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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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은 2차세계대전 중에 씌였다.  당시 로맹 가리는 비행사로 참전 중이였는데, 틈틈히 소설을 써 <유럽의 교육> 외에도 몇편의 단편을 완성한다.
이 작품의 배경 역시 2차세계대전 중인 1942~1943년의 폴란드로, 독일군에 의해 부모와 형제를 잃은 열네살의 야네크는 레지스탕스들과 함께 숲속에 숨어 지내며, 이른바  '교육'을 받는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이 밀집되어 있는 유럽에서의 교육을 받은 것인데,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기엔 너무도 처참하고, 그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그런류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명의 요람이 아닌 초토화된 피투성이 유럽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혀 스스로 행하게 되는 '진짜 교육' 이었다.
 
열네살의 야네크는 독일군이라는 적 외에도,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고작 한살을 더 먹는 동안 무훈을 꿈꾸는 빨치산,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유식한 어른을 지나, 인간은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이며 지칠 줄 모르는 가여운 종의 하나일뿐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야네크는 유럽의 교육이란 '자기한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329쪽)' 이라고 절망하지만, 꿈꾸는 자이며, 이야기꾼이기도 한 도브란스키를 비롯한 동료 빨치산들을 통해 자유, 우정, 존엄성, 진보, 평화, 형제애, 박애에 대해 이해한다.
그러나 로맹 가리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잔인하고 불가해한 세상에서 우스꽝스러운 잔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세상,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질문하기 위해 한 번도 멈추는 법 없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늘 더 멀리(340쪽)' 를 외치는 세상이라는 야네크의 독백을 통해 다소 염세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독일이 패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압제자로 부터 해방되었음에도, 인간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절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인간다운 가치들이 실종된 짐승의 시간인 전쟁을 통해 희망, 사랑, 평화 따위에 관한 믿음을 품고 이를 노래하는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더 있어야 이런 가치들이 현실이 될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책세상'에서는 이 책을 이미 1999년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옮긴이 한선예의 설명에 의하면 '유럽의 교육'이란 원제목이 소설의 제목으로는 낯설어서 제목을 바꾸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말은 야네크의 아버지가 야네크에게 들려준 말로 소설 속에 여러번 등장한다. 소설의 초반에 야네크는 아버지의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그 말은 너무도 진실하지 못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네크는 점차로 이 말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관련된 '유럽의 교육'일 것이다.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를 읽었었다. 그때에도 소년 야네크와 소녀 조시아의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이기보다는 '인간애'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세상'에서는 2003년 재 출간본 부터 원제목인 <유럽의 교육>을 사용했는데, 10년 만인 2013년 올해 표지 디자인을 달리해 이번 책을 출판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그 책이다.  새롭게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전쟁이란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합리화 한다 해도 범죄일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더 강하게 고수하게 된다.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희망, 사랑, 평화를 노래하는 인간 꾀꼬리들이 많아 질 수록 중요한 것들은 더더욱 중요한 가치로, 사라지지 않을 진리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재 이야기꾼 로맹 가리는 1980년 66세에 권총 자살을 한다. 왜..? 더 이상은 할 이야기도, 하고싶은 이야기도 남지 않아서가 아니였을까? 로맹 가리에게 인간은 여전히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래서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는 그저 맹목적인 한 '종'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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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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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어요."

그는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다'는 말을 아주 빠르게 했다. 아니, 그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 말이 목에 걸렸다고 할까. 어쨌든 전에도 그 말을 하다가 고통을 당한 적이 있는 것처럼 서둘러 그 말을 끝냈다. 일단 그런 의심이 들자 그의 말이 모두 산산조각나버렸고, 결국 그에게는 조금 사악한 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3쪽)

 

닉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겠다고 다짐한 후, 개츠비는 또다시 조작한 과거를 들이 밀었다. 그의 고백은 위태로웠고, 누구보다 개츠비 자신이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개츠비의 거짓 고백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온통 부정하면서 오로지 한 여자만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개츠비가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 나는 데이지에게 몹시 화가 났다. 개츠비를 단 한번도 사랑한 적도 없으면서 욕망을 쫓는 삶의 공허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개츠비를 이용했다고 몹시 분개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밀주업으로 겨우 3년만에 엄청난 부를 쌓을만큼 냉혹한 개츠비는 사랑 앞에서는 어쩌면 그토록 무기력한 모습인 것인지, 어째서 데이지의 감정 노름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것인지에 대해 화가 났던 것이다. 개츠비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스믈 몇살, 사랑은 얼마든지 이기적일수 있고, 그를 위해 자기 자신의 감정조차도 속일 수 있는 새의 날개짓보다도 가벼운 감정놀음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때였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이번 책은 내가 읽은 세번째 개츠비 였다.

