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족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뱁새족>은 일제시대 통영 땅이 배경인 <김약국의 딸들>보다 어째 더 읽기 쉽지않았다. 시간적 배경으로 본다면야 <김약국의 딸들>이 훨씬 이전이지만, 1960년대의 용어나 시대상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보았다. 1960년대라면 50년 전쯤으로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건만 너무도 낯설어서 한 문장을 읽는데도 두세번을 반복해야 했다. 음미하고 느끼며 되새길 시간이 없을만큼 빠르게 우리나라의 사회 상황과 경제 상황이 달라진 탓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외국문학을 더 많이 접한 탓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이것은 내 개인적 취향 탓일까, 출판계의 경향 탓일까? 거창하게 출판계 상황까지는 잘은 모르니 소견 좁은 내 취향 탓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소위 지식층과 상류층으로 불리는 계층의 허위허식을 비판한 이 책은 고급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는 분뇨 냄새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을 보자면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대체로 모두 한결같이 웃고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주인공인 유학파 병삼은 이렇게 표현한다.
 
모두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슬픔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얼굴을 주워 모아 웃기고 있는 만화의 한 컷 같았다. '단순하고 배짱 좋고 만사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약고 재빠르며 능청스런 그네들... '(중략) 소심하고 복잡하며, 뽐내고 등쳐먹고 굽실거리는, 그래도 슬프니 말이다. 광대이기 때문에 슬픈거다. 광대는 자고로 남자였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노리개가 되고 남자는 병신에다 못나야만 노리갯감이 된다. 슬프고 비참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웃기겠는가. (62쪽)
 
이러한 시각으로 당대의 지식인과 상류층을 바라보는 병삼은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그 자신 역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밉살스런 소리를 잘도 하는 병삼이 마냥 밉기만 하지 않다. 그러나 욕망이 나쁜 것,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하류로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상류로 모여들기 마련이 아닐까? 모두가 한결같이 욕망을 쫓는 이 실타래에서 누가 진정 황새이고, 누가 황새를 쫓는 뱁새인지의 구분은 필요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본시 인간사회에 타고난 황새란 누구이며, 황새가 되고자 하는 뱁새는 누구인지 말이다. 인간은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인데 굳이 상류, 하류의 구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정작 본인은 선택한 적도, 선택할 수도 없는 '태생'만으로 그런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면, 욕망을 쫓아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일이 어째서 잘못인지 하는 황당한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황새가 되고 싶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더 안쓰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본질적으로 '부'로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다. 한마디로 이래저래 똥 폼 잡는 인간이 우스운 것이다.
 
일본 왕의 징표인 검, 곡옥(?), 거울을 '삼종신기'라 한다는데, 작가는 1960대 상류층의 삼종신기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를 꼽았다. 2013년 오늘날 상류층의 삼종신기는 무엇일까. 한정판 외제차, 표나지 않는 명품백 뭐 그런것으로 상류층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놀라울만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그 결과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 따위야 얼마든지 넘쳐나는 요즘에도 여전히 물질적인 것들로 상류를 나누는 시대이긴 하다.
병삼은 지적 충만함을 일등시민의 조건으로 보고있는데, 나 역시 병삼과 같은 부류로 물질적인 것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그들을 모멸과 질시를 담은 눈으로 보지만, 병삼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때 나역시 슬픔을 느낀다. 산다는 건 모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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