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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등대 -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왜 전기傳記인가? 여기서 내가 들려줄 모험의 주인공들은 어떤 점에서 우리 시대를 위한 '등대들'인가? 이 책 속의 글들은 각자에 대해 인터넷에서 그저 클릭 한 번이면 찾을 수 있는 내용에 무엇을 더한 것인가? 전기? 우선은 그 어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운명보다 더 광적이고, 더 강렬하고, 더 허구적이고, 우여곡절과 모순이 더 많은 운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그 어떤 이론도 예술가들과 발견가들, 모험가들과 크리에이터들, 반항하는 자들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의 예상치 못한 일들로 풍요로운 인생 여정만큼 여가에 대해 잘 이야기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5쪽)
라고 자크 아탈리는 이 책의 서문을 연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전기를 읽는가? 그것은 문학을 읽는 이유와 같을 것인데, 위인들의 업적을 닮고 싶다는 현실성 없는 허황된 욕망보다는, 실존 인물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행동할 바에 대한 예측 내지는 다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대세'를 따르지 않으면 소외된다고 여기기 보다는 좀더 나다운 삶을 살고있다는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읽은 문학 작품 중 모파상의 <벨아미>가 있다.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의 '벨아미'라는 별칭을 가진 뒤루아는 자신의 뛰어난 외모를 이용해 살롱에서 여러 여성들을 우롱하고 버리는 행동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했고, 또한 그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간단히만 본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죄책감도 가지지않는 규범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은 사람은 벨아미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설 <벨아미>는 탐욕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승증장구하는 몹시 불합리한 세상 이치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모파상은 <벨아미>에서 권선징악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모파상은 19세기 당시 프랑스 상류 계층의 투기와 권력 남용에 빠진 추악한 사회상을 그대로 조명하고자 했다. 소설 <벨아미>에서 '나쁜 인간'은 비단 벨아미 뿐만은 아닌 것인데, 벨아미를 신문사에 취직시킴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포레스티에도, 벨아미와의 계약결혼을 이용했던 마들렌도, 벨아미와 마들렌의 능력을 이용했던 장관과 신문사 사장, 그리고 그의 아내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한다. 자익을 위한 서로간의 이런 우롱이 비단 19세기의 프랑스 상류사회에서만 있었던 일일까. 세상이 열리고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탐욕에서 비롯된 이와같은 비극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문학 속에서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킨 이들의 이야기보다는 대세를 따르고, 자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며,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지만, 현실에서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신념을 지키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자크 아탈리의 <등대>에 등장하는 23인의 위인들은 역경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써 믿을 수 없이 강렬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위한 삶인 아닌 '자신만의 생'을 살아냄으로써 오히려 후세에 등대로 남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문학 속의 허구적 인물들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내 삶이 나아갈 바를 비쳐줄 이야기들을 담고있는 책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나답게 산다'는 것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으리라는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책을 매개로 나를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으며 죽은 자를 위한 문화, 기득권자를 위한 문화인 유교문화가 사라져야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될 것이라며 무릎을 쳤던 나는, 이 책에서 첫번째로 등장하는 '공자'를 읽으며, 공자는 기득권자를 위한 세상을 열려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올바르게 서는 세상을 꿈꿨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질서에 사로잡힌 광대한 중국에서 공자는 개념들을 정립하고, 규범들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위나라 군주가 공자로 하여금 권력을 부리게 한다면 어쩌겠냐는 애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용어의 정확한 사용법부터 확립할 것이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렇다.
만약 용어들이 정확하지 않다면, 모든 언술이 무질서할 것이다. 만약 그 언술이 형태가 없다면 명령들이 실행될 수 없고, 명령들이 실행되지 않으면 제식과 음악 속에 적절한 사회형태와 사회관계를 복원시키기가 불가능하다. 만약 적절한 형태들이 복원되지 않으면 정의는 그 목적이 결핍될 것이고, 정의가 지배하지 않으면 백성은 어떤 방침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될 것이다. 현자가 새로운 법을 공포할 때는 정확하고 분명한 용어들로 그 법을 언술할 줄 알아서 그가 명령을 내릴 때면 논의 없이 실행될 것이다. 현자는 결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21쪽)
공자를 조금 훑어보았다고 해서 기득권자를 위한 문화로 여겨지는 유교문화에 찬동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공자가 원했던 것이 비단 그들만을 위한 세상은 아니였다는 것을 아탈리의 해설을 통해 알게 됨으로써 공자에 관해, 그의 사상에 관해 조금 더 많이 궁금해졌고, 공자를 알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많이 알려진 위인이건 나로서는 처음으로 알게된 인물이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딱딱하지 않게 문학처럼 잘 풀어냈기에 무척 마음에 드는 책이다.
23인의 등대들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위인들 외에도 유태교 신학자인 마이모니데스, 로마 카톨릭 교회를 반대한 조르다노 브루노,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의 다섯 나라를 스페인의 시민 통치에서 해방시킨 영웅 시몬 볼리바르, 알제리 독립운동가 압델카데르, 독일의 유태계 정치인이자 기업가인 발터 라테나우, 예술가로서 실패하고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삶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구소련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아프리카의 현자로 불리우는 함파테 바 등,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인물도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23인의 위인들은 모두에게나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영웅이 아닌, 자크 아탈리가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오늘날에 존재하기까지 길을 밝혀준 아탈리가 꼽는 등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내 인생의 등대'로서는 가치없는 인물들은 아니다. 후세에 오래도록 남아 위인으로 칭해지는 인물들의 삶도 물론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는 듣고 싶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에게도 삶이란 것이 있었고, 그들의 일상 또한 위인들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가 되었을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고 이끌어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탈리도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대단한 지식을 가진 농민들, 힘들게 노력하는 노동자, 청렴한 공무원들 등등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은 이 책에 실린 이들 외에도 너무나 많이 있다라고 밝힌다. 한 사람의 생은 많은 사람들이 뿜어낸 빛으로 짠 그물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생소한 인물들의 낯선 이야기 역시 즐거웠던 것이다.
빛으로서 인류에게 등대 역할을 하는 이들만이 아닌, 이른바 '그늘' 혹은 '암흑'이기조차 했던 '악인'들의 삶 또한 후세의 우리들에게 위인들과는 또 다른방식으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해 볼 수 있었다.
자크 아탈리의 삶을 밝혀준 '등대' 이야기를 들었으니, 소소하지만 나만의 '등대'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음, 쉽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