내 기억속의 <위대한 개츠비>는 주유소 앞의 교통사고 후, 변심(?)한 데이지로 인해 실의에 빠진 개츠비가 권총자살을 하는 것이였는데, 이 책에서는 개츠비가 죽은 뒤로도 이야기가 계속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할 당시 피츠제럴드가 유럽에 있었고, 또 그의 필체가 알아보기 쉽지 않았으며, 그후로도 개작하는 과정에서 여러번의 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은 텍스트의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더니, 혹시 이전에 읽은 책이 잘못되었던 것 아닌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다. 책꽂이를 뒤져 민음사에서 출간된 것을 찾아 보니, 개츠비의 권총 자살은 순전한 내 기억 속의 조작이였던 것으로 판명났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나는 개츠비의 이야기를 순전히 '사랑'에만 촛점을 맞추고 이해했던 것이다. 때문에 한 여자에게 두번째 실연을 하고 더이상의 가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실의에 빠진 개츠비는 내 기억 속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랑따위 얼마든지 종잇장 뒤집듯 뒤집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지,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히 한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사랑했던 것이다. 데이지는 단순히 그의 욕망을 이루는 매개였던 것이고, 성공한 개츠비에게 주어지는 부상과 같은 존재가 데이지 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인 걸까?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남편을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한다.

 

물질적 성공으로 인한 계급 상승의 꿈을 이루었지만, 개츠비는 기존의 상류층 질서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츠비가 여는 파티에서 광란의 밤을 보냈던 그 많은 사람들은 개츠비가 죽은 후 그를 조롱한다. 아니, 그들은 개츠비의 파티에서 조차 그를 의심하고 헐뜻으며 그의 성공을 시기했다. 그들은 시기심으로 인해 개츠비라는 사람의 인격마저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Great Gatsby인 이유를 이해했다고나 할까. 그는 사랑때문에 위대했던 것이 아니였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 졸부의 혁명이다. 결국 실패했지만.

 

 

 

나는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를 가지고 있고, 그중 세 권을 읽었다. 김욱동 버전의 민음사 판은 제일 처음 읽은 개츠비이며, 이미 두번을 읽었다. 열림원에서 출판된 김석희 번역의 책은 지금 읽은 바로 이 책이며, 문학동네의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가 김영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펭귄 클래식에서 출판된 것은 영문 합본이다.

번역은 또 다른 문학이라는 말을 나는 이 네 권의 <위대한 개츠비>로 확인 할 수 있었다. 김욱동 버전은 읽기가 수월했다. 그에 반해 김석희 번역은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린 때문인지 한 문장을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김영하의 번역은 좀 젊다. 같은 문장에서도 김영하의 재치가 드러나기 때문인데, 가볍지만 어쩌면 읽기에는 가장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영문합본인 펭귄 클래식 판은 아직 읽지 못했다. 합본인 만큼 두께가 위압적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자가 표지에 인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왠지 읽고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러나 여러 책을 비교해 읽으며, 원서가 궁금할 때 참고용으로는 아주 유용했다.

 

마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상영중인데, 나는 아직 보지 않았다. 예고편을 보니 무척이나 화려한 영상이길래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왠지 영화를 보고나면 자신을 부정하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꿈이라고 믿었던 개츠비의 애잔함이 너무 삼류스럽게 비춰질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다. 때문에 나는 영화로는 개츠비를 보지 않을 작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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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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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책을 읽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남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사기 치는 데 쓰고

누구는 책을 읽고 외로움을 달래고 슬픔을 극복하고

누구는 책을 읽고 우정을 쌓고

누구는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해 배우고

누구는 책을 읽고 힘을 얻어 자기를 뛰어넘고.(240쪽)

 

나는 책을 읽고 다시 살 힘을 얻는데 쓰고, 지은이 정혜윤은 책을 읽고 더나은 사람이 되어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데 쓴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결론이다.  

