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큰 자본가라는 아버지, 프티부르주아 작은 소시민이라는 어머니.
자본주의 논리이므로. 거꾸로도 같다. 자산을 가지고 있는 소시민들은, 부르주아지를 지지할 수 있다. 대체로는 자녀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적절한 환경, 장기적인 경제 전망을 고려해서 판단한다. 훗날 법적으로는 상속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자본가들은 '로펌'을 가졌고, 전문 변호인단들로 구성한다. 큰 이혼이나 파혼이 아닌 이상으로는, 법적인 다툼들이라는 여러 소문이라는 '스캔들', 작은 소문이라는, '가쉽'거리를 짧게 다루는 건 바로 언론들이다. 여기서 주류나, 비주류 언론이라는 매체로는 구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체 언론들은 바로 상당한 자본을 이미 소유하고 있고 또, 내부 경쟁이라는 심화된 양상으로도 수익을 창출하고자, 광고를 위해 자극적인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존 리드를 읽어 본 독자라면, 러시아 혁명을 취재한 인물이 다름 아닌, 미국인이었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도, 러시아 혁명은, 외부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에게도, 큰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었고, 러시아에서 전 인민들은 모두, 혁명을 위해 헌신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바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바로 현장 보도였기 때문이다. 레닌도 존 리드를 알았고, 미국인이었음에도, 그를 존중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국인이지만, 단지 사회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아닌, 여러 국가들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 혁명을 취재했고, 또한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지만, 결 다른 언론인도 있다. 바로 에드거 스노우다. 그는 마오를 취재했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러나 <중국의 붉은 별>은 홍위병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보이거나, 스탈린주의라는 지도 아래에서 마오주의를 지지하는 흔적들도 자주 보인다. 그래서 해당 저서는 마오주의에 대한 비판 없이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위험도 같이 보인다. 존 리드, 에드거 스노우는 모두 미국인들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그리고 존 리드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도 지지했다. 트로츠키는 멕시코로 갔지만, 미국인들과 자주 서신이나 연락을 교환했고, 스탈린 첩자에게 암살 당하기 전까지도, 미국에서도 혁명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단지 내전이라는 양상이 아니라,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뿌리를 여러 인종들로부터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을 역사로도 다룰 줄 알았다. 트로츠키 이론들에 대한 비판들은 뒤로 하더라도, 혁명에 대한 전망으로는 앞서 갔다고 말할 수 있다. 영국 이전에도 미국은 바로 혁명 국가로 일어날 수 있는 큰 전망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나 곧 자본가들이 몰려든 제국주의를 완성한 국가라는 걸 증명했다.
한국은 미국과 많은 관계를 맺어왔고, 또 서구식을 일부 받아들이더라도, 자국 뿌리를 잃고자 하지 않았다. 뼈 아픈 분단이라는 역사를 가진, 스탈린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사상 대립으로부터도, 미국은 자본가들만의 국가를 만들고자 탄압도 했다. 그리고 소수 민족들을 제거하고, 식민지를 건설한 드넓은 대륙으로 걸친 유럽인들을 모방한 국가이기도 했다. 인종 우월주의가 만들어진 국가들도 다름 아닌 '건강한' 서구인들로부터 왕성한 활동지이자, 활력소였기 때문에, 링컨의 노예들은 아직도 계급 투쟁이라는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시민들은 때로는 계층으로는 중간층, 계급으로는 중간 계급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배부른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상속할 재산과 유산을 남기고자 하듯이, 소시민들은 배부른 자본가들로부터, 세월이 가기 전에도, 남길 재산과 유산을 먼저 걱정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가난과 배고픔을 모른다. 그리고 교육받지 못한 채로 전쟁을 지지한다. 부모는 그들 모두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다음에도 커서, 똑같은 사람으로 말할 것이냐고. 그러나 이윽고 자녀들은 한때는 프롤레타리아트였던 부모에게 배운다. 도대체 똑같이 크고, 똑같은 교육을 받아서, 몸만 자랐느냐고.
신성 가족.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다같이 말했던 신성 가족에서 말하고자 한 본모습이란 바로 그들을 그려낸다. 그래서 엥겔스와 구상을 두고는 다투기도 했다. 덕분에 신성 가족은 자본가에서 지배가로 부상하기까지 부르주아지에 대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쓴 저작이다. <신성 가족>은 때로 현대로는 '재벌'에 대한 사실을 파악하고자, 산업화된 구조로부터 자본주의가 매우 종교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말 그래도 이윤과 축적으로부터 보여진 그들을 잘 다루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다루는 큰 법과 소송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류된 큰 인물들과 조연들을 무대로 이끌고, 또 이루기 때문이다.
매우 '화목한' 미국식 안방 극장인 셈이다. 그리고 노동 가족들의 잔인한 희생으로 곁들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