께 지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중심에서 내려온 뒤에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특별했던 이유는 가장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쉽게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외로웠고, 가장 쉽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상상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기 위해 수천 년의 시간을 돌아오는 소설이다. 기술과 진화, 멸망과 탄생이라는 거대한 상상은 결국 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가 된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이르면 마음속에 남는 것은 미래의 풍경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지구 위를 살아가던 한 종이 끝내 품고 있었던 외로움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기억. 이 소설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인간을 기억하는 방식을 들려준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그리면서도 끝내 생명의 지속을 믿고, 인간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인간을 향한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인간은 가장 위대한 생명이어서 오래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생명이기에 전해진다.


한 존재의 생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존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려는 마음은 시간을 건너 새로운 형태로 이어진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그리는 소설이면서도, 사라짐보다 이어짐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먼 미래의 풍경 속에서 인간을 낯선 거리로 바라보는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독자, 기술과 진화 너머의 생명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적 SF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때로 하나의 이야기는 사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오래 이어진다.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무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문학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 조각난 이야기들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생애로 완성되는 연작 소설의 매력을 찾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작품이 될 것이다. 한 생명의 역사를 넘어 한 종의 기억을 따라가는 독서가 되어줄 작품이다.


✏️도서출판 디플롯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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