나는 아직 사람을 사랑하는데 까지 이를 정도로 독서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점점 사람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실의에 빠진 사람을 보듬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외로운 혹은 쓸쓸한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지 못한것에 대한 안타까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울고있는 내 안의 어린 소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새록새록 생겨남을 느낀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것이 안타까움인지, 부끄러움인지, 조바심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했으니, 이만하면 많이 여유로워진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읽은 책은 부족하고, 읽지 못한 책으로 인한 조바심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한 갈증이 크고도 깊다. 이것이 내가 죽을때까지는 책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그래서 행복한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이 책을 '책 권하는 책', 그러니까 서평집으로 알고 골랐다. 선뜻 책을 골라 읽기 어려워서, 또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른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서, 어떤 책을 꼭 읽고싶지만 반드시 읽을 절박함을 느끼지 못할 때 나는 서평집을 읽는다. 서평집을 읽으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할 동기를 일깨우기도 하고, 읽을 책과 읽지 않을 책을 고르기도 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삶에 대한 갈증으로 책을 읽는 나로서는 삶의 방향을 틀어줄 획기적인 도서 목록을 이 책으로 부터 얻길 바라고 있었던 거다. 물론 이 책의 뒷부분에는 본문 중에 인용된 책들의 목록이 잘 정리되어 있지만, 딱히 목록이 반갑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책을 권하는 책이긴 하지만,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으니까. 무엇을 읽던 자신이 읽을 책의 리스트는 자신이 작성해야 한다는, 혹은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책이니까.

 

라디오 PD이기도 하다는 그녀는 이야기를 참 맛있게 한다. 일부러 눌려서 끓여먹는 누룽지처럼 고소하고 꼬들한 맛이라고 할까. 야구를 사랑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택시 기사의 이야기로 정혜윤은 이야길 시작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데, 그 이야기는 책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가 책을 읽는 이유가 다시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다고 보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을 헤매며 주말을 보냈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 '7번방의 기적'을 보지 못했고, 꼭 먹고 싶었던 용인의 멧돼지 전골을 먹으로 가지도 못했다. 앉은 자세가 엎드린 자세가 되고, 엎드린 자세가 누운자세가 되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누구보다 편안하고, 누구보다 풍요롭게 주말을 보냈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제목의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므로써 내 자신이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 속의 어린 나를 보듬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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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 읽기
김의기 지음 / 다른세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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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감상 적기를 즐기는 나는 정작 다른 사람들의 서평은 잘 읽지않는다. 그러나 유독 서평서적은 좋아하는데, 그것은 어떤 이유일까 생각해본다. 다른사람이 적은 서평이 궁금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것보다는 읽고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골라내고 싶은 실용적인 욕심에서 서평서 읽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읽은 책에 대한 평을 책으로 출판할 만큼 자신있게 추천하는 그들의 서평서 읽기는 기대한만큼 즐겁다. 저자가 추천하는 바로 그 책을 읽고싶은 흥분에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이미 읽은 책에 대해서는 나와 다른 지은이의 감상을 기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로 지금까지 수많은 서평서적을 읽었음에도 새로 출판되는 서평 책들은 마치 처음보는 책마냥 설레고 즐겁다.

 

제목만으로도 정말 유쾌해지는 <어는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지은이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WTO(World Trade Oragnization,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무려 24년간을 일하고 있으며, 또 국제기구 안의 북클럽을 통해 세계각국의 사람들을 책과 함께 만나고 있다고 했다. WTO와 FTA의 차이점도 제대로 모르는  나로서는 국제기구, 더구나 세계무역을 관장하는 기구에서 일하는 지은이의 이력에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러나 여기에 실린 책들이 서로 다른 문명권의 멤버들이 북클럽에서 토의한 책들이라는 점에 몹시 끌렸다. 작은 동네 북클럽 회원들 조차도 같은 책을 읽고 다른 감상을 말하기 일수인데, 환경과 관습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북클럽의 토의는 어떤 장면일까 몹시 궁금했다. 지은이의 생각을 적은 서평들이지만, 분명 북클럽의 토의내용이 적지않은 부분 포함되어 있으리란 기대로 이 책을 펼치기가 더더욱 흥분이 되었다.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작품에 대한 해석이 종래의 해석과 상당히 다르고 신선한 느낌을 줄 것이라고 했는데, 각각의 서평을 읽으며 그다지 충격적이거나, 의아스러울만큼 새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어쩌면 다른 환경, 다른 문화 속의 사람들이라 해도 인간이 책을 통해 느끼는 감성은 생각만큼 크게 색다르진 않을수 있겠다 싶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글에는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지은이의 생각과 지은이 자신의 삶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작품들의 줄거리가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지은이가 추천하고 있는 책들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또 반대로 고전을 읽고 싶지만, 너무 생뚱맞거나 어려울듯 해 시도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미리보기 같은 역할을 할수도 있겠다.

