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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 영원히 기억될 예술가의 사랑과 음악
박은지 지음 / 저녁달 / 2026년 4월
평점 :
음악은 늘 완성된 얼굴로 우리 앞에 도착한다. 흠결 없이 이어지는 선율, 정제된 리듬, 감정을 다듬어 건네는 한 편의 질서. 그러나 그 음표들 사이에는 끝내 전달되지 못한 말들이, 닿지 못한 마음들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불멸의 연인>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을 따라가며 익숙한 선율에 낯선 온기를 덧입힌다. 사티와 쇼팽,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이름만으로도 완결된 세계처럼 보이던 이들의 음악이, 실은 한때의 사랑과 그로 인한 흔들림 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들리던 곡들은 더 이상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이 지나간 자리처럼 미묘하게 일그러진 결을 품기 시작한다.
사랑은 언제나 사라진다. 관계는 끝나고, 사람은 떠나며, 감정은 시간 속에서 흐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이루어지지 못한 감정,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오른 마음, 혹은 너무 늦게 깨달은 애정 같은 것들. 마치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사라질 시기를 놓쳐버린 채 다른 방식으로 머무른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의 감정은 다른 이름으로 현재를 통과한다. 이 책 속 음악들은 바로 그 겹침의 결과처럼 들린다. 이미 지나간 사랑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 관계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 마음이 선율이라는 몸을 빌려 다시 시간을 살아간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자신을 이어간다. 음악은 그 한 가지 방식이다. 그래서 어떤 선율은 처음 듣는 순간조차 낯설지 않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가슴에 닿는다.
사랑은 이들을 무너뜨린다. 베를리오즈의 집착은 현실을 잠식하고, 쇼팽의 불안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좀먹으며, 리스트의 열정은 삶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 사티의 사랑은 단 한 번이었기에 더욱 깊은 고요로 침잠한다.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감정이 있다. 평온한 상태에서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것들. 이들의 음악은 완성의 결과라기보다, 무너짐의 흔적에 가깝다. 질서와 형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생의 격렬함, 그것이 이들의 예술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견딜 수 없었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오래 남는 형태를 얻는 아이러니. 파괴와 창조는 서로를 밀어내는 힘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두 개의 물결처럼 겹쳐진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들. 저자는 그들을 단순한 영감의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각자의 삶과 욕망, 선택을 지닌 채 서로를 스쳐간 인물들로 그린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의 예술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남겨두는 일이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를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라 끝내 알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 설명할 수 없었던 거리감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아 하나의 작품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음악 속에 새겨진 타인의 흔적은 기억이면서 동시에 해석이고, 가까움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간극이다.
이미 끝난 사랑임에도, 여전히 현재를 건드리는 순간이 있다. 오래전의 감정이 아무 예고 없이 되살아나는 경험. 시간은 많은 것을 데려가지만, 모든 것을 데려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감정은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한다. 이 책을 지나고 나면, 익숙하게 들어왔던 선율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음악만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견뎌낸 시간과 감정이 함께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남아 있는 자리. 그곳에서 음악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라 살아남은 감정 그 자체가 된다. 앞으로 우리는 같은 곡을 들으면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쉽게 닫히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 이유 없이 같은 음악을 반복해 듣다가 문득 멈춰 서 본 적 있는 사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오래 머물러 본 사람, 그리고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들은 아마 이 책을 통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어떤 시간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나왔다고 믿었던 감정이 낯선 선율 속에서 다시 숨을 쉬고, 잊혔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조용히 떠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새로운 무언가를 알려주기보다, 이미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던 것을 다시 들려주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마치 오래된 음악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들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도서출판 저녁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