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 혁명과 농민.
농민들은 때로는 매우 억센 민중이기도 하다. 바로 농촌 사회로는 노동 계급 투쟁보다도 매우 끈질기게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바로 모든 정권에도 속 깊게 도전한다는 점으로는 일반 노동 계급들 가운데에서도 무산 농민들은 경제 요구와 그러한 반발에 대해서는 매우 정확하고 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훨씬 정당하고, 또 과격하기도 하다. 농촌 사회에서 농민들은 계급 층위로도 나뉘었다고 지적한 사람으로는 다름 아닌 레닌이기도 했다는 점을 받아들일 줄 안다면, 과거 소련에서는 지주 자본가라는 쿨라크에 대한 비판과 청산으로부터 제기한 집단 농업이라는 형태마저도 여러 정책으로부터 시행해볼 수 있었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별 농업에 대한 한계에서부터 자본주의와 무관한 공산주의 경제로부터 독립한 식량 생산에 대한 여러 연구를 실천하고 또 진행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주 토지 문제로는 농촌 사회에서도 많은 훼방과 방해를 야기하기도 했다. 단지 토지 소유권에 대한 단편적인 시각이 아니라, 공동 농업 뿐만이 아닌, 해양에서도 수산업으로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업도 있다. 당시 소련은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다는 점을 간과하곤 한다. 그러나 각국마다 같은 생산 수단들에 대한 생산력들은 따라서 무슨 일에 종사하는가에 따라서 매우 다르다는 점을 쉽게 잊거나, 까먹곤 한다. 소련 농촌 교육에서는 특히 단지 까막눈 운동이라는 문맹에 대한 해소로만 끝나지 않았고, 계급 문제에 대한 고찰로까지 전개할 수 있었다는 점으로도, 시사하고 배울 점도 크다고 본다. 따라서 단지 과거 유산이라는 문제로만 취급하거나, 바라 볼 문제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지주 자본가에 대한 전원 생활에 대한 환상을 일소하는 데로는 계급 문제를 꾸준하게 제기한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다.
레닌은 노동 계급을 다룰 때도 단순하게 도시 노동가만이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매우 깊은 관심과 또한 흥미를 보였다는 점이다. 처음 소련 대략 80% 농민들로는 단지 농촌 사회에서 오래 거주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개별 농업에서도 여러 과학 연구를 환경에도 알맞게 혼재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력을 늘릴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농민에게도 계급 생산에 있어서 지주만이 아니라 부농, 중농, 소농으로 분류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농촌 사회에서도 지배된 계급 사회에 대한 문제를 당시로는 앞서 증명하고자 했고, 또 그러한 농촌 사회 참된 개혁에도 앞장 섰다는 점에서 계획 경제에 대한 실천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또 말하고자 한다.
무산 혁명은 농민 민중들과도 무관하다는 식에서, 그리고 농민들이나 민중들은 하나도 배운 게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오히려 무산 계급을 지지하는 농촌 사회로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만 찾던 집단 농업만이 아니라 코뮌 경제를 먼저 내세웠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토지와 임농에 대한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미리 땅 투기를 해서, 관광업을 개발한다는 목적으로, 자본을 공들여 여러 가구들과 처음부터 있던 공동 농업 토지를 되돌릴 수도 없도록 훼손하고, 황폐하도록 만들었다는 문제를 이제는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한 관광지들은 자본 산업으로부터 특히 자연 경제에 대한 여러 문제들도 남겨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로는 문제를 제기할 때는 단지 자연 훼손이나 환경 파괴로만 문제를 일축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제들은 모두 계급 문제 특히 농업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무분별한 노동 개발과 농촌 사회라는 문제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깊은 골과도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지주와 자본가라는 오래된 토지 문제로는 국내에서도 시급하게 제기할 자본주의에 대한 물음이라고 본다.