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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지음, 임호경 옮김 / 까치 / 2012년 12월
평점 :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숲, 고독, 체험, 은둔, 눈덮힌 시야 따위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다. 도시내기인 나는 입버릇처럼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도시를 떠나 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여행 역시도 무엇보다 편하고 깨끗한 잠자리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다만 책을 통해서 타인의 경험을 마치 내가 체험하는듯 느끼기는 즐기는 편인데, 역시 그는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상상 이외에 손이 갈라지고 뺨이 창백해지는 생생함은 전혀 느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 책 역시도 그랬다. 여행가 실뱅 테송의 바이칼 호반 오두막 생활을 마치 <로빈슨 크루소>의 일기를 읽듯 따뜻하고 안전한 내 집, 내 침대에서 막연한 상상으로 읽었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극지방, 혹은 오지체험을 할 수 없는 게으른 종족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 외에는.
'나는 몇 달 동안 오두막 생활을 하리라는 맹세를 했었다. 곧, 추위와 정적과 고독은 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구과잉에 이상고온과 온갖 소음에 시달리는 이 지구에서 숲속의 오두막은 일종의 엘도라도 라고 할 수 있다'(38쪽)
엘도라도. 이상향. 내가 꿈꾸는 고독. 다만 나는 절대 이루지 못할 꿈. 현대문명의 혜택은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그리는 자연으로의 귀향. 소나무 가지들을 지붕으로 삼고 번잡한 일상과 갈수록 세밀해지는 물건더미 속에서 놓여나 책을 읽고, 잠을 자고, 한동안은 멍하게 있을 자유를 꿈꾼다. 실뱅 테송의 고독을 마치 내가 느끼는 고독인양 위안삼아 이 책을 읽으며.
도피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내마음대로 무엇을 하건 아무의 허락도 필요치 않고, 누구의 시선도 느끼지 않으면서 게으를 자유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이 꼭 시베리아의 광활한 얼음 숲속은 아니어도 가능하련만, 나는 경기도를 벗어나는 것 조차도 크게 인심쓰듯 작정을 해야 한다. 아, 습관적으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얼마나 입에 달고 사는지. 그러나 결코 떠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실뱅 테송의 바이칼 체험기를 마냥 부러운 시선으로 약간의 안도감 속에서 읽을 수 밖에 없다.
은둔의 유혹이 생기려면 반드시 어떤 주기를 거쳐야 한다. 숲속 빈터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두막에서 살기를 열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순응주의라는 굳기름 속에서 온몸이 경직되고, 안락함이라는 돼지기름 속에서 정신이 곪아터져야 비로소 숲의 부름이 귀에 들린다.(163쪽)
6개월간의 체험이 아닌 일상의 숲이라면 실뱅 테송은 시베리아의 오두막 생활을 결코 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볼이 얼음 바람 속에 늘 빨갛게 얼긴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날마다 노래하지는 않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기간이 정해진 은둔은 진정한 은둔이 아니다. 돌아올 기약을 약속한 떠남은 낭만적이고싶지만 게으른, 혹은 정신적이고 싶지만 몹시도 물질적인 도시인들을 위한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반성장을 국민에게 부과할 통치자가 없는 것처럼 오두막의 간소함을 정해진 기간 외의 삶으로 받아들일 사람 또한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점에서는 실뱅 테송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같지않은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나의 게으름이 그다지 한심하게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라 다소나마 안심하게 된다.
다만 나는 오늘도 꿈꾼다. 실뱅 테송이 짊어지고 들어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라던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가 든 책꿰짝을 지고 어딘가로 숨어들어가 무작정 책만 읽을 수 있는 자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