지은이는 책을 시작하며 '독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요, 세상과 나누는 대화'라 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시기, 책을 읽을 당시의 환경에 따라 미미하게 다른 감정을 느낄수 있다. 그것이 바로 책을 읽는 재미이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미 읽었던 책들조차도 다시 읽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또한 아직 읽지않았지만 언젠간 읽어야지 했던 책, 예를 들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경우 당장 읽고싶은 흥분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책을 권하는 책을 즐기는 가장 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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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족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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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뱁새족>은 일제시대 통영 땅이 배경인 <김약국의 딸들>보다 어째 더 읽기 쉽지않았다. 시간적 배경으로 본다면야 <김약국의 딸들>이 훨씬 이전이지만, 1960년대의 용어나 시대상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보았다. 1960년대라면 50년 전쯤으로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건만 너무도 낯설어서 한 문장을 읽는데도 두세번을 반복해야 했다. 음미하고 느끼며 되새길 시간이 없을만큼 빠르게 우리나라의 사회 상황과 경제 상황이 달라진 탓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외국문학을 더 많이 접한 탓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이것은 내 개인적 취향 탓일까, 출판계의 경향 탓일까? 거창하게 출판계 상황까지는 잘은 모르니 소견 좁은 내 취향 탓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소위 지식층과 상류층으로 불리는 계층의 허위허식을 비판한 이 책은 고급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는 분뇨 냄새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을 보자면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대체로 모두 한결같이 웃고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주인공인 유학파 병삼은 이렇게 표현한다.
 
모두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슬픔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얼굴을 주워 모아 웃기고 있는 만화의 한 컷 같았다. '단순하고 배짱 좋고 만사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약고 재빠르며 능청스런 그네들... '(중략) 소심하고 복잡하며, 뽐내고 등쳐먹고 굽실거리는, 그래도 슬프니 말이다. 광대이기 때문에 슬픈거다. 광대는 자고로 남자였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노리개가 되고 남자는 병신에다 못나야만 노리갯감이 된다. 슬프고 비참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웃기겠는가. (62쪽)
 
이러한 시각으로 당대의 지식인과 상류층을 바라보는 병삼은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그 자신 역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밉살스런 소리를 잘도 하는 병삼이 마냥 밉기만 하지 않다. 그러나 욕망이 나쁜 것,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하류로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상류로 모여들기 마련이 아닐까? 모두가 한결같이 욕망을 쫓는 이 실타래에서 누가 진정 황새이고, 누가 황새를 쫓는 뱁새인지의 구분은 필요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본시 인간사회에 타고난 황새란 누구이며, 황새가 되고자 하는 뱁새는 누구인지 말이다. 인간은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인데 굳이 상류, 하류의 구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정작 본인은 선택한 적도, 선택할 수도 없는 '태생'만으로 그런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면, 욕망을 쫓아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일이 어째서 잘못인지 하는 황당한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황새가 되고 싶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더 안쓰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본질적으로 '부'로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다. 한마디로 이래저래 똥 폼 잡는 인간이 우스운 것이다.
 
일본 왕의 징표인 검, 곡옥(?), 거울을 '삼종신기'라 한다는데, 작가는 1960대 상류층의 삼종신기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를 꼽았다. 2013년 오늘날 상류층의 삼종신기는 무엇일까. 한정판 외제차, 표나지 않는 명품백 뭐 그런것으로 상류층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놀라울만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그 결과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 따위야 얼마든지 넘쳐나는 요즘에도 여전히 물질적인 것들로 상류를 나누는 시대이긴 하다.
병삼은 지적 충만함을 일등시민의 조건으로 보고있는데, 나 역시 병삼과 같은 부류로 물질적인 것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그들을 모멸과 질시를 담은 눈으로 보지만, 병삼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때 나역시 슬픔을 느낀다. 산다는 건 